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누르하치 당시에 어르더니 밬시에 의해 쓰인 필기체 만문원당과
이를 똑같이 인쇄체로 베껴 편찬한 만문노당.
그리고 미화하고 윤색한 만주실록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서의 일화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누르하치 약탈/학살/친족살해 구만주당/만문노당/만주실록의 차이점
누르하치 [만주실록][태조고황제실록][태조무황제실록] 편찬시기
때는 1619년 8월 누르하치는 여진통일의 마지막 전쟁 예허 침공전을 단행합니다.
누르하치가 동원한 병력은 팔기군 4만, 이에 예허가 동원 가능한 병력은 고작 1만이었지요.
당시 예허는 동예허의 긴타이시와 서예허의 부양워가 다스리고 있었는데요.
부양워는 암바 버이러(대패륵)인 다이샨의 처남이고 긴타이시는 두이치 버이러(넷째 패륵)인 홍 타이지의 외삼촌이었습니다.
누르하치는 4명의 버이러(다이샨, 아민 타이지, 망월타이 타이지, 홍 타이지)에게 서예허를 포위공격하게 하였고
누르하치 자신은 직속 병력을 이끌고 동예허를 포위하였습니다.
누르하치의 직속군이 동예허성을 함락하자 긴타이시는 처자와 함께 누대에서 최후의 항전을 개시하였습니다.
누르하치가 사람을 보내 항복하라고 하자 긴타이시는 자신의 조카인 홍 타이지가 오면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지요.
이에 누르하치는 서예허성을 포위하고 있던 홍 타이지를 소환합니다.
동예허에 도착한 홍 타이지는 곧장 긴타이시에게 갑니다.
그런데 사실 긴타이시는 홍 타이지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지요.
하여 긴타이시는 <니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다!> 말합니다.
이를 누르하치 당시 무권점 만문으로 쓰인 원초적 사서 만문원당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지요.
<홍 타이지를 데려온 후 한(누르하치)이 말하길
[너의 외삼촌이 네 말을 듣는다 해서 너를 오라 한 것이니라.
너 가서 외삼촌을 누대에서 내려오게 하라!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 병사로 누대를 쓰러뜨려라!]
홍 타이지가 가니 외삼촌이 말하길
[내 조카 홍 타이지를 내 알아보지 못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에 홍 타이지가 말하길
[너희와 화친하고자 우리가 파견한 네 아들 덜거르 타이지의 젖 먹인 할머니를 불러와서 내가 진짜인지 알아보게 하라!]
성주 긴타이시가 말하길
[내 조카 홍 타이지가 맞다면 네가 나를 살려준다 하는 좋은 말을 해준다면 외삼촌 내 내려가리!]>
이를 만문노당에서는 피휘를 위해 <홍 타이지>를 모두 <넷째 버이러>로 바꿉니다.
그 외에는 내용이 완전히 똑같지요.
헌데 윤색된 만주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추가됩니다.
<한이 ○○○○ 버이러를 불러와 말하길
[네 외삼촌이 네가 오면 누대에서 내려온다 하니 너 가서 내려오게 하라!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 군대가 누대를 쓰러뜨려라!]
○○○○ 버이러가 가니 긴타이시가 말하길
[내 조카 ○○○○ 버이러를 내 알아보지 못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에 만주 군대의 암반 피옹돈, 다르한 햐가 말하길
[너 사람의 모습을 어찌 알아보지 못하느냐?
보통 사람이 이와 같이 빛나고 힘 있게 생겼느냐?
너의 사신 보냈던 사람이 알린 말을 듣지 못한 것이냐?
믿지 못한다면 너에게 화친하고자 우리가 파견한 네 아들 덜거르 타이지의 젖 먹인 유모를 불러와서 알아보게 하라!]>
즉 원문에는 없던 피옹돈과 다르한 햐의 추임새가 추가되었습니다.
팔기군 최고위 장수들이 홍 타이지를 추켜 세우며
<이처럼 빛나고 힘 있게 생긴 분을 어찌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
유모를 데려오라고 지시하는 것도 고귀한 홍 타이지가 아니고,
홍 타이지는 가만히 있고 피옹돈이 유모를 데려와라고 대신 말하는 것까지 추가되었습니다.
물론 만주실록에는 <홍 타이지> 혹은 <넷째 버이러>라는 말도 모두 삭제되고
아예 황첨을 붙여 항목 자체를 빈칸으로 만들어 놨지요.
*만문원당, 만문노당에는 긴타이시를 서예허, 부양워를 동예허로 기록하였는데
이후의 사서에는 반대로 긴타이시를 동예허, 부양워를 서예허로 기록하였고
병자호란 이후 청에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측근이 쓴 심양일기에는
역시 긴타이시를 동예허, 부양워를 서예허로 기록하였지요.
대부분의 자료에서 긴타이시를 동예허, 부양워를 서예허로 보니
제 짐작으로는 만문원당을 작성한 어르더니 밬시가 착각을 해서 쓴 것을
후대에 정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긴타이시와 부양워의 조선, 청, 명의 한자명
1. 긴타이시[gintaisi]
: 김태석(金台石), 금태습(錦台什), 김태습(金台什), 김태길(金台吉), 김소석(金召石), 김태시(金台時), 김타실(金他實)
2. 부양워[buyanggv]/부양구
: 포양고(布揚古), 백양고(白羊古), 백양고(白羊高), 백양골(白羊骨), 부양고(夫陽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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