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명이 멸망한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른지 2년째인 1726년 10월5일에 신하들과 경연을 하였는데,
영조는 
<명이 멸망한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청이 다시 본거지로 돌아갈 것인가?>
<청과 전쟁한다면 어떻게 방비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신하들과 토론을 합니다.

오늘은 과연 명이 멸망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군신간에 토론한 내용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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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1726년 10월 5일 기사中
상이 이르기를,

“맞는 말이다. 내가 경연관을 처음 인견했을 때 경연관은 역대의 치란과 흥망을 상세히 논했다. 
 한나라와 송나라는 중흥할 수 있었으나 명나라는 끝내 중흥하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자, 한원진이 아뢰기를,

“한나라의 사백년 기업은 약법삼장(約法三章)으로 진(秦)나라의 혹정을 없앤 것에서 실로 근원합니다. 
 한 고조(漢高祖)는 관후(寬厚)함으로 나라를 세워 인심을 굳게 결속시켰으므로, 
 한나라가 비록 중간에 망했어도 사람들이 한나라를 다시 그리워하여 얼마 안 가서 중흥한 것입니다. 
 송나라도 인후(仁厚)함으로 나라를 세우고 의리를 크게 밝혔으므로, 그 힘은 병력의 약함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와 금의 강함으로도 송나라를 망하게 하지 못하였고, 
 원 태조의 강함으로도 송나라가 날로 쇠미해 갈 때를 맞아서도 단번에 멸하지 못하고 
 4세나 지난 세조에 이르러서야 통일할 수 있었으며, 
 애산도 해전(崖山島海戰)에서는 송나라의 군민(軍民) 수만 명이 한 사람도 흩어지지 않고 같은 날에 죽었습니다. 
 이는 실로 인후함으로 나라를 세워 인심을 굳게 결속하였고 의리를 크게 밝혔기 때문이니, 
 나라를 가진 자라면 정사를 인후하게 하고 의리를 밝히도록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명(明)나라는 정령이 엄하고 살육을 좋아하여 인후함으로 나라를 세워 인심을 굳게 결속할 수 없었으므로, 
 한창 왕성할 때였는데도 일개 유적(流賊)을 만나자 적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도망쳐서 마침내 망하게 되었고, 
 망한 뒤에는 백성들이 모두 잊어버리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았으므로 또한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게다가 연경(燕京)은 오랑캐 땅에 바짝 다가가 있습니다. 
 아마도 오랑캐에게 가까이 접근하여 제압하고자 한 것일 테지만, 
 후세에 나라가 쇠하게 되면 오히려 오랑캐에게 쉽게 핍박당할 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처사입니다. 
 오랑캐의 기병이 관문을 들어온 지 수일도 안 되어 막아 주는 울타리가 없이 바로 황성(皇城) 아래에 이르렀으니, 
 이래서야 어찌 근본을 튼튼히 하고 오랑캐에 대비할 수 있겠습니까. 
 영종(英宗)이 토목(土木)의 변에서 에센[也先] 군대의 포위망에 빠져 사로잡혔으니, 이것이 그 증험입니다. 
 명나라 유학자도 이 점을 말했는데, 뒤에 모두 증험되었으니 또한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명나라 태조황제(太祖皇帝)가 역수(曆數)에 밝아, 
 자손에게 두 구(句)의 이름을 지어 주어 한 구가 끝나도 다시 한 구가 있게 하였습니다. 
 국호를 명이라 한 것도 해와 달의 뜻을 취한 것이니, 해는 중천에 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중천에 뜨며, 
 달은 차면 이지러지고 이지러지면 다시 찹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모두 명나라가 다시 일어날 조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의 생각으로는, 나라의 중흥은 모두 망한 지 오래되지 않아 일어났는데 
 지금 명나라가 망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소식이 없으니, 어찌 부흥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주씨(朱氏)가 부흥한다 해도 요임금의 후손으로 한나라 고조가 부흥하는 것과 같을 것이니, 
 어찌 한나라와 송나라의 중흥에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러하다. 명나라가 망한 지 지금 100년이 다 되어 가니 어찌 부흥할 수 있겠는가. 
 주씨가 부흥한다 해도 요임금의 후손으로 한나라 고조가 부흥하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좋은 비유라 할 만하다.”

하자, 한원진이 아뢰기를,

“우리나라가 존주(尊周)의 의리로 매번 나라를 재건해 준 은혜를 생각하면서 명나라가 부흥하기를 기대하기도 하나, 
 시세로 볼 때 어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조금 전에 한 하교에서 ‘창업(創業)’이라 한 말을 ‘들어와 중국의 주인이 되다.[入主中國]’로 고치라.”

하였다. 한원진이 아뢰기를,

“명나라가 연경(燕京)에 도읍한 것은 처음에는 오랑캐에게 가까이 접근하여 제압하고자 한 것이나, 
 나라가 성할 때에는 쉽게 제압할 수 있었지만 쇠할 때에는 도리어 화를 입었습니다. 
 오랑캐가 끝내는 중국에게 해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원인 
1. 명의 법이 너무 엄하고 사람을 많이 죽여 인심 잃음
2. 북경은 만리장성 바로 밑이라, 강할 때에는 오랑캐를 제압하는데 유리했지만
    쇠약해진 후에는 며칠만에 여진족에게 점령됨

 
                       한은 후한, 송은 남송으로 부흥했는데
                       명나라는 왜 부흥안돼?

                        한 유방 약법삼장 짱!
                        송 조광윤 후덕함 굿!
                        명 주원장 잔인 배드!
                        주씨는 부흥 불가능!


덧글

  • oldman 2015/03/11 22:31 #

    상당히 재미있는 글이네요. 옛 조상들도 명의 멸망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기록이 인상적입니다 !!!

    댓글은 많이 달지 못했지만 귀한 번역글,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 길공구 2015/03/11 23:25 #

    감사합니다.^^
  • santalinus 2015/03/12 00:25 #

    결국엔....남명으로 부활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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