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누르하치의 만주군을 이기는 방법 1부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1619년 2월 명의 요청으로 누르하치의 본성인 혁도아랍(허투알아/hetu ala)를 공격하기 위해

출정한 1만 3천의 조선군은 3월 4일 부차(富察/만주어 fuca푸차)에서 7000~9000여 명이 전사하고,

3월 5일 후금군에 항복하여 강홍립과 장수들은 3월 6일에, 조선군은 3월 7일 혁도아랍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때 후금에 포로로 사로잡힌 조선의 종사관 이민환은 1년 4개월간의 포로생활 중에

후금의 실정을 파악하였고, 이대로는 조선이 만주군을 이길수 없다고 생각하여

6개의 방책을 작성하여 조정에 올렸으나, 

이민환은 패장이자 항장이며 온갖 음해를 받아 오랜 세월 등용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 이민환이 제시한 조선군이 누르하치의 만주군을 이기기 위한 6가지 방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강홍립의 부대 편성 18000 명 책중일록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109446
1619년 허투알아 공격전 조선군의 군량 보급 현황 http://cafe.naver.com/booheong/109424
조선의 사르훠 전투 삽화도 및 강홍립 항복도 만주문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109065
조선을 배후에 두고 명을 도모할 수 없다!!! http://cafe.naver.com/booheong/113375

누르하치 조선 포로를 학살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9551

사르훠(sarhv) 전투 요약 발그림 http://cafe.naver.com/booheong/114869

광해군<누르하치~ 왜병 백만을 동원하겠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9676

명 선전포고 당시 누르하치의 병력 현황 http://cafe.naver.com/booheong/109652

조선이 기록한 누르하치의 차남 귀영가 http://cafe.naver.com/booheong/111145

청사고 대선(다이샨) 열전 국역 4부-사르훠 전투(고화질 삽화도 삽입) http://cafe.naver.com/booheong/112074

1619년 당시 만주의 병사와 노비 http://cafe.naver.com/booheong/115723

유정 <양호 그 자는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15346

누르하치<조선 4군은 내가 준거다!> http://cafe.naver.com/booheong/115664



이민환의 자암집 권6 건주견문록中

臣萬死之餘。妄有所懷。

謹以六條開列于左。

신(臣)은 만(萬)번 죽은 뒤에도, 망령(妄)되이 소회(所懷/마음속에 품고 있는 회포)가 있사옵니다.

삼가 6 조항(條)으로써 낮은 자리에서 개열(開列/조목조목 열거함) 하옵나이다.


1. 산성을 축성하여야 합니다.


一曰修築山城。

臣觀奴賊。經歷百戰。長於衝突。平原易地。決不可與爭鋒。

而攻城之械。亦盡其巧。除非據險山城。

일(一)은 산성(山城)을 수축(修築/보수하고 신축함)함을 말하나이다.

신(臣)이 노적(奴賊/누르하치의 만주군)을 관찰(觀)하니,

경력(經歷)이 백전(百戰)이고, 충돌(衝突)에 장기(長)라, 평원(平原)의 이지(易地/쉬운 땅)는, 

결단코(決) 더불어 쟁봉(爭鋒/적과 창검으로 싸워 다툼)함은 불가(不可)하나이다.

그리고 공성(攻城)의 기계(械), 역시(亦) 그 공교(巧)함이 진(盡/극치를 달림)하니,

오직 험(險)한 산성(山城)에 근거(據)하여야 합니다.


첫째는 산성을 수축하여야 합니다.

신이 후금군을 관찰하니, 백전의 경력을 지녔고, 

돌격이 장기라 평원에서는 결단코 대결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공성 기계 또한 그 공교함이 극치를 달리니,

오직 험한 산성에 근거하여 방어해야 합니다.


→ 기타 내용 : 누르하치가 조선 동북방 함경도 국경 인근의 동해여진을 모조리 건주로 끌고 갔으니

   그곳은 걱정할 일이 없고 오직 서북방의 요지에 산성을 축성하여 방비하여야 한다.



2. 군마를 강하게 키워야 하나이다!


二曰。申明馬政。

臣觀奴賊之橫行衝突。莫可與敵者。不過負戎馬之足也。

賊若長驅。睨過堅城。衝犯內地。倏往倏來。

則臨機觀勢。或遮截或尾擊或掩襲。在不可已。

然以不甲步卒。欲當於鐵騎。其不格明矣。

當此時。申明馬政。團結甲騎。誠不可少緩。

이(二)는 마정(馬政/군마 육성 정책)을 신명(申明/사실을 거듭 자세히 밝힘)하여야 하나이다.

신(臣)이 노적(奴賊/누르하치)의 횡행(橫行/거리낌 없이 멋대로 행동함)과 충돌(衝突) 관찰(觀)하니,

더불어 대적(敵)하는 자(者)가 없는 것은, 융마(戎馬/군마)의 발에 부(負/힘입음)함에 불과(不過)하나이다.

적(賊)이 만약(若) 장구(長驅/먼 거리를 신속하게 진군함)하면,

예(睨/곁눈질 함)하여 견성(堅城/견고한 성)은 과(過/지나 감)하고,

내지(內地)를 충범(衝犯/공격하여 침)하여, 숙왕(倏往/갑자기 감)하고 숙내(倏來/갑자기 옴)합니다.

즉 임기(臨機/어떤 때에 임함)를 관세(觀勢/형세를 살펴봄)하여,

혹(或) 차절(遮截/차단하여 끊음)하거나 혹(或) 미격(尾擊/꼬리를 침)하거나 

혹(或) 엄습(掩襲/불시에 습격함)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그러하니 갑옷(甲)이 없는 보졸(步卒)은, 장차 철기(鐵騎/철갑을 입은 기병)에 당(當/대항)하면,

그 불격(不格/대적하지 못함)은 자명(明)하나이다.

이때를 당(當)하여, 마정(馬政/군마 육성 정책)을 신명(申明/사실을 거듭 자세히 밝힘)하고,

갑기(甲騎/갑옷을 입은 기병)를 단결(團結/모으고 묶음)하는 것이,

참으로 소완(少緩/느슨하고 부족함)이 불가(不可)하나이다.


둘째는 군마 육성 정책을 명백하게 하여야 합니다.

신이 후금군의 거리낌 없이 돌격하는 모습을 관찰하니

대적할 상대가 없는 것은 군마의 기동력에 힘입은 바에 불과합니다.

후금군은 멀리 진군하면 견고한 성은 곁눈질로 보고 바로 지나가고

내지를 급습하여 갑자기 오고 감에 능합니다.

하니 우리 조선군은 견고한 성에 있다가 보급로를 차단하고, 

혹은 후미를 공격하거나 급습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만약 갑주도 입지 않은 보병으로는 후금군의 철기를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하여 갑옷을 입은 기병을 육성함이 매우 시급합니다.


→ 기타 내용 : 만주는 말을 육성할 때 콩이나 곡식을 절대 먹이지 않고 방목한다.

하여 만주의 말들은 산과들을 뛰어다니며 스스로 먹고 번식하여 생존력이 강하다.

반면에 조선의 말은 조선인들이 애지중지 키워 매일 콩과 곡식을 먹이며

눈비를 피하게 해주며 묶어놓으니 전시에 300~400보를 뛰는 것에 불과하다.

조정에서는 민간의 암말을 모두 끌어모아 목장에 풀어놓고

관리를 임명하여 잘 번식하도록 관리해야만 한다.

하여 잘 키운 말을 군마로 키워야 하며 군용 숫말은 모두 거세해야 통제가 가능하다.



3. 병졸을 우대하여야만 강병이 되나이다!


三曰。精擇戰士。

臣聞兵。務精不務多。

兵苟不精。多益爲累。

古固有以小擊衆者。此無他。精舊宂怯之勢懸殊也。

我國兵制。本非長征。驅農民而赴矢石。豈不殆哉。

近來軍保之苦。十室九破。

是以百計圖免。至如士族,賤隷,吏胥,生徒,匠人,驛卒名色科臼。不可勝記。

삼(三)은, 전사(戰士)를 정택(精擇/정밀하게 잘 골라 뽑음)함을 말하나이다.

신(臣)이 듣기로 병(兵)은 정예(精)에 무(務/힘씀)하고 많음에는 무(務/힘씀)하지 않는다 합니다.

병(兵)이 진실로 정예(精)하지 않으면, 다익(多益/더하고 많음)하면 누(累/폐를 끼침)하나이다.

예부터 소수(小)로써 격중(擊衆/무리를 격파함)하는 자(者)가 고유(固有/본디부터 있음)한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정예(精)는 예부터 용겁(宂怯/쓸데없이 겁냄)의 형세(勢)와는 현수(懸殊/현격하게 다름)하기 때문이나이다.

아국(我國)의 병제(兵制)는, 본래(本) 장정(長征/장기간 징집함)이 아니고,

농민(農民)을 구(驅/몰다)하여 시석(矢石/화살과 돌팔매)에 부(赴/다다름)하게 하니,

어찌 위태(殆)롭지 않겠나이까?

근래(近來)의 군보(軍保/군역)의 고충(苦)은, 열 집에 아홉이 파산(破)합니다.

이에 백계(百計/온갖 꾀)로써 사족(士族/사대부 양반), 천례(賤隷/천민과 노예), 이서(吏胥/각 관아에 딸린 서리), 생도(生徒/학생), 장인(匠人), 역졸(驛卒)에 이르기까지, 명색(名色/명목, 명분)과 과구(科臼/상투적인 규범)로 도면(圖免/벗어나길 도모함)하는 것을 승기(勝記/모두 기록함)함이 불가(不可)하나이다.


셋째는 정예 병사를 육성해야 합니다.

신이 듣기로 군사는 정예로움에 힘쓰고, 많은 수를 채우는 데는 힘쓰지 않는다 합니다.

군사가 진실로 정예롭지 않다면 수가 많을수록 더욱 폐단이 발생합니다.

예부터 소수로써 다수를 이기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정예 군사와 약졸은 형세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병제는 본래 장기간 징집하는 것이 아니고, 농민을 몰아 전쟁터로 보내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근래의 군역의 고충 때문에 10집에 9집이 파산합니다.

하여 위로는 양반에서부터 아래로 천민에 이르기까지 온갖 꾀를 부려 군역을 면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기록함이 불가합니다.


→ 기타 내용 : 온갖 구실로 군역을 피하고, 힘없는 농민만 몰아서 수만 채우니 군역의 폐단이 심각하다. 하여 조정에서는 면천 등의 미끼로 무과를 시행하여 병사를 모집하고 있으나 

이 또한 수만 채우는데 급급해 제대로 된 병졸을 뽑을 수가 없다.

또 무과에 합격하여 병졸이 된다 하더라도 진급은 생각지도 못하고

오직 변방의 군역만 담당하니 사기가 말이 아니다.

실제 저번 후금 정벌전에 내가 실상을 보니 그 심각함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나라에서는 분명히 큰 상을 내려 병사를 모집하여야 한다.

신분을 따지지 말고 건장한 병사들을 모집하여 세금을 면제하여야 병사들의 처자들이 먹고 살수 있다.

처자가 생계가 안정되면 병사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변경에 투입된 병사들에겐 일체 부역을 시키지 말고 의복를 넉넉히 지급하고

오직 날마다 전투 훈련에만 매진케 하여야 한다.

이렇게 변경에 투입된 병졸에겐 면천을 시켜주거나 품계를 올려주거나 무반(양반)의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주어야 한다.

또한 병졸을 교대로 변방에 투입하고 날짜를 정확히 계산하여야 폐단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장교들의 능력을 엄밀히 평가하여, 재능도 없이 장교가 되었다면

품계와 녹봉을 모두 삭탈하고 변방의 병졸로 충원해야 한다.

이렇게 제도를 엄격히 하면 수만 명의 정예 병사를 유지할 수 있다.

옛말에 3만 정예 군사면 천하를 횡행한다 하였다.


<만주실록의 강홍립 항복도>


<조선 충렬록의 심하전투 삽화도>



요약. 6대 방책中 1,2,3

1. 후금의 철기병은 보병으로는 평지에서 맞설 수가 없다.

   적이 올 길은 서북방뿐이니 요충지에 산성을 축성하여

   후금군이 지나치면 보급로를 차단하고 후미를 공격하고 급습하여야 한다.

2. 조선의 군마는 너무 애지중지 키워 나약하다.

  전국의 말을 모두 끌어모아 목장에서 방목하여 강하게 키워야 한다.

3. 정예 병사 수만 명을 모아 직업군인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조선의 병제는 폐단이 심각하고 수만 많다.

  신분을 따지지 말고 병사를 모집하고 세금을 면제케하여 직업군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면천, 진급, 양반 무과 시험 응시권 등을 내세워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

  3만 명의 정예 병사면 천하를 횡행할 수 있다.


-2부에서 계속-


p.s) 이민환의 방책은 거의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이민환은 후금 포로생활/정묘/병자호란을 모두 겪었지요.


덧글

  • 존다리안 2016/04/11 15:05 #

    저 전략만 갖춰졌어도 그렇게 무력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텐데....

    최소 고려 후기 몽골 침입에도 비록 패했다고는 하나 오래 견디기는 했지요. 그때는 신기군 같은게 있었기에 혹은 튼튼한 성에서 농성했기에 가능했을지도요.
  • 제홍씨책사풍후 2016/04/12 01:38 #

    저게 가능하면 조선왕조 양반 체제 자체가 무너져내려야함.
  • 제홍씨책사풍후 2016/04/12 01:39 #

    양반,사족,토호,호족 등이 저런 성장을 다 막은건데.(신라~고려~조선)
  • 영악한 사냥꾼 2019/03/11 20:51 #

    저건 군사문제 이전에 나라의 조세체제부터 다 뜯어고쳐야 하는 문제죠. 제대로된 군대를 키울려면 돈을 주는 전문군인을 양성해야 하는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인당 쌀 10섬은 줘야했죠. 게다가 얘네를 기마병으로 키운다? 돈이 와장창 깨지는 거죠. 흑각궁 장착시킨 궁병도 마찬가지고. 간단히 해서 1만명만 해도 녹봉으로 10만석이 들어가고, 기타 비용 치면 거의 두배 가까이 될텐데, 조선의 재정상황은 관료들 녹봉도 지급못하는 지라... 이게 다 양반, 대지주 놈들이 세금 안내고 삥땅쳤기 때문인데, 걔네들에게 세금 제대로 걷고 노비 줄이고 하려면... 어우야... 나라가 완전히 뒤집혀도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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