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하치 <동해여진 너 네꺼해라!> 1부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누르하치에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끊임없는 병력자원(노예?)의 보고였던 동해여진을 소개해 드립니다.
특히나 1600년 조선이 당시 동해여진에서 4손가락 안에 든 것으로 추정되는 노토부족을 초토화하면서
동해여진은 만주의 누르하치와 울아의 부잔타이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선조<조선이 우습냐?>여진족 1만명을 학살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15501

동해여진 3대 부족
1. 워지(weji) → 올길부(東海兀吉部)/악집부(渥集部)/와집부(窩集部)
2. 와르카(warka) → 알아합부(斡兒哈部)/와이객부(瓦爾喀部)
3. 쿼르카(kvrka) → 호아합부(虎兒哈部)/고이객부(庫爾喀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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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해여진과의 처음 시작은 혼인 결맹

태조무황제실록 1599년 1월 기사中
己亥年正月、東海兀吉部內虎兒哈二酋長王格、張格,率百人來貢土產黑白紅三色狐皮,黑白二色貂皮。
自此兀吉虎兒哈部內所居之人,每歲入貢,
其中酋長箔吉里等六人乞婚,太祖以六臣之女配之,以撫其心。
기해년(己亥年/1599년) 정월(正月)에, 
해(東海) 올길부(兀吉部) 내(內) 호아합(虎兒哈) 두 추장(酋長)인 왕격(王格)과 장격(張格)이, 
100인을 인솔(率)하고 토산물(土產)인 흑백홍(黑白紅) 3색(色)의 호피(狐皮)와 흑백(黑白) 2색(色)의 초피(貂皮)을 
내공(來貢/조공하여 옴)하였다.
이로부터 올길(兀吉) 호아합부(虎兒哈部) 내(內)에 소거(所居/거주)하는 사람은, 매해 입공(入貢/조공)하였는데,
그 중(中)의 추장(酋長) 박길리(箔吉里) 등 6인이 혼인(婚)을 애걸(乞)하니,
태조(太祖)가 6 신하(臣)의 딸로 배(配/짝지어줌)하니, 이로써 그 마음을 무(撫/어루만짐)하였다.

→ 동해여진에서 최초로 워지부의 두 추장이 누르하치에게 조공 오고 건주위의 6대신들과 혼인 결맹을 체결함.
→ 1599년 현재 상황 : 워지부 추장 6명과 혼인 결맹

 동해야~ 결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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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울아의 부잔타이 동해여진을 선점하다.

울아의 부잔타이가 동해 여진을 넘보기 시작한 해는 대략 1597년부터입니다.
부잔타이가 건주에서의 4년간 인질에서 풀려나고 울아의 한이 되자 예허와의 혼인동맹을 체결하면서
동해여진의 각 부족에게 자신에게 복종하라 사신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의 기록에도 나오듯 동해여진의 노토부족등은 당연히 이를 거부합니다.

무황제실록 1597년 기사中
其布占太亦因與夜黑通,將滿太妻都都庫氏所玩銅錘,遣使送與納林卜祿。
又將滿洲所屬斡兒哈部內按褚拉庫、內河二處酉長落吞、剛石吞、旺吉諾三人許獻夜黑,請其使而招服之。

그 포점태(布占太/부잔타이) 역시(亦) 야흑(夜黑/예허)와 더불어 통(通)함으로 인(因)하여,

장차(將) 만태(滿太/부잔타이의 형 만타이)의 처(妻) 도도고씨(都都庫氏)의 소유한(所) 완동추(玩銅錘/가지고 노는 구리 추)를,

견사(遣使/사신을 보냄)하여 납립복록(納林卜祿/예허의 한)에게 보냈다.

또 장차(將) 만주(滿洲) 소속(所屬)인 알아합부(斡兒哈部) 내(內)의 안저랍고(按褚拉庫)와

내하(內河)의 두 곳의 추장(酉長/酋長의 오기)의 낙탄(落吞)과 강석탄(剛石吞)과 왕길낙(旺吉諾) 3인의
야흑(夜黑/예허)에 허헌(許獻/헌송을 허락함)하고, 그 사신(使)을 청(請)하여 초유(招)하고 복종(服)시켰다.

만주실록 1597년 기사中
sure beilei harangga warkai aiman i anculakv
(부잔타이가) 수러 버이러의 관하의 와르카의 부족 의 안추라쿼
dorgi birai goloi lotun. gasitun. wangginu ere ilan uju i niyalma be bume
안쪽(내內) 강(하河)의 지방의 로툰. 가시툰. 왕이누 이 3 머리 의 사람 을 주며
yehei elcin be gamafi anculakv dorgi birai golo be dahabuha.
예허의 사신 을 가지고 안추라쿼 안쪽 강의 지방 에 항복하게하였다.

조선왕조실록 1598년 8월1일 기사中
올아적(兀阿赤)이 노토(老土)를 들어오도록 초치하였다. 
그러자 노토가 답하기를, 
『우리는 조상 이래 대대로 조선을 받들어 오면서 2백여 년 동안 무사히 살아왔다. 
  그런데 올아적이 무슨 일로 나를 부른단 말인가.』 하였다. 
그리고는 곧 성을 쌓아 험한 곳에 웅거하면서 올아적이 쳐들어 올 경우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가 지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해는 내꼬얌~
 꺼져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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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잔타이의 동해여진을 심하게 괴롭히다.

태조무황제실록 1607년 기사中
丁未年,東海斡兒哈部蜚敖城主策穆德黑謁太祖曰
「吾地與汗相距路遙,故順兀喇國主布占太貝勒,彼甚苦虐吾輩,望往接吾等眷屬,以便來歸。」

정미년(丁未年/1607년), 

동해(東海) 알아합부(斡兒哈部)의 비오성주(蜚敖城主) 책목덕흑(策穆德黑)이 태조(太祖)를 알현(謁)하고 말하길
「나의 땅은 한(汗)과 더불어 서로간에 길이 멀리 떨어져 있어, 
  이런 연고(故)로 올라국(兀喇國)의 주인(主) 포점태(布占太) 패륵(貝勒)에게 귀순(順)하였는데,
  저쪽이 심히(甚) 오배(吾輩/우리 무리)를 고학(苦虐/욕보이고 학대함)하니, 
  바라옵건대 와서 우리들을 권속(眷屬/일족)으로 대접(接)해 준다면, 내귀(來歸/귀부하여 옴)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주실록 1607년 기사中
be bai goro de dalibufi ulai gurun de dahafi.
나 땅이 멀음 에 가로막혀서 울아의 나라 에 항복하였고.
ulai bujantai beile membe ambula jobobumbi.
울아의 부잔타이 버이러 우리를 많이 괴롭힌다.
meni boigon be ganame yabu!
우리의 집안(호구) 를 가지러 맞이하라!

→ 워지부 피오성의 첨터허가 울아 부잔타이의 핍박에 휘하 부족민 500호를 이끌고 
   누르하치의 건주위로 오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내껀데 내 맘대로 하는 건 당연하쥐!!!

→ 참고로 부잔타이는 부인들을 학대한 경력이 있습니다.
   후에 부잔타이가 건주위에서 시집온 부인 두 명을 새 사냥용 활인 고두리살로 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누르하치가 격분하여 3만 명을 이끌고 공격하러 갑니다.
   물론 명분은 <감히 아이신 기오로의 혈통을 학대하다니! 너님 절대 용서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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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누르하치와 부잔타이가 동해를 놓고 최초로 격돌하다.

동해 와르카 피오성주의 요청이 있자, 누르하치는 즉각 동생 슈르하치와 장남 추옝, 차남 다이샨에게 
병력 3천을 주어 이들을 데려오라 하였는데요.
이를 부잔타이가 병력 1만을 보내 막아서면서 이로써 누르하치와 부잔타이는 본격적인 전쟁 상태로 돌입하게 됩니다.
이에 슈르하치는 뒤로 빠져 전장을 이탈하였고, 
추옝과 다이샨은 1천 병력을 이끌고 울아의 1만 병사에 돌격하여 3천 명을 죽입니다.
참고로 부잔타이는 슈르하치의 사위로, 슈르하치의 두 딸이 부잔타이에게 시집갔지요.

청사고 저영(褚英) 열전中
抵蜚悠城,收其屯寨五百戶,令扈爾漢衛以先行,烏喇貝勒布占泰以萬人邀之路。
扈爾漢所部止二百人,褚英、代善策馬諭之曰:
「上每征伐,皆以寡擊眾,今日何懼?且布占泰降虜耳,乃不能復縛之耶?」
眾皆奮,因分軍夾擊,敵大敗,得其將常柱、瑚裡布,斬三千級,獲馬五千、甲三千。
비유성(蜚悠城)에 저(抵/이름)하여, 그 둔채(屯寨) 500 호(戶)를 수(收/거둠)하고는,
영(令)하여 호이한(扈爾漢)에게 위(衛/지킴, 호위 함)하여 이로써 선행(先行/먼저 감)하게 하였는데,
오라(烏喇)의 패륵(貝勒) 포점태(布占泰)가 만인(萬人)으로써 길에서 요격(邀)하였다.
호이한(扈爾漢)의 소부(所部/소속 부대)는 200 인에 그치었는데,
저영(褚英)과 대선(代善)이 책마(策馬/말을 채찍질함)하고 유(諭/타이름)하여 말하길
상(上/임금, 누르하치)이 매번(每) 정벌(征伐)하시면, 
   대개(皆) 과(寡/수량이 적음, 소수)로써 격중(擊眾/무리를 공격함, 적을 공격함)하셨는데, 금일(今日)에도 무엇이 두려우랴?
   또한 포점태(布占泰)는 (우리에게 한번 잡혔던) 항로(降虜/포로가 되어 항복함)일 뿐이니, 
   이에 다시 포박(縛)함이 불능(不能)하겠느냐?
무리가 모두 분(奮, 분발, 흥분, 떨침)하니, 이로 인(因)하여 분군(分軍/군을 나눔)하여 협격(夾擊/협공)하니,
적(敵)을 대패(大敗/크게 깨트림)하였고, 그 장수(將) 상주(常柱)와 호리포(瑚裡布)를 득(得)하고,
3천급(級)을 참(斬)하였으며, 말 오천과 갑옷(甲) 3천을 포획(獲)하였다.

동해가 너랑 이혼하고 싶다는데?ㅋㅋ

→ 1607년초 누적 상황 : 와르카 500호 획득, 울아 병사 3천 명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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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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