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1593년 누르하치 포위망>의 전말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1593년 한반도에서 조선, 명, 일본 동북아 삼국이 대전쟁을 치르고 있을 무렵

북방 여진에서도 이후 여진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누르하치는 기병이 4만, 보병이 5만이라고 자칭하며

3만 강병을 조선에 파병하겠다는 뜻을 명에 전했지만

실상 당시 만주(건주)의 가용병력은 수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건주위를 통일한지 겨우 3년이 지났을 뿐이고 주변에는 건주(만주)와 필적하는

여진 세력이 4개나 존재하였습니다.

1593년 9월 예허 나림불우를 맹주로 하는 9부족 연합군 3만이 만주(건주)를 섬멸하기 위해

3면으로 쳐들어 옵니다.

이때 만주의 모든 제장들의 안색이 변했다는 기사가 후금의 사서에 2번이나 나오지요.

여하튼 이 누르하치 포위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전말이 기록되어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누르하치의 파병 제안은 허풍? http://cafe.naver.com/booheong/112831

누르하치 포위망 (9부족연합군 3만 쳐들어오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7124

선조<누르하치 네가 하는 짓을 다 알고 있다!> http://cafe.naver.com/booheong/115597


조선왕조실록 1605년 7월16일 기사中

성윤문이 3추가 모의 한 것을 치계하다

(중략)

대개 전일 들은 바로는 여허추(如許酋) 나리, 홀온추 탁고 등이 지난 계사 연간에 서로 더불어 모의하기를 

  「노가적(老可赤)은 본디 이름 없는 보통 사람으로 갑자기 일어나 추장이 되고 여러 부족을 합병하여 

    그 기세가 점점 강대해지고 있다. 우리들은 대대로 위명(威名)을 쌓았으니, 그와 동렬에 서는 것은 수치이다.」고 하여, 

불의에 병력을 합쳐 노추를 공격하여 모조리 멸망시키려고 하였는데, 

노추가 첩보를 얻고서 크게 놀라 먼저 정병(精兵)을 길가에 매복시켜 놓고 고개의 낭떠러지에 기계를 많이 설치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을 따라 난 길이 좁고 험하여 적병이 대열을 이루지 못하고 수미(首尾)가 길게 늘어진 채 이르자, 

그때 노추의 군대가 곳곳에서 돌을 굴려내리니 강에 빠져 죽은 병마(兵馬)가 부지기수였다. 

후군(後軍)이 놀라서 무너지니 선봉은 모두 노추에게 사로잡혔다. 

이때 나리(羅里)의 형 부자(夫者)가 전사하고 홀추 탁고도 사로잡혔는데 노추가 포박을 풀어 우대하고 성 안에 구류시켰다가 

소추(少酋)의 사위를 삼았다. 

노추가 원교 근공(遠交近攻)의 계략을 쓰고자 하여 비로소 탁고를 되돌려 보냈는데, 

탁고는 죽이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기는 하였으나 부끄럽고 분개하는 마음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번 통신(通信)은 실로 겉으로는 친한 체하고 속으로는 꺼린 것이니, 

나리가 그의 형 부자의 죽음을 가슴 아프게 여겨 보복하려고 단단히 마음 먹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병화(兵禍)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3추(酋)가 비록 정립(鼎立)하고 있는 형세지만 그 중에서 노추가 외롭고 위태로운 듯하다. 

이번에 탁고가 소추의 사위가 되어 서로 내통하여 체결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방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1. 전쟁 원인 → 누르하치의 신분이 미천하다!

예허 추장 나림불우와 울아 추장 만타이의 동생 부잔타이가 1593년 누르하치 토벌을 결의

<누르하치는 본래 이름 없는 소부족 추장으로 여러 부족을 합병하여 세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우리들은 대대로 한의 가문으로 누르하치와 동렬에 서는 것은 수치다!>


2. 전쟁 경과 → 누르하치의 매복에 걸려 선봉이 무너져서 대패했다!


3. 전쟁 결과

→ 서예허 나림불우의 사촌형 동예허 추장 부자이 전사

→ 울아 추장 만타이의 동생 부잔타이 건주에 생포


4. 이후

→ 나림불우 복수를 결의

→ 누르하치의 사위가 되어 울아의 추장이 된 부잔타이도 복수를 결의



-이 포위망을 격파한 누르하치의 세력은 이후 건주위를 벗어나 급격한 팽창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실상 여진 통일 전쟁의 시초가 된 전투였지요.


덧글

  • Fedaykin 2016/09/17 15:58 #

    나름 전투민족인 여진족들도 매복(기계까지 설치해놓을 정도로 준비된)에 잘 걸리는군요. 의외네요.
  • 길공구 2016/09/17 21:25 #

    만주에 포로로 잡힌 이민환의 보고서에도
    여진족의 장점 중 하나가 산에 매복하다가 갑작스레 돌격하는 것이라 하였죠.
    누르하치의 여진 통일 전쟁에서도 매복 관련 기록이 많습니다.
  • Fedaykin 2016/09/19 15:40 #

    아...하긴 지형상 산이 많으니까 매복에 훨씬 유리하겠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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