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왕같은 소리하네! 죽을 준비나 해라!> 누르하치 관련 이야기

1619년 1월 누르하치가 명나라 대군이 움직인다는 첩보를 듣고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자신을 왕으로 봉하고 예전과 같이 무역을 한다면 전쟁을 멈추고 7대원한을 풀겠다고 말하지만 

                 누르하치<나를 왕으로 봉하면 전쟁을 멈추겠다!>

명나라 양호는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냅니다.


만문노당 1619년 2월 24일 기사中

○juwe biyai orin duin de. nikan i yang du tang.

○2 월의 20 4 에. 한족 의 양 도 당.

inde acaki seme. sain gisun i takvraha sain niyalma be unggihekv.

그에게 만나자! 하며. 좋은 말 로 파견한 좋은 사람 을 보내지않고.

fusi be gaiha fonde. ukame genehe emu juxen be takvrafi unggime bithede arahangge.

무순 을 가진 때에. 도망가며 간 1 여진족 을 파견하고 보내며 글에 쓴것.

meni nikan i cooha gaifi yabure ambasa. hebexere beise

나의 한족 의 군대 가지고 갈 암반들. 의논할 버이러들

gemu teksileme isinjihabi.

모두 정리하며 이르렀도다.

mini dehi nadan tumen cooha.

나의 40 7 만 군대.

ilan biyai tofohon de. biyai genggiyen i ucuri.

3 월의 15 에. 달의 밝음 의 무렵.

jakvn jugvn jugvn i cooha genembi seme bithe isinjiha.

8 길 길 로 군대 간다 하며 글 이르렀다.


1619년 2월 24일에 명나라의 양도당(양호)는 그에게 <만나자!>하며

(누르하치가) 좋은 말로 파견한 좋은 사람을 (돌려) 보내지 않고

무순을 점령할 때에 도망친 여진족 1명을 파견하여 보낸 글에 쓴 것

   <나의 명나라의 군대 가지고 갈 대신과 의논할 장수들 모두 정리하여 이르렀도다.

    나의 47만 군대 3월 15일 보름 무렵에 8길로 군대 가겠다>

하며 글이 이르렀다.



명나라 총사령관 양호는 이미 4길로 병력을 나눠 보내

3월 2일에 누르하치의 본성 허투 알아에 집결하기로 작전을 개시하였지요.

사방에서 공격하여 누르하치를 정신 못 차리게 할 요량으로 보이는데

실상 북 예허와 남 조선의 병력을 이끌고 오느라 병력이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두송이 전공을 앞세워 시일을 앞당겨 돌출하였다가 2배 이상의 후금군에 대패함에 따라

전체 작전이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지요.

여하튼 양호는 대담하게 누르하치가 명군의 움직임을 간파했다고 생각하고

작전 개시일을 3월 15일이고 8길로 가며 자신의 병력이 47만이라고 누르하치에게 큰 혼란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실상 명군은 9만, 예허1만, 조선 1만3천 정도로 당시 8기군 6만, 노비 4만 포함하여 10만의 후금군에 비하면

병력에서도 우위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병력이 분산되어 그대로 후금군에게 각개격파 되었지요.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