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고종 국역 02부-북송멸망&괴뢰국 대초&근왕병 백만명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송사 휘종, 흠종 본기를 국역하였는데요, 틈틈히 남송 1대 황제 고종의 본기도 국역코자 합니다.


송사 고종 국역 01부-천하병마 대원수부를 열고 근왕병을 이끌다! http://cafe.naver.com/historygall/64282


송사 흠종 조환 국역 1부~17부 http://cafe.naver.com/historygall/63910

송사 휘종 조길 국역 1부~27부 http://cafe.naver.com/historygall/52342
금사 시조 함보 ~ 태종 오걸매 국역 http://cafe.naver.com/historygall/40393
요사 천조황제 야율연희 1부~25부  http://cafe.naver.com/historygall/51870
거란국지 천조황제 1부~12부 http://cafe.naver.com/historygall/50880


송사 고종 원문 출처 :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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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炎元年春正月癸巳,帝至東平。
初,帝軍在相州,京城圍久,中外莫知帝處。
及是,陳請四集,取決帥府。
壬寅,高陽關路安撫使黃潛善、總管楊惟忠亦部兵數千至東平。
命潛善進屯興仁,留惟忠為元帥都統制。
金人聞帝在澶淵,遣甲士及中書舍人張澂來召。
宗澤命壯士射之,澂乃遁。
伯彥等請帝如濟州。
二月庚辰,發東平。
癸未,次濟州。
時帥府官軍及群盜來歸者號百萬人,分屯濟、濮諸州府,而諸路勤王兵不得進。
二帝已在金人軍中。
三月丁酉,金人立張邦昌為帝,稱大楚。
黃潛善以告,帝慟哭,僚屬欲奉帝駐軍宿州,謀渡江左,帝聞三軍籍籍,遂輒。
承制以宗澤為徽猷閣待制。
丁巳,斡離不退師,徽宗北遷。
戊午,承制以汪伯彥為顯謨閣待制,充元帥;
潛善為徽猷閣待制,充副元帥。
건염(建炎/남송 1대 황제 고종의 #1연호) 원년(元年/1127년) 봄 정월(正月) 계사일(癸巳)에,
제(帝)가 동평(東平)에 이르렀다.
처음에, 제(帝)의 군(軍)이 상주(相州)에 있었는데, 경성(京城/수도 개봉)이 포위(圍) 당하자,
중외(中外/안과 바깥)가 제(帝)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다.
이에 이르자, 사집(四集/사방에서 모임)으로 진청(陳請/청하여 말함)하였고,
대원수부(帥府)에서 취결(取決/여러 의견을 모아서 결정함)하였다.
임인일(壬寅)에, 고양관로(高陽關路) 안무사(安撫使) 황잠선(黃潛善)과 총관(總管) 양유충(楊惟忠) 
역시(亦) 부병(部兵/소속 부대) 수천(數千)으로 동평(東平)에 이르렀다.
명(命)하여 황잠선(潛善)은 흥신(興仁)에 진둔(進屯/진군하여 주둔함)하게 하였고,
양유충(惟忠)은 유(留/남김)하여 원수도통제(元帥都統制)로 삼았다.
금인(金人)이 제(帝)가 전연(澶淵)에 있다는 것을 듣고는, 
갑사(甲士)와 더불어 중서사인(中書舍人) 장징(張澂)을 보내와 소(召/부름)하였다.
종택(宗澤)이 장사(壯士)에게 명(命)하여 쏘게 하니, 장징(澂)이 이에 둔(遁/달아남)하였다.
왕백언(伯彥) 등(等)이 제(帝)가 제주(濟州)에 가기를 청(請)하였다.
2월 경진일(庚辰)에, 동평(東平)을 출발(發)하였다.
계미일(癸未)에, 제주(濟州)에 차(次/머묾, 주둔함)하였다.
이때 대원수부(帥府)의 관군(官軍)과 더불어 군도(群盜/떼를 이룬 도둑의 무리)로 
내귀(來歸/귀부하여 옴)한 자(者)가 백만인(百萬人)이라 호(號/부름)하였고,
제주(濟)와 복주(濮)의 여러 주부(州府)에 분둔(分屯/나누어 진을 침)하였는데,
이에 여러 지역의 근왕병(勤王兵)은 진군(進)을 득(得)하지 못하였다.
이제(二帝/휘종과 흠종)이 이미(已) 금인(金人)의 군중(軍中)에 있었다.
3월 정유일(丁酉)에, 금인(金人)이 장방창(張邦昌)을 제(帝)로 세우고는, 대초(大楚)라 칭(稱)하였다.
황잠선(黃潛善)이 이로써 고(告)하니, 제(帝)가 통곡(慟哭)하였고,
요속(僚屬/거느린 관리)은 제(帝)를 받들어 숙주(宿州)에 주군(駐軍/주둔)하고자 하였고,
강좌(江左)를 건너길 도모(謀)하였는데, 제(帝)가 삼군(三軍)이 적적(籍籍/떠들썩함)하다 듣고는,
마침내 첩(輒/움직이지 않음)하였다.
종택(宗澤)을 승제(承制/관직을 바로잡음)하여 휘유각대제(徽猷閣待制)로 삼았다.
정사일(丁巳)에, 알리부(斡離不/종망)이 퇴사(退師/회군)하였고, 휘종(徽宗)이 북쪽(北)으로 천(遷/떠나감)하였다.
무오일(戊午)에, 왕백언(汪伯彥)을 승제(承制/관직을 바로잡음)하여 현모각대제(顯謨閣待制)로 삼고, 
원수(元帥)에 충(充/담당함)하였다.
황잠선(潛善)을 휘유각대제(徽猷閣待制)로 삼고, 부원수(副元帥)에 충(充/담당함)하였다.
 

건염 원년 1127년 1월 03일에 황제(강왕 조구)가 동평에 이르렀다.
처음에 황제(강왕 조구)의 군대가 상주에 있었는데 경성(수도 개봉)이 포위 당하자
천하가 황제(강왕 조구)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다.
이에 이르자 사방에서 모여 간절히 청하였고 대원수부에서 여러 의견을 모아 결정하였다.
1월 12일에 고양관로 안무사 황잠선과 총관 양유충 또한 소속 부대 수천을 이끌고 동평에 이르렀다.
명하여 황잠선은 흥신에 주둔토록 하였고 양유충은 남겨 원수도통제로 삼았다.
금나라 사람이 황제(강왕 조구)가 전연에 있다는 것을 듣고는
갑사와 더불어 중서사인 장징을 보내와 황제(강왕 조구)를 불렀다.
(실제로는 전연에는 종택이 1만군을 이끌고 있었고 강왕이 군중에 있다고 소문냄)
종택이 장사들에게 명하여 금이 보낸 갑사와 장징을 향해 화살을 쏘게 하니 장징이 이에 달아났다.
왕백언 등 황제(강왕 조구)가 제주로 가기를 청하였다.
2월 20일에 동평을 출발하였다.
2월 23일에 제주에 머물렀다.
이때 대원수부의 관군과 더불어 도둑떼가 귀부하여 왔는데 백만 명이라 소문내고
제주와 복주의 여러 주부에 나누어 주둔하게 하니 이에 여러 지역의 근왕병은 대원수부로 오지 못하였다.
휘종과 흠종이 이미 금나라 군중에 있었다.
3월 07일에 금나라 사람이 장방창을 황제로 세우고는 대초(大楚)라 칭하였다.
황잠선이 이를 고하니 황제(강왕 조구)가 통곡하였고 거느린 관리들이 황제(강왕 조구)를 받들어 숙주에 주둔하고자 하여
강좌(江左)를 건너길 도모하였는데 황제(강왕 조구)가 3군이 이로 인해 떠들썩하다 듣고는 마침내 움직이지 않았다.
종택의 관직을 바로잡아 휘유각 대제로 삼았다.
3월 27일에 알리부(종망)가 회군하였고 휘종을 북쪽으로 끌고 갔다.
3월 28일에 왕백언의 관직을 바로잡아 현모각 대제로 삼고 원수로 삼았다.
황잠선을 휘유각 대제로 삼고 부원수로 삼았다.

요약.
1127년 1월 상주에서 천하병마 대원수부를 연 강왕 조구에게 각지의 근왕병 및 도적떼가 몰려든다.
금군은 전연에 강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파견하나 종택의 군대에 의해 쫓겨난다.
강왕은 상주→동평→제주로 이동하였고 자신의 대원수부의 병력이 1백만이라 소문내며 
왕백언을 원수, 황잠선을 부원수에 임명한다.
한편 금의 종망과 종한은 휘종과 흠종을 잡고 북쪽으로 돌아가면서 장방창을 괴뢰국 대초황제로 삼는다.
이 소식을 황잠선이 강왕에게 전하자 강왕은 통곡한다.

-0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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