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막기문(松漠紀聞) 국역 3부-금초의 황족들 금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북송의 마지막 두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으로 끌려간 후, 북송은 멸망하였는데요.
남송의 홍호(洪皓)가 금에 파견되어 휘종과 흠종의 반환을 교섭하였는데,
일이 틀어져 금에서 15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겪고 들은 것을 <송막기문>이라는 견문록 형식으로 집필하였습니다.
<송막기문>은 후에 홍호가 죽은 후 아들 홍적(洪適)이 교간(校刊)하고 홍준(洪遵)이 보유(補遺/보태어 채움)하여
1156년 간행하였습니다.
송사/요사/거란국지 연재가 끝나 틈틈이 송막기문도 국역해 보고자 합니다.

송막기문(松漠紀聞) 국역 1부-여진의 유래 http://cafe.naver.com/historygall/52500
송막기문(松漠紀聞) 국역 2부-완안씨 9대조 http://cafe.naver.com/historygall/53406

금사(金史) 시조(始祖) 함보(函普) ~ 태종(太宗) 오걸매(吳乞買) 국역 http://cafe.naver.com/historygall/40393
대금국지(大金国志) 1부~4부 http://cafe.naver.com/historygall/52319
금지(金誌) 1부~4부 http://cafe.naver.com/historygall/52320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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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骨打八子,正室生繩果,於次為第五,又生第七子,乃燕京留守易王之父。
正室卒,其繼室立,亦生二子,長曰二太子,為東元帥,封許王,南歸至燕而卒。
次生第六子曰蒲路虎,為兗王、太傅、領尚書省事。
長子固碖〈力本切〉,側室所生,為太師,涼國王,領尚書省事。
第三曰三太子,為左元帥,與四太子同母。
四太子即兀朮,為越王,行臺尚書令。
第八子曰邢王,為燕京留守;打毬墜馬死。
自固碖以下皆為奴婢。
繩果死,其妻為固碖所收,故今主養於固碖家。
及吳乞買卒,其子宋國王與固碖、粘罕爭立,以今主為嫡,遂立之。

아골타(阿骨打)는 아들이 8명이며, 정실(正室)은 승과(繩果)를 낳았는데, 차례(次)에서는 제(第) 5자(子)이며,

또 제(第) 7자(子)를 낳으니, 곧 연경유수(燕京留守) 역왕(易王)의 부친(父)이다.
정실(正室)이 졸(卒)하자, 그 계실(繼室/후첩)을 세웠는데, 역시(亦) 두 아들을 낳으니,
장자(長)는 이태자(二太子)이고, 동원수(東元帥)로 삼고, 허왕(許王)에 봉(封)하였는데, 
남(南)에서 돌아와 연(燕)에 이르러 졸(卒)하였다.
다음은 제(第) 6자(子)를 낳았는데, 포로호(蒲路虎)라 말하는데, 
연왕(兗王)과 태부(太傅)로 삼고, 상서성사(尚書省事)를 영(領/거느림, 통솔함)하였다.
장자(長子) 고론(固碖)[역(力)의 본절本切)]은, 
측실(側室) 소생(所生)으로 태사(太師)와 양국왕(涼國王)으로 삼고, 상서성사(尚書省事)를 영(領/거느림, 통솔함)하였다.
제(第) 3자는 삼태자(三太子)라 말하며, 좌원수(左元帥)로 삼았는데, 사태자(四太子)와 더불어 동모(同母/동복동생)이다.
사태자(四太子)는 곧 올출(兀朮)인데, 월왕(越王)과 행대상서령(行臺尚書令)로 삼았다.
제(第) 8자(子)는 형왕(邢王)이라 말하며, 연경유수(燕京留守)로 삼았다.
타구(打毬/격구)하다가 추마(墜馬/말에서 추락함)하여 죽었다.
고론(固碖)에서부터 이하(以下)는 모두 노비(奴婢)가 되었다.
승과(繩果)가 죽자, 그 처(妻)는 고론(固碖)이 소수(所收/취함, 거둠)하였는데,
이런 연고(故)로 금주(今主/지금의 임금, 금상, 금 3대 황제 희종)가 고론가(固碖家)에서 양육(養)하였다.
오걸매(吳乞買)가 졸(卒)함에 이르러서, 
그 아들 송국왕(宋國王)이 고론(固碖) 및 점한(粘罕)과 더불어 쟁위(爭立/제위를 다툼)하니, 
금주(今主/지금의 임금, 금상, 금 3대 황제 희종)를 (아골타의) 적통(嫡)이라 하여, 마침내 옹립(立)하였다.



吳乞買,乙卯年卒。
長子曰宗磐,為宋王、太傅,領尚書省事,與滕王、虞王皆為悟室所誅。
次曰賢,為沂王,燕京留守。
次曰滕王、虞王。
袁王撒也,稱揞〈鄔感切〉〈揞板,彼云大也〉孛極烈,吳乞買時為儲君,嘗謀盡誅南人。
오걸매(吳乞買)는, 을묘년(乙卯年/1135년)에 졸(卒)하였다.
장자(長子)는 종반(宗磐)이라 말하며, 송왕(宋王)과 태부(太傅)로 삼았으며, 상서성사(尚書省事)를 영(領/거느림)하였는데
등왕(滕王)과 우왕(虞王)과 더불어 모두 오실(悟室)에게 소주(所誅/피살)되었다.
다음은 현(賢)이라 말하며, 기왕(沂王)과 연경유수(燕京留守)로 삼았다.
다음은 등왕(滕王)과 우왕(虞王)이라 말한다.
원왕(袁王)은 살(撒)인데, 암揞[오(鄔)의 감절(感切)]판(板)[암판(揞板), 그것은 크다는 말이다] 발극렬(孛極烈)이라 칭(稱)하며,
오걸매(吳乞買) 때 저군(儲君/황태자)으로 삼았는데, 
일찍이 남인(南人/송나라 사람)의 진주(盡誅/모두 주살함)를 도모(謀)하였다.


闥辣封魯王,為都元帥,後被誅。
其子太拽馬亦被囚,因赦得出。
庶子烏拽馬名勖,字勉道,今為平章。

달랄(闥辣)은 노왕(魯王)으로 봉(封)하고, 도원수(都元帥)로 삼았는데, 후(後)에 피주(被誅/주살을 당함)하였다.

그 아들 태예마(太拽馬) 역시(亦) 피수(被囚/옥에 갇힘)하였는데, 사면(赦)으로 인(因)하여 득출(得出/옥에서 나옴)하였다.
서자(庶子) 오예마(烏拽馬)의 이름은 욱(勖)이고, 자(字)는 면도(勉道)인데, 지금(今)은 평장(平章)으로 삼았다.



粘罕者,吳乞買三從兄弟,名宗幹,小名烏家奴,本曰粘漢,言其貌類漢兒也,其父即阿盧里移賫。

粘罕為西元帥,後雖貴,亦襲父官,稱曰阿盧里移賫孛極烈都元帥。
「孛極烈」,彼云「大官人」也。
其庶弟名宗憲,字吉甫,好讀書,甚賢。

점한(粘罕)이란 자(者)는, 오걸매(吳乞買)의 삼종형제(三從兄弟)인데, 이름은 종간(宗幹)이며, 

소명(小名/어릴 적 이름)은 오가노(烏家奴)이고, 본래(本) 점한(粘漢)이라 말하는데,

말하길 그 용모(貌)가 한아(漢兒/중국인)와 비슷하다 하며, 그 부친(父)은 곧 아로리이재(阿盧里移賫)이다.

점한(粘罕)은 서원수(西元帥)로 삼았는데, 후(後)에 비록 귀(貴)하게 되었으나, 
역시(亦) 부친(父)의 관직(官)을 세습(襲)하여, 칭(稱)하여 아로리이재(阿盧里移賫) 발극렬(孛極烈) 도원수(都元帥)라 말하였다.
「발극렬(孛極烈)」은, 그쪽에서 말하는 「대관인(大官人/관직이 높은 사람)」이다.
그 서제(庶弟/서모에게서 태어난 아우)의 이름은 종헌(宗憲)인데, 자(字)는 길보(吉甫)이며, 
독서(讀書)를 좋아하여, 심히(甚) 현명(賢)하였다.


悟室者,女真人。
「悟」作「鄔」音,或云悟失,名希尹,封陳王,為左相。
誅宋、兗,滕、虞凡七十二王,後為兀朮族誅。

오실(悟室)이란 자(者)는, 여진인(女真人)이다.

「오(悟)」는「오(鄔)」로 발음(音)하는데, 혹(或) 오실(悟失)이라고 말하며,
이름은 희윤(希尹)이고, 진왕(陳王)에 봉(封)하고, 좌상(左相)으로 삼았다.
송왕(宋)과 연왕(兗) 및 승왕(滕)과 우왕(虞) 무릇 72왕(王)을 주살(誅)하였는데,
후(後)에 올출(兀朮)의 족(族)에 의해 주살(誅)되었다.


*완안희윤(完顏希尹) : 본명은 곡신(穀神)이며, 올실(兀室)/오실(悟室)/호사(胡舍)라고도 함.
                         환도(歡都)의 아들로, 아골타의 명에 의해 여진문자를 창제하였음.
                         완안종한을 따라 천조제를 사로잡고 요의 서경(西京)을 항복받아내는 공을 세움
                         1차 북송 정벌전에서 원수(元帥) 우감군(右監軍)에 임명되어 송의 태원(太原)을 공격함.
                         2차 북송 정벌전에서는 개봉을 포위하고 휘, 흠종과 황족을 사로잡았으며,
                         종한을 따라 송의 강왕 조구(남송 고종)를 추격하였음.
                         희종이 제위에 오르자 상서좌승상(尚書左丞相) 겸 시중(侍中)에 임명됨
                         1139년에는 진왕(陳王)에 봉해졌으며, 종간(宗幹)과 함께 종반(宗磐)과 종준(宗雋)을 주살하였음.
                         이해에 희종에 의해 "마음에 임금이 없다"라는 죄목으로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음.
                         1143년 희종에 의해 형국공(邢國公)으로 추증되었으며, 1151년에 해릉왕에 의해 예왕(豫王)에 봉해졌음.


*금사 완안종필(完顏宗弼)/금올출(金兀朮) 열전 국역 http://cafe.naver.com/historygall/4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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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에서 계속. 길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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