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보가 금나라 사서에 기록되는 과정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1. 여진은 원래 문자가 없었음.

2. 여진족은 거란문자도 사용하지 않았음.

3. 시조 전승은 모두 구전으로 내려옴

4. 금 건국 초기 완안종한이 완안부 노인들에게 조종의 내려오는 일들을 캐물음

5. 1128년에 태종 오걸매의 명으로 조종의 내려오는 말들을 찾아서 국사를 편찬하라 명함

6. 1141년 완안욱이 시조 함보로부터 완안부 10대 추장 오아속 까지의 본기를 3권으로 엮어서 <조종실록> 편찬함.

7. 1148년 완안욱이 태조실록을 편찬 완성하여 희종에게 바침.


출처 : 금사 완안욱 열전 http://cafe.naver.com/booheong/135363


1. 완안부 노인들에게 시조 함보로부터 내려온 일들을 캐묻다.


女直初無文字,及破遼,獲契丹、漢人,始通契丹、漢字,於是諸子皆學之。
宗雄能以兩月盡通契丹大小字,而完顏希尹乃依仿契丹字制女直字。
女直既未有文字,亦未嘗有記錄,故祖宗事皆不載。
宗翰好訪問女直老人,多得祖宗遺事。
여직(女直/여진)이 초기(初)에 문자(文字)가 없었는데, 요(遼)를 격파(破)함에 이르러,
글단(契丹/거란)과 한인(漢人)을 획득(獲)하여, 비로소 글단(契丹/거란)과 한(漢)의 글자(字)를 통(通)하게 되었고,
이에 제자(諸子/여러 아들)가 모두 학습(學)하였다.
종웅(宗雄)이 능히(能) 두 달 만에 글단(契丹/거란)의 대소자(大小字)를 진통(盡通/모두 통함)하였고,
완안희윤(完顏希尹)이 곧 글단(契丹/거란) 문자(字)를 의방(依仿/모방)하여 여직(女直/여진)의 문자(字)를 창제(制)하였다.
여직(女直/여진)이 이전에 문자(文字)가 있은 적이 없었고, 또한 일찍이 기록(記錄)이 있지 않으니,
이런 연고(故)로 조종(祖宗)의 일이 모두 재(載/기록함, 등재함)하지 않았다.
종한(宗翰)이 자주 여직(女直/여진)의 노인(老人)을 방문(訪問)하여, 
조종(祖宗)의 유사(遺事/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를 다득(多得/많이 얻음)하였다.

여진이 초기에 문자가 없었는데 요나라를 격파함에 이르러,
거란과 한인을 사로잡아 비로소 거란 글자와 한자를 통하게 되었고,
이에 여러 종실의 자식들에게 모두 학습하게 하였다.
종웅이 능히 두 달 만에 거란대자와 거란소자를 모두 익히게 되었고
완안희윤이 곧 거란 문자)를 모방하여 여진의 문자를 창제하였다.
여진이 이전에 문자가 있은 적이 없었고 또한 일찍이 기록이 있지 않으니,
이런 연고로 조종의 일이 모두 기록되지 않았다.
종한이 자주 여진의 노인을 방문하여 조종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을 많이 얻었다.


2. 태종이 완안욱에게 국사를 편찬하라 명하다.
 
天會六年,詔書求訪祖宗遺事,以備國史,命勗與耶律迪越掌之。
勗等采摭遺言舊事,自始祖以下十帝,綜為三卷。
凡部族,既曰某部,複曰某水之某,又曰某鄉某村,以別識之。
凡與契丹往來及征伐諸部,其間詐謀詭計,一無所隱。
事有詳有略,咸得其實。
천회(天會/금 2대 황제 태종의 #1연호) 6년(1128년)에, 
조서(詔書)를 내려 조종(祖宗)의 유사(遺事/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를 구방(求訪/찾아서 구함)하여,
이로써 국사(國史)를 비(備/갖춤)하게 하였는데, 
명(命)하여 완안욱(勗)과 더불어 야율적월(耶律迪越)이 관장(掌)하게 하였다.
완안욱(勗) 등(等)이 유언(遺言/전하는 말)과 구사(舊事/오래된 일)를 채척(采摭/뽑아서 가려냄)하여,
시조(始祖/완안부 1대 추장 함보, 샨푸)로부터 이하(以下) 10 명의 황제(帝)를, 3권(卷)으로 종합(綜)하였다.
무릇 부족(部族)은, 이윽고 모(某) 부족(部)이라 말하였고, 거듭 모(某) 수(水)의 모(某)라 말하였고,
또한 모(某) 향(鄉) 모(某) 촌(村)이라 말하여, 이로써 구별(別)하여 식(識/기록함)하였다.
무릇 글단(契丹/거란)과 더불어 왕래(往來)하여 제부(諸部/여러 부족)를 정벌(征伐)함에 이르러, 
기간(其間/그 사이, 그간)의 사모(詐謀/속이기 위한 계략)와 궤계(詭計/간사한 속임수의 꾀)를,
감추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일이 유양(有詳/거짓이 있음)하고 유략(有略/생략이 있음)하면, 그 실상(實)을 함득(咸得/모두 획득함)하였다.
1128년에 태종이 조서를 내려 조종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을 찾아서 구하게 하고는
이로써 국사(國史)를 갖추게 하였는데,
명하여 완안욱과 야율적월에게 국사편찬을 관장하게 하였다.
완안욱 등이 전하는 말과 오래된 일을 뽑아서 가려내어,
시조(완안부 1대 추장 함보, 샨푸)로부터 이하 10 명의 황제를 3권으로 종합하였다.
무릇 부족은 이윽고 모 부족이라 말하였고, 거듭 모 수(水)의 모라 말하였고,
또한 모 향(鄉) 모 촌(村)이라 말하여, 이로써 구별하여 기록하였다.
무릇 완안부가 이전에 거란과 더불어 왕래하며 여러 부족를 정벌함에 이르러서,
그간의 속이기 위한 계략과 간사한 속임수를 하나도 감추지 않고 기록하였다.
일에 거짓이 있고 생략이 있으면 그 실상을 모두 획득하여 기록하였다.


3. 1141년 1대 함보~10대 오아속까지의 조종실록이 완성되다.

所撰《祖宗實錄》成,凡三卷,進入,上焚香立受之,賞賚有差。
制詔左丞勗、平章政事弈職俸外別給二品親王俸傔。
편찬(撰)한《조종실록(祖宗實錄)》이 완성(成)되었는데,
무릇 3권(卷)이었고, 진입(進入/입궐하여 올림)하니, 상(上/희종)이 분향(焚香/향불을 피움)하고 서서 받았으며,
차등(差) 있게 상뢰(賞賚/상을 내려줌)하였다.

1141년에 희종의 존호를 정하여 서적에 올리니 희종이 완안욱을 편에 불러 술자리를 가지고 옥대를 하사하였다.
<조종실록>을 편찬하여 완성하니 무릇 3권이었고, 입궐하여 올리니 희종이 분향하고 일어서서 받았으며
실록 편찬에 관여한 관리들에게 차등 있게 상을 내려줬다.


4. 1148년 태조실록이 완성되다.

八年,奏上《太祖實錄》二十卷,賜黃金八十兩,銀百兩,重彩五十端,絹百匹,通犀、玉鉤帶各一。
[황통(皇統/금 3대황제 희종의 #3연호)] 8년(1148년)에,《태조실록(太祖實錄)》20권(卷)을 주상(奏上/임금에게 바침)하니,
황금(黃金) 80량(兩)과 은(銀) 100냥(兩) 및 중채(重彩) 50단(端)과 견(絹/비단) 100필(匹) 및
통서(通犀/흰 줄이 그어진 무소뿔)와 옥구대(玉鉤帶) 각(各) 1개를 하사(賜)하였다.

1148년에 《태조실록(太祖實錄)》20권을 희종에게 바치니 
황금 80량, 은 100냥, 중채(重彩) 50단, 비단 100필과
통서(通犀/흰 줄이 그어진 무소뿔)와 옥구대 각 1개를 하사하였다.


결론 : 완안부 1대~10대 추장의 기록은 모두 구전에 의존하였다.
       함보(샨푸) → 오로(울우) → 발해(바하이) → 수가(수이코) → 석로(실우)
       → 오고내(우구나이) → 핵리발(헐이부) → 파라숙(풀아수) → 영가(잉고) → 오아속(우야수)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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