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주위 마법 족하> 누르하치<나를 어린애로 보는가?>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심하 부차 전투가 벌어지고 15일 후 3월 21일에 누르하치는 조선에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서신은 4월 2일 조선에 당도하였고, 

광해군은 약 20일의 숙고를 거쳐 명나라 모르게 평안도 관찰사 박엽의 명의로 

누르하치에게 답신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누르하치의 호칭에 대해서 4월 16일 조정에서는 이전부터 쓰던 

<건주위마법 족하(建州衛馬法足下)>라고 하자고 건의하니 광해군이 승낙하였으나

3일 뒤인 4월 19일 누르하치의 서신에 찍힌 만주문으로 쓰인 관인에

<천명후금황제>라고 통역사들이 번역하자 

광해군은 <건주위마법족하>대신 <후금황제>로 호칭을 바꿔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문의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만주어 사서인 만문원당의 기록에 의하면

누르하치에게 당도한 조선의 답서에는 분명히 <건주위 마법 족하>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법(馬法)이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 이전부터 건주위의 편비, 즉 부장(副將)/비장(裨將)을 뜻하며


족하(足下)는 고전용어사전에 의하면

 → 발밑. 아주 가까운 곳이란 뜻으로 전하여 편지글 등에서 

    가깝고 대등한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1년 1619년 4월 16일 기사 中

비변사가 서신을 피봉할 때의 양식을 왕에게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일찍이 듣건대, 북도 육진(六鎭)의 호인이 지급한 문서에 

 건주위(建州衛) 마법(馬法)이라고 칭하였다 하는데, 

 이른바 마법이란 편비(褊裨)를 가리키는 말 같습니다. 

 지금 마땅히 이 예를 모방하여 피봉의 외면 

 오른편에 ‘조선국 평안도 관찰사 서(朝鮮國平安道觀察使書)’라고 쓰고, 

 왼편에 ‘건주위부하마법개탁(建州衛部下馬法開拆)’이라고 쓰고 

 속에는 ‘조선국 관찰사 박엽은 건주위마법 족하(建州衛馬法足下)에게 서신을 올린다.’고 쓰고,

 말단의 큰 연호 및 피봉 후면의 연호에 모두 평안감사의 인신을 찍는 것이 무방할 것 같기에 

 〈 감히 아룁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만문원당 1619년 5월 28일 기사 中

solho guruni bing an doo goloi guwancase hergen i buhvwa.

솔호 구룬이 빙 안 도오 골오이 관차서 허르건 이 부화.

고려 국의 평 안 도 지방의 관찰사 관직 의 박엽.

giyanjo u mafai bethei fejile bithe aliburengge.

갼조 우 마파이 벝허이 퍼질어 빝허 알이부렁어.

건주 위 마법의 족 하 글 바친것.


누르하치, 홍 타이지대에 쓰인 원초적 만주문 사서 만문원당에서는

정확히 건주위 마법 족하<갼조 우 마파이 벝허이 퍼질어>라고 기록하였으나

후에 건륭제 당시에 만문원당/만문노당을 각색한 만주실록에서는

<만주국의 한(누르하치) 발 아래에 무릎 꿇으며 글 바친 것>이라고 내용을 고치게 됩니다.


한자 족하(足下)는 원문 그대로 <발 아래>라는 뜻이지만

고전용어처럼 대등한 상대를 친근히 높여 부르는 말이고

만주어 직역하면 <벝허이 퍼질어>, 즉 발 아래인데

만문원당에서는 <건주위 마법의 족하에게 글 바친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기록한데 반해

만주실록에서는 <만주국 한의 발아래에 무릎 꿇으며 글 바친 것>이라며

<무릎 꿇으며>를 살포시 첨가하여 마치 조선이 누르하치에게 무릎을 꿇으며 글을 바친 것이다고

은근히 조작질?을 합니다.


사실 건륭제 입장에서 보면 조선 임금인 광해군의 명의도 아니고,

일개 지방 수령인 박엽이라는 사람 명의로 누르하치에게 <족하> 운운하며 글을 쓴 것에 대해서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 법은 합니다.^^;


만주실록 1619년 5월 28일 기사 中

solho gurun i ping an doo goloi guwan ca xi hergen i piyoo hvwa.

솔호 구룬 이 핑 안 도오 골오이 관 차 시 허르건 표 화.

고려 국 의 평 안 도 지방의 관 찰 사 관직 의 박 엽.

manju gurun i han mafai bethei fejile niyakvrame bithe aliburengge.

만주 구룬 이 한 마파이 벝허이 퍼질어 냐쿼라머 빝허 알이부렁어.

만주 국 의 한 마법 발 아래 무릎꿇으며 글 바친것.


이후 누르하치는 다시 조선에 동맹의 맹세를 하자며 서신을 보내지만

이미 명나라가 조선과 만주의 서신 교환을 눈치채고 있었고,

누르하치에게 답신을 보내는 것에 대해 조선 대신들의 격렬한 반대가 일어나니

결국 몇 년 동안 서신을 보내지 않게 됩니다.

다만 사신을 파견하여 구두로 뜻을 전하게 하지요.


이에 1621년 9월 광해군은 정충신을 만주로 들여보내 후금의 상황을 정탐하게 하지요.

이때 누르하치는 정충신에게 

<조선이 답신을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힐문하고>

또한 <건주위 마법 족하>와 <후금국 한>을 언급하며

자신을 <어린애>로 보는가? 하며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지요.


조선왕조실록 1621년 9월 10일 기사 中

만포 첨사 정충신이 여진의 진영에 다녀와 보고하다

언가리ㆍ소두리ㆍ대해 등이 두 장수를 데리고 나와 만났는데, 

대해가 추장의 뜻을 전하며 말하기를 

‘귀국이 차관을 보내어 찾아주었으므로 우리도 차관을 보내어 사례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예를 잘 행하려고 하는데 왜 한결같이 차관을 거절하는가? 

 이미 서로 더불어 사귄 사이이니 차관도 왕래하고 물건도 주고 받고 하여 

 내외의 간격을 없애야 할 것인데, 지금은 마치 문을 닫고 손님을 청하는 것처럼 하니 

 서로 사귀는 의리로 볼 때, 신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여러 차례 서문(書問)을 보냈는데, 한번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이는 건주위(建州衛) 마법(馬法)이라고 쓰자니 괴이하게 여길까 두렵고, 

 후금국한(後金國汗)이라고 쓰자니 치욕스럽다고 생각해서 

 진실이 없는 말로 우리를 놀린 것에 불과하다. 

 어찌 우리를 어린애처럼 보는가. 

 우리와 사귀면 이익이 우리에게 있겠는가, 귀국에게 있겠는가?’ 


광해군 : 누르하치에게 내 이름으로 보내기엔 명나라가 걱정되고 

                                관례대로 평안도 관찰사 명의로 보내야겠다.


박엽 : ㅋㅋ 건주위 마법 족하 ㅋㅋ 안녕? 

                                  우리 명나라를 부모로 모시고 잘 지내보자 ㅋㅋㅋ

                                  (포로로 잡힌 장수들 모두 죽여도 돼 ㅋㅋ)


누르하치 : 대체 뭐라고 쓴겨? 

                                      나랑 한판 붙어보자는 거야? 친하게 지내자는 거야?

                                      어이 이민환이?? 한번 해석 좀 해봐!!!

                                      내가 건주위 마법이야?


이민환 : (-_-^) 아 그것은 매우 좋은 말입니다요. 

                                아주 훌륭하신 분을 일컫는 말입죠


박엽 : ㅋㅋ 이민환이 왔는가?

                                  니네들이 패전해놓고 내가 군량 안 줘서 졌다고 

                                  나불나불 댔다지???

                                  ㅋㅋㅋ


(몇 년 후)

누르하치 : 이것들이 나를 빙다리 핫바지로 보네??? 

                                        건주위 마법 족하??? 족하는 소리하고 있네!!!

                                        나를 감히 어린애로 보느냐???



P.S) 누르하치는 당시에 조선의 첫 번째 답신이 올때 많은 재물을 가져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든 조선군 포로를 송환하려고 한 곳에 조선군을 모아놨다가

      조선이 재물을 보내지도 않고, 조선군을 돌려달라는 내용도 없던 데다가

      서신의 내용도 좋질 않자 그때부터 조선군 포로에 대한 대우가 매우 열악해지기 시작합니다.

      당시 누르하치는 <건주위 마법 족하>라는 구절 등 한자의 몇몇 구절의 해석을

      이민환에게 해명하게 하였는데, 이민환은 모두 좋은 뜻으로 해석하여 누르하치에게 전달하였지요.


P.S) 당시 평안도 관찰사 박엽은 사르훠 전투 당시 악의축이었던 그 박엽이 맞습니다.

      희대의 탐관으로 처형당한 후 평양 백성들이 시체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지요.


1619년 허투알아 공격전 조선군의 군량 보급 현황 http://cafe.naver.com/booheong/109424

강홍립의 부대 편성 18000 명 책중일록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109446


건륭제 : 뭐야 이거? 우리 태조 할아버지한테 마법 족하?

                                  것도 조선 지방 수령놈이 감히-_-^^

                                  장난하나? 고쳐! 바꿔!

만주실록 사관 : 그러니까 <건주위 마법 족하에게 글 보냄. 박엽>를

                                                <만주국 한 발 아래에 무릎 꿇고 글 보내옵니다>로 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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