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포로 몸값을 올려버린 김류! 기타 역사 이야기

병자호란 당시 악의 축이던 김유의 또 다른 행보

조선인 포로 몸값 올려주기!!!



연려실기술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병자노란(丙子虜亂)과 정축 남한출성(南漢出城) 中


1637년 2월3일 中

○ 김류가 그 첩의 딸이 청에게 사로잡혀 있으므로 용ㆍ마 및 역관 정에게 심히 구차스럽게 청탁하여 임금한테까지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임금이 또한 용골대에게 언급하였으나 용골대가 잠자코 대답하지 않은 채 나오자, 

김류가 또 말하기를, 

“만일 속바치고 돌아오게 해주면 마땅히 천 금을 주겠소.” 

하였으니, 포로로 사로잡힌 사람의 값이 오르게 된 것은 모두 다 김류의 말 한 마디에 말미암은 것이다. 

김류는 또 명수를 껴안고서 귀에다 대고 말하기를, 

“이제 판사(判事)와는 한 집안의 일같으니, 공이 청하는 바를 내가 어찌 따르지 않으며, 

 내가 청하는 것을 공이 또한 어찌 차마 거절하겠는가. 

 내 딸이 속바치고 돌아오는 일에 모름지기 충분히 힘써주시오.”

하였다. 

명수가 아무 말 없자 김류가 한참 동안 명수를 붙들고 애원하였지만 명수는 옷을 뿌리치고 가버렸다.


1637년 2월8일 中

○ 청 나라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행군하여 큰 길에 세 줄을 지어 우리나라 사람 수백 명이 앞서 가고 한두 오랑캐가 뒤따라갔는데, 종일토록 그치지 않았다. 

뒷날 심양에서 속바치고 돌아온 사람이 60만이나 되는데 몽고 군사에게 잡힌 자는 이 숫자에 들어 있지 않는다. 

임금이 차마 보지 못하여 환궁할 때는 큰 길을 경유하지 않고 서산(西山)과 송천(松川)을 거쳐 산을 따라가 신문(新門) 필시(筆市)에 들어가니, 

길가에 어떤 노파가 손바닥을 치면서 크게 통곡하기를,

여러 해 동안 강화도를 수축하는데 검찰사(檢察使) 이하가 날마다 술마시는 것으로 일을 삼더니

마침내 백성들을 다 죽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냐. 

나의 네 아들과 남편은 모두 적의 칼날에 죽고 이 한 몸만 남았으니, 하늘이여, 하늘이여!” 

하자, 듣는 사람 중에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고것이 알고 싶다 - 탄금대의 불효자 http://cafe.naver.com/booheong/111185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음!!!

                     그건 그렇고 신하 딸 구한다고 용골대에게 부탁한 인조 임금은 어떻게 해석 해야함?


덧글

  • 남중생 2016/07/02 21:54 #

    제가 읽었던 남한산성에서는 "김류는 또 명수를 껴안고서 귀에다 대고 말하기를" 부분에, 껴안는 것이 만주식 예절이라서 명수가 꺼려하는 거라고 각주가 달려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읽으면서 약간 의구심이 들었는데 신빙성이 있나요?
  • 길공구 2016/07/03 15:33 #

    http://cafe.naver.com/booheong/135723
    간략히 찾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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