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탈 송 휘종을 평하다! 송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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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휘종 본기 찬평 中
贊曰:
宋中葉之禍,章、蔡首惡,趙良嗣厲階。
然哲宗之崩,徽宗未立,惇謂其輕佻不可以君於下。
遼天祚之亡,張覺舉平州來歸,良嗣以為納之失信於金,必啟外侮。
使二人之計行,宋不立徽宗,不納張覺,金雖強,何釁以伐宋哉?
以是知事變之來,雖小人亦能知之,而君子有所不能制也。
跡徽宗失國之由,非若晉惠之愚、孫皓之暴,亦非有曹、馬之篡奪,特恃其私智小慧,用心一偏,疏斥正士,狎近奸諛。
於是蔡京以獧薄巧佞之資,濟其驕奢淫佚之志。
溺信虛無,崇飾游觀,困竭民力。
君臣逸豫,相為誕謾,怠棄國政,日行無稽。
及童貫用事,又佳兵勤遠,稔禍速亂。
他日國破身辱,遂與石晉重貴同科,豈得諉諸數哉?
昔西周新造之邦,召公猶告武王以不作無益害有益,不貴異物賤用物,
況宣、政之為宋,承熙、豐、紹聖椓喪之餘,而徽宗又躬蹈二事之弊乎?
自古人君玩物而喪志,縱欲而敗度,鮮不亡者,徽宗甚焉,
故特著以為戒。 
찬(贊)하여 말한다.
송(宋) 중엽(中葉)의 화(禍)는, 장(章/장돈)과 채(蔡/채경)의 수악(首惡/원흉, 악의 우두머리)과, 
조양사(趙良嗣)가 여계(厲階/재앙을 일으킨 빌미)였다.
그리하여 철종(哲宗)의 붕어(崩御)에서, 휘종(徽宗)을 아직 세우지 못하였는데,
장돈(惇)이 일컫기를 그 (휘종의) 경조(輕佻/가볍고 경박함)가 (천하를) 아래에 두는 임금으로써는 불가(不可)하다 하였다.
요(遼) 천조(天祚)의 패망(敗亡)에서, 장각(張覺)이 평주(平州)를 들어 (송에) 내귀(來歸/귀부하여 옴)하였는데,
조양사(良嗣)가 거두어들임으로써 금(金)에 실신(失信/신용을 잃음)할 것이라 생각하여,
(이는) 반드시 외모(外侮/외국을 업신여김)를 인도(
引導)할 것이라 하였다.
(장돈과 조양사) 두 사람의 계책(計策)을 행(行)하게 함으로써, 
송(宋)이 휘종(徽宗)을 세우지 않았거나, 장각(張覺)을 거두지 않았다면,
금(金)이 비록 강(強)하였으나, 어찌 틈을 노려 송(宋)을 정벌(征伐)하였겠는가?
이로써 사변(事變, 변고)이 옴을 알 수 있었는데, 비록 소인(小人)이라도 역시 능(能)히 알 수 있었으나, 
그러나 군자(君子/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가 있다 하여도 견제(牽制)가 불능(不能)하였다.
휘종(徽宗)이 실국(失國/나라를 잃음)한 이유(理由)를 적(跡/상고)해보면, 
만약 진(晉)나라 혜제(惠帝)의 어리석음과 손호(孫皓/오나라 황제)의 폭정(暴政)이 없었고,
또한 조조(曹操)와 사마의(司馬懿)의 찬탈(篡奪)이 없었다 하더라도
(휘종은) 특(特)히 그 사지(私智/공정하지 못한 사사로운 지혜)와 소혜(小慧/작은 지혜)를 믿어, 
일편(一偏/한쪽으로 치우침)으로 용심(用心/마음을 씀)하였고, 정사(正士/의로운 선비)를 소척(疏斥/멀리하고 물리침)하였다.
이에 채경(蔡京)이 견박(獧薄/경박)한 교녕(巧佞/교묘하게 아첨함)의 자질(資)로써,
그 (휘종의) 교사(驕奢/교만하고 사치스러움)하고 음일(淫佚/마음껏 음탕하게 놂)의 뜻을 제(濟/도움)하였다.
허무(虛無/허황됨)를 닉신(溺信/맹신)하였고, 꾸미고 놀고 보는 것을 숭상(崇)하여,
민력(民力/백성의 재력)이 곤갈(困竭/곤궁하여 재물이 다 없어짐)하였다.
군신(君臣/임금과 신하)이 일례(逸豫/멋대로 즐기며 놈)하며, 서로 탄만(誕謾/방종)하니,
국정(國政)을 태기(怠棄/게을러 돌보지 않음)하였고, 하루 종일 무계(無稽/터무니없음)을 행(行)하였다.
동관(童貫)을 용사(用事/등용하여 부림)함에 이르러서는, 
또 가병(佳兵/전쟁하는 것을 좋아함)함이 근원(勤遠/근심이 오래됨)하였고, 
임화(稔禍/화가 쌓임)하여 속란(速亂/빠르게 어지러워짐)하였다.
타일(他日/후일)에 나라가 깨지고 몸에 치욕(辱)을 당하였으니,
마침내 석진(石晉/석경당의 후진)의 석중귀(重貴/후진의 2대 황제로 거란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감)와 
동과(同科/등차가 없음, 같음)하니, 어떤 핑계를 모두 셈할 수 있겠는가?
옛 서주(西周)가 나라를 새로 만들면서, 소공(召公/주 문왕의 서자로 주공과 함께 무왕을 보필하여 주 건국에 공을 세움)은 
다만 무왕(武王)에게 고(告/아룀)하여 무익(無益)한 해(害)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유익(有益)하게 하였고,
진귀(貴)한 이물(異物/기이한 물건)도 쓸 물건이 아니면 천(賤)하게 여겼는데,
하물며 선(宣)과 정(政)으로 송(宋)을 다스려야 하거늘,
희녕(熙寧)과 원풍(元豊) 및 소성(紹聖)의 탁상지여(椓喪之餘)를 계승(承)하여,
이에 휘종(徽宗) 또한 두 일의 폐단(弊)을 어찌 궁도(躬蹈/몸소 따라 행함)하였던가?
자고(自古)로 인군(人君/임금)이 완물(玩物/물건을 사랑함)하여 상지(喪志/뜻을 잃음)하고,
종욕(縱欲/욕망을 좇음)하여 패도(敗度/법도를 깨트림)하면, 망(亡)하지 않는 자(者)가 선(鮮/드묾)하니,
휘종(徽宗)은 심(甚)하였도다.
이런 연고(故)로 특(特)히 저술(著)하여 경계(戒)로 삼는다.

*희녕/원풍/소성 : 휘종의 부황 신종과 이복 형 철종이 신법을 옹호하던 시절의 연호
  → 희녕(熙寧) : 6대 황제 신종의 #1연호
      원풍(元豊) : 6대 황제 신종의 #2연호
      소성(紹聖) : 7대 황제 철종의 #2연호
*탁상지여(椓喪之餘) : 잃어버리고 남은 것을 두드림. 휘종이 선대의 신법을 다시 중용한 것을 이르는 말임

*완물(玩物)하면 상지(喪志)하니
  → 유교의 경전인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군주가 덕으로 정치를 행하지 않고 사람이나 물건을 희롱하면 덕과 뜻을 잃는다는 구절
      즉 휘종이 정치에는 뜻이 없고 화석강 등을 통해 각종 물건에 관심을 가져 결국 덕을 잃었다는 뜻으로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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