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3부 실제 건국원년은 1618년인가?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건국 1부 후금건국+칭제+건원했는가? http://cafe.naver.com/historygall/63520

건국 2부 왜 금나라인가? http://cafe.naver.com/historygall/63525


후금건국 직전 누르하치 국정&군사 주요 인적구성 현황 http://cafe.naver.com/historygall/61840

후금 건국 관련 여러 사서 번역 http://cafe.naver.com/historygall/63368

누르하치의 연호는 왜 천명인가? http://cafe.naver.com/historygall/63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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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18년 이전에는 연호 기록이 없다.

→ 최초의 만주어 사서인 만문원당에는 1620년까지 연호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만문원당 1616년~1620년 기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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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1월 1일

fulgiyan muduri aniya. sure han i susai jakvn sede. aniya biyai ice de bonio inenggi.

풀갼 무두리 아냐. 수러 한 이 수사이 자퀀 서더. 아냐 뱌이 이처 더 보뇨 이넝이.

붉은 용 해. 수러 한 의 50 8 세에. 정 월의 초 에 원숭이 날.

병진년(丙辰年/1616년). 수러 한의 58세에. 정월 초하루 원숭이날(임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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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1월 1일

fulahvn meihe aniya. genggiyen han i susai uyun se de. aniya biyade monggo gurun i korcin i minggan beile.

풀아훤 머이허 아냐. 겅옌 한 이 수사이 우윤 서 더. 아냐 뱌더 몽오 구룬 이 코르친 밍안 버이러.

담홍 뱀 해. 겅옌 한 의 50 9 세에. 정 월에 몽고 국 의 코르친 의 밍안 버이러.

정사년(丁巳年/1617년). 겅옌한의 59세에. 정월에 몽고국의 코르친의 밍안 버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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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1월 1일

suwayan morin aniya. amba genggiyen han i ninju sede. aniya biyai juwan ninggun de.

수와얀 모린 아냐. 암바 겅옌 한 이 닌주 서더. 아냐 뱌이 주완 닝운 더.

노란 말 해. 대 겅옌 한 의 60 세에. 정 월 10 6 에.

무오년(戊午年/1618년). 대 겅옌한의 60세에. 정월 16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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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1월 1일

sohon honin aniya. aniya biyai ice juwede. genggiyen han i cooha yehede geneme juraka.

소혼 호닌 아냐. 아냐 뱌이 이처 줘더. 겅옌 한 이 초오하 예허더 거너머 주라카.

연노랑 양 해. 정 월의 초 2에. 겅옌 한 의 군대 예허에 가며 출발했다.

기미년(己未年/1619년). 정월 초 2일에. 겅옌한의 군대가 예허에 출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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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1월 1일

siyanggiyan bonio aniya. aniya biyai ice ilan de.

샹갼 보뇨 아냐. 아냐 뱌이 이처 일안 더.

하얀 원숭이 해. 정 월의 초 3 에.

경신년(庚申年/1620년). 정월 초 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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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후대에 만문원당을 각색한 만주실록에는 1616년 1월 1일자로 연호 기록이 나옵니다.

만주실록 1616년 1월 1일 기사 中

aniyai gebu be abkai fulingga sehe.

아냐이 거부 버 압카이 풀잉아 서허.

해의 이름 을 하늘의 명령 하였다.

연호를 천명이라 하였다.



2. 1616년이 아닌 1618년이 건국원년?


그럼 누르하치의 연호 기록이 처음 나온 사서는 무엇일까요?

많은 한중일의 논문에서는 조선왕조실록 1619년 4월 9일자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심하 부차 전투에서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이 3월4일 대패(7천~9천 전사)하고, 포로(4천~5천)가 허투알아성에 억류된 후

3월21일 누르하치는 광해군에게 서신을 보냅니다.

이 서신은 4월2일 조선 조정에 당도하였는데, 이 서신은 한문으로 기록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에 누르하치에게 종사하던 한족인 대해와 유해가 

주로 만주어를 한문으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서신에 <천명 2년>이라는 연호가 드디어 나옵니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1년 1619년 4월 9일 기사 中

〈 이때 노추(奴酋)가 정응정 등을 보내 놓고 또 차인을 보내어 서신을 전하였는데,〉 거기에 

천명(天命) 2년에 후금국 칸(後金國汗)은 조선 국왕에게 통유한다.” 하였고, 

 칠종뇌한(七宗惱恨)을 낱낱이 세어 중국 조정을 원망하고, 

 또 자기를 도와주면 화친을 맺고 전쟁을 그치겠다고 하였다. 

 호차가 만포(滿浦)의 건너편 강변에 도착하여 초막을 치고 거처하였는데, 

 왕이 강을 건너 성으로 들어오게 하여 다정하게 접대하고 선물도 주게 하였다. 

 노사(虜使)가 우리 국경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또한 이 서신에 누르하치의 만주문 관인이 찍혔는데,

이를 조선 통역사들이 번역한 바로는 <후금천명황제(後金天命皇帝)>였습니다.

관인에도 천명이라는 연호가 찍혀 있었다는 것이지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1년 1619년 4월 19일 기사 中

“노추 서신 가운데 인보 글씨는 전자(篆字)를 아는 신여도(申汝櫂) 및 몽학 통사(蒙學通事)에게 풀어보라고 하였더니, 전자 모양의 번자(番字)는 모두가 후금천명황제(後金天命皇帝)라는 일곱 글자였다고 하므로 진주문 중에 이 뜻을 갖추어 써넣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상의 하교를 받고 다시 생각해 보니, 굳이 이처럼 번역하여 풀 것이 아니라 범연하게 알아볼 수 없다는 뜻으로 삭제하고 고치는 것이 합당할 것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속잡록의 1619년 기록에도 이 서신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예 천명 36년이라고 합니다.

주석에 만력 12년에 황제라 일컬었다고 나오지요. 

만력 12년은 1584년으로 누르하치가 조부와 부친이 살해당하고 본성인 허투알아로 와서 

원수 니칸 와이란을 토벌하기 위해 거병한 다음 해입니다.


속잡록 1619년 4월 기록 中

4일 원수(元帥)의 무종사관(武從事官) 정응정(鄭應井) 및 허의(許依)ㆍ이장배(李長培)ㆍ김경서(金景瑞)의 아들 

득진(得振)ㆍ통사 하세국(河世國) 등이 오랑캐 진중으로부터 오랑캐의 편지를 가지고 나왔는데, 

오랑캐 2명을 보내어 만포진(滿浦鎭)의 건너편에 머물게 하고 회답을 기다린다 했다. 

오랑캐의 편지에 이르기를, 

“후금국(後金國) 한(汗)은 조선국 왕께 글월 올립니다.

 한(汗)은 남조(南朝)에 대하여 대대로 깊은 원한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상심하고 애통하기를 마지 않았습니다. 

 (중략)

 하물며 남조는 그의 두 아이들을 보내어 우리 두 나라의 주인으로 삼으려 하니, 

 이는 남조가 우리 두 나라를 업신여김이 심한 것입니다. 

 이제 국왕께서 혹은 우리 두 나라가 예전부터 실끝만큼의 원한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예전의 우호를 닦아서 남조에게 원한을 같이 하실런지, 

 혹은 저를 이탈하여 남조를 도우려고 반드시 또 저버리실런지요? 

 그러므로 글월 받들어 국왕의 회음(回音)을 기다립니다. 천명(天命) 36년.”이라 하였다. 

만력(萬曆) 12년 갑신에 그 도적은 황제라 일컫고 개원(改元)하여 몰래 범상(犯上)의 뜻을 품었으나, 중원(中原)과 우리 나라에서는 모두 그것을 몰랐다. 그런데 알았다고 해도 또한 이익될 것이 없었을 것이다.



-3부 결론

→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천명원년은 1616년이 아닌 1618년이다.

→ 1636년 편찬된 무황제실록에는 1616년이 천명원년으로 기록된다.

→ 연호 사용 및 후금의 건국은 1616년 1월1일이 아닌 

   1618년 4월 이후 대명전쟁을 개시하면서부터이다.


-4부 <후금인가? 금인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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