신원사 타이치오트 부족장 타르구타이 열전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보르지긴 일족으로 테무진 당시 최강 부족이었던 

타이치오트의 부족장 타르구타이 키릴톡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7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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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 탑이홀대(塔而忽臺) 열전

時太祖仇人附札木合者曰泰赤兀赤部長塔而忽臺,蔑兒乞部長脫黑脫阿,俱爲太祖所滅。

塔見忽臺,太祖五世祖海都次子扯兒黑領昆之後。

令穩,遼官名,蔡古語訛爲領昆。

領昆長子莎兒郭都魯赤那,與託邁乃汗同時。

其子俺巴亥,繼哈不勒之汗位,娶婦至塔塔兒部。

塔塔兒執之,送於金,金人殺之。

俺巴該子哈丹太石。

哈丹太石子布達歸附太祖。

布達子速敦諾顏領速而圖斯部衆。

塔而忽臺乃泰亦赤兀阿達爾汗之子,與同祖兄弟忽力兒把阿禿兒、盎庫兀庫楚,皆爲泰亦赤兀部長。

初,阿達爾汗與烈祖親好,繼而不葉,至以兵相攻。

烈祖崩,太祖方十三歲,塔而忽臺兄弟強盛,太祖部衆多叛從泰亦赤兀。

札木合赤歸之。

於是塔而忽臺遂與太祖相仇。

塔而忽臺性很毒,人稱之曰開勒而禿克。

太祖嘗爲所獲,枷太祖項,一老樞憐之,爲梳髮,以氈裹其項。

既而,太祖逸去,遇速而圖斯人鎖而幹失剌救之,事具《赤老溫傳》。

後札木合與塔而忽臺等集三萬人攻太祖,戰於答蘭巴渚納,太祖失利。

泰亦兀赤部下朱裏耶人出獵,遇太祖於烏者兒哲兒們山。

朱裏耶隊以糧糗不給,已歸其半。

太祖堅留之。

次日,再獵,分以飲食,復驅獸向之,俾多獲。

朱裏耶人感之,相謂曰:

「泰亦赤兀薄待我。

  帖木真素與我疏,乃厚我如此,真人君之廢也。」

其部長遂率所部來歸。

諸族皆謂泰亦赤兀無道,帖木真能撫衆,亦相率降附。

巴鄰部長述兒哥圖額不幹與其子納牙阿擒塔而忽臺,欲獻於太祖,中道復縱之,惟父子來降。

太祖義之。

時蔑兒乞酋脫黑脫阿遣使糾合泰亦赤兀各部,塔而忽臺、忽都答兒、忽里兒把阿禿兒、盎庫兀庫楚等,共會於斡難河沙漠中。

太祖與王罕兵至,敗之,追及於特禿剌思之地。

赤老溫以槍擲塔而忽臺,中之,墜馬。

塔而忽臺曰:

「我固當死,然爲鎖兒幹失剌之子標槍中我,我死不甘心。」

遂爲赤老溫所殺。

忽都答兒亦死。

盎庫兒庫楚奔巴兒古真,忽里兒把阿禿兒奔乃蠻。

泰亦赤兀部遂滅。

史臣曰:

「札木合率十三部之衆,與太祖爭衡,可謂勁敵矣。

  然矜凶挾狡,反覆先常,卒爲左右所賣,非不幸也。

  泰亦兀赤或謂出於勃端察兒之孫納勤,拉施特曰:

  『蒙古金字譜,泰亦兀赤之祖爲扯而黑領昆,納勤救海都免於札剌亦之難,其牧地又近於領昆,故訛爲泰亦兀赤之祖焉。』。」 

이때 태조(太祖)의 구인(仇人)으로 찰목합(札木合)에게 부(附)한 자(者)로 말하자면 태적올적(泰赤兀赤) 부장(部長) 

탑이홀대(塔而忽臺)와 멸아걸(蔑兒乞) 부장(部長) 탈흑탈아(脫黑脫阿)인데, 모두 태조(太祖)에게 소멸(所滅)하였다.

탑견홀대(塔見忽臺)는, 태조(太祖)의 5세조(世祖) 해도(海都)의 차자(次子) 차아흑령곤(扯兒黑領昆)의 후(後)예다.

[영온(令穩)은 요(遼)의 관명(官名)으로, 몽고어(蔡古語)가 와(訛)하여 영곤(領昆)이라 하였다.]

영곤(領昆)의 장자(長子) 사아곽도로적나(莎兒郭都魯赤那)가 탁매내한(託邁乃汗)과 더불어 동시(同時)였다.

그 자(子) 엄파해(俺巴亥)가 합부륵(哈不勒)의 한위(汗位)를 계(繼)하였고, 취부(娶婦)하여 탑탑아부(塔塔兒部)에 

지(至)하였는데, 탑탑아(塔塔兒)가 집지(執之)하여, 금(金)에 송(送)하였고, 금인(金人)이 살지(殺之)하였다.

엄파해(俺巴該)의 자(子)는 합단태석(哈丹太石)이고, 합단태석(哈丹太石)의 자(子) 포달(布達)은 태조(太祖)에게 

귀부(歸附)하였다.

포달(布達)의 자(子) 속돈낙안(速敦諾顏)이 속이도사(速而圖斯) 부중(部衆)을 영(領)하였다.

탑이홀대(塔而忽臺)는 곧 태역적올(泰亦赤兀) 아달이한(阿達爾汗)의 자(子)로, 동조(同祖) 형제(兄弟) 홀력아(忽力兒) 

파아독아(把阿禿兒), 앙고(盎庫) 올고초(兀庫楚)와 함께, 모두 태역적올(泰亦赤兀)의 부장(部長)이 되었다.

초(初)에 아달이한(阿達爾汗)은 열조(烈祖)와 더불어 친호(親好)하였는데, 계이(繼而) 불엽(不葉)하여, 병(兵)으로써 

상공(相攻)함에 이르렀다.

열조(烈祖)가 붕(崩)하자, 태조(太祖)가 바야흐로 13세(歲)였는데, 탑이홀대(塔而忽臺) 형제(兄弟)가 강성(強盛)하였고, 

태조(太祖)의 부중(部衆)이 다반(多叛)하여 태역적올(泰亦赤兀)을 종(從)하였다.

찰목합(札木合) 역시(赤) 귀지(歸之)하였다.

이에 탑이홀대(塔而忽臺)가 마침내 태조(太祖)와 더불어 상구(相仇)하였다.

탑이홀대(塔而忽臺)는 성(性)이 흔독(很毒/매우 잔인함)하였는데, 인(人)이 칭지(稱之)하여 말하길 

개륵이독극(開勒而禿克)이라 하였다.

태조(太祖)가 일찍이 소획(所獲)당하였는데, 태조(太祖)의 항(項)에 가(枷/칼을 씌움)하였고, 한 노추(老樞)가 

연지(憐之/불쌍히 여김)하여, 소발(梳髮/머리를 빗음)하였고, 전(氈/담요)으로써 그 항(項)을 과(裹/쌈)하였다.

기이(既而)에, 태조(太祖)가 일거(逸去)하였는데, 속이도사(速而圖斯) 인(人) 쇄이간실랄(鎖而幹失剌)을 우(遇)하여 

구지(救之)하였는데, 사(事)가 《적로온전(赤老溫傳)》에 구(具)한다.

후(後)에 찰목합(札木合)이 탑이홀대(塔而忽臺) 등(等)과 함께 3만인(萬人)을 집(集)하여 태조(太祖)를 공(攻)하였고,

답란파저납(答蘭巴渚納)에서 전(戰)하였는데, 태조(太祖)가 실리(失利)하였다.

태역올적(泰亦兀赤) 부하(部下) 주리야인(朱裏耶人)이 출렵(出獵)하였는데, 태조(太祖)를 오자아철아문산(烏者兒哲兒們山)에서

우(遇)하였다.

주리야(朱裏耶)의 대(隊)가 양구(糧糗)의 불급(不給)으로써, 이미(已) 그 반(半)을 귀(歸)하였는데, 태조(太祖)가 

견류지(堅留之)하였다.

차일(次日)에, 재렵(再獵)하였는데, 음식(飲食)을 분(分)하였고, 다시 구수(驅獸)하여 향지(向之)하였고, 다획(多獲)하게 하였다.

주리야인(朱裏耶人)이 감지(感之)하였고, 상위(相謂)하여 말하길

「태역적올(泰亦赤兀)은 대아(待我)를 박(薄)하는데, 첩목진(帖木真)은 정성으로 우리와 더불어 소(疏)하여, 

  이에 후아(厚我)가 이와 같으니, 진실로(真) 인군(人君)을 폐(廢)하자!」

그 부장(部長)이 마침내 소부(所部)를 솔(率)하여 내귀(來歸)하였다.

제족(諸族)이 모두 위(謂)하길 <태역적올(泰亦赤兀)은 무도(無道)한데, 첩목진(帖木真)은 능히(能) 무중(撫衆)하다> 하니, 

역시(亦) 상솔(相率)하여 항부(降附)하였다.

파린부(巴鄰部) 장(長) 술아가도액부간(述兒哥圖額不幹)이 그 자(子) 납아아(納牙阿)와 함께 탑이홀대(塔而忽臺)를 

금(擒))하였고, 태조(太祖)에게 헌(獻)하고자 하였는데, 중도(中道)에 복종지(復縱之)하였고, 오직 부자(父子)만 내항(來降)하니,

태조(太祖)가 의지(義之)하였다.

이때 멸아걸추(蔑兒乞酋) 탈흑탈아(脫黑脫阿)가 견사(遣使)하여 태역적올(泰亦赤兀)의 각부(各部)를 규합(糾合)하였는데,

탑이홀대(塔而忽臺), 홀도답아(忽都答兒), 홀리아(忽里兒) 파아독아(把阿禿兒), 앙고(盎庫) 올고초(兀庫楚) 등(等)이 

알난하(斡難河) 사막(沙漠) 중(中)에서 공회(共會)하였다.

태조(太祖)가 왕한(王罕)과 함께 병지(兵至)하여, 패지(敗之)하였고, 특독랄사(特禿剌思)의 지(地)에 추급(追及)하였다.

적로온(赤老溫)이 탑이홀대(塔而忽臺)에게 창척(槍擲)함으로써, 중지(中之)하였고, 추마(墜馬)하였다.

탑이홀대(塔而忽臺)가 말하길

「나는 진실로 당사(當死)하다!

  그러나 쇄아간(鎖兒幹) 실랄(失剌)의 자(子)가 표창(標槍)으로 나를 중(中)하였으니, 아사(我死)는 불감심(不甘心)이로구나!」

마침내 적로온(赤老溫)에게 소살(所殺)하였다.

홀도답아(忽都答兒) 역시(亦) 사(死)하였다.

앙고아고초(盎庫兒庫楚)는 파아고진(巴兒古真)으로 분(奔)하였고, 홀리아(忽里兒) 파아독아(把阿禿兒)는 내만(乃蠻)으로

 분(奔)하니, 태역적올부(泰亦赤兀部)가 마침내 멸(滅)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찰목합(札木合)이 13부(部)의 중(衆)을 솔(率)하여, 태조(太祖)와 더불어 쟁형(爭衡/서로 지지 않으려고 다툼)하였는데,

가히(可) 경적(勁敵/억센 적수)이라 위(謂)할 만하였다.

  그러나 긍흉(矜凶/흉악함을 자랑함)하고 협교(挾狡/교활함을 믿고 의지함)하였으며,

  먼저 늘 반복(反覆)하니, 마침내 좌우(左右)에게 소매(所賣)하였으니, 불행(不幸)이 아닐 수 없다.

  태역올적(泰亦兀赤)은 혹(或) 발단찰아(勃端察兒)의 손(孫) 납근(納勤)에게서 출(出)하였다 위(謂)하는데,

  랍시특(拉施特/다시드 앗 딘)은 말하길

  『몽고(蒙古)의 금자보(金字譜)에, 태역올적(泰亦兀赤)의 조(祖)는 차이흑령곤(扯而黑領昆)이고, 납근(納勤)이 해도(海都)를

    구(救)하여 찰라역(札剌亦)의 난(難)에서 면(免)하게 하였고, 그 목지(牧地)가 또한 영곤(領昆)에 근(近)하니, 

    이런 연고(故)로 와(訛)하여 태역올적(泰亦兀赤)의 조(祖)가 되었다.』하였다.」





이때 태조의 원수로 자무카(찰목합)에게 붙은 자로 말하자면 타이치오트(태적올적) 부족장 타르구타이(탑이홀대)와

메르키트(멸아걸) 부족장 톡타아(탈흑탈아)인데 모두 태조에게 소멸되었다.

타르구타이는 태조의 5세조 카이두(해도)의 차남 차라카 링쿰(차아흑 령곤)의 후예다.

[영온은 요의 관직명인데, 몽고어가 와전하여 링쿰이라 하였다]

링쿰의 장자 소르카 두쿠 치나(사아곽 도로 적나/셍굼 빌게)가 툼비나칸(탁매내한/툼비나이칸)과 더불어 동시기였다.

그 아들 암바가이(엄파해)가 카불칸(합부륵한)의 위를 계승하였고 아내를 취하러 타타르(탑탑아) 부족에 이르렀는데

타타르가 사로잡아 금에 보냈고 금인이 살해하였다.

암바가이의 아들은 카단 타이시(합단 태석)이고, 카단 타이시의 아들 토다(포달)는 태조에게 귀부하였다.

토다의 아들 수둔 노얀(속돈 낙안)이 술두스(속이도사) 부족 무리를 거느렸다.

타르구타이는 곧 타이치오트 아달 칸(아달이 한)의 아들로 사촌형제 쿠릴 바하두르(홀력아 파아독아), 

앙쿠 후쿠추(앙고 올고초)와 함께 모두 타이치오트의 부족장이 되었다.

처음에 아달 칸은 열조(예수게이)와 더불어 친하였는데 뒤에 불화하여 서로 병력으로 공격함에 이르렀다.

열조가 붕어하자 태조가 바야흐로 13세였는데 타르구타이 형제가 강성하니 태조의 부족 무리가 많이 배반하여 

타이치오트를 따랐다.

자무카 또한 귀부하였다.

이에 타르구타이가 마침내 태조와 더불어 서로 원수가 되었다.

타르구타이는 성품이 매우 잔인하였는데 사람들이 칭하여 말하길 키릴톡(개륵이독극)이라 하였다.

태조가 일찍이 사로잡혀 태조의 목에 칼을 씌워졌는데 한 노파가 불쌍히 여겨 머리를 빗겨주고 담요로 그 목을 감싸주었다.

얼마 안 있어 태조가 탈출하였는데 술두스 사람 소르칸 시라(쇄이간 실랄)를 만나 구원을 받았는데 

이 일은 《칠라온(적로온) 열전》에 있다.

후에 자무카가 타르구타이 등과 함께 3만인을 소집하여 태조를 공격하였고 달란 발조드(답란 파저납)에서 싸웠는데 

태조가 불리하였다.

타이치오트 부족 예하 주리야트(주리야)인이 사냥을 나갔는데 태조를 우찰 잘라막산에서 조우하였다.

주리야트의 대오가 건량이 부족함으로 인해 이미 그 반을 돌려보냈는데 태조가 굳게 남게 하였다.

다음날에 다시 사냥하였는데 음식을 나눠주었고 다시 짐승을 몰아줘 많이 포획하게 하였다.

주리야트 인이 감사하게 여겼고 서로 일컬어 말하길

「타이치오트는 우리를 박하게 대우하는데 테무진(첩목진)은 정성으로 우리와 더불어 소통하여

  이에 이와 같이 우리를 후대하니 진실로 인군을 바꾸자!」

그 부족장이 마침내 소속 부족을 인솔하여 귀부하여 왔다.

여러 일족들이 모두 일컫기를 <타이치오트는 무도한데 테무진은 능히 무리를 위무한다>하니 또한 서로를 인솔하여 귀부하였다.

바린(파린) 부족장 시르기라 에부겐(술아가도 액부간)이 그 아들 나야(납아아)와 함께 타르구타이를 사로잡았는데,

태조에게 바치고자 하였으나 중도에 다시 풀어줬고 오직 부자만 투항하러 오니 태조가 의롭다 여겼다.

이때 메르키트 추장 톡타아가 사신을 보내 타이치오트의 각 부족을 규합하였는데, 타르구타이, 쿠두다르, 쿠릴 바하두르, 

앙쿠 후쿠추 등이 오논강(알난하) 사막 가운데서 회합하였다.

태조가 옹칸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이르러 격파하였고 추격하여 웅렝구트 투라스(특독랄사)의 땅에 이르렀다.

칠라온(적로온/칠라우)이 타르구타이에게 창을 던져 명중하였고 말에서 떨어졌다.

타르구타이가 말하길

「나는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소르칸 시라의 아들이 표창으로 나를 명중하였으니 나는 죽음을 달가워하지 못하겠노라!」

마침내 칠라온에게 피살되었고, 쿠두다르 또한 전사하였다.

앙쿠 후쿠추는 바르쿠진(파아고진)으로 달아났고, 쿠릴 바하두르는 나이만으로 달아나니 타이치오트 부족이 마침내 망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자무카가 13 부족의 무리를 인솔하여 태조와 더불어 경쟁하였는데 가히 호적수라 일컬을만하였다.

  그러나 흉악하고 교활하여 먼저 늘 배신하니 마침내 좌우에게 팔림을 당했으니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타이치오트는 혹 보단차르의 손자 나친에게서 나왔다 일컫는데 라시드 앗 딘은 말하길

  『몽고의 금자보(금책/알탄 다프타르)에 타이치오트의 시조는 차라카 링쿰으로 나친이 카이두를 구하여 잘라이르의 난에서 

    면하게 하였고 또한 그 유목지가 링쿰에 가까우니 이런 연고로 와전되어 타이치오트의 시조가 되었다.』

  하였다.」


*키릴톡

 : 집사의 라시드 앗 딘은 탐욕스럽고 시기심이 많다는 몽골어라고 기록하였다.

  집사를 역주한 김호동 교수는 "(머리가) 깎인 사람"이라는 투르크어 키릴(kiril)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았다.

  몽골비사를 역주한 유원수 교수는 타르구타이는 "뚱뚱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요약.

타이치오트 부족장 타르구타이는 암바가이 칸의 손자다.

예수게이가 타타르인에게 암살당하자 테무진 부족민들이 모조리 타이치오트에 붙는다.

타르구타이는 테무진을 납치해 살해하고자 하였으나 소르칸 시라의 도움으로 테무진은 도망친다.

테무진이 장성한 이후에도 타르구타이는 테무진을 죽이기 위해 타이치오트 부족들을 규합하여 테무진을 공격하였으나

옹칸과 연합한 테무진에 격파당하고 휘하였던 소르칸 시라의 아들 칠라온에게 피살당한다.

몽골비사에서는 몸이 비대하여 혼자서는 말을 타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집사 부족지 中

결국 최후의 전투에서 칠라우칸 바하두르가 타르구타이 키릴툭과 전투를 벌였다. 그는 매우 용맹했고 키고 컸으며 비대했지만, 

칠라우칸 바하두르는 키가 작았다. 그는 창을 키릴툭의 치골에 꽂았고, 그를 흔들어 말에서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창을 놓으니, 그 끝이 땅에 꽂혀 힘이 가해지면서 그의 치골을 통과하여 복부를 관통했다. 

그는 말에서 떨어졌고, 그때 이렇게 말했다.

"내 배를 칼로 조각낸다 해도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르칸 시라의 아들, 마치 무당들의 북채 같고 조그만 채찍같이 

 비천하고 왜소한 사람이 창을 찔러서 할 수 없게 되자, 그것을 놓는 바람에 내가 이처럼 죽고 마는구나!"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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