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양호 그 자는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일전에 사르훠 전투를 요약하는 발그림을 그린적이 있었는데요.

사르훠(sarhv) 전투 요약 발그림 http://cafe.naver.com/booheong/114869

그림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지요.

그림의 인물은 실제 만주실록에 삽화되어 있는 전사한 동로군 사령관 유정의 모습입니다.
당시 총사령관 양호와 동로군 유정의 사이가 매우 좋질 않다는 내용은 조선의 기록에도 있는 내용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강홍립이 직접 유정에게 동로군의 명군의 병력이 왜 이리 적냐고 물었더니
유정이 직접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강홍립 : 병력이 왜케 적음?
유정 : <내가 거느린 병력이 채 1만이 되질 않는다>
강홍립 : 병력 증강이나 연합해야지 않음?
유정 : <양호가 나와 사이가 좋질 않아 반드시 이번 전투에서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강홍립 : 왜케 서두름? 눈 내리고 길도 질퍽거려 안 좋은데?
유정 : <양호 그 개새가 3월1일에 허투알아에 모여라 명령하니 그렇다! 
          군령인데 뭐 어쩌라는 거냐? 양호한테 물어보든가??? 짜증나게!!!>
강홍립 : 아놔...
유정 : 양호 그 개새 한테 사천지역의 강병을 달라고 했는데 씹었다...
        난 조선군 니네만 믿는다.
강홍립 : 헐...


조선왕조실록 1619년 2월26일 기사中
도원수 강홍립이 치계하기를,
“대설 중에 행군하느라 각영 병사들이 가진 군장과 의복이 모두 젖은데다가 도독의 전진하라는 명령도 없었으므로 
 신들은 주둔하여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중략)
 신 홍립이 가서 도독을 만나보고 각 방면 군사의 수를 물었더니,
  ‘서남 방면에 대병(大兵)이 일제히 전진하고 있고, 
  동쪽 방면의 군사는 내가 친히 거느린 장정 수천 명과 각 장수가 거느린 병사가 있을 뿐이니, 
  통틀어 1만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동쪽 방면의 군대가 매우 고립될 텐데 대인(大人)은 왜 군대를 요청하지 않습니까?’ 
하고 신이 물었더니, 말하기를 
 ‘양 대인(大人)과 나는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반드시 내가 죽기를 바랄 것이고, 
  나도 나라의 큰 은혜를 입었으므로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직 벼슬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전(寬田)에 남겨두고 온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왜 이렇게 빨리 전진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병가(兵家)의 승산은 오직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얻고 인심을 따르는 데에 있을 뿐이다. 
 날씨가 아직 추우니 천시를 얻었다고 할 수 없고, 도로가 질척거리니 지리를 얻었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병권을 잡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답하였는데, 무척 기분이 나쁜 기색이었습니다. 
신들이 그 진영에 나가 보니 기계가 허술하고 대포와 대기(大器)도 없었으며, 오직 우리 군사들을 믿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였다.
【유정(劉綎)이 일찍이 사천(四川)에서 진무하던 때에는 수하에 매우 날래고 용맹한 묘병(苗兵)이 있어서 
   일찍이 서강(西羗)을 방어할 때에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때에 이르러 유정이 그들은 조금 필요로 하였으나 양호가 전진하도록 재촉하였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1619년 2월27일 기사中
도원수 강홍립이 치계하였다.
“동쪽 방면의 장수들이 거느린 군병과 장수는 유 총병(劉摠兵), 강 부총(江副摠), 조 참정(祖參政), 요 유격(姚遊擊), 
 서 수비(徐守備), 유 수비(劉守備), 주 지휘(周指揮)가 관전(寬田)으로부터 출병했고, 
 교 유격(喬遊擊), 주 도사(周都司)가 진강(鎭江)으로부터 출병하였는데, 
 말로는 3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신이 보기로는 1만여 명을 넘지 않는 듯합니다. 
 도독은 뒤따라 오는 군대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출병하게 한 데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드러내 놓고 하였으며, 
 교 유격도 창졸간에 군사를 일으킨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대개 동쪽 방면의 군대가 전진하는 길은 험난하고 멀며 큰 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또 강을 가로질러 건너야 했는데, 압아하(鴨兒河)에 비하여 더 깊고 넓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와도 건너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압아하를 모두 네 번 건넜는데, 깊이가 말의 배에까지 차며, 물이 검고 돌이 커서 사람과 말이 건너기 어려웠습니다. 
 군인들은 각자 행장을 가지고 있는데 반도 채 못 와서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또 가지고 온 군량은 이미 다 떨어져가는데 
 군량과 건초가 아직 후송되지 않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이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군사들을 독촉하는 경략의 영전(令箭)의 도독에게 도착했으므로 군대를 전진하도록 독촉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광해군의 반응과 미리 패전을 예상한 광해군

조선왕조실록 1619년 3월3일 기사中
비밀리에 비변사에 전교하였다.
중국의 동쪽 방면의 군대가 매우 약하여 오직 우리 나라 군대만을 믿고 있다고 하니, 
 원수의 장계를 보고 나는 한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당초에 내가 염려했던 것이 바로 오늘과 같은 근심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군대도 이렇게 약하다고 하는데 훈련도 받지 않은 나약한 우리 나라의 군사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이렇게 나약한 군사들을 호랑이 굴로 몰아대었으니 전쟁에 지는 것만으로 끝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나라에 말할 수 없는 근심이 닥쳐올 것인데, 본사는 이 점을 생각하고 있는가?

미리 패전을 예상한 광해군의 이 말이 있은 후 하루 뒤인 3월4일에 조선군 9천 명이 전사하였고,
3월12일에 조정에 패전 소식이 전해집니다.

1619년 허투알아 공격전 조선군의 군량 보급 현황 http://cafe.naver.com/booheong/109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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