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을 농단하고 찢겨 죽은 북송말남송초 내시들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1. 북송말 흠종조 유생들에게 찢겨 죽은 내시 주공


송사 1126년 2월 기사 中
辛丑,又命資政殿大學士宇文虛中、知東上閣門事王球使之,許割三鎮地。
太學諸生陳東等及都民數萬人伏闕上書,請複用李綱及种師道,且言李邦彥等疾綱,恐其成功,罷綱正墮金人之計。
會邦彥入朝,眾數其罪而罵。
吳敏傳宣,眾不退,遂撾登聞鼓,山呼動地。
殿帥王宗濋恐生變,奏上勉從之。
遣耿南仲號於眾曰:
「已得旨宣綱矣。」
內侍朱拱之宣綱後期,眾臠而磔之,並殺內侍數十人。
乃複綱右丞,充京城防禦使。
신축일(辛丑)에, 또 명(命)하여 자정전(資政殿) 대학사(大學士) 우문허중(宇文虛中)과 
지동상각문사(知東上閣門事) 왕구(王球)를 사신(使)으로 보내, 삼진(三鎮)의 땅의 할양(割)을 허락(許)하였다.
태학(太學)의 제생(諸生/여러 학생) 진동(陳東) 등과 더불어 도민(都民) 수만인(數萬人)이 
복궐(伏闕/대궐 앞에 엎드림)하여 상서(上書/상소를 올림)하였는데,
거듭 이강(李綱)과 더불어 충사도(种師道)의 등용(用)을 청(請)하였고,
또한 이방언(李邦彥) 등이 이강(綱)을 질(疾/원망함)하고, 그 성공(成功)을 공(恐/두려워함)하여,
금인(金人)의 계략(計)대로 이강(綱)을 파직(罷)하여 정타(正墮/올바른 것을 무너뜨림)하였다 말하였다.
때마침 이방언(邦彥)이 입조(入朝/조정에 들어감)하였는데, 무리 여러 명이 그 죄를 매도(罵)하였다.
오민(吳敏)이 전선(傳宣/임금의 명령을 알림)하였는데, 무리가 물러나지 않았고,
마침내 등문고(登聞鼓/신문고)를 과(撾/침, 두드림)하고, 산호(山呼/소리 높여 외침)하니 동지(動地/땅이 흔들림)하였다.
전수(殿帥/궁궐 호위 친위군 수장) 왕종초(王宗濋)가 생변(生變/변고가 생김)을 공(恐/두려워함)하여,
면종(勉從/마지못해 따름)하여 주상(奏上/임금께 아룀)하였다.
경남중(耿南仲)을 보내 무리에게 호(號/부르짖음)하여 말하길
「이미 이강(綱)은 성지(旨)로 선(宣/은혜를 베풂)을 득(得)하였도다!
내시(內侍) 주공(朱拱)이 이강(綱)의 선(宣/은혜를 베풂)을 후기(後期/뒷날로 기약함)하였는데,
무리가 연(臠/저민 고기)으로 만들어 책(磔/찢어 죽임)하였고, 아울러 내시(內侍) 수십인(數十人)을 살해(殺)하였다.
이에 이강(綱)을 우승(右丞)으로 복직(複)시키고, 경성(京城/개봉)의 방어사(防禦使)로 충원(充)하였다.

1126년 2월 5일에 또 명하여 자정전 대학사 우문허중과 지동상 각문사 왕구를 금나라 군에 사신으로 보내
삼진의 땅 할양을 허락하였다.
태학의 진동이 여러 유생과 백성 수만 명을 이끌고 대궐 앞에 엎드려 상소를 올려 거듭 이강과 충사도의 등용을 청하였고
또한 이방언 등이 이강을 원망하고 그 성공을 두려워하여 금나라의 계략대로 이강을 파직하여
올바른 것을 무너뜨렸다 말하였다.
때마침 이방언이 조정에 들어갔는데 무리 여러 명이 그 죄를 매도하였다.
오민이 임금의 명령을 알렸는데 무리가 물러나지 않았고
마침내 신문고를 두드리며 소리 높여 외치니 땅이 진동하였다.
호위 친위군 수장 전수 왕종초가 변고가 생길까 두려워하여 마지못해 황제에게 아뢰었다.
곧 경남중을 보내 무리에게 부르짖어 말하길
   <이미 이강은 성지로 은혜를 얻었도다!>
내시 주공이 이강의 복직을 뒷날로 기약하였는데 무리가 저민 고기로 만들어 찢어 죽였고
아울러 내시 수십 명을 살해하였다.
이에 이강을 우승으로 복직시키고 개봉 방어사로 충원하였다.

→ 유생들은 내시 수십 명을 죽이고 주전파 이강을 복직시켰다!


2. 남송초 군부 쿠데타 묘부에 의해 난도질 당한 강리

송사전문(宋史全文) 송 고종(宋高宗) 中
이때에 내시(内侍) 강리(康履)와 남규(藍珪)는 황은을 믿고서 권력을 부리고 있었는데, 
강리가 더욱 망녕되게 권력을 농단하며 제장(諸將)들을 업신여기니, 제장들이 그를 미워하였다. 
마침 내시들이 절강(浙江)에 임하여 조수(潮水)를 보고 있다가, 연회를 위해 장막을 설치하고 길을 막고 있었다. 
묘부 등이 분노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천자를 다급하게 만들어 이곳에 이르게 해 놓고 오히려 감히 이러한 짓을 하는가?”
라고 하였다.
(중략)
왕세수에게 성 북쪽 다리 밑에 병사를 매복시켜 놓게 하고, 왕연이 조정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곧장 머리채를 잡아 말에서 끌어내리고서 환관과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무고하였다. 
유정언이 직접 왕연을 죽이고, 즉시 묘부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행궁(行宮)의 문밖에 이르러서 
왕연의 머리를 궐문에 효수하고, 군사를 나누어 내시를 사로잡아서, 수염이 없는 자들을 모두 죽였다. 
강이가 말을 달려 입궁(入宮)하여 고종에게 아뢰자, 고종은 크게 놀랐다.
(중략)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묘부의 군대는 퇴각하지 않았다. 
절서기의문자(浙西機宜文字) 시희맹(時希孟)이 말하기를,
 “환관이 화근을 만든 것이 지금에 이르러 극에 달했으니, 그들을 전부 제거하지 않으면 천하의 근심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고종이 말하기를, “짐의 좌우에 급사(給使)가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군기감(軍器監) 섭종악(葉宗諤)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강이 한 사람을 아껴서 삼군을 위무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고종은 부득이 오담에게 명하여 강이를 잡아다 그에게 넘기도록 하였다. 
묘부는 즉시 누각 아래에서 강이의 허리를 베어 그 신체를 난도질하고, 
머리를 매달아서 왕연의 머리와 서로 바라보게 하였다. 
아울러 증택을 사로잡아 죽이고, 남규를 먼 고을에 편관(編管)시켰다.

→ 쿠데타를 일으킨 묘부는 국정 농단의 원흉을 내시로 규정하고 이들을 죽이고 고종을 폐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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