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 진회<죽어도 조씨가 아니면 안 된다!>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진회 하면 충신 악비를 죽이고 남송 고종으로 하여금 금 황제에게 신하를 칭하게 하였으며

성공할 북벌을 가로막은 희대의 간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송사를 편찬한 탈탈도 주전파를 죽인 진회를 비판하며 간신 열전에 등재시켰습니다.


그러나.........

1126년 겨울 금이 두 번째 침공을 개시하여 휘종과 흠종을 사로잡아 북송을 멸하면서

북송의 신하 장방창을 괴뢰국 대초 황제에 임명합니다.

금 사령관 종망과 종한은 장방창 옹립에 백관이 서명하도록 하였는데

이때 백관 중에 감히 거부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어사중승 진회가 서슬 퍼런 자리에서 홀연히 일어나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나는 이 장부에 서명하지 않겠소!

 이것이 말이 되오?

 조씨가 아니면 아니 되오!

 장방창은 상황(휘종) 당시에 오직 놀기만 하던 작자로 권세가 있는 간신들에게 붙어

 나라의 좀이 되고 정치를 어지럽혔으니

 오늘날 사직이 위태로운 것은 실로 장방창 때문이오!>


하여 진회는 노한 금나라 군사들에게 끌려갔고 이어 머나먼 금나라까지 끌려가게 됩니다.

훗날 탈출하여 남송의 재상이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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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시 괴뢰국 대초 황제 장방창 옹립 상황을 살펴볼까요.


가. 종망, 종한 <니가 황제 해라>

→ 장방창인 이유 : 일단 사신으로 오고 가서 종한/종망이 얼굴을 암

                     겁이 많고 종한/종망을 매우 두려워함

 



나. 개봉 함락 후 역성에 관련된 당시 백관들의 행태


1. 앞장서서 금이 하라는 대로 하자!

   - 왕시옹, 범경 등

  → 하라는 대로 해야 안끌려가고 안죽는다!


2. 입막고 눈가린 꿀벙어리!

   - 대다수 백관

  → 금나라에 끌려가긴 싫고, 죽기는 더욱 싫고, 입 잘못 놀렸다가는 훗날이 두려움.


3. 에라이 죽자!

   - 당각, 손부 등

  → 나라가 망했으니 사대부가 죽는게 당연!


4. 아니 되옵니다.

   - 대다수 유생들

  → 말뿐임.


5. 간신놈들 다 죽이자!

   -오혁 등

  → 역적놈의 새퀴들 전부 다 죽이자!



3. 당시 진회의 상세 발언


어사중승 진회 할 말이 있소이다!

이 진회는 나라의 은혜를 입고 보답할 길이 없어 심히 괴로워하고 있소이다!

지금 금나라 군대가 생살여탈권을 쥐고 역성하려고 하니

이 진회는 오늘 죽어 임금에게 충성하고 장차 대송과 대금이 양립하는 바를 말하고자 하오.

우리 대송의 조씨가 태조로부터 170여 년 내려오다가

잠시 동관 같은 간신이 금과의 맹세를 깨뜨려 서로 원수가 되었고

전쟁에 패하여 황제께서 금나라 군영에 계시면서 화친을 구하고 있었소.

금의 양 원수가 화친을 허락하여 천하에 화친을 공표하고 창고의 모든 재물을 바치었으며

양하마저도 할지하여 공손히 신하국이 되었는데,

갑자기 화친 약속을 어기고 역성하려 하려는데 

그대들은 신하 된 도리로 죽음이 두려워 이런 역성 논의를 하는 것이오?

우리 대송이 중국을 통일하여 국토가 만리이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소.

나라의 흥망은 하늘이 정하는 것인데, 어찌 성 하나를 잃었다고 역성을 결정하고자 하오?

전한은 왕망에 의해 끊어졌으나 광무제가 다시 일으켰고

후한은 조비에 의해 끊어졌으나 유비가 촉에서 다시 일으켰고,

당은 주온이 찬탈하였으나 후당 태조 이극용이 이씨를 자처하며 계승하였소.

우리 대송은 기초가 탄탄하고 뿌리가 깊소!

어찌 이런 일로 쓰러지고 뽑히겠소!

장방창은 휘종조에 권신에 들러붙어 나라의 좀이 되었소.

사직이 위태롭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은 바로 장방창 같은 자 때문이오.

천하가 장방창에게 이를 갈고 있는데 그를 황제로 옹립한다면

사방이 호걸들이 들고일어나 반드시 주살할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대금도 병풍과 기둥을 잃게 되는 것이오.

지금 장방창을 세운다면 개봉의 백성들이야 복종하겠으나

천하의 백성들이 복종하겠소?

수도의 황족은 멸할 수 있으나 천하에 황족은 아직 남아있소.

이 진회는 금나라 군사의 창칼 아래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소.

양국의 양립하는 바를 말하자면 원컨대 조씨를 세워 우리 대송으로 하여금

사방을 안정시키게 되면

우리 대송의 큰 복이요, 또한 대금도 만세에 걸쳐 이로울 것이오.



겁쟁이들! 녹을 먹는다는 놈들이 죽을 각오도 없고!

현실 감각이 전혀 없군!

장방창 따위를 세워봐야 역적! 그따위 나라가 얼마나 가겠나!

입만 산 유생들이나, 무작정 죽겠다는 사대부들이나 나라에 도움 1g도 안돼!

지금은 금나라의 실력을 인정하고 땅을 갈라주고 

지방에 있는 황족 찾아서 우리 왕조를 유지시키는 게 최선.



4. 송사 원문


송사 반신(叛臣) 장방창(張邦昌) 열전 中

時雍先署狀,以率百官。

御史中丞秦檜不書,抗言請立趙氏宗室,且言邦昌當上皇時,專事宴遊,党附權奸,蠹國亂政,社稷傾危實由邦昌。

金人怒,執檜。

왕시옹(時雍)이 먼저 서장(署狀/장부에 서명함)하였고, 이로써 백관(百官)을 인솔(率)하였다.

어사중승(御史中丞) 진회(秦檜)가 부서(不書/글을 쓰지 않음)하였고,

항언(抗言/항의하여 말함)하여 조씨(趙氏)의 종실(宗室)를 세울 것을 청(請)하였고,

또 말하길 장방창(邦昌)은 상황(上皇/휘종) 당시(時)에, 오로지 연유(宴遊/잔치를 베풀어 즐겁게 놂)만 하였는데, 

권간(權奸/권세가 있는 간신)의 당(党)에 부(附/붙음)하여,

두국(蠹國/나라에 좀이 됨)하고 난정(亂政/정치를 어지럽힘)하였고,

사직(社稷)이 경위(傾危/형세가 위태로움)함은 실(實)로 장방창(邦昌) 때문이다.

금인(金人)이 노(怒)하여, 진회(檜)를 집(執/사로잡음)하였다.


송사 간신(姦臣) 진회(秦檜) 열전 中

閏十一月,汴京失守,二帝幸金營。

二年二月,莫儔、吳幵自金營來,傳金帥命推立異姓。

留守王時雍等召百官軍民共議立張邦昌,皆失色不敢答,監察御史馬伸言於眾曰:

「吾曹職為爭臣,豈容坐視不吐一辭?當共入議狀,乞存趙氏。」

時檜為台長,聞伸言以為然,即進狀曰:

檜荷國厚恩,甚愧無報。

今金人擁重兵,臨已拔之城,操生殺之柄,必欲易姓,檜盡死以辨,非特忠於主也,且明兩國之利害爾。

趙氏自祖宗以至嗣君,百七十餘載。

頃緣奸臣敗盟,結怨鄰國,謀臣失計,誤主喪師,遂致生靈被禍,京都失守,主上出郊,求和軍前。

兩元帥既允其議,布聞中外矣,且空竭帑藏,追取服禦所用,割兩河地,恭為臣子,今乃變易前議,人臣安忍畏死不論哉?

宋於中國,號令一統,綿地萬里,德澤加于百姓,前古未有。

雖興亡之命在天有數,焉可以一城決廢立哉?

昔西漢絕於新室,光武以興;

東漢絕于曹氏,劉備帝蜀;

唐為朱溫篡奪,李克用猶推其世序而繼之。

蓋基廣則難傾,根深則難拔。

張邦昌在上皇時,附會權幸,共為蠹國之政。

社稷傾危,生民塗炭,固非一人所致,亦邦昌為之也。

天下方疾之如仇讎,若付以土地,使主人民,四方豪傑必共起而誅之,終不足為大金屏翰。

必立邦昌,則京師之民可服,天下之民不可服;

京師之宗子可滅,天下之宗子不可滅。

檜不顧斧鉞之誅,言兩朝之利害,願復嗣君位以安四方,非特大宋蒙福,亦大金萬世利也。

金人尋取檜詣軍前。

[1126년] 윤(閏) 11월, 변경(汴京)이 실수(失守/수비에 실패함)하였고, 

이제(二帝/휘종과 흠종)가 금영(金營)에 행차(幸)하였다.

[정강] 2년(1127년) 2월에, 막주(莫儔)와 오견(吳幵)이 금영(金營)으로부터 왔는데,

이성(異姓/다른 성씨)를 추립(推立/제위에 추천함)하라는 금수(金帥/금의 장수 종한과 종망)의 명(命)을 전(傳)하였다.

유수(留守) 왕시옹(王時雍) 등(等)이 백관(百官)과 군민(軍民)을 소집(召)하여 

공의(共議/함께 의논함)하여 장방창(張邦昌)을 세웠는데,

모두 실색(失色/안색이 변함)하여 감(敢)히 답(答)하지 못하였는데,

감찰어사(監察御史) 마신(馬伸)이 무리에게 고하여 말하길

「아조(吾曹/우리들)는 쟁신(爭臣/간관)의 관직(職)에 있으면서, 

  어찌 좌시(坐視/앉아서 바라보기만 함)하고는 한 마디로 토(吐/말함)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의장(議狀/논의 장소)에 공입(共入/함께 들어감)하여, 

  애걸(乞)하여 조씨(趙氏)를 보존(存)해야 한다.」

이때 진회(檜)는 어사대(台)의 장(長)이었는데, 마신(伸)의 말을 듣고는 옳다 여겨,

곧 논의장(狀)에 진입하여 말하길


진회(檜)는 나라의 후은(厚恩/후한 은혜)을 하(荷/은혜를 입음)하여,

보답(報)함이 없음을 심괴(甚愧/심히 괴로워함)하였소.

지금(今) 금인(金人)이 중병(重兵)을 끼고, 이미 성(城)을 발(拔/뿌리 뽑음)함에 임(臨)하였고,

생살(生殺)의 병(柄/손잡이)를 조(操/손에 쥠)하고는, 필히(必) 역성(易姓/성씨를 바꿈)하고자 하니,

진회(檜)는 모두 죽어 이로써 변(辨/바로잡음)하여, 주(主/임금)에 충성(忠)할 뿐만 아니라,

장차 양국(兩國)의 이해(利害/이로움과 해로움)를 분명(明)하게 할 뿐이오!.

조씨(趙氏)가 조종(祖宗/태조)으로부터 이로써 사군(嗣君/임금 자리를 이어받음)에 이르기까지,

170여 년이오.

잠시 간신(奸臣)이 패맹(敗盟//맹세를 깨트림)한 연(緣/이유, 연유)으로,

인국(鄰國/인근 국가)과 결원(結怨/서로 원수가 되거나 원한을 품음)하였고,

모신(謀臣/모략을 꾸미는 신하)이 실계(失計/실책)하여, 오주(誤主/임금을 그르침)하고 상사(喪師/군사를 잃음)하였고,

마침내 생령(生靈/살아 있는 백성)이 피화(被禍/화를 입음)에 이르렀으며,

경도(京都/수도 개봉)를 실수(失守/지키지 못 함)하였고, 주상(主上/임금)이 출교(出郊/성밖으로 나감)하였고,

군전(軍前/금나라 군영)에서 구화(求和/화친을 구함)하였소.

양(兩) 원수(元帥/종망과 종한)가 이윽고 그 논의(議)를 윤(允/허락함)하여,

중외(中外)에 포문(布聞/널리 전함)하였으며, 또한 탕장(帑藏/황실 창고의 재물)을 공갈(空竭/다해서 없어짐)하였고,

사용할 복어(服禦/어복)마저 추취(追取/구하여 취함)하였고, 

양하(兩河)를 할지(地)하였고, 공손(恭)히 신자(臣子)가 되었는데, 

지금(今) 곧 전의(前議/전의 의논)을 변역(變易/고쳐서 바꿈)하니,

인신(人臣/신하 된 사람)으로 차마 죽음이 두려워 논(論)하지 못하는 것이오?

중국(中國)에서는 송(宋)이, 참령(號令/지휘하여 명령함)하여 일통(一統/하나로 합침)하며,

면지(綿地/길게 잇닿은 땅)가 만리(萬里)이고, 덕택(德澤/덕과 은혜)를 백성(百姓)에게 가(加)함이,

전고(前古/지나간 옛날)에 있지 않았소.

비록 흥망(興亡/흥하고 망함)의 명(命)은 하늘의 유수(有數/정하여진 운수나 순서가 있음)에 있으나,

어찌 일성(一城)을 잃었다고 폐립(廢立/임금을 폐하고 다른 임금을 세움)을 결정(決)하시오?

옛 서한(西漢/전한)은 신실(新室/왕망의 신나라)을 절(絕/끊음)하고, 광무제(光武)가 이로써 일으켰소.

동한(東漢)은 조씨(曹氏)에 절(絕/끊음)하고, 유비(劉備)가 제촉(帝蜀/촉 황제)하였소.

당(唐)은 주온(朱溫/후량 태조)이 찬탈(篡奪)하였으나, 

오히려 이극용(李克用/후당 태조)이 그 세서(世序)를 추(推/받듦)하고 계승(繼)하였소.

대개(蓋) 기광(基廣/넓은 기초)은 곧 난경(難傾/쓰러뜨리기 어려움)하고,

근심(根深/뿌리가 깊음)하면 곧 난발(難拔/뽑기가 어려움)한 것이오.

장방창(張邦昌)은 상황(上皇/휘종) 당시(時)에 있으면서, 권행(權幸/권신)에 부회(附會/비위를 맞춤)하였고,

모두 나라의 정치(政)에 두(蠹/좀)가 되었소.

사직(社稷)이 경위(傾危/형세가 위태로움)하고, 생민(生民)이 도탄(塗炭/몹시 고통스러운 지경)함은,

진실로 일인(一人)의 소치(所致/어떤 까닭으로 생긴 바)가 아니오?

역시 장방창(邦昌) 때문이오.

천하(天下)가 바야흐로 고통받고 구수(仇讎/원수)와 같이 여기는데,

만약(若) 토지(土地)로써 부(付/줌)하고, 인민(人民/신하나 백성)을 주인(主)으로 한다면,

사방(四方) 호걸(豪傑)이 필히(必) 공기(共起/함께 일어남)하여 주살(誅)할 것이고,

마침내 대금(大金)의 병한(屏翰/병풍과 기둥)함이 부족(不足)할 것이오.

필(必)히 장방창(邦昌)을 세우면, 곧 공사(京師/수도 개봉)의 백성은 복종(服)할 것이나,

천하(天下)의 백성은 복종(服)하지 않을 것이오.

경사(京師/수도 개봉)의 종자(宗子/황족)는 멸(滅)할 수 있으나, 

천하(天下)의 종자(宗子/황족)은 멸(滅)할 수가 없소.

종회(檜)는 부월(斧鉞)의 주살(誅)을 불고(不顧/돌아보지 아니 함)하니,

양조(兩朝/송과 금)의 이해(利害/이로움과 해로움)를 말하자면,

원(願)컨대 사군(嗣君/임금 자리를 이어받음)의 위(位)를 회복(復)하여 사방(四方)을 이로써 안정(安)시키고,

대송(大宋)의 몽복(蒙福/복을 꿈꿈)할 뿐만 아니라, 또한 대금(大金)의 만세(萬世)에도 이(利)로운 것이오.


금인(金人)이 진회(檜)를 심취(尋取/찾아 잡아감)하여 군전(軍前)에 예(詣/다다름)하였다.



당시 진회 발언의 특징

1. 진회는 금을 대금이라고 칭함.

2. 진회는 금의 두 사령관 종망과 종한을 양 원수라 칭함.

3. 할지 하고 송나라를 유지시키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은 이미 이 당시에도 분명하였음.

4. <대금(大金)의 병한(屏翰/병풍과 기둥)> 이 단어는 후에 남송 고종이 금에 칭신하는 표문에도 실린 대목임

5. 진회는 나라의 현실을 직시하나 그렇다고 개인의 목숨을 아까워하진 않았음.


주전파들을 죽이고 화친을 애걸하는 남송 고종의 맹세표문 번역 : http://cafe.naver.com/booheong/96428

남송 고종의 맹세표문에 답하는 금 희종의 책봉문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96434

-끝-


덧글

  • 흑범 2016/10/03 10:04 #

    결국 회피가 답인 듯... 어설프게 나서다가는 오히려 당하지요.

    웬지 이씨조선 말의 이모씨가 오버랩이 되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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