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고 누르하치 부친의 주군이었던 왕고(王杲) 열전 번역 누르하치 관련 기타 번역

안녕하세요. 틈틈이 명말 청초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누르하치 조부와 부친의 상관이었던 건주도지휘사 왕고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명사 이성량(李成梁) 열전 6부-건주도지휘사 왕고와 누르하치의 부친을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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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이성량 1부~6부 http://cafe.naver.com/historygall/6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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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건주대추장 왕올당 열전 번역 http://cafe.naver.com/historygall/6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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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후금 5대 개국공신(3) 어이두[액역도額亦都] http://cafe.naver.com/historygall/62226

청사고 후금 5대 개국공신(4) 안퍙워[안비양고安費揚古http://cafe.naver.com/historygall/63814

청사고 후금 5대 개국공신(5) 훠르한/호이한(扈爾漢) http://cafe.naver.com/historygall/63908


송사 진만인적 한세충 http://cafe.naver.com/historygall/61300

송사 문인 만인적 이치 http://cafe.naver.com/historygall/50623
송사 동관 [방랍 포함] http://cafe.naver.com/historygall/41513
정사에서의 (수호지) 기녀 이사사 http://cafe.naver.com/historygall/46848
정사에서의 (수호지) 고구 http://cafe.naver.com/historygall/46869
정사에서의 (수호지) 송강 http://cafe.naver.com/historygall/42371

 
요사 소항덕/소손녕 http://cafe.naver.com/historygall/46948
요사 소태후/예지황후 연연 http://cafe.naver.com/historygall/47285
요사 한쪽 팔을 자른 순흠황후 술율평 http://cafe.naver.com/historygall/53658


원문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22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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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杲,不知其種族。

生而黠慧,通番、漢語言文字,尤精日者術。

嘉靖間,為建州右都指揮使,屢盜邊。

三十六年十月,窺撫順,殺守備彭文洙,遂益恣掠東州、惠安、堵牆諸堡無虛歲。

四十一年五月,副總兵黑春帥師深入,王杲誘致春,設伏媳婦山,生得春,磔之,

遂犯遼陽,劫孤山,略撫順、湯站,前後殺指揮王國柱、陳其孚、戴冕、王重爵、楊五美,

把總溫欒、於欒、王守廉、田耕、劉一鳴等,凡數十輩。

當事議絕貢市,發兵剿,尋又請貸,杲不為悛。

隆慶末,建州哈哈納等三十人款塞請降,邊吏納焉。

王杲走開原索之,勿予,乃勒千馀騎犯清河。

游擊將軍曹簠伏道左,突起,斬五級,王杲遁走。

故事,當開市,守備坐聽事,諸部酋長以次序立堂上,奉土產,乃驗馬;

馬即羸且跛,並予善值,饜其欲乃已。

王杲尤桀驁,攫酒飲,至醉,使酒箕踞罵坐。

六年,守備賈汝翼初上,為亢厲,抑諸酋長立階下,諸酋長爭非故事,盡階進一等。

汝翼怒,抵幾叱之,視戲下箠不下者十馀人,驗馬必肥壯。

王杲鞅鞅引去,椎牛約諸部,殺掠塞上。

是時,哈達王台方強,諸部奉約束,邊將檄使諭王杲。

王杲訟言汝翼摧抑狀,巡撫遼東都御史張學顏以聞,下兵部議,令遼東鎮撫宣諭,示以恩威。

於是王台以千騎入建州寨,令王杲歸所掠人馬,盟於撫順關下而罷。

學顏復以聞,賚王台銀幣。

萬曆二年七月,建州奈兒禿等四人款寨請降,來力紅追亡至塞上,守備裴承祖勿予,追者縱騎掠行夜者五人以去。

承祖檄召來力紅令還所掠,亦勿予。

是時王杲方入貢,馬二百匹、方物三十馱,休傳舍。

承祖度王杲必不能棄輜重而修怨於我,乃率三百騎走來力紅寨圍之,未敢動。

王杲聞耗驚,馳歸,與來力紅入謁承祖,而諸部圍益衆。

王杲曰:

『將軍幸毋畏,倉卒聞將軍至,皆匍匐原望見。』

承祖知其詐,呼左右急兵之,擊殺數十人,諸部皆前,殺傷相當。

來力紅執承祖及把總劉承奕、百戶劉仲文,殺之,於是學顏奏絕王杲貢市。

邊將復檄王台使,捕王杲及來力紅。

王台送王杲所掠塞上士卒,及其種人殺漢官者。

王杲以貢市絕,部衆坐困,遂糾土默特、泰宁諸部,圖大舉犯遼、瀋。

總兵李成梁屯瀋陽分部諸將:

楊騰駐鄧良屯,王維屏駐馬根單,曹簠馳大衝挑戰。

王杲以諸部三千騎入五味子衝,明軍四面起,諸部兵悉走保王杲寨。

王杲寨阻險,城堅塹深,謂明軍不能攻。

成梁計諸部方聚處,可坐縛。

十月,勒諸軍具礮石、火器疾走圍王杲寨,斧其柵數重。

王杲拒守,成梁益揮諸將冒矢石陷堅先登。

王杲以三百人登台射明軍,明軍縱火,屋廬、芻茭悉焚,烟蔽天,諸部大潰。

明軍縱擊,得一千一百四級。

往時剖承祖腹及殺承奕者皆就馘,王杲遁走。

明軍車騎六萬,殺掠人畜殆盡。

三年二月,王杲復出,謀集馀衆犯邊,復爲明軍所圍。

王杲以蟒褂紅甲授所親阿哈納陽爲王杲突圍走,明軍追之。

王杲以故得脫,走重古路,將往依泰甯衛速把亥。

明軍購王杲,王杲急,王杲不敢北走,假道於王台。

邊吏檄捕送。

七月,王台率子虎兒罕赤縛王杲以獻,檻車致闕下,磔於市。

王杲嘗以日者術自推出亡不即死,竟不驗。

妻孥二十七人為王台所得,其子阿台脫去。

阿台妻,清景祖女孫也。

王台卒,阿台思報怨,因誘葉赫楊吉砮等侵虎兒罕赤。

總督吳兌遣守備霍九皋諭阿台,不聽。

李成梁率師禦之曹子谷、大梨樹佃,大破之,斬一千五百六十三級。

四年春正月,阿台復盜邊,自靜遠堡九臺入,既又自榆林堡入至渾河,既又自長勇堡入薄渾河東岸,

又糾土蠻謀分掠廣寧、開原、遼河。

阿台居古勒寨,其黨毛憐衛頭人阿海居莽子寨,相爲犄角。

成梁使裨將胡鸞備河東,孫守廉備河西,親帥師自撫順王剛台出寨,攻古勒寨,寨陡峻,三面壁立,壕塹甚設。

成梁麾諸軍火攻兩晝夜,射阿台,殪。

別將秦得倚已先破莽子寨,殺阿海,斬二千二百二十二級。

景祖、顯祖皆及於難。

語詳太祖紀。

왕고(王杲)는, 그 종족(種族)을 부지(不知/알지 못 함)한다.

태어나면서 힐혜(黠慧/기민하고 지혜로움)하였고, 

번어(番/오랑캐의 언어)와 한어(漢語/중국어)의 언어(言)와 문자(文字)를 통(通)하였고,

일자(日者/날의 길흉을 점침)의 술(術/재주)이 우정(尤精/더욱 뛰어남)하였다.

가정(嘉靖/명 11대 황제 세종의 #1연호, 1521년~1567년) 간(間)에,

건주우(建州右) 도지휘사(都指揮使)로 삼았는데, 누차(屢) 도변(盜邊/변경을 노략질함)하였다.

[가정(嘉靖/명 11대 황제 세종의 #1연호)] 36년(1557년) 10월에,

무순(撫順)을 규(窺/엿봄)하였고, 수비(守備) 팽문수(彭文洙)를 살해(殺)하였고,

마침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주(東州), 혜안(惠安), 도장(堵牆)의 제보(諸堡/여러 보)를 더욱 제멋대로 약탈(掠)하였다.

[가정(嘉靖/명 11대 황제 세종의 #1연호)] 41년(1562년) 5월에,

부총병(副總兵) 흑춘(黑春)이 솔사(帥師/군사를 통솔함)하여 심입(深入/깊게 들어옴)하였는데,

왕고(王杲)가 흑춘(春)을 유치(誘致/유인하여 이르게 함)하였고,

식부산(媳婦山)에 설복(設伏/복병을 둠)하였고, 흑춘(春)을 생득(生得/생포)하여, 책(磔/찢어 죽임)하였고, 

마침내 요양(遼陽)을 범(犯)하였고, 고산(孤山)을 겁(劫/위협함)하였으며,

무순(撫順)과 탕참(湯站)을 약(略/약탈함)하였고,

전후(前後)로 지휘(指揮) 왕국주(王國柱), 진기부(陳其孚), 대면(戴冕), 왕중작(王重爵), 양오미(楊五美),

파총(把總) 온란(溫欒), 어란(於欒), 왕수렴(王守廉), 전경(田耕), 유일명(劉一鳴) 등(等)을 살해(殺)하였는데,

무릇 수십(數十) 배(輩/무리)였다.

당사(當事/해당 관청)가 의논(議)하여 공시(貢市/공적으로 시장을 개설하여 물품을 교역함)를 절(絕/끊음)하였고,

초(剿/죽임)하고자 발병(發兵/군사를 일으킴)하였고, 잇달아 또 청대(請貸/관대하게 다스리겠다 청함)하였는데,

왕고(杲)가 순(悛/잘못을 깨닫고 뉘우침)하지 않았다.

융경(隆慶/명 12대 황제 목종의 #1연호, 1567년~1572년) 말(末)에,

건주(建州) 합합납(哈哈納) 등(等) 30인(人)이 관새(款塞/관문을 두드려 귀순함)하고 청항(請降/항복을 청함)하니,

변리(邊吏/변경 관리)가 납(納/받아들임)하였다.

왕고(王杲)가 주(走/달림)하여 개원(開原)을 수색(索)하였으나, 물여(勿予/주지 않음)하였고,

이에 쳔여기(千馀騎)를 늑(勒/정돈함)하여 청하(清河)를 범(犯)하였다.

유격장군(游擊將軍) 조보(曹簠)가 도좌(道左/길 옆)에 매복(伏)하였고,

돌기(突起/갑자기 일어남)하였고, 5급(級)을 참(斬)하니, 왕고(王杲)는 둔주(遁走/도망쳐 달아남)하였다.

고사(故事/예로부터 전해 오는 규칙과 정례)에, 개시(開市/시장을 엶)를 당(當)하면,

수비(守備)가 청사(聽事/관공서의 대청)에 좌(坐/앉음)하였고,

제부(諸部/여러 부족)의 추장(酋長)이 차서(次序/순서)로써 당상(堂上/대청 위)에 섰고,

토산물(土產)을 봉(奉/받듦)하였고, 곧 말을 험(驗/조사함)하였다.

말이 곧 파리(羸)하거나 또한 파(跛/절룩거림)하여도, 모두 선치(善值/좋은 값)를 여(予/줌)하였는데,

염(饜/싫증을 느낌)하면 그것을 곧 그만두고자 하였다.

왕고(王杲)가 더욱 걸오(桀驁/성질과 심성이 거칠고 사나움)하였는데,

확주(攫酒/술을 가로 챔)하여 음(飲/마심)하였고, 취(醉)함에 이르면,

사주(使酒/술을 마신 기운으로 기세를 부림)로 기거(箕踞/두 다리를 뻗고 앉음)하고 매좌(罵坐/앉아서 욕설함)하였다.

융경(隆慶/명 12대 황제 목종의 #1연호) 6년(1572년)에,

수비(守備) 가여익(賈汝翼)이 초상(初上/처음 오름)하였는데, 항려(亢厲/지나치게 괴롭힘)하였고,

여러 추장(酋長)을 억압(抑)하여 계하(階下/섬돌의 아래)에 입(立/섬)하게 하였는데,

여러 추장(酋長)이 고사(故事/예로부터 전해 오는 규칙과 정례)가 아니다 쟁(爭/다툼)하였고,

모두 한 계단 계진(階進/섬돌에 오름)하였다.

가여익(汝翼)이 노(怒)하였고, 저기(抵幾/낌새를 막음)하고 질책(叱)하였고,

보고서 휘하(戲下/대장기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자 10여인(人)을 추(箠/채찍질함)하였고,

험마(驗馬/말을 시험함)가 필히(必) 비장(肥壯/몸집이 크고 힘이 셈)하게 하였다.

왕고(王杲)가 앙앙(鞅鞅/매우 원망함)하여 인거(引去/이끌고 가버림)하였고,

제부(諸部/여러 부족)와 추우(椎牛/소를 도축하여 제사함)하여 약조(約)하였고,

새상(塞上/변경 지역)을 살략(殺掠/죽이고 약탈함)하였다.

이때에, 합달(哈達/하다) 왕태(王台)가 바야흐로 강(強)하였는데,

제부(諸部/여러 부족)가 봉(奉/받듦)하기로 약속(約束)하였고,

변장(邊將/변경 장수)이 격사(檄使/사신을 보내 선동함)하여 왕고(王杲)를 회유(諭)하였다.

왕고(王杲)가 송언(訟言/공언함)하길 너의 날개를 최억(摧抑/상대의 기운을 꺾어 누름)하겠다 상(狀/나타냄)하니,

순무(巡撫) 요동(遼東) 도어사(都御史) 장학안(張學顏)이 이문(以聞/임금께 아룀)하였고,

병부(兵部)에 의논(議)을 내게 하였고, 요동(遼東) 진무(鎮撫)로 하여금 선유(宣諭/베풀고 타이름)하게 하였고,

은위(恩威/은혜와 위엄)로써 보이게 하였다.

이에 왕태(王台)가 천기(千騎)로써 건주(建州)의 채(寨)를 들어와,

왕고(王杲)로 하여금 소략(所掠/약탈한 것)한 인마(人馬)를 돌려보내게 하였고,

무순관(撫順關) 아래에서 맹세(盟)하고는 파(罷/그만둠)하였다.

장학안(學顏)이 다시 이문(以聞/임금에게 아룀)하였고, 왕태(王台)에게 은폐(銀幣/은와 비단)를 뇌(賚/하사함)하였다.

만력(萬曆/명 13대 황제 신종의 #1연호) 2년(1574년) 7월에,

건주(建州) 나아독(奈兒禿) 등(等) 4인이 관채(款寨/성채를 두드림)하여 청항(請降/항복을 청함)하였고,

내력홍(來力紅)이 추망(追亡/도망자를 추격함)하여 새상(塞上/변경 지역)에 이르렀고,

수비(守備) 배승조(裴承祖)가 물여(勿予/주지 않음)하니,

추자(追者/따라온 자)가 제멋대로 말을 타고 행야자(行夜者/밤에 길을 가는 자) 5인을 약탈(掠)하고는 이로써 가버렸다.

배승조(承祖)가 내력홍(來力紅)을 격소(檄召/불러들이는 글을 보내어 소환함)하여 

약탈(掠)한 것을 되돌리게 하였는데, 역시(亦) 물여(勿予/주지 않음)하였다.

이때 왕고(王杲)가 바야흐로 입공(入貢/조공하여 들어옴)하였는데, 

말 200필(匹)과 방물(方物/특산물) 30타(馱/바리)였고, 전사(傳舍/객사)에서 휴식(休)하였다.

배승조(承祖)가 왕고(王杲)가 필히(必) 치중(輜重/말이나 수레 따위에 실은 짐)을 

기(棄/포기함)하고 우리에게 수원(修怨/원망을 품음)할 수 없을 것이라 탁(度/헤아림)하여,

곧 300기(騎)를 인솔(率)하여 내력홍(來力紅)의 채(寨)로 주(走/달림)하여 포위(圍)하였는데,

감동(敢動/감히 움직임)하지는 못하였다.

왕고(王杲)가 문모(聞耗/소식을 들음)하여 경(驚/놀람)하여, 치귀(馳歸/달려서 돌아감)하였고, 

내력홍(來力紅)과 더불어 배승조(承祖)에게 입알(入謁/들어와 아룀)하였는데,

그러나 제부(諸部/여러 부족)가 익중(益衆/무리를 더함)하여 포위(圍)하였다.

왕고(王杲)가 말하길

『장군(將軍)은 혹시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창졸간(倉卒)에 장군(將軍)이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는, 

  모두 포복(匍匐/엎드림)하고 거듭하여 망견(望見/멀리 바라봄)한다.

배승조(承祖)가 그 사(詐/거짓말함)를 알고는, 좌우(左右)를 호(呼/부름)하고는 급(急)히 병(兵/공격함)하였는데,

수십인(數十人)을 격살(擊殺/쳐서 죽임)하였는데, 제부(諸部/여러 부족)가 모두 앞으로 오니,

상당수(相當)가 살상(殺傷/죽거나 다침)하였다.

내력홍(來力紅)이 배승조(承祖)와 더불어 파총(把總) 유승혁(劉承奕), 백호(百戶) 유중문(劉仲文)를 집(執/사로잡음)하여,

살해(殺)하였고, 이에 장학안(學顏)이 주(奏/아룀)하여 

왕고(王杲)의 공시(貢市/공적으로 시장을 개설하여 물품을 교역함)를 절(絕/끊음)하였다.

변장(邊將/변경 장수)이 다시 왕태(王台)에게 사신(使)을 보내 왕고(王杲)와 더불어 

내력홍(來力紅)을 포(捕/체포)하라 격(檄/편지를 씀)하였다.

왕태(王台)는 왕고(王杲)가 소략(所掠/약탈)한 새상(塞上/변경 지역)의 사졸(士卒)과

더불어 한관(漢官/명나라 관리)를 살해(殺)한 그 종인(種人/종족)을 송(送/보냄)하였다.

왕고(王杲)가 공시(貢市/공적으로 시장을 개설하여 물품을 교역함)가 절(絕/끊음)함으로써,

부중(部衆/부족 무리)이 좌곤(坐困/궁지에 처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하였고,

마침내 토묵특(土默特/몽고 투멑tumet)과 태저(泰宁/올량합兀良哈)의 제부(諸部/여러 부족)를 규합(糾)하여,

대거(大舉) 요주(遼)와 심주(瀋)의 침범(犯)을 도모(圖)하였다.

총병(總兵) 이성량(李成梁)이 부(部)의 제장(諸將)을 심양(瀋陽)에 나누어 주둔(屯)하게 하였다.

양등(楊騰)은 등랑둔(鄧良屯)에 주둔(駐)하였고, 왕유병(王維屏)은 마근단(馬根單)에 주둔(駐)하였고,

조보(曹簠)는 대충(大衝)으로 치(馳/달림)하여 도전(挑戰/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하게 하였다.

왕고(王杲)가 제부(諸部/여러 부족) 3천기(騎)로써 오미자충(五味子衝)으로 들어왔는데,

명군(明軍)이 사면(四面/사방)으로 기(起/일어남)하였고, 

제부(諸部/여러 부족)의 병(兵)이 모두 도주(走)하여 왕고(王杲)의 채(寨)를 보(保/지킴)하였다.

왕고(王杲)의 채(寨)는 조험(阻險/길이 막히고 험난함)하였고, 

성견(城堅/성이 견고함)하고 참심(塹深/해자가 깊음)하였는데,

명군(明軍)이 공격(攻)이 불능(不能)하다 일컬었다.

이성량(成梁)이 제부(諸部/여러 부족)가 바야흐로 취처(聚處/한 곳에 모음)하면

좌박(坐縛/앉아서 포박함)할 것이라 계(計)/꾀함)하였다.

[만력(萬曆/명 13대 황제 신종의 #1연호) 2년(1574년)] 10월에,

제군(諸軍/여러 군)을 늑(勒/정돈함)하여 포석(礮石/돌덩이를 쏘아 보내던 공성용 무기)과 화기(火器) 를 

구(具/갖춤)하고 질주(疾走/빨리 달림)하여 왕고(王杲)의 채(寨)를 포위(圍)하였고,

그 목책(柵)을 여러 번 깊게 부(斧/찍음)하였다.

왕고(王杲)가 거수(拒守/막아서 지킴)하였는데, 

이성량(成梁)이 익휘(益揮/더욱 지휘함)하니 제장(諸將/여러 장수)이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함견(陷堅/적의 견고한 성곽을 격파함)하고 선등(先登/먼저 올라감)하였다.

왕고(王杲)가 300인으로써 대(台/돈대)에 올라 명군(明軍)을 쏘았는데,

명군(明軍)이 종화(縱火/일부러 불을 지름)하였고, 옥려(屋廬/살림집)와 추교(芻茭/말이나 소를 먹이던 꼴)가 모두 불탔는데,

연기(烟)가 폐천(蔽天/하늘을 가림)하니, 제부(諸部/여러 부족)가 대궤(大潰/크게 흩어짐)하였다.

명군(明軍)이 종격(縱擊/군대를 풀어서 마구 침)하여, 1104급(級)을 득(得)하였다.

왕시(往時/지나간 때)에 배승조(承祖)의 복(腹/배)을 부(剖/쪼갬)하고 

더불어 유승혁(承奕)을 살해(殺)한 자를 모두 취괵(就馘/쫓아가 목을 벰)하였고,

왕고(王杲)는 둔주(遁走/도망쳐 달아남)하였다.

명군(明軍)의 거기(車騎/병거와 기마)가 6만(萬)이었는데,

살략(殺掠/살해하고 약탈함)하여 인축(人畜/사람과 가축)이 태진(殆盡/거의 없어짐)하였다.

[만력(萬曆/명 13대 황제 신종의 #1연호)] 3년(1575년) 2월에,

왕고(王杲)가 다시 나와, 여중(馀衆/남은 무리)를 모집(集)하여 범번(犯邊/변경을 범함)을 도모(謀)하였는데,

다시 명군(明軍)의 포위(圍)를 당했다.

왕고(王杲)가 망괘(蟒褂/용이 새겨진 융복)와 홍갑(紅甲/붉은 갑옷)으로써 

소친(所親/가깝게 지내는 사이)한 아합납(阿哈納)에게 수(授/줌)하였고,

거짓으로 왕고(王杲)가 돌위(突圍/포위를 뚫음)하는 것처럼 도주(走)하니, 명군(明軍)이 추격(追)하였다.

왕고(王杲)가 이런 까닭으로 득탈(得脫/탈출함)하여, 중고로(重古路)로 도주(走)하였고,

장차(將) 태녕위(泰甯衛)의 속파해(速把亥)에게 왕의(往依/의지하여 감)하려 하였다.

명군(明軍)이 왕고(王杲)를 구(購/구함, 찾음)하였는데, 왕고(王杲)가 다급(急)하여,

왕고(王杲)가 감(敢)히 북(北)으로 도주(走)하지 못하였고,

왕태(王台)에게 가도(假道/땅 주인에게서 길을 임시로 빌림)하였다.

변리(邊吏/변경 관리)가 포송(捕送/포박하여 보냄)을 격(檄/편지를 씀)하였다.

[만력(萬曆/명 13대 황제 신종의 #1연호)] 3년(1575년) 7월에,

왕태(王台)가 아들 호아한적(虎兒罕)을 인솔(率)하고 왕고(王杲)를 포박(縛)하여 이헌(以獻/임금에게 바침)하니,

함거(檻車/죄인 호송용 수레)가 궐하(闕下/대궐 아래)에 이르렀고, 시(市/저자)에서 책(磔/찢어 죽임)하였다.

왕고(王杲)가 일찍이 일자(日者/날의 길흉을 점침)의 술(術/재주)로써

스스로 추(推/헤아림)하였으나 출망(出亡/도망침)하지 못하고 곧 죽으니,

마침내 부험(不驗/효과가 없음)하였다.

처노(妻孥/처자식) 27인은 왕태(王台)의 소득(所得)이 되었고, 

그 아들 아태(阿台)는 탈거(脫去/탈출하여 가버림)하였다.

아태(阿台)의 처(妻)는, 청(清) 경조(景祖/누르하치의 조부 교창아)의 여손(女孫/손녀)이다.

왕태(王台)가 졸(卒)하자, 아태(阿台)가 보원(報怨/원수를 갚음)을 사(思/생각함)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엽혁(葉赫/예허)의 양길노(楊吉砮) 등(等)을 유(誘/꾀임)하여 호아한적(虎兒罕赤)을 침략(侵)하였다.

총독(總督) 오태(吳兌)가 수비(守備) 곽구고(霍九皋)를 보내 아태(阿台)를 회유(諭)하였으나, 

불청(不聽/듣지 않음)하였다.

이성량(李成梁)이 솔사(率師/군대를 인솔함)하여 조자곡(曹子谷)과 대리수전(大梨樹佃)을 방어(禦)하고는,

대파(大破)하였고, 1563급(級)을 참(斬)하였다.

[만력(萬曆/명 13대 황제 신종의 #1연호)] 4년(1576년) 봄 정월(正月)에,

아태(阿台)가 다시 도변(盜邊/변경을 도적질함)하였는데,

정원보(靜遠堡)로부터 구대(九臺)로 들어왔는데,

이윽고 또 유림보(榆林堡)로부터 들어와 혼하(渾河)에 이르렀고,

이윽고 또 장용보(長勇堡)로부터 들어와 혼하(渾河) 동쪽(東) 연안(岸)에 육박(薄)하였으며,

또 토만(土蠻)을 규합(糾)하여 광녕(廣寧)과 개원(開原) 및 요하(遼河)를 분략(分掠/나누어 약탈함)하기로 도모(謀)하였다.

아태(阿台)가 고륵채(古勒寨)에 거주(居)하였고, 

그 당(黨/무리) 모린위(毛憐衛) 두인(頭人/우두머리) 아해(阿海)는 망자채(莽子寨)에 거주(居)하였는데,

서로 의각지세(犄角/앞뒤에서 협력하여 적을 몰아치는 형국)가 되었다.

이성량(成梁)이 비장(裨將) 호난(胡鸞)으로 하여금 하동(河東)을 방비(備)하게 하고,

손수렴(孫守廉)은 하서(河西)를 방비(備)하게 하였으며,

친히(親) 솔사(帥師/군대를 이끎)하여 무순(撫順) 왕강태(王剛台)에서부터 출채(出寨/성채를 나옴)하여,

고륵채(古勒寨)를 공격(攻)하였는데, 채(寨)가 두준(陡峻/높고 가파름)하고, 

삼면(三面)이 벽립(壁立/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벽처럼 서 있음)하였고,

호참(壕塹/참호, 해자)이 심설(甚設/대단히 갖추워짐)하였다.

이성량(成梁)이 제군(諸軍/여러 군)을 지휘(麾)하여 이틀 밤낮으로 화공(火攻)하였는데,

아태(阿台)를 사(射/쏨)하여, 에(殪/죽음)하였다.

별장(別將) 진득의(秦得倚)가 이미 망자채(莽子寨)를 선파(先破/먼저 격파함)하였고,

아해(阿海)를 살해(殺)하고, 2222급(級)을 참(斬)하였다.

경조(景祖/누르하치의 조부 교창아)와 현조(顯祖/누르하치의 부친 탘시)가 모두 난(難)에 이르렀다.

태조(太祖) 본기(紀)에 어상(語詳/상세히 말함)하였다.


왕고는 그 종족을 알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기민하고 지혜가 있었으며 오랑캐의 말과 중국어 및 문자를 통하였고

날의 길흉을 점치는 재주가 더욱 뛰어났다.

가정(명 11대 황제 세종의 #1연호, 1521년~1567년) 간에 건주 우도지휘사로 삼았는데 누차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1557년 10월에 무순을 엿보고는 수비 팽문수를 살해하였고 

마침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주, 혜안, 도장의 여러 보를 더욱 제멋대로 약탈하였다.

1562년 5월에 부총병 흑춘이 군대를 인솔하여 깊게 들어갔는데 

왕고가 식부산에 복병을 두고 흑춘을 유인하여 흑춘을 생포하여 찢어 죽였고

마침내 요양을 범하였고 고산을 위협하였으며 무순과 탕참을 약탈하였는데,

전후로 지휘 왕국주, 진기부, 대면, 왕중작, 양오미 파총 온란, 어란, 왕수렴, 전경, 유일명 등을 수십 명을 살해하였다.

해당 관청이 의논하여 공시(공적으로 시장을 개설하여 물품을 교역함)를 끊었고

죽이고자 군사를 일으키고 잇달아 또 관대하게 처분하겠다 요청하였는데도 왕고가 뉘우치지 않았다.

융경(명 12대 황제 목종의 #1연호, 1567년~1572년) 말에 건주 합합납 등 30명이 관문을 두드려 항복을 청했는데 

변경 관리가 받아들였다.

왕고가 달려와 개원을 수색하고자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에 1000여 기를 정돈하여 청하를 범하였다.

유격장군 조보가 길 옆에 매복하여 갑자기 일어나 5급을 참하니 왕고가 도망쳐 달아났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규칙과 정례에 개시를 하면 수비가 청사에 앉고

여러 부족의 추장이 순서대로 대청 위에 서서 토산물을 바치고 곧 말을 검사하였다.

말이 곧 파리하거나 절룩거려도 모두 좋은 값을 주었는데 싫증을 느껴 말 검사를 곧 그만두고자 하였다.

왕고가 더욱 거칠고 사나웠는데 술을 마실 때 다른 사람의 술을 가로채서 마셨고

취하게 되면 술기운으로 기세를 부리며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욕설을 해댔다.

1572년에 수비 가여익이 처음으로 와서 여러 부족을 지나치게 괴롭혔는데

여러 추장을 억압하여 섬돌 아래에 서게 하였다.

여러 추장이 옛 규칙이 아니라고 항의하였고 모두 섬돌 한 계단을 올랐다.

가여익이 노하여 추장들을 막고 질책하였으며 대장기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자 10여인을 채찍질하였고

말을 검사할 때 반드시 몸집이 크고 힘쎈 말만 사들이게 하였다.

왕고가 매우 원망하여 무리를 이끌고 가버렸고 여러 부족과 소를 잡고 약조하여 변경 지역을 죽이고 약탈하였다.

이때에 합달(하다) 왕태(완 한)이 바야흐로 강하였는데 여러 부족이 받들기로 약속하니

변경 장수가 사신을 보내 왕고를 회유하였다.

왕고가 왕태의 날개를 꺾겠다고 공언하니 순무 요동 도어사 장학안이 조정에 보고하였고

병부에서 의논하여 요동 진무로 하여금 왕고에게 베풀고 타이르게 하여 은혜와 위엄을 보이게 하였다.

이때 하다의 왕태가 1000기로써 건주의 채를 침략하여 왕고로 하여금 약탈한 인마를 돌려보내게 하였고

무순관 아래에서 맹세하고는 돌아갔다.

장학안이 다시 조정에 보고하였고 왕태에게 은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1574년 7월에 건주 나아독 등 4명이 성채를 두드리고 항복을 청하였는데

내력홍이 도망자를 추격하여 변경 지역에 이르렀는데 수비 배승조가 나아독 등을 주지 않으니

내력홍이 제멋대로 말을 타고 밤에 행인 5명을 약탈하고는 가버렸다.

배승조가 내력홍을 소환하는 글을 보내 약탈한 것을 되돌리게 하였는데 내력홍이 역시 주지 않았다.

이때 왕고가 바야흐로 말 200필과 방물 30 바리를 가지고 조공하려 들어왔는데 객사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배승조가 왕고가 필히 물품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원망을 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곧 300기를 인솔하여 내력홍의 채로 달려가 포위하니 내력홍이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왕고가 소식을 듣고 놀라 달려서 돌아가 내력홍을 데리고 배승조에게 들어와 아뢰었는데

이때 여러 부족이 무리를 모아 배승조를 포위하였다.

왕고가 말하길

   <장군은 혹시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창졸간에 장군이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는 여러 추장이 멀리 바라보고 엎드려 있는 것이다.>

하였다.

배승조가 왕고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여 급하게 좌우를 불러 병력으로 공격하게 하여 수십 명을 죽였는데

여러 부족이 모두 전진하여 명나라 군 상당수가 죽거나 다쳤다.

내력홍이 배승조와 더불어 파총 유승혁, 백호 유중문을 사로잡아 죽였고

이에 장학안이 조정에 아뢰 왕고의 공시(공적으로 시장을 개설하여 물품을 교역함)를 끊었다.

변경 장수가 다시 왕태에게 사신을 보내 왕고와 더불어 내력홍을 체포하라 편지를 썼다.

왕태가 왕고가 약탈한 변경 지역의 병사와 더불어 명나라 관리를 죽인 그 종족을 보냈다.

왕고가 공시가 끊기자 부족 무리들이 궁지에 처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마침내 토묵특(몽고 투멑)과 태저(올량합)의 여러 부족을 규합하여 대거 요주와 심주의 침략을 도모하였다.

총병 이성량이 부의 제장들을 심양에 나누어 주둔하게 하였다.

양등은 등랑둔에 주둔하였고, 왕유병은 마근단에 주둔하였고 조보는 대충으로 달려가 도전하게 하였다.

왕고가 여러 부족의 3천 기로써 오미자충으로 들어갔는데 명나라 군이 사방으로 일어나니

여러 부족의 병력이 모두 도주하여 왕고의 채를 지켰다.

왕고의 채는 험준하고 성이 견고하였으며 해자가 깊었는데 명군의 공격이 불가능하다 일컬었다.

이성량이 여러 부족이 바야흐로 한 곳에 모이면 앉아서 포박할 수 있을 것이라 계책을 세웠다.

1574년 10월에 여러 군을 정돈하여 석포와 화기를 갖추고 빨리 달려 왕고의 채를 포위하였고 

공성무기로 그 목책을 여러 번 깊게 공격하였다.

왕고가 막아서 지켰는데 이성량이 더욱 지휘하니 제장들이 활과 돌을 무릅쓰고 적의 견고한 성곽을 격파하고 성위에 올랐다.

왕고가 300명으로 돈대에 올라 명나라 군을 쏘았는데 명군이 방화하여 집과 꼴을 모두 불사르니 

연기가 하늘을 가렸고 여러 부족이 크게 흩어졌다.

명군이 군대를 풀어 마구 공격하여 1104급을 참하였다.

이전에 배승조의 배를 가르고 더불어 유승혁을 살해한 자를 모두 쫓아가 목을 벴고 왕고는 도주하였다.

당시 명군의 병거와 기마가 6만이었는데 왕고의 채의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여 사람과 가축이 거의 없어졌다.

1575년 2월에 왕고가 남은 무리를 모집하여 다시 나와 변경 공격을 도모하였는데 오히려 명군의 포위를 당했다.

왕고가 용이 새겨진 융복과 붉은 갑옷을 가깝게 지내던 사이인 아합납에게 주고 

거짓으로 왕고인 것처럼 포위를 뚫고 도주하게 하였다.

왕고가 이런 까닭으로 탈출하여 중고로로 도주하였는데 장차 태녕위의 속파해에게 의지하고자 하였다.

명군이 왕고를 수색하였는데 왕고가 다급하여 감히 북쪽으로 도주하지 못하였고

하다의 왕태에게 길을 빌리고자 하였다.

변경 관리가 왕태에게 왕고를 포박하여 보내라고 편지를 썼다.

1575년 7월에 왕태가 아들 호아한적(훠르한)을 인솔하고 왕고를 포박하여 명나라에 바쳤고,

함거(죄인 호송용 수레)가 대궐 밖에 이르니 저자에서 찢어 죽였다.

왕고가 일찍이 날의 길흉을 점치는 재주로 스스로의 운세를 헤아렸으나 도망치지 못하고 곧 죽으니 효과가 없었다.

왕고의 처자식 27인은 모두 왕태가 차지하였고 그 아들 아태(아타이)는 탈출하였다.

아태의 처는 청나라 경조(누르하치의 조부 교창아)의 손녀이다.

하다의 왕태가 죽자 아태는 원수를 갚겠다 생각하여 엽혁(예허)의 양길노(양이누) 등을 꾀여 호아한적을 침략하였다.

총독 오태가 수비 곽구고를 보내 아태를 회유하고자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이성량이 군대를 인솔하여 조자곡과 대리수전을 막고는 대파하여 1563급을 참하였다.

1576년 1월에 아태가 다시 변경을 노략질하였는데 정원보로부터 구대로 들어왔다가

이윽고 또 유림보로부터 들어와 혼하에 이르렀고

이윽고 또 장용보로부터 들어와 혼하 동쪽 연안에 육박하였으며

또 토만을 규합하여 광녕, 개원, 요하를 나누어 약탈하기로 도모하였다.

아태는 고륵채(구러성)에 거주하였고 그 무리 모린위 우두머리 아해(아하이)는 망자채(샤진성)에 거주하였는데

서로 의각지세(앞뒤에서 협력하여 적을 몰아치는 형국)를 이루웠다.

이성량이 비장 호난으로 하여금 하동을 방비하게 하고

손수렴으로 하여금 하서를 방비하게 하고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무순 왕강태로부터 성채를 나와 고륵채를 공격하였는데

고륵채가 험준하고 삼면이 낭떠러지였으며 해자가 깊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성량이 여러 군을 지휘하여 이틀 밤낮으로 화공하였는데 아태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

별장 진득의가 이미 아해의 망자채를 먼저 함락하여 아해를 살해하고 2222급을 참하였다.

경조(누르하치의 조부 교창아)와 현조(누르하치의 부친 탘시)가 모두 난을 당했다.

태조(누르하치) 본기에 상세히 실려있다.



*중화민국에서 편찬한 청사고에는 1583년 2월 고륵성(구러성) 함락이 명나라 군의 화공에 의해 함락된 것으로 나오나

 후금과 청의 사서에는 당시 고륵성은 난공불락이어서 이성량의 명나라 군의 피해가 심대하고 

 함락이 불가능하자 이성량이 향도 니감외란(니칸 와이란)을 죽이려 하였고

 이에 니칸 와이란이 구러성 앞으로 나아가 성의 주민들을 선동하여 아태(아타이)를 죽이면

 구러성의 성주로 삼겠다고 속여 주민들이 아타이를 죽이고 성문을 열게 된다.

 이 당시에 누르하치의 조부 교창아(각창안)와 탘시(탑극세)는 아타이의 부인이자 교창아의 손녀를 

 구하기 위해 구러성에 들어왔다가 성문이 열리고 이성량은 성내의 모든 남녀를 성밖으로 나오게 유인하고

 이들이 성밖으로 나오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처형하게 하였다.

 이때 교창아와 탘시도 죽임을 당한다.

 이에 분가한지 6년 만에 부친의 거성 허투 알아로 돌아온 누르하치는 부친 탘시가 남긴

 갑옷 13벌과 병사 100으로 거병하여 니칸 와이란을 원수로 규정한다.

 훗날 누르하치는 조부와 부친의 죽임이 명의 책임이라며 7대원한 중 제1원한으로 삼는다.


*누르하치의 조부 교창아와 부친 탘시가 죽은 아타이의 구러성 전투 관련 청나라 사서 기록

내국사원당 태조 국역 27부-이성량이 누르가치의 조부와 부친을 죽이다 http://cafe.naver.com/historygall/55065
태조무황제 노아합기 국역 19부-태조의 조부와 부친이 살해당하다 http://cafe.naver.com/historygall/53770
태조고황제 노이합제 국역 15부-태조의 조부와 부친이 살해당하다 http://cafe.naver.com/historygall/53777
만주실록 누르가치 국역30부-태조의 조부와 부친이 살해당하다 http://cafe.naver.com/historygall/53778
황청개국방략 국역 1부-태조의 조부와 부친이 살해당하다 http://cafe.naver.com/historygall/53771
청사고 태조본기 노이합제 국역 01부-태조의 조부와 부친이 살해당하다 http://cafe.naver.com/historygall/5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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