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는 야밤에 조영규의 철퇴에 죽었나? 기타 역사 이야기


4월3일 

-새벽 이성계가 벽란도에서 개경으로 들어옴

-이방원 이성계에게 정몽주를 죽이자 청함, 이성계 거부


4월4일 

-이방원 도평의사사로 쳐들어가 업무 중인 정몽주를 죽일 계획 세움

-변중량이 이 계획을 정몽주에 알림

-정몽주 이성계 집 방문

-이성계 집 밖에 정승 행차시 행인의 통행을 금하는 벽제(辟除) 소리 들림

-이방원 정몽주가 왔다는 걸 알고 이두란(이지란)에게 정몽주를 죽이자 청함 → 이지란 거부

-이성계 정몽주를 극진히 대접함.

-이방원 누가 이씨 가문을 위해 정몽주를 죽이겠나? 말함

 → 조영규가 하겠다고 답하고 조영무, 고려, 이부 등과 함께 정종 이방과의 집에 가서 칼 등을 준비함.

-조영규 등 4,5인 정몽주의 집 근처 동네 입구에서 매복하기로 함

-정몽주가 이성계의 용태를 확인하고 곧장 집을 떠남

-이방원 초조하여 직접 말을 끌고 이방과의 집으로 향하여 조영규 등에게 정몽주가 지나갔는지 물음

 →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정몽주를 죽이라 지시하고 이성계의 집으로 돌아감

-정몽주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유원의 초상집에 들름.


선죽교

-정몽주가 선죽교에 이르자 조영규가 달려가 쳤으나 정몽주 피함

-정몽주 조영규를 꾸짖고 말을 채찍질하여 도망감

-조영규 쫓아가 말머리를 쳐서 말을 쓰러트림

-정몽주 땅에 떨어졌다가 급히 일어나 달아남

-고여가 쫓아가 칼로 벰/쳐서 죽임



정몽주를 죽인 자 : 고여

정몽주가 죽은 때 : 길공구는 늦은 낮으로 추정

                     → 대낮에 도평의사사를 쳐들어가 정몽주를 죽이려 하였다고 추정됨.

                        이를 안 정몽주가 곧장 이성계의 집을 방문하면서 벽제를 행함

                        조영규가 이방과의 집에 들러 칼을 가지고 정몽주의 집 근처에 매복

                        정몽주가 무부들과 마주치고 안색이 변함

정몽주를 죽인 무기 : 칼(연려실기술 등), 철퇴(택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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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공양왕 4년 1392년 4월 기사中

태종은 태조의 아우 화(和), 사위인 이제(李濟) 등과 함께 휘하의 군사에게 의논하기를,

“이씨가 왕실에 충성한 것은 나라 사람들이 아는 바인데, 이제 몽주에게 무함되어 악평을 받게 되었으니, 뒷세상에서 누가 능히 이를 분별하겠는가." 하면서, 이에 몽주를 제거할 것을 도모하였다. 

태조의 형 원계(元桂)의 사위인 변중량(卞仲良)이 그 계획을 몽주에게 누설하니, 

몽주가 태조의 사저에 나아가서 사태를 살피고자 하였는데, 

태조는 그를 대하기를 전과 같이하였다. 

태종이,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하고 몽주가 돌아감에 미쳐서 

곧 조영규(趙英珪) 등 4,5명을 보내어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쳐서 죽였다.


及夢周還,乃遣趙英珪等四五人,要於歸路,殺之

몽주(夢周)가 돌아감에 이르자, 곧 조영규(趙英珪) 등 4, 5인을 보내어, 

귀로(歸路/돌아가는 길)에서 요(要/잠복함, 기다림)하여, 살(殺/죽임)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총서中

(태종 이방원이) 

영규·조영무(趙英茂)·고여(高呂)·이부(李敷) 등으로 하여금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 들어가서 

몽주를 치게 하였는데, 변중량(卞仲良)이 그 계획을 몽주에게 누설하니, 

몽주가 이를 알고 태조의 사제(私第)에 나아와서 병을 위문했으나, 실상은 변고를 엿보고자 함이었다. 태조는 몽주를 대접하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이화가 우리 전하에게 아뢰기를,

“몽주를 죽이려면 이때가 그 시기입니다.”

하였다. 이미 계획을 정하고 나서 이화가 다시 말하기를,

“공(公)이 노하시면 두려운 일인데 어찌하겠습니까?”

하면서 의논이 결정되지 못하니, 전하가 말하기를,

“기회는 잃어서는 안 된다. 공이 노하시면 내가 마땅히 대의(大義)로써 아뢰어 위로하여 풀도록 하겠다.”

하고는, 이에 노상(路上)에서 치기를 모의하였다. 

전하가 다시 영규에게 명하여 상왕(上王)의 저택(邸宅)으로 가서 칼을 가지고 와서 

바로 몽주의 집 동리 입구에 이르러 몽주를 기다리게 하고, 

고여·이부 등 두서너 사람으로 그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몽주가 집에 들어왔다가 머물지 않고 곧 나오니, 전하는 일이 성공되지 못할까 두려워 하여 

친히 가서 지휘하고자 하였다. 문 밖에 나오니 휘하 인사의 말이 안장을 얹은 채 밖에 있는지라, 

드디어 이를 타고 달려 상왕(上王)의 저택에 이르러 몽주가 지나갔는가, 아니 갔는가를 물으니,

“지나가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므로, 전하가 다시 방법과 계책을 지시하고 돌아왔다. 

이때 전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유원(柳源)이 죽었는데, 몽주가 지나면서 그 집에 조상(弔喪)하느라고 지체하니, 이 때문에 영규 등이 무기(武器)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몽주가 이르매 영규가 달려가서 쳤으나, 맞지 아니하였다. 

몽주가 그를 꾸짖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아나니, 영규가 쫓아가 말머리를 쳐서 말이 넘어졌다. 

몽주가 땅에 떨어졌다가 일어나서 급히 달아나니, 고여 등이 쫓아가서 그를 죽였다. 

영무가 돌아와서 전하에게 이 사실을 아뢰니, 전하가 들어가서 태조에게 알렸다. 

태조는 크게 노하여 병을 무릅쓰고 일어나서 전하에게 이르기를,

“우리 집안은 본디 충효(忠孝)로써 세상에 알려졌는데, 너희들이 마음대로 대신(大臣)을 죽였으니, 나라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몰랐다고 여기겠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경서(經書)를 가르친 것은 그 자식이 충성하고 효도하기를 원한 것인데, 네가 감히 불효(不孝)한 짓을 이렇게 하니, 내가 사약을 마시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하매, 전하가 대답하기를,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 이것이 곧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

하였다. 태조가 성난 기색이 한창 성한데, 강비(康妃)가 곁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지라, 전하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어찌 변명해 주지 않습니까?”

하니, 강비가 노기(怒氣)를 띠고 고하기를,



동사강목 1392년 4월4일 기사中

○ 수시중(守侍中) 익양백(益陽伯) 정몽주가 졸하였다.

정몽주가 사람을 나누어보내 조준ㆍ정도전 등을 죽이려 하였는데 그때에 태조는 돌아오다가 

벽란도(碧瀾渡)에 이르렀다. 태종이 말을 달려가 고하기를,

“정몽주가 기어코 우리 집안을 함몰시키려 합니다.”

하고, 굳이 청하여 병을 무릅쓰고 밤새 돌아와 3일(갑인) 미명(未明)에 입경(入京)하여 조준 등의 억울함을 서너 차례나 왕복하면서 변론하였으나 왕은 들어 주지 않았다. 

이에 태종이 근심에 싸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광흥창사(廣興倉使) 정탁(鄭擢)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뵈며 말하기를,

“백성의 이해를 결정할 때에는 바로 지금입니다. 왕후(王侯)ㆍ장상(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습니까?”

하니, 태종은 즉시 태조의 집으로 돌아와 휘하 장사들을 모아놓고 의논하였는데, 

태조의 형인 원계(元桂)의 사위 변중량(卞仲良)이 이 사실을 정몽주에게 누설하였다. 

이때 정몽주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걱정하여 밥을 먹지 않은 지가 사흘이나 되었다. 

정몽주는 태조의 집을 방문하여 사태의 변화를 살폈는데, 이에 태종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하고 이두란(李豆蘭)을 시켜 격살(擊殺)하도록 하니 이두란이 말하기를,

“우리 공(公 이성계를 말한다)이 모르는 일을 내가 어찌 감히 하겠는가?”

하므로 태종은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조영규(趙英珪)에게 말하니, 

조영규가 하겠다 말하고 해주목사(海州牧使) 조무(趙茂), 중랑장(中郞將) 고려(高呂), 판사(判事) 이부(李敷) 등과 길목에 잠복해 있었다. 정몽주가 돌아오는데 동개[櫜鞬 활과 화살을 넣어 등에 지고 다니는 물건]를 멘 무부(武夫)가 스치며 지나가자 정몽주가 얼굴빛을 변하며 수행하는 녹사(錄事)에게 말하기를,

“너는 뒤에 처지는 것이 좋겠다.”

하고, 재삼 꾸짖으며 못 따라오게 하였으나 듣지 않고 말하기를,

“소인은 대감을 수행하는 몸인데 어찌 돌아가겠습니까?”

하였다. 

선죽교(善竹橋)에 이르자 조영규가 쳤으나 맞지 않았다. 정몽주가 꾸짖으며 말을 채찍질해 달아나자 조영규가 따라와 말머리를 쳐서 말이 꺼꾸러지고 정몽주가 땅에 떨어지니 고려가 쳐서 죽이므로 녹사도 끌어안고 같이 죽었다. 

이날이 바로 4월 4일(을묘)로 정몽주의 당시 나이는 56세이었다. 《동각잡기(東閣雜記)》를 참고하여 썼다. ○ 녹사의 일은 심씨(沈氏)의 《악부(樂府)》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이 들어가 이 사실을 고하자 태조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함부로 대신을 죽였으니, 국인들이 내가 모르는 일이라고 하겠느냐? 우리 가문은 본디 충효(忠孝)로 소문이 났는데 너희들이 감히 불효를 저질렀구나!”



연려실기술 태조조 고사본말(太祖朝故事本末) 中

공의 음모가 더욱 드러나자, 태종은 잔치를 베풀어 공을 초청하였다.

노래를 지어 술을 권하기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성황당(城隍堂) 뒷담이 무너진들 또 어떠리. 

 혹은 ‘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얽어진들 또 어떠리’로 되어 있다. 

 우리도 이와같이 하여 안 죽으면 또 어떠리.” 하고 읊으니, 

공도 이에 노래를 지어 술잔을 보내면서 읊기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하였다. 

태종이 공의 뜻이 변할 수 없음을 알고 드디어 제거하기로 결심하였다. 

하루는 공이 태조에게 문병을 핑계로 기색을 살펴보고 돌아가는 길에 전에 자주 가던 술친구의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주인은 밖에 나가고 집에 없었으며, 뜰에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은 드디어 뜰 안으로 바로 들어가 술을 청하여 꽃 사이에서 춤을 추면서 말하기를, 

“오늘 풍색(風色)이 매우 사납구나, 매우 사납구나.” 하고, 

큰 대접으로 연거푸 몇 잔의 술을 마시고는 나왔다. 

그 집 사람이 괴이쩍게 여겼더니, 얼마 있다가 정 시중(鄭侍中)이 해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다. 

공이 태조의 집으로부터 돌아올 때에 활을 메고 그 앞을 가로질러 가는 무부(武夫)가 있었다.

공은 수행하는 녹사(錄事 의정부의 관속)에게 말하기를, “너는 뒤에 떨어지거라.” 하였다. 녹사가 대답하기를, “소인은 대감을 따르겠습니다. 어찌 다른 데로 가겠습니까.” 하고, 재삼 따라오지 말라고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가다가 선죽교(善竹橋)에 이르러 화를 입었는데,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함께 죽었다. 

《해동악부(海東樂府)》. 당시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그 수행 녹사의 성명을 기억한 사람이 없어서 드디어 후세에 전하지 못하였다.



연려실기술 태조조 고사본말(太祖朝故事本末) 中

고려말 정사의 문란과 왕업의 일어남

태종이 드디어 정종(定宗)과 이제와 더불어 의논하기를, “몽주는 안 죽일 수 없다. 내가 마땅히 그 허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 하고, 이두란(李豆蘭)으로 하여금 몽주를 저격하게 하니, 두란이 말하기를, “우리 상공(相公)이 모르는 일을, 내가 어찌 감히 하겠는가.” 하였다. 태종이 조영규 등을 불러 말하기를, “우리 이씨가 왕실에 충성한 것은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터인데, 지금 몽주의 모함에 빠져 악명을 덮어 쓰고 있다. 우리 휘하에 사람이 많으면서 이씨를 위하여 힘을 다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가.” 하니, 영규가 말하기를, “힘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이에 태종은 영규와 조영무(趙英茂)ㆍ고려(高呂)ㆍ이부(李敷) 등으로 하여금, 도평의사사에 들어가 몽주를 저격하게 하려 하는데, 홀연히 행인을 벽제(辟除)하는 소리가 났다. 나가 보니, 몽주가 문에 도착하였다. 태조의 서형 원계(元桂)의 사위 변중량(卞仲良)이 그 모의를 몽주에게 누설하였기 때문에, 몽주가 동태를 살피고자 하여 문병을 칭탁하고 온 것인데, 태조가 몽주 대접하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이화가 태종에게 말하기를, “몽주를 죽이는 것은 지금이 기회입니다. 상공께서 성내실 것이 두려우니, 어찌할까요.” 하였다. 태종이 말하기를, “기회는 놓칠 수 없다.” 하고, 영규에게 명령하여 칼을 가지고 길가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그때 전 판개성부사(前判開城府事) 유원(柳源)이 죽었으므로 몽주가 지나다가 그 집에서 조상하느라고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영규들이 병기를 준비하여 가지고 기다릴 수 있었다. 

몽주가 이르렀을 때, 영규가 달려가 쳤으나 맞지 아니하였다. 

몽주가 돌아보고 꾸짖으며 말을 채찍질하여 달아났다. 

영규가 달려가 말 머리를 치니, 몽주가 떨어져서 달아나는 것을 고려(高呂) 등이 베어 죽였다.

태종이 들어가 아뢰니, 태조가 크게 놀라면서 일어나 성내어 말하기를, “우리 집이 평소에 충효로 알려졌는데, 너희들이 함부로 대신을 죽였으니, 나라 사람들이 내가 몰랐다고 하겠느냐.” 하였다. 태종이 말하기를, “몽주 등이 우리집을 몰락시키려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하였는데, 태조의 성냄이 바야흐로 대단하였다.



<고여 등이 참(斬)하였다.>



이중환의 <택리지>中

太祖門下諸將士趙英珪 以鐵堆 殺於橋上

태조 문하의 여러 장사(將士) 조영규(趙英珪)가 철퇴(鐵堆)로써 다리 위에서 죽였다.



james_special-32이방원 : 죽인다! 포은!

moon_special-17이성계 : 너 포은 건들면 나한테 죽음! 고향으로 돌아갓!

james_special-36이방원 : 누구 이씨를 나를 위해 포은 쳐죽일 사람 손?

moon_mad_angry_edition-27조영규 : 저 손!

sally_special-3정몽주 : 물럿거라~ 백성들아~ 나 이성계 집에 갔다 온다~

moon_mad_angry_edition-24조영규 : 너님 오늘 끝!

sally_special-34정몽주 : 개새~ 나도 전장을 떠돌던 사람이닷!!

line_rangers2-29고여/고려 : 나 고여/고려! 정몽주를 죽인 자는 바로 나!

                            고려의 충신은 나 고려가 죽인다!

sally_special-33정몽주 : ........(내가 고려에게 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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