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4부-후금인가? 금인가?(완결)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건국 1부 후금건국+칭제+건원했는가? http://cafe.naver.com/booheong/137570

건국 2부 왜 금나라인가? http://cafe.naver.com/booheong/137600

건국 3부 실제 건국원년은 1618년인가? http://cafe.naver.com/booheong/137682


후금건국 직전 누르하치 국정&군사 주요 인적구성 현황 http://cafe.naver.com/booheong/133142

후금 건국 관련 여러 사서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136998

누르하치의 연호는 왜 천명인가? http://cafe.naver.com/booheong/136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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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르하치가 보낸 서신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1년 1619년 4월 9일 기사 中

〈 이때 노추(奴酋)가 정응정 등을 보내 놓고 또 차인을 보내어 서신을 전하였는데,〉 거기에 

“천명(天命) 2년에 후금국 칸(後金國汗)은 조선 국왕에게 통유한다.” 하였고, 

 칠종뇌한(七宗惱恨)을 낱낱이 세어 중국 조정을 원망하고, 

 또 자기를 도와주면 화친을 맺고 전쟁을 그치겠다고 하였다. 

 호차가 만포(滿浦)의 건너편 강변에 도착하여 초막을 치고 거처하였는데, 

 왕이 강을 건너 성으로 들어오게 하여 다정하게 접대하고 선물도 주게 하였다. 

 노사(虜使)가 우리 국경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1년 1619년 4월 19일 기사 中

왕이 진주문에 ’후금 황제’로 명칭하는 일을 의논하게 하다

〈 전교하기를,

“진주문(陳奏文) 중에 후금 칸(後金汗)의 인보(印寶)를 후금 황제라고 진주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비변사로 하여금 전교에 따라 〈 자세히 살펴 아뢰게 하라.〉 ”

하니, 회계하기를,

“노추 서신 가운데 인보 글씨는 전자(篆字)를 아는 신여도(申汝櫂) 및 몽학 통사(蒙學通事)에게 풀어보라고 하였더니, 전자 모양의 번자(番字)는 모두가 후금천명황제(後金天命皇帝)라는 일곱 글자였다고 하므로 진주문 중에 이 뜻을 갖추어 써넣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상의 하교를 받고 다시 생각해 보니, 굳이 이처럼 번역하여 풀 것이 아니라 범연하게 알아볼 수 없다는 뜻으로 삭제하고 고치는 것이 합당할 것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주D-001]번자(番字) : 몽고 글자.



→ 심하 전투 이후 1616년 3월 21일 당시 누르하치의 서신이 조선에 전달되는 과정

   1. 누르하치가 만주어로 서신을 쓴다.

   2. 만주에 종사하던 한족 대해, 유해가 한문으로 번역하여 쓴다.

   3. 만주어로 된 인장을 찍는다.

   4. 여진인2명+조선인5명을 조선 만포로 보낸다.

   5. 4월2일 조선 조정에 당도하여 광해군에게 서신을 올린다.

→ 서신에 쓰여있는 내용

   1. 국호 : 후금(後金)

   2. 연호 : 천명(天命) 2년 

              [1619년을 천명2년으로 적고 있다. 

               이는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1616년 천명원년이 아니다.]

   3. 누르하치 호칭 : 한(汗), 황제(皇帝) [고전번역원의 칸 번역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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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신에 찍힌 만주어 인장

 누르하치의 도장(관인) : 만주문 후금천명황제(後金天命皇帝) 7글자

→ 많은 논문에서 만주문 <후금천명황제> 7글자는 다음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abkai fulingga aisin gurun han i doron>

   <압카이 풀잉아 아이신 구룬 한 이 도론>

   <하늘의 명령 금 나라 한 의 인장>

   <천명 금국 한의 인장>


→ 1618년 이후 당시 누르하치가 쓰던 7글자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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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후금인가? 금인가?

→ 우선 한문으로 쓰인 서신에는 분명히 <후금>이라고 쓰여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광해군을 비롯한 조선 조정에서는 호칭에 관련된 글귀에 매우 민감한 반응들을 보였다.

   건주로 쓸 것인지? 후금으로 쓸 것인지?

   마법으로 쓸 것인지? 황제로 쓸 것인지?

   이런 조선 조정이 누르하치가 보낸 서신에 <후금>이라고 적혀 있질 않고 <금>이라 적혀있었다면

   <후금>이라고 쓰자는 논의는 <금>으로 쓰자는 논의로 기록되어었야만 했을 것이다.

→ 따라서 누르하치의 만주문 서신을 한문으로 번역한 한족 대해, 유해가

   <후금>이라고 한문으로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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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누르하치가 쓰게 한 서신의 만주어 원본


만문원당 1619년 3월 기사 中

julge aisin han monggoi han ilan duin gurumbe gemu uhe obume dahabubi banjihabi inu.

옛날 금 한 몽고의 한 3 4 나라를 모두 한가지 만들며 따르게하고 살았음 이다.

tuttu banjibi tere inu jalan goidame aniya ambula banjihakvbi. terebe bi gemu bahanahabi.

그와같이 살고서 그 도 세대 오래되며 해 많이 살지못하였다. 그를 내 모두 안다.

ere dain be bi ulhirakv farhvn i arahangge waka.

이 전쟁 을 내 알지못하고 어두움 으로 만든것 아니다!

ere nikan mimbe umainaci hokorakv obi. ere uilebe deribuhe.

이 중국 나를 어떻게 벗어나지않게 되어서. 이 일을 시작하였다.

amba gurun i han be mini dolo daci ehe araki seme gvniha bici. abka endembio.

큰 나라 의 임금 을 나의 마음 원래부터 나쁘게 만들자! 하며 생각 하였다면. 하늘 속이겠느냐?

abka mimbe ainu urulere bihe. nikan han i dereci mini dere oncoo.

하늘 나를 어찌하여 옳다 하였겠느냐? 중국 임금 의 쪽보다 나의 쪽 너그러우냐?

abka waka be wakalame uru be uruleme tondo be beidebi tuttu dere.

하늘 잘못 을 잘못했다하며 옳음 을 옳다하며 정직 을 심문하고 그와같은 것이니라.

mimbe abka urulehe nikan be abka wakalaha.

나를 하늘 옳다하였다 중국 을 하늘 나쁘다하였다.

solho suweni coohabe nikan de dabi minde jihe manggi. 

고려 너희 군대를 중국 에 도와서 나에게 온 뒤에.

bi gvnime solho i cooha buyeme jihengge waka.

내 생각하길 고려 의 군대 좋아하며 온것 아니다.

nikan de eterakv oosei karu baili seme jihebidere.

중국 에 이기지못하고 왜의 보답 은혜 하며 온것이니라.

julge meni aisin i daiding han de solho joo uisung i gebungge amban. 

옛날 우리의 금 의 대정 한 에 고려 조 위총 의 이름난 대신.

dehi funceme hecen be gaibi ubasame jihe be.

40 남짓 성 을 가지고 반란하며 옴 을.

meni aisin daiding han hendume.

우리의 금 대정 한 말하길.

nikan i joo hoisung. joo cinsung han. meni aisin gurun i dailara fonde.

중국 의 조 휘종. 조 흠종 임금. 우리의 금 국 의 정벌할 때에.

solho han yaya de dahakv. tondo gurun seme alime gaihakv bederebuhe sere.

고려 임금 누구 에 따르지않고. 정직한 나라 하며 알리며 취하지않고 돌려보냈다 한다.

terebe gvnibi. muse juwe gurun daci ehe akv bihe. seme.

그를 생각하고. 우리 2 국 원래부터 나쁨 없음 이었다. 하며.

sini cooha gaibi jihe. amba ajige hafan juwan niyalmabe uweihun jafabi.

너의 군대 가지고 온. 크고 작은 관리 10 사람을 산채로 잡고서.

solhoi han simbe gvnime asarahabi.

고려의 임금 너를 생각하며 거두었다.

te erei dubebe solho han si sa.

지금 이의 끝을 고려 임금 너 알아라!

abka i fejile ai hacini gurun akv. amba gurun i canggi banjimbio.

하늘의 아래 어떤 종류의 나라 없겠느냐? 큰 나라 가 홀로 사느냐?

ajige gurun be gemu akv obumbio.

작은 나라 를 모두 없게 만드느냐?

ere amba gurun i nikan han be. abkai emu sajini banjimbi dere seme gvniha bihe.

이 큰 나라 의 중국 임금 을. 하늘의 1 법으로 살고있는 것이니라 하며 생각함 이었다.

ere nikan han abkai sajin be gvwaliyafi. mujakv murime fudarame gurumbe jobobumbi kai.

이 중국 임금 하늘의 법 을 어기고. 매우 비틀며 역행하며 나라를 괴롭힘 이니라.

terebe solho han sini sarkv ai bi.

그를 고려 임금 너 모르고 어찌 있느냐?

bi donjici nikan han solho gurunde meni gurunde. gemu ini jusebe unggibi ejen obuki seme hendumbi sere.

내 들으니 중국 임금 고려 국에 우리의 나라에. 모두 그 아들들을 보내서 주인 만들자 하며 말했다 한다.

ere nikan han muse juwe gurumbe gidasaha fusihvlaha ambula kai.

이 중국 임금 우리 2 나라를 모욕하고 무시함 많음 이니라.

solho han sini dolo muse juwe gurun daci umai ehe akv bihe.

고려 임금 너의 마음 우리의 2 나라 원래부터 결코 나쁨 없음 이었다.

te bicibe muse juwe gurun emu hebe obi nikan de ushaki sembio.

지금 이라도 우리 2 나라 1 논의 되고 중국 에 증오하자! 하겠느냐?

bi emgeli nikan de dame wajiha. nikan ci hokorakv sembio.

내 한번 중국 에 도우며 끝냈다. 중국 으로부터 벗어나지못한다 하겠느냐?

sini gisumbe donjiki.

너의 말을 듣겠다!

seme ere bithebe unggihe.

하며 이 글을 보낸다.

tere ere bithebe ilan biyai orin emu de. sunja solho de juwe jusen be adabubi takvraha.

그 이 글을 3 월의 20 1 에. 5 고려 에 2 여진 을 보좌하게하고 파견하였다.


옛날 금 한과 몽고 한은 3~4 나라를 모두 하나로 만들며 따르게 하고 살았다.

그와 같이 살고서 그 나라들도 오랜 시간 동안 살지는 못하였다.

그것을 내 또한 모두 안다.

이 전쟁을 내가 알지 못하고 어두워서 만든 것 아니다!

이 중국이 나를 어떻게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 이 일을 시작하였다.

큰 나라의 임금을 나의 마음이 원래부터 나쁘게 만들자! 하며 생각하였다면.

하늘이 속이겠느냐? 하늘이 나를 어찌하여 옳다 하였겠느냐?

중국 임금의 쪽보다 나의 쪽에 너그러우냐?

하늘이 <잘못을 잘못했다> 하며 <옳음을 옳다> 하며 정직을 심문하여 그와 같이 된 것이니라.

나를 하늘이 옳다 하였다. 중국을 하늘이 나쁘다 하였다.

고려 너희 군대를 중국에 도와서 나에게 온 뒤에 내 생각하길

   <고려의 군대가 좋아서 온 것 아니다.

    중국에 거역하지 못하고 왜의 보답과 은혜라고 하며 온 것이니라.

    옛날 우리의 금의 대정한(세종)에 고려 조위총 이름의 대신이 

    40 남짓의 성을 가지고 반란하며 온 것을 우리의 금 대정한(세종) 말하길.

    [중국의 조씨 휘종과 흠종 임금을 우리 금국의 정벌할 때에 

     고려 임금은 누구에도 따르지 않은 정직한 나라다]

    하며 고려에 알리고 취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한다.

    그를 생각하고 우리 양국이 원래부터 나쁘지 않았다>

하며 너의 군대를 가지고 온 크고 작은 관리 10 사람을 산 채로 잡고서 고려의 임금 너를 생각하며 거두었다.

지금 이의 끝을 고려 임금 너는 알아라!

하늘 아래에 어떤 종류의 나라 없겠느냐? 큰 나라가 홀로 사느냐?

작은 나라를 모두 없게 만드느냐?

이 큰 나라의 중국 임금을 하늘의 한가지 법으로 살고 있는 것이니라 하고 생각하였다.

이 중국 임금이 하늘의 법을 어기고 매우 비틀며 역행하며 나라를 괴롭혔느니라.

그를 고려 임금 너는 모르고 어찌 있느냐?

내 들으니 중국 임금은 고려국에 우리의 나라에 모두 그 아들들을 보내서 주인 만들자 하며 말했다 한다.

이 중국 임금이 우리 두 나라를 모욕하고 무시함이 많았느니라.

고려 임금 너의 마음이

   <우리의 두 나라는 원래부터 결코 나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우리 두 나라가 한 논의 만들어서 중국에 증오하자!> 하겠느냐?

   <내가 한번 중국에 도우며 일을 끝냈다. 중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하겠느냐?

너의 말을 듣겠다!

하며 이 글을 보냈다.

그 글을 3월의 21일에 고려인 다섯과 여진인 둘을 보좌하게 하여 고려에 파견하였다.


→ 옛날 금[julge aisin/줄거 아이신]이란 단어를 쓰고 있으나

   줄거[julge]의 상대말인 아말아[amala]는 결코 없다.

→ 누르하치의 인장에도 금국을 뜻하는 아이신 구룬[aisin gurun]이지

   후금국을 뜻하는 아말아 아이신 구룬[amala aisin gurun]은 이후의 만주어 사서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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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결론

→ 1618년 당시 누르하치 만주족의 국호는 <금국/아이신 구룬>이다.

→ 서신에 쓰인 <후금>은 누르하치에게 종사하던 한족들이 만주어를 번역하면서 사용하였다.

→ 조선은 누르하치의 한문 서신에 쓰인 <후금한>을 <후금황제>로 해석하여 이후에도 사용하였다.

→ 조선 통역사들은 누르하치의 만주문 인장을 해독하여 <후금천명황제>라고 번역하였다.

→ 조선은 만주문 인장을 해독하였음에도 공식적으로는 무슨 뜻인지 모른다며

   호칭 관련 문제를 일부러 언급하지 않고

   답신에 관례대로 <건주위 마법 족하>라고 한문으로 써서 보냈다.

→ 누르하치는 <건주위 마법 족하>라는 단어가 심히 맘에 들지 않아 했다.

→ 누르하치는 언가리와 대해를 강홍립 및 이민환에게 보내 

   답신의 한문을 제대로 해석/해명하라고 명하였다.

→ 강홍립과 이민환은 조선식 한자는 중국식과 다르다며 좋은 말로 포장하여 누르하치에게 변명하였다.

→ 대해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였다고 강홍립 등에게 사과하였다.

→ 후에 누르하치는 조선의 답서가 더 이상 오질않고, 

   기존의 <건주위 마법 족하>를 언급하며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느냐고 대노하였다.

→ 조선의 각종 문서의 청나라 연호 사용은 병자호란 직후인 1637년부터 개시되었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경우에는 1644년 순치 1년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



후금 건국 1부~4부 종합 결론

→ 1616년 1월 1일은 건국X, 연호X, 칭제X이다. 

   단지 여진 전체 한으로의 큰 이름(대명)으로 [겅옌한]이라 호칭하였다.

→ 실제 금나라를 칭한 것은 대명 전쟁을 개시한 1618년 4월 이후이다.

→ 실제 천명 원년은 1616년이 아니고 1618년이다. 후에 1616년으로 조정되었다.

→ 누르하치를 위시한 만주족의 국명은 금국(아이신 구룬)이다.

   만주족은 후금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 누르하치에게 종사하던 한족이 <금국한>을 <후금황제>로 한문번역하여 조선에 전달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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