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225부-투항한 명나라 관리에게 한족노비를 많이 주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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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tanggv. morin ihan tanggv. honin tanggv. temen sunja.

탕워. 모린 이한 탕워. 호닌 탕워. 터먼 순자.

100. 말 소 100. 양 100. 낙타 5.


menggun tanggv yan. suje orin. mocin samsu ambula buhe.

멍운 탕워 얀. 수저 오린. 모친 삼수 암불아 부허.

은 100 냥. 비단 20. 모청포 청남색포 많이 주었다.


ciyandzung ni hergen i ninggun hafan de.

챤중 니 허르건 이 닝운 하판 더.

천총 의 관직 의 위 관리 에.


niyalma susaita. morin ihan susaita. honin susaita. temen juwete.

냘마 수사이타. 모린 이한 수사이타. 호닌 수사이타. 터먼 줘터.

사람 각50. 말 소 각50. 양 각50. 낙타 각2.


menggun susaita yan. suje juwanta. mocin samsu.

멍운 수사이타 얀. 수저 주완타. 모친 삼수.

은 각50 냥. 비단 각10. 모청포 청남색포.


xeo pu. bedzung ni hergen i niyalma de.

서오 푸. 버중 니 허르건 이 냘마 더.

수 보. 백총 의 관직 의 사람 에.


niyalma dehite. morin ihan dehite. honin dehite. temen emte.

냘마 더히터. 모린 이한 더히터. 호닌 더히터. 터먼 엄터.

사람 각40. 말 소 각40. 양 각40. 낙타 각1.


menggun dehite yan. suje jakvta. mocin samsu.

멍운 더히터 얀. 수저 자쿼타. 모친 삼수.

은 각40 냥. 비단 각8. 모청포 청남색포.


jai dahaha gucuse be gemu teisu be tuwame sargan.

자이 다하하 구추서 버 거무 터이수 버 투와머 사르간.

다음 항복한 막료들 을 모두 직분 을 살피며 계집.


takvrara niyalma. tarire ihan. yalure morin. eture etuku. jetere jeku.

타쿼라라 냘마. 타리러 이한. 얄우러 모린. 어투러 어투쿠. 저터러 저쿠.

부릴 사람. 밭가는 소. 타는 말. 입는 옷. 먹는 양식.


ai jaka be gemu jalukiyame buhe.

아이 자카 버 거무 잘우캬머 부허.

여러 물건 을 모두 가득차며 주었다.


○orin sunia de. tiyei ling ni hecen be gaime

○오린 순자 더. 톄이 링 니 허천 버 가이머

○20 5 에. 철 령 의 성 을 취하며


*susaita[수사이타] : 각50.

*bedzung[버중] : 백총(百總).

*dehite[더히터] : 각40.

*jakvta[자쿼타] : 각8.

*tiyei ling[톄이 링] : 철령(鐵嶺).






(자발적으로 투항한 몽고 아부투 바투루에 노비) 100명, 

마소 100마리, 양 100마리, 낙타 5마리, 은 100냥, 비단 20필, 모청포와 청남색포도 많이 주었다.

(자발적으로 투항한 명나라) 천총 관직의 상급 관리에 

노비 각각 50명, 마소 각각 50마리, 양 각각 50마리, 낙타 각 2마리,

은 각각 50냥, 비단 각각 10필, 모청포와 청남색포를 주었다.

수보와 백총 관직의 사람에게는 노비 각각 40명, 마소 각각 40마리, 양 각각 40마리, 낙타 각각 1마리,

은 각각 40냥, 비단 각각 8필, 모청포와 청남색포를 주었다.

다음 항복한 막료들을 모두 직분을 살피며 계집과 부릴 사람, 밭가는 소, 타는 말, 입는 옷, 먹는 양식

여러 물건을 모두 가득 차게 주었다.

(1619년 7월) 25일에 철령성을 취하며


요약.

개원성 함락 후 자발적으로 항복한 몽고 아부투 바투루에 노비 100명과 물품을 많이 하사한 누르하치는

처음으로 항복하며 찾아온 명나라 관리들에게도 노비와 물품을 많이 하사하였다.

실제 누르하치는 투항한 한족 장수들을 우대하였는데, 이영방의 경우는 손녀사위로 삼아 일족으로 받아들이고

한족 병사 1만 명을 지휘하게 하였다.

심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강홍립과 김경서에게도 환대하며 여러 차례 투신 권유를 하였으나

강홍립과 김경서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강홍립이 조선에 보낸 서신에 의하면 하루는 강홍립이 연회장에서 중국말을 할 줄 알았던

여진 장수에게 칼이 잘드냐고 물어보며 자신이 누르하치에게 모욕을 당하면

단칼에 죽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누르하치는 항복한 한족들에게 변발을 강요하였으나 조선 장수 및 포로들에게는 변발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영방과 강홍립은 연회에서 서로 만나기도 하였는데 이영방이 넌지시 강홍립에게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강홍립은 중국말에 능통하였다.


-22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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