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갑판과 고려시대 돌격선 몽충 기타 역사 이야기

거북선 갑판에 관한 기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대략 갑판에는 판목을 깔아 거북이 등처럼 만들고

칼과 송곳을 꽂고 군사들 통행로인 <十> 모양의 작은 길을 냈네요.

전투시에는 거적이나 풀을 깔아 위장하였네요.

더불어 고려 시대에도 수전에서 돌격선으로 몽충을 사용한 실례가 있군요. 



충무공 이순신의 조카인 이분(李芬)의 이순신행록(李舜臣行錄) 中

위에는 판자를 덮고 판자 위에 십자 모양의 작은 길을 내어서 사람들이 위로 다닐 수 있게 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곳을 꽂아서 사방으로 발붙일 곳이 없었다.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고 입에는 총구멍을 만들고 뒤에는 거북꼬리를 만들었다. 

대개 모양이 거북 모양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거북선[龜船]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5년 1592년 5월 1일 기사中

이 전투에서 순신은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는데도 종일 전투를 독려하다가 

전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사람을 시켜 칼끝으로 탄환을 파내게 하니 

군중(軍中)에서는 그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이에 앞서 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ㆍ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하였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 전후 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횡행(橫行)하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바람에 쓸리듯 적선을 격파하였으므로 언제나 승리하였다. 

조정에서는 순신의 승보를 보고 상으로 가선 대부(嘉善大夫)를 가자(加資)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27년 1751년 2월 21일 기사中

영남 균세사 박문수(朴文秀)가 아뢰기를,

“신이 전선(戰船)과 귀선(龜船)의 제도를 상세히 보았더니, 

  전선은 매양 개조(改造)할 때마다 그 몸뚱이가 점차 길어져 결코 운용(運用)하기가 어렵고 

  귀선에 있어서는 당초 체제(體制)는 몽충(艨衝)과 같이 위에 두꺼운 판자를 덮어 시석(矢石)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신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기록한 바를 보았더니, 

  귀선의 좌우에 각각 여섯 개의 총(銃) 쏘는 구멍을 내었는데 지금은 각각 여덟 개의 구멍을 내었으니, 

  거북선이 종전에 비해 지나치게 커진 것을 또한 알 수가 있으므로 개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려사절요 1270년 12월 기사中

방경이 홀로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하자 적이 군함으로 맞아 치니, 관군이 모두 달아났다. 

방경이 말하기를, “결승이 오늘에 있다." 하고 적의 가운데로 돌입하였더니 적이 배로 포위하여 몰고 갔다. 

방경의 배에는 화살과 돌이 다하고 군사는 모두 화살에 맞아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미 진도에 가까워지니 언덕에 적의 군사가 있다가 칼을 번득이며 배 가운데로 뛰어들므로, 

김천록(金天祿)이 짧은 창으로 막아 찔렀다. 

방경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차라리 고기의 뱃속[魚腹]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적의 손에 죽으랴." 

하고 바다 가운데로 빠지려 하니, 위사(衛士) 허송연(許松延)ㆍ허만지(許萬之) 등이 붙들어 말리고 사람마다 모두 결사적으로 싸웠다. 

방경은 호상(胡床)에 걸터앉아서 군사를 지휘하였다. 

장군 양동무가 몽충(蒙衝, 전선(戰船)의 일종)으로 공격하여 구원해서 적이 흩어졌으므로 드디어 포위를 무너뜨리고 나왔다. 



한줄요약 : 다음 거북선 사극에서는 거적대기와 잡풀을 올려달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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