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사 남부 나이만 부족장 타양칸 열전 테무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테무진 당시 서부 몽골 최강자 남부 나이만의 군주 타양칸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인물 열전>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추옝, 슈르하치, 야르하치 

피옹돈, 호호리, 어이두, 안퍙구후르한푸차 군다이

잉굴다이어르더니 밬시양구리보르진특금마심, 캉카라도르곤도도아지거푸헝

하르졸(해란주)호오거망굴타이아민고이마혼/와산/제극탑합/공아지르가랑두두니칸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모문룡

송서

만주팔기씨족통보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96%B0%E5%85%83%E5%8F%B2/%E5%8D%B7118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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乃蠻部,遼時始著,耶律太石西奔,自乃蠻抵畏吾兒,即此部也。

基部初居於古謙河之傍,後益強,盛拓地至烏隴古河。

乃蠻譯義爲八,所據之地:

一阿而泰山,一喀喇和林山,一哀略以賽拉斯山,一阿而帖石湖,一阿而帖石河,一阿而帖石河與乞裏吉思中間之地,

一起夕耳塔實山,一烏隴古河。

故稱其部曰乃蠻。

其北境爲乞裏吉思,東爲克烈,南爲回紇,西爲康裏。

其酋曰亦難察貝而喀布庫罕,以兵力雄長漠北。

客烈亦王罕之弟額而帖合剌來奔,亦難察爲出兵伐王罕,大破之。

王罕奔西遼。

亦難察卒,二子,一曰泰赤布喀,一曰古出古敦不月魯克。

初亦難察無子,禱於神而生泰赤布喀。

亦難察嫌其闍弱,謂不能保其部衆,及卒,泰赤布喀與不月魯克以爭父妾相仇,不月魯克北徙於起夕耳塔實山。

泰赤布喀居其父舊地,後受封於金爲大王。

蒙古語訛大王爲太陽,故稱爲太陽罕。

太祖與王罕知其兄弟有釁,乘機攻不月魯克至忽木升古兒、烏瀧古河,不月魯克之將也迪土卜魯黑率百騎偵敵,馬潼斷,

爲太祖兵所執。

進至乞溼泐巴失之野,不月魯克拒戰,大敗,奔于謙謙州。

其驍將撒卜剌黑稱曰可克薛兀,譯言老病人也,以兵援之,遇於拜答剌黑巴勒赤列之地,戰一日,無勝負。

王罕夜引去,太祖亦退。

可克薛兀追王罕至伊庫魯阿而臺之地,王罕弟札合敢卜殿後,爲所襲,輜重、妻子皆失。

別遣一軍至帖列帖禿阿馬撒剌,掠王罕部衆。

桑昆以中軍追之,又爲所敗,流矢中桑昆馬胯。

桑昆墜馬,幾被執。

太祖使博爾術等救之,可克薛兀始敗去。

金泰和二年,不月魯克與蔑兒乞、斡亦剌、泰亦兀赤、朵兒邊、塔塔兒、合塔斤、撒勒只兀特諸部立札木合爲罕,合兵攻太祖。

太祖與王罕自兀而庫夷河至喀剌溫赤敦山,不月魯克等從之,其部將能以術致風雨,欲順風擊我。

忽風反,大雨雪,人馬多凍死,遂大敗而返。

又二年,太祖襲破王罕,王罕走至乃蠻界之捏坤烏孫,爲守將火力速八赤騰喀沙兒所殺,白其事於太陽罕。

太陽罕後母古兒別速,又爲太陽罕可敦,聞之曰:

「脫斡鄰勒是東鄰老王罕,取彼頭來視之,若信,當祭以禮。」

頭至,置白氈上。

乃蠻人有識之者,果王罕也。

乃陳樂以祭之,其頭忽有笑容。

太陽罕以爲不祥,蹴而碎之。

可克薛兀退謂諸將曰:

「割死王罕之頭而蹴之,非義也。

  況近日狗吠聲甚惡。

  事其殆乎。

  昔王罕嘗指古兒別速言:

  此婦人年少,吾老且死,泰赤布喀柔軟,他日恐不能保我部衆。

  今古兒別速用法嚴,而我太陽罕顧性懦,舍飛獵外無他長。

  吾亡無日矣。」

太陽罕忌太祖勢日強,欲用兵於蒙古。

可克薛兀諫,不聽。

乃使其部將卓忽難告汪古部長曰:

「我聞有北邊林木中之主,欲辦大事。

  我知天上惟一日、一月、地下亦不得有兩主。

  請汝助我爲右手,我將奪其弓矢。」

汪古部去遣使告於太祖,太祖議先攻之。

泰和五年春,會諸將於迭滅該河,衆以方春,馬瘦,俟馬肥而後進。

別勒古台請先發以制之。

太祖從其言。

進兵至乃蠻境外之哈剌河。

乃蠻兵不至,不得戰。

秋,再議進兵,以忽必來、哲別爲前鋒。

時太陽罕亦遣兵爲前鋒,而自與蔑兒乞酋脫黑脫阿、客烈亦酋阿鄰太石、衛拉特酋忽都哈別乞、札只剌酋札木合及朵兒奔、

塔塔兒、哈答斤、撒兒助等部連合駐於阿勒臺河、杭海山之間。

太祖營有自馬,鞍翻而逸,突入乃蠻軍中。

乃蠻皆謂蒙古馬瘦。

太祖進至撒阿里客額兒之地,部將朵歹言於太祖曰:

「吾兵少。

  至夜,請使人各燃火五處爲疑兵,以張聲勢。」

太祖從之。

乃蠻哨望者果疑蒙古兵大至,走告太陽罕。

太陽罕與諸將計曰:

「蒙古馬雖瘦,然戰士衆,亦不易敵。

  今我退兵,彼必尾追,則馬力愈乏,我還而擊之可以得志。」

太陽罕子古出魯克聞之,恚甚,曰:

「吾父何畏葸如婦人,達達種人吾知其數,大半從札木合在此,彼從何處增兵?

  吾父生長宮中,旦孕婦更衣、童牛齧草之地,身所不至。

  故懼爲此言耳。」

其將火力速八赤亦曰:

「汝父亦難察從不以人背馬尾響敵,汝恇怯如此,曷不使汝婦古兒別速來乎!

  惜可克薛兀老,吾兵紀律不嚴,得毋蒙古人應運將興耶?」

言畢嘆息而出。

太陽罕大怒曰:

「人各有一死,七尺之軀辛苦相等,汝輩言既如此,吾前迎敵可也。」

遂決戰,渡斡兒洹河至納忽嶺東崖察乞兒馬兀惕之地。

太陽罕與札木合登高了敵,見太祖軍容嚴整,有懼色,退至山上陳兵自衛。

札木合謂其左右曰:

「乃蠻平日臨敵,自謂如宰小牛羊,自頭至足不留皮革。

  汝等今視其能否?」

遂率所部先遁。

是日戰至晡,乃蠻兵大潰。

太陽罕受重傷,臥於地。

火力速八赤曰:

「今我等尚在山半,不如下爲再戰之計。」

太陽罕不應。

火力速八赤曰:

「汝婦古兒別速已盛飾待汝得勝而回,汝盍速起。」

亦不應。

火力速八赤乃謂其部將十人曰:

「彼如有絲毫氣力,必不如此。

  我等與其視彼死,不如使彼視我等之死。」

遂與諸將下山力戰。

太祖欲生致之,而不從,皆死。

太祖嘆息曰:

「使吾麾下將士能如此,吾復何憂。」

太陽罕既死,餘衆夜走納忽嶺,墜死崖谷者無算。

太祖獲古兒別速,調之曰:

「汝謂蒙古人歹氣息,今日何故至此。」

遂納之。

朵兒奔、塔塔兒、哈答斤、撒兒助四部悉降。

古出魯克奔於不月魯克。

내만부(乃蠻部)는, 요시(遼時)에 비로소 저(著/나타남)하였는데, 야율태석(耶律太石)이 서분(西奔)하였는데, 

내만(乃蠻)으로부터 외오아(畏吾兒)를 저(抵/이름)하였는데, 즉(即) 이 부(部)였다.

그 부(部)가 초(初)에 고(古) 겸하(謙河)의 방(傍)에 거(居)하였는데, 후(後)에 익강(益強)하였고, 성(盛)하여 척지(拓地)하여 

오롱고하(烏隴古河)에 지(至)하였다.

내만(乃蠻)은 역의(譯義)하면 팔(八)이라 하는데, 소거(所據)의 지(地)이다.

일(一)은 아이태산(阿而泰山)이 되었고, 일(一)은 객라화림산(喀喇和林山)이 되었고

일(一)은 애략이새랍사산(哀略以賽拉斯山)이 되었고일(一)은 아이첩석호(阿而帖石湖)이 되었고

일(一)은 아이첩석하(阿而帖石河)이 되었고, 일(一)을 아이첩석하(阿而帖石河)와 더불어 걸리길사(乞裏吉思)의 

중간(中間)의 지(地)이고, 일(一)은 기석이탑실산(起夕耳塔實山)이 되었고, 일(一)은 오롱고하(烏隴古河)다.

이런 연고(故)로 그 부(部)를 칭(稱)하길 내만(乃蠻)이라 말하였다.

그 북경(北境)은 걸리길사(乞裏吉思)였고, 동(東)은 극렬(克烈)이었고, 남(南)은 회흘(回紇)이었고, 서(西)는 강리(康裏)였다.

그 추(酋)는 왈(曰) 역난찰(亦難察) 패이객포고한(貝而喀布庫罕)인데, 병력(兵力)으로써 막북(漠北)을 

웅장(雄長/패권을 장악함)하였다.

객렬역(客烈亦) 왕한(王罕)의 제(弟) 액이첩합랄(額而帖合剌)이 내분(來奔)하였는데, 역난찰(亦難察)이 출병(出兵)하여 

왕한(王罕)을 벌(伐)하였고, 대파지(大破之)하였고, 왕한(王罕)은 서요(西遼)로 분(奔)하였다.

역날찰(亦難察)이 졸(卒)하였고, 자(子)가 둘이었는데, 일(一)을 왈(曰) 태적포객(泰赤布喀)이고, 일(一)은 왈(曰) 

고출고돈부월로극(古出古敦不月魯克)이다.

초(初)에 역난찰(亦難察)이 무자(無子)하였는데, 신(神)에게 도(禱)하여 태적포객(泰赤布喀)을 생(生)하였다.

역난찰(亦難察)이 그 도약(闍弱)을 혐(嫌)하였는데, 그 부중(部衆)을 보(保)할 수 없으리라 위(謂)하였고, 졸(卒)함에 이르러, 

태적포객(泰赤布喀)은 부월로극(不月魯克)과 더불어 부첩(父妾)을 쟁(爭)함으로써 상구(相仇)하였고, 부월로극(不月魯克)은 

기석이탑실산(起夕耳塔實山)에 북사(北徙)하였다.

태적포객(泰赤布喀)은 그 부(父)의 구지(舊地)에 거(居)하였는데, 후(後)에 금(金)에게서 수봉(受封)하여 대왕(大王)이 되었다.

몽고어(蒙古語)로 대왕(大王)을 와(訛)하여 태양(太陽)이 되었고, 이런 연고(故)로 태양한(太陽罕)이라 칭(稱)하였다.

태조(太祖)가 왕한(王罕)과 더불어 그 형제(兄弟)의 유흔(有釁/불화가 있음)을 지(知)하였고, 승기(乘機)하여 

부월로극(不月魯克)을 공(攻)하여 홀목승고아(忽木升古兒)와 오롱고하(烏瀧古河)에 지(至)하였는데, 부월로극(不月魯克)의 

장(將) 야적토복로흑(也迪土卜魯黑)이 백기(百騎)를 솔(率)하여 정적(偵敵)하였고, 마동(馬潼)이 단(斷)하여, 태조(太祖)의 

병(兵)에게 소집(所執)하였다.

진(進)하여 걸습륵파실(乞溼泐巴失)의 야(野)에 지(至)하였는데, 부월로극(不月魯克)이 거전(拒戰)하였는데, 대패(大敗)하였고,

겸겸주(謙謙州)에 분(奔)하였다.

그 효장(驍將) 살복랄흑(撒卜剌黑)은 칭(稱)하길 가극설올(可克薛兀)이라 말하는데, 역언(譯言)하면 노병인(老病人)으로, 

병(兵)으로써 원지(援之)하였고, 배답랄흑파륵적렬(拜答剌黑巴勒赤列)의 지(地)에서 우(遇)하였는데, 일일(一日)을 

전(戰)하였으나, 무승부(無勝負)였다.

왕한(王罕)이 야(夜)에 인거(引去)하였고, 태조(太祖) 역시(亦) 퇴(退)하였다.

가극설올(可克薛兀)이 왕한(王罕)을 추(追)하여 이고로아이대(伊庫魯阿而臺)의 지(地)에 지(至)하였는데, 왕한(王罕)의 

제(弟) 찰합감복(札合敢卜)이 전후(殿後/군대의 최후미)였는데, 소습(所襲)하여, 치중(輜重)과 처자(妻子)가 모두 실(失)하였다.

별견(別遣)한 일군(一軍)이 첩렬첩독아마살랄(帖列帖禿阿馬撒剌)에 지(至)하여, 왕한(王罕)의 부중(部衆)을 약(掠)하였다.

상곤(桑昆)이 중군(中軍)으로써 추지(追之)하였는데, 또한 소패(所敗)하였고, 유시(流矢)가 상곤(桑昆)의 마고(馬胯)에 

중(中)하였다.

상곤(桑昆)이 추마(墜馬)하였고, 거의 피집(被執)하였다.

태조(太祖)가 박이술(博爾術) 등(等)으로 하여금 구지(救之)하였고, 가극설올(可克薛兀)이 비로소 패거(敗去)하였다.

금(金) 태화(泰和/금 6대 황제 장종의 #3연호) 2년(1202년)에, 부월로극(不月魯克)이 멸아걸(蔑兒乞), 알역랄(斡亦剌), 

태역올적(泰亦兀赤), 타아변(朵兒邊), 탑탑아(塔塔兒), 합탑근(合塔斤), 살륵지올특(撒勒只兀特)의 제부(諸部)와 함께 

찰목합(札木合)을 입(立)하여 한(罕)으로 삼고, 합병(合兵)하여 태조(太祖)를 공(攻)하였다.

태조(太祖)가 왕한(王罕)과 함께 올이고이하(兀而庫夷河)로부터 객랄온적돈산(喀剌溫赤敦山)에 지(至)하였고, 

부월로극(不月魯克) 등(等)이 종지(從之)하였는데, 그 부장(部將)이 능히(能) 술(術)로써 풍우(風雨)를 치(致)하여, 

순풍(順風)하여 격아(擊我)하고자 하였다.

홀연히(忽) 반풍(風反)하였고, 대우설(大雨雪)하자, 인마(人馬)가 다동사(多凍死)하였고, 마침내 대패(大敗)하여 반(返)하였다.

또 [태화] 2년(1202년)에, 태조(太祖)가 왕한(王罕)을 습파(襲破)하였는데, 왕한(王罕)이 주(走)하여 내만(乃蠻) 계(界)의 

날곤오손(捏坤烏孫)에 지(至)하였는데, 수장(守將) 화력속팔적(火力速八赤)과 등객사아(騰喀沙兒)에게 소살(所殺)하였고,

그 사(事)를 태양한(太陽罕)에게 백(白)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의 후모(後母) 고아별속(古兒別速)인데, 또 태양한(太陽罕)의 가돈(可敦)이 되었고, 문지(聞之)하여 말하길

「탈알린륵(脫斡鄰勒) 이자는 동린(東鄰)의 노왕한(老王罕)이니, 피두(彼頭)를 취(取)하여 래시지(來視之)하여,

  만약(若) 신(信)이라면, 당(當)연히 예(禮)로써 제(祭)해야만 한다.」

두(頭)가 지(至)하자, 백전(白氈) 상(上)에 치(置)하였다.

내만인(乃蠻人)으로 식(識)한 자(者)가 있었는데, 과연(果) 왕한(王罕)이었다.

이에 진악(陳樂)하고 이로써 제지(祭之)하였고, 그 두(頭)가 홀(忽)연히 소용(笑容)이 있었다.

태양한(太陽罕)이 불상(不祥)이라 이위(以爲)하였고, 축(蹴/차버림)하여 쇄지(碎之)하였다.

가극설올(可克薛兀)이 퇴(退)하여 제장(諸將)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왕한(王罕)의 두(頭)을 할사(割死)하고 축지(蹴之)하였으니, 비의(非義)로다.

  때마침 근일(近日)에 구폐성(狗吠聲/개짖는 소리)이 심악(甚惡)하였다.

  사(事)가 이미 태(殆)한 것인가?

  석(昔)에 왕한(王罕)이 일찍이 고아별속(古兒別速)을 지(指)하여 말하길

  [이 부인(婦人)이 년소(年少)하고, 오로(吾老)하여 차사(且死)할 것이고, 태적포객(泰赤布喀)은 유연(柔軟/부드럽고 연함)하니,

   타일(他日)에 아부중(我部衆)을 부능보(不能保)할까 공(恐)하다.] 하였다.

  지금(今) 고아별속(古兒別速)은 용법엄(用法嚴)한데, 그러나 우리 태양한(太陽罕)은 생각컨대 성나(性懦)하며,

  사비렵(舍飛獵/매사냥) 외(外)에는 타장(他長/다른 재간)이 없으니, 오망(吾亡)도 무일(無日)이로다!」

태양한(太陽罕)기 태조(太祖)의 세(勢)가 일강(日強)함을 기(忌)하여, 몽고(蒙古)에 용병(用兵)하고자 하였다.

가극설올(可克薛兀)이 간(諫)하였으나, 불청(不聽)하였다.

이에 그 부장(部將) 탁홀난(卓忽難)으로 하여금 왕고부(汪古部) 장(長)에게 고(告)하여 말하길

「아문(我聞)하기로 북변(北邊)의 임목(林木) 중(中)에 주(主)가 있어, 대사(大事)를 판(辦/준비함)한다고 한다.

  아지(我知)하기로 천상(天上)에는 오직 일일(一日)이요, 일월(一月)하여, 지하(地下) 역시(亦) 양주(兩主)가 있는 것을 

  부득(不得)한다고 한다.

  청(請)컨대 여(汝)가 조아(助我)하여 우수(右手)가 된다면, 아(我)가 장차(將) 그 궁시(弓矢)를 탈(奪)하겠노라!」

왕고부(汪古部)가 거(去/물리침)하고 견사(遣使)하여 태조(太祖)에게 고(告)하였고, 태조(太祖)가 의(議)하여 

선공지(先攻之)하였다.

태화(泰和) 5년 춘(春)에, 제장(諸將)을 질멸해하(迭滅該河)에 회(會)하였는데, 중(衆)이 바야흐로 춘(春)이고, 

마수(馬瘦)함으로써, 마비(馬肥)를 사(俟)하여 후진(後進)하고자 하였다.

별륵고태(別勒古台)가 선발(先發)을 청(請)하여 이로써 제지(制之)하였다.

태조(太祖)가 그 언(言)을 종(從)하였다.

진병(進兵)하여 내만(乃蠻) 경외(境外)의 합랄하(哈剌河)에 지(至)하였다.

내만병(乃蠻兵)이 부지(不至)하자, 부득전(不得戰)하였다.

추(秋)에, 재의(再議)하여 진병(進兵)하였는데, 홀필래(忽必來)와 철별(哲別)로써 전봉(前鋒)을 삼았다.

이때 태양한(太陽罕) 역시(亦) 견병(遣兵)하여 전봉(前鋒)으로 삼았고, 스스로 멸아걸추(蔑兒乞酋) 탈흑탈아(脫黑脫阿), 

객렬역추(客烈亦酋) 아린태석(阿鄰太石), 위랍특추(衛拉特酋) 홀도합별걸(忽都哈別乞), 찰지랄추(札只剌酋) 

찰목합(札木合)과 더불어 타아분(朵兒奔), 탑탑아(塔塔兒), 합답근(哈答斤), 살아조(撒兒助) 등(等)의 부(部)와 함께 

연합(連合)하여 아륵대하(阿勒臺河)와 항해산(杭海山)의 간(間)에 주(駐)하였다.

태조(太祖)의 영(營)에 백마(自馬/白의 오기)가 있었는데, 안번(鞍翻/안장이 뒤집힘)하고 일(逸/달아남)하여, 내만(乃蠻) 

군중(軍中)으로 돌입(突入)하였다.

내만(乃蠻)이 모두 몽고마(蒙古馬)가 수(瘦)하였다 위(謂)하였다.

태조(太祖)가 진(進)하여 살아리객액아(撒阿里客額兒)의 지(地)에 지(至)하였는데, 부장(部將) 타대(朵歹)가 태조(太祖)에게 

어(言)하여 말하길

「아병(吾兵)은 소(少)하다.

  지야(至夜)하면, 청(請)컨대 인(人)으로 하여금 각각(各) 5처(處)에 연화(燃火)하여 의병(疑兵)으로 삼아,

  이로써 성세(聲勢)를 장(張)하자!」

태조(太祖)가 종지(從之)하였다.

내만(乃蠻)의 초망자(哨望者)가 과연(果) 몽고병(蒙古兵)의 대지(大至)를 의(疑)하였고, 주(走)하여 태양한(太陽罕)에게 

고(告)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이 제장(諸將)과 더불어 계(計)하여 말하길

「몽고마(蒙古馬)가 비록 수(瘦)하나, 그렇지만 전(戰士)가 중(衆)하니, 역시(亦) 이적(易敵)할 수 없다.

  지금(今) 아(我)가 퇴병(退兵)하면, 저쪽이 필히(必) 미추(尾追)할 것이고, 즉(則) 마력(馬力)이 

  유핍(愈乏/괴로워하고 피로함)할 것이니, 아환(我還)하여 격지(擊之)한다면 가히(可) 이로써 득지(得志)하리라!」

태양한(太陽罕)의 자(子) 고출로극(古出魯克)이 문지(聞之)하더니, 에심(恚甚/심히 성냄)하여 말하길

「아부(吾父)는 어찌 부인(婦人)과 같이 외사(畏葸/매우 두려워함)하는가?

  달달(達達) 종인(種人)은 내가 알기로 그 수(數)는 대반(大半)이 찰목합(札木合)을 종(從)하여 재차(在此)하는데,

  저쪽이 하처(何處)에서 증병(增兵)하여 종(從)하였겠는가?

  오부(吾父)는 궁중(宮中)에서 생장(生長)하여, 단지(旦) 잉부(孕婦/임신한 부녀)만 경의(更衣)하고, 동우(童牛/어린 소)가 

  설초(齧草/풀을 뜯어먹음)의 지(地)에만 몸이 이르지 못하였다.

  이런 연고(故)로 구(懼)하여 이 언(言)하는구나!」

그 장(將) 화력속팔적(火力速八赤) 역시(亦) 말하길

「여부(汝父) 역난찰(亦難察)은 종(從)에게 인배(人背)와 마미(馬尾)로써 향적(響敵)하지 않게 하였는데,

  여(汝)는 이와 같이 광겁(恇怯/겁내고 무서워함)하니, 어찌하여 여부(汝婦) 고아별속(古兒別速)으로 하여금 래(來)하게 하지 

  않는가?

  석(惜)하다! 가극설올(可克薛兀)은 노(老)하였고, 오병(吾兵)의 기율(紀律)은 불엄(不嚴)하니, 틈림없이 몽고인(蒙古人)의 

  응운(應運/천명을 따름)이 장차(將) 흥(興)하지 않겠느냐?」

언필(言畢)하자 탄식(嘆息)하고 출(出)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이 대노(大怒)하여 말하길

「인(人)은 각각(各) 일사(一死)만 있을 뿐이니, 칠척구(七尺軀/)의 신고(辛苦/고생과 애씀)가 상등(相等/같음)하리라!

  여배(汝輩)의 언(言)이 이윽고 이와 같으니, 오(吾)가 전(前)하여 영적(迎敵)함이 가(可)하리라!」

마침내 결전(決戰)하였고, 알아원하(斡兒洹河)를 도(渡)하여 납홀령(納忽嶺) 동애(東崖) 찰걸마아올척(察乞兒馬兀惕)의 

지(地)에 지(至)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이 찰목합(札木合)과 함께 등고(登高)하여 요적(了敵)하였는데, 태조(太祖)의 군용(軍容)이 엄정(嚴整)함을 

견(見)하더니, 구색(懼色)이 있었고, 퇴(退)하여 산상(山上)에 지(至)하여 진병(陳兵)하고 자위(自衛)하였다.

찰목합(札木合)이 그 좌우(左右)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내만(乃蠻)이 평일(平日)에 임적(臨敵)하면, 자위(自謂)하길 소우양(小牛羊)을 재(宰)하는 것처럼,

  자두지족(自頭至足/머리로부터 발끝까지) 피혁(皮革/가죽)도 불유(不留)한다 하였다.

  여등(汝等)은 지금(今) 그것이 능(能)한지 부(否)한지 시(視)하느냐?」

마침내 소부(所部)를 솔(率)하여 선둔(先遁)하였다.

시일(是日)에 전(戰)이 포(晡/해질 무렵)에 이르렀는데, 내만병(乃蠻兵)이 대궤(大潰)하였다.

태양한(太陽罕)은 중상(重傷)을 수(受)하여, 지(地)에 와(臥)하였다.

화력솔팔적(火力速八赤)이 말하길

「지금(今) 아등(我等)은 아직 산반(山半)에 재(在)하니, 하(下)하여 재전(再戰)의 계(計)로 삼는 것만 못하다!」

태양한(太陽罕)이 불응(不應)하였다.

화력속팔적(火力速八赤)이 말하길

「여부(汝婦) 고아별속(古兒別速)이 이미(已) 성식(盛飾/잘 차려입음)하고 대여(待汝)하니 득승(得勝)하여 회(回)해야 하는데,

  여(汝)는 어찌 속기(速起)하지 아니하는가?」

역시(亦) 불응(不應)하였다.

화력속팔적(火力速八赤)이 이에 그 부장(部將) 10인(人)에게 위(謂)하여 말하길

「그가 사호(絲毫/몹시 적음)의 기력(氣力)이라도 있었다면, 필히(必) 이와 같지 않았으리라!

  아등(我等)이 그의 사(死)를 시(視)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아등(我等)의 사(死)를 시(視)함만 못하다!」

마침내 제장(諸將)과 함께 하산(下山)하여 역전(力戰)하였다.

태조(太祖)가 생치지(生致之)하고자 하였으나, 불종(不從)하였고, 모두 전사(死)하였다.

태조(太祖)가 탄식(嘆息)하여 말하길

「오(吾)의 휘하(麾下) 장사(將士)로 하여금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내가 다시 하우(何憂)하리오?」

태양한(太陽罕)이 이윽고 사(死)하자, 여중(餘衆)이 야(夜)에 납홀령(納忽嶺)으로 주(走)하였는데, 애곡(崖谷)에 추사(墜死)한 

자(者)가 무산(無算)하였다.

태조(太祖)가 고아별속(古兒別速)을 획(獲)하여, 조롱(調)하며 말하길

「여(汝)는 몽고인(蒙古人)의 기식(氣息/냄새)이 대(歹/나쁨)하다 위(謂)하였는데, 금일(今日) 하고(何故)로 이에 이르렀느냐?」

마침내 납지(納之)하였다.

타아분(朵兒奔), 탑탑아(塔塔兒), 합답근(哈答斤), 살아조(撒兒助) 4부(部)가 실항(悉降)하였다.

고출로극(古出魯克)은 부월로극(不月魯克)에게 분(奔)하였다.


<영화 By the Will of Genghis Khan 中>







나이만(내만) 부족은 요나라 때에 비로소 나타났는데 야율태석이 서쪽으로 달아나면서 나이만으로부터 위구르(외오아)에 

이르렀는데 곧 이 부족이었다.

그 부족은 처음에 옛 켐강(겸하) 근방에 살았는데 후에 점점 강해지고 번성하여 땅을 넓혀 우룽구 강(오롱고하)에 이르렀다.

나이만을 번역하면 8이라 하는데 근거하는 땅이다.

1은 알타이(아이태) 산이고, 1은 카라코룸(객라화림) 산이고, 1은 알루이 시라스(애략이 새랍사) 산이고,

1은 에르디시(아이첩석) 호수이고, 1은 에르디시(아이첩석) 강이고, 1은 에르디시 강과 더불어 키르키즈(걸리길사)의 

중간의 땅이고, 1은 소콘 오손(기석이탑실산)이고, 1은 우룽구(오롱고하) 강이다.

이런 연고로 그 부족을 칭하길 나이만이라 말하였다.

그 북쪽 경계는 키르키즈였고, 동은 케레이트(극렬)였고, 남은 위그루(회흘)였고, 서쪽은 캉클리(강리)였다.

그 추장은 말하길 이난치 빌게 부구 칸(역난찰 패이객 포고 한)인데 군대의 힘으로 사막 북쪽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케레이트(객렬) 옹칸의 동생 에르케 카라(액이첩 합랄)가 도망쳐 왔는데 이난치가 출병하여 옹칸을 정벌하여 대파하였고 

옹칸은 서요로 달아났다.

이난치가 죽고 아들이 둘이었는데 하나는 타이부카(태적포객)고, 하나는 고출고돈 부이룩(부월로극)이다.

처음에 이난치가 자식이 없었는데 신에게 기도하여 타이부카를 낳았다.

이난치가 그 문약함을 싫어하여 그 부족무리를 지킬 수 없으리라 일컬었고 졸함에 이르러 타이부카가 부이룩과 더불어 

아버지의 첩을 다툼으로써 서로 원수가 되었고 부이룩은 북쪽 올록 탁의 소콘 오손으로 옮겼다.

타이부카는 그 부친의 옛 땅에 살았는데 후에 금나라에게 대왕을 제수받았다.

몽고어로 대왕이 와전되어 타양(태양)이 되었고, 이런 연고로 타양칸이라 칭하였다.

태조가 옹칸과 더불어 그 형제간에 불화가 있는 것을 알고는 기회를 틈타 부이룩을 공격하여 쿰 싱기르(홀목 승고아)와 

우룽구강에 이르렀는데 부이룩의 장수 이디 투클룩(야적 토복로흑/예디 토블록)이 100기를 인솔하여 정탐하였고 말안장이 

끊어져 태조의 병에게 사로잡혔다.

진군하여 키실바시(걸습륵파실)의 들에 이르렀고, 부이룩이 막아 싸웠으나 대패하여 켐 켐치우트(겸겸주)로 달아났다.

그의 용맹한 장수 사브락(살복랄흑)은 칭하길 쿡세우(가극설올)이라 말하였는데 번역하면 늙은 병자란 뜻이다.

사브락이 군사로 구원하였고 바이타락 벨치레(배답랄 흑파륵적렬/바이다락 벨치르)의 땅에서 조우하였는데 하루종일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옹칸이 밤에 퇴각하여 가버렸고 태조 또한 물러났다.

쿡세우가 옹칸을 추격하여 이데루 알타이(이고로 아이대)의 땅에 이르렀는데, 옹칸의 동생 자아감보(찰아감복)이 후미가 

되었는데 습격을 당하여 치중과 처자를 모두 잃어벼렸다.

별도로 보낸 일군이 달라두 아마사라(첩렬첩독 아마살랄)에 이르러 옹칸의 부족 무리를 약탈하였다.

셍군(상곤)이 중군으로써 추격하였는데 또한 패배를 당하였고 유시가 셍군의 말 사타구리에 명중하였고, 셍군은 말에서 떨어져

거의 사로잡히게 되었다.

태조가 보오르초(박이술) 등으로 하여금 구원하게 하였고 쿡세우가 비로소 패하여 가버렸다.

1202년에 부이룩(부월로극)이 메르키트(멸아걸), 오이라트(알역랄), 타이치오트(태역올적), 두르벤(타아변), 타타르(탑탑아), 

카타킨(합탑근), 살지우트(살륵지올특)의 여러 부족과 함께 자무카(찰목합)을 옹립하여 칸(한)으로 삼고 합병하여 태조를 

공격하였다.

태조가 옹칸과 함께 올이고이하로부터 객랄온적돈산에 이르렀고 부이룩 등이 따라왔는데, 그 부장이 능히 무당술로 비바람을 

부를수 있었고 바람을 타고 우리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홀연히 바람이 반대로 불고 눈과 비가 크게 오자 인마가 많이 동사하였고 마침내 대패하여 돌아갔다.

또 1202년에 태조가 옹칸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는데 옹칸이 달아나 나이만의 경계 네쿤 우순(날곤 오손)에 이르러 그 수비 

장수 코리 수바추(화력 속팔적)와 테틱샬(등객사아)에게 살해되었는데, 그 일을 타양칸(태양한)에게 보고하였다.

타양칸의 계모는 구르베수(아별속)인데, 또 타양칸의 하톤이 되었는데 듣고는 말하길

「토오릴(탈알린륵) 이자는 동쪽에 인접한 늙은 옹칸이니 그의 머리를 취하여 보도록 하자!

  만약 맞다면 마땅히 예로써 제사하여야 한다!」

머리가 이르자 담요 위에 두었다.

나이만 사람으로 그를 알고 있는 자가 있었는데 과연 옹칸이었다.

이에 음악을 연주하고 이로써 제사 지내게 하였는데 그 머리가 홀연히 웃는 모양이 있었다.

타양칸이 상서롭지 않다 생각하고 차 버리더니 부수도록 하였다.

쿡세우 사브락(가극설올)이 물러나 제장들에게 일컬어 말하길

「옹칸의 머리를 베어 죽이고 발로 찼으니 의롭지 않도다!

  때마침 근자에 개 짖는 소리가 심히 악하였다.

  일이 이미 위태로워진 것인가?

  일전에 왕칸(이난치)이 일찍이 구르베수를 가리켜 말하길

  [이 부인은 어리고 나는 늙었으며 또한 죽을 것이고 타이부카(타양칸)는 나약하니

   다른 날에 우리 부족 무리를 지키지 못할까 두렵구나!] 하였다.

  지금 구르베수는 법을 엄하게 사용하는데 그러나 우리 타양칸은 생각컨대 성품이 나약하여 매사냥 밖에는 다른 재간이 없으니

  우리가 망할 날도 머지않았도다!」

타양칸이 태조의 세력이 날로 강해지는 것을 시기하여 몽고에 출병하고자 하였다.

쿡세우 사브락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이에 그 부장 조카난(탁홀난)으로 하여금 웅구트(왕고) 부족장에게 고하여 말하길

「내가 듣기로 북변의 삼림 속에서 주인이 있어 대사를 준비한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하늘 위에는 오직 하나의 태양이요, 하나의 달이 있을 뿐이며, 

  땅 아래에는 또한 두 주인이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청컨대 네가 나를 도와 오른팔이 되어 준다면 내가 장차 그 궁시를 빼앗겠노라!」

웅구트 부족이 물리치고 사신을 파견하여 태조에게 고하였고 태조가 의논하여 선공을 가하고자 하였다.

1204년 봄에 제장을 모아 테메게인(테메엔/질멸해) 강에서 쿠릴타이를 열었는데, 무리들이 바야흐로 봄이고 말이 여위었다 

하여 말이 살찌기를 기다려 후에 진군하고자 하였다.

벨구테이(별륵고태)가 선발을 청하며 이로써 바로잡고자 하니, 태조가 그 말을 따랐다.

진군하여 나이만의 경계 밖 칼라강(합랄하)에 이르렀으나, 나이만 군이 이르지 않자 싸우지 못하였다.

가을에 재차 의논하여 진군하였는데 쿠빌라이(홀필래)와 제베(철별)를 전봉으로 삼았다.

이때 타양칸 역시 군사를 보내 전봉으로 삼고, 스스로 메르키트 추장 톡타아(탈흑탈아), 케레이트(객렬역) 추장 

아린 타이시(아린 태석), 오이라트(위랍특) 추장 쿠투카 베키(홀도합 별걸), 자다란(찰지랄) 추장 자무카(찰목합)와 더불어 

두르벤(타아분), 타타르(탑탑아), 카타킨(합답근), 살지우트(살아조) 등의 부족과 함께 연합하여 알타이강(아륵대하)과 

캉카이산(항해산)의 사이에 주둔하였다.

태조의 영에 백마가 있었는데 안장이 뒤집히자 달아나 나이만의 군중으로 돌입하였다.

나이만이 모두 몽고말이 여위었다 일컬었다.

태조가 진군하여 사아리(살아리) 케에르(객액아/초원)의 땅에 이르렀는데 부장 도다이(타대)가 태조에게 말하길

「아군이 적으니, 밤에 이르면 청컨대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5곳에 불을 피워 가짜 병력으로 삼아 이로써 성세를 펼치자!

태조가 따랐다.

나이만의 염탐하던 자가 과연 몽고병이 크게 이르렀다 의심하였고 도주하여 타양칸에게 고하였다.

타양칸이 제장들과 더불어 계책을 논의하며 말하길

「몽고말이 비록 여위었다 하나 전사들이 많으니 또한 쉽게 대적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퇴각하면 저쪽이 필히 꼬리를 추격해 올 것이고 즉 말의 힘이 피로할 것이다.

  우리가 돌아와 공격한다면 가히 이로써 뜻을 얻으리라!」

타양칸의 아들 구출룩이 듣더니 심히 성내며 말하길

「내 부친은 어찌 부인과 같이 두려워하는가?

  타타르 종족은 내가 알기로 그 수의 태반은 자무카를 따라와 이곳에 있는데 

  저쪽이 어느 곳에서 증병하여 따라오게 하였겠는가?

  내 부친은 궁중에서 성장하여 단지 임신한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어린 소가 풀을 뜯어먹는 땅에만 몸이 이르지 못하여

  이런 연고로 두려워하며 이런 말을 하는구나!

그 장수 코리 수바추 또한 말하길

「너의 부친 이난차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등과 말 꼬리를 적에게 향하게 하지 않았는데,

  네가 이와같이 겁내고 무서워하니 어찌하여 너의 부인 구르베수로 하여금 오게 하지 않는 것인가?

  애석하구나! 쿡세우 사브락은 늙었고 우리 군의 기율은 엄하지 않으니,

  틈림없이 몽고인의 천명의 운수가 장차 흥하지 않겠느냐?

말을 마치자 탄식하고 나갔다.

타양칸이 대노하여 말하길

「사람은 각각 한 번 죽을 뿐이니 칠척의 몸이 고달픈건 매한가지리라!

  너희 무리의 말이 이윽고 이와 같으니 내가 앞장서 적을 맞이함이 옳을 것이니라!

마침내 결전하였고 오르콘강(알아원하)을 건너 나코 고개(납홀령) 동쪽 벼랑 차키르 마오드(찰걸 마아올척)의 땅에 이르렀다.

타양칸이 자무카와 함께 높은 곳에 올라 적을 헤아렸는데 태조의 군용이 엄정함을 보더니 두려운 기색이 있었고

물러나 산 정상에 이르러 진을 치고 스스로를 지켰다.

자무카가 그 좌우에게 일컬어 말하길

「나이만이 평일에 적을 만나면 스스로 일컫기를 

  어린 소나 양을 도살하는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 하나 남기지 않겠다 하였다.

  너희들은 지금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보이느냐?」

마침내 소속 부족을 인솔하여 먼저 달아났다.

이날에 싸워 해질 무렵에 이르렀는데 나이만 군이 크게 흩어졌다.

타양칸이 중상을 입어 땅에 누워 있었는데 쿠리 수바추가 말하길

「지금 우리들은 아직 산 중턱에 있으니 하산하여 다시 싸우는 계책으로 삼는 것이 낫다.」

타양칸이 응하지 않았다.

쿠리 수바추가 말하길

「너의 부인 구르베수가 이미 잘 차려입고 너를 기다리니 승전하여 돌아가야 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속히 일어나지 아니하는가?

또한 응하지 않았다.

쿠리 수바추가 이에 그 부장 10인에게 일컬어 말하길

「그가 털오라기의 기력이라도 있었다면 필히 이와 같지 않았으리라!

  우리들이 그의 죽음을 보는 것은 그로 하여금 우리들의 죽음을 보이는 것보다 못하다!

마침내 제장들과 함께 하산하여 힘껏 싸웠다.

태조가 생포하고자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고 모두 전사하였다.

태조가 탄식하며 말하길

「내 휘하 장사들로 하여금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내가 다시 어떤 걱정을 하리오?」

타양칸이 이윽고 죽자 남은 무리들이 밤에 나코 고개로 도주하였는데 벼랑과 골짜기에 추락하여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태조가 구르베수를 사로잡아 조롱하며 말하길

「너는 몽고인의 냄새가 나쁘다 일컬었는데 금일 어떤 까닭으로 이에 이르렀느냐?」

마침내 거두워들였다.

두르벤, 타타르, 카타킨, 살지우트 4부가 모조리 투항하였다.

구출룩은 부이룩에게 달아났다.


테무진의<카라가나 전술> 소수의 기병으로 다수의 기병을 박살낸다!




※나이만 지파

1. 베테킨

2. 달루

3. 아크사우트

4. 코리

5. 캉리

6. 구추우트


*이난치 빌게 부구 칸

 -이난치 : 믿는다
 -빌게 : 현명한

 -부구 칸 : 옛 군주의 칭호

*타양 칸 : 이난치의 큰 아들

 -본래 이름 : 타이부카

 -중국에서 쿠쉴룩에게 부여한 명칭 : 태왕(太王) → 와전되어 타양칸(태양한)

*부이룩 칸 : 이난치의 둘째 아들

*쿠쉴룩 칸/구출룩 칸 : 타양칸의 아들

 -뜻 : 힘이쎈 군주

*이난치 칸의 후처였던 구르베수를 차지하기 위해 타양칸과 구출룩칸이 적대하였고,

 타양칸이 남부 나이만 주인이 되자 구르베수가 정권을 독단한다.

 구르베수는 몽고인들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몽골비사 中 (유원수 역주)

그들을 데려다 무엇하려는가? 몽골 사람들은 냄새가 나쁘고 의복이 더러운 것들이다.

따로 멀리 떨어져 살도록 데려오지 마라! 

그들의 아름다운 며느리들과 딸들만 데려다가 손발을 씻게 하고 다만 소와 양의 젖이나 짜게 해야 할 것이다.


몽골비사 中 (유원수 역주)

타양의 어머니 구르베수를 데려다가 "너는 몽골의 냄새가 나쁘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은 왜 왔느냐?" 하고 힐난하고 

칭기스 카한이 취했다.


요약.

나이만은 요나라 시기에 몽골 서부의 최강자가 되었다. 이난차칸 당시에는 케레이트를 공격해 옹칸을 패망 직전까지 몰아붙였고,

몽골인들은 나이만의 공격에 초원의 패권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동족상잔을 펼치게 되었다. 이난차칸 사후 두 아들 타양칸과 

부이룩칸이 계모 구르베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투다 북부와 남부로 분열되었다. 1204년 테무진이 몽골 동부를 통일하자 

타양칸은 테무진 섬멸을 결정하며 웅구트를 끌어들이나 웅구트는 이를 거절하고 테무진에게 투항한다. 칭기스칸에 즉위한 

테무진은 자사그와 천호제의 실시로 더욱 강력해진 몽골군으로 나이만을 공격해 숫적 열세에도 참수작전(카라가나 전술)을 

감행해 타양칸을 처단한다. 타양칸의 아들 구출룩칸은 서요로 달아났다.



※ 반전 : 구르베수는 칭기스칸의 총애를 받았음.


신원사 후비 열전 구르베수 고아팔속(古兒八速)

次後者:曰古兒八速皇后,本乃蠻亦難察汗之妻,太陽汗之後母也。

乃蠻敗,為太祖所獲,依蒙古禮納之,有寵。

다음 후자는 구르베수(고아팔속) 황후라 말하는데, 본래 나이만(내만) 이난차칸(역난찰한)의 처(妻)였고,

타양칸(태양한)의 후모(後母)였다.
나이만이 망하자 태조에게 사로잡혔고 몽고의 예법에 의해 거둬들였으며 총애를 받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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