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232부-몽고여 우린 100배로 복수하느리라!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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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monggo i cooha. meni niyalma be takafi.

몽오 이 초오하. 머니 냘마 버 타카피.

몽고 의 군대. 우리의 사람 을 분간하고.


neneme tanggv niyalma be waha. minggan morin be gaiha.

너너머 탕워 냘마 버 와하. 밍안 모린 버 가이하.

앞서 100 사람 을 죽였다. 1천 말 을 취했다.


tereci meni cooha. suweni monggo i cooha be gidafi niyalma ambula waha.

터러치 머니 초오하. 숴니 몽오 이 초오하 버 기다피 냘마 암불아 와하.

그로부터 우리의 군대. 너희의 몽고 의 군대 를 격파하고 사람 많이 죽였다.


sini jaisai beile i beye. uhereme ninggun beile.

시니 자이사이 버이러 이 버예. 우허러머 닝운 버이러.

너의 자이사이 버이러 의 몸. 모두 6 버이러.


emu tanggv funceme niyalma be weihun jafaha.

어무 탕워 푼처머 냘마 버 워이훈 자파하.

1 100 남짓 사람 을 산채로 잡았다.


medege be alame gene seme juwan niyalma be sindafi unggihe.

머더거 버 알아머 가라! 서머 주완 냘마 버 신다피 웅이허.

속보 를 알리며 가라! 하며 10 사람 을 풀어주고 보냈다.


boode isinjire inenggi. fulgiyan ala de fujisa okdofi. han de hengkileme acaha.

보오더 이신지러 이넝이. 풀갼 알아 더 푸지사 옼도피. 한 더 헝킬어머 아차하.

집에 이른 날. 붉은 산 에 부인들 맞이하고. 한 에 고두하며 만났다.


jai fujisa de. amba beile gaifi geren beise hengkileme acaha.

자이 푸지사 더. 암바 버이러 가이피 거런 버이서 헝킬어머 아차하.

다시 부인들 에. 암바 버이러 가지고 여러 버이러들 고두하며 만났다.


terei amala jaisai beile i emgi jafabuha monggo i beise.

터러이 아말아 자이사이 버이러 이 엄기 자파부하 몽오 이 버이서.

그의 뒤에 자이사이 버이러 와 함께 잡은 몽고 의 버이러들.


fujisa de hengkileme acaha.

푸지사 더 헝킬어머 아차하.

부인들 에 고두하며 만났다.


tuttu acame wajiha manggi. amba sarin sarilaha.

퉅투 아차머 와지하 망이. 암바 사린 사릴아하.

그와같이 만나며 끝낸 뒤에. 큰 연회 베풀었다.






(칼카 몽고인 보로치를 풀어주며)

   <(너희) 몽고의 군대가 우리 사람을 분간하고 앞서 100 사람을 죽였다. 1천 말을 취했다.

    그로부터 우리의 군대 너희의 몽고의 군대를 격파하고 사람 많이 죽였다.

    너의 자이사이 버이러의 몸과 모두 6 버이러와 100 남짓 사람을 산 채로 잡았다.

    속보를 알리러 가라!>

하며 10 사람을 풀어 주고 보냈다.

집에 이른 날 붉은산(풀갼 알아)에 부인들 맞이하고 한(누르가치)에 고두하며 만났다.

다시 부인들에게 암바 버이러(다이샨) 가지고 여러 버이러들 고두하며 만났다.

그 뒤에 자이사이 버이러와 함께 잡은 몽고의 버이러들이 부인들에 고두하며 만났다.

그와 같이 만나며 끝낸 뒤에 큰 연회 베풀었다.



요약.
1619년 7월 28일 철령성에서 물러난 후 누르하치는 생포한 칼카 몽고 자이사이의 부하인 
보로치와 10명을 풀어주고 일전에 칼카 몽고가 후금 마을을 약탈하여 백 명을 죽이고 말 1천 마리를
약탈한 것을 상기시키며 이번에 1만 몽고병을 전멸시켰다는 소식을 고향에 전하라 말한다.
회군 도중 자이퍈성 인근인 붉은산(풀갼 알아)에서 누르하치의 부인들이 마중을 나왔고 누르하치에게 고두하였다.
다시 다이샨과 버이러들은 누르하치의 부인들에게 고두하였고,
포로로 잡은 자이사이와 몽고 장수들 또한 누르하치의 부인들에게 고두하였다.
그 자리에서 누르하치는 큰 연회를 베풀었다.


*자이사이/재새(齋賽)
 : 몽고 칼카(할하/객이객부喀爾喀部) 부족장이며 태녕부(泰甯部) 속파해(速把亥)의 손자이다.
   속파해는 1560년~1580년대에 수만 몽고병을 이끌고 요동을 여러 차례 침공하였고 이성량과 대치하였다.
   1582년 3월 속파해가 동생 초화, 아들 복언토를 이끌고 의주를 침범하였는데 진이보 전투에서
   명 참장 이평호가 화살을 맞추고 이평호의 노복 이유명이 참수하였다.
   속파해가 죽자 만력제는 크게 기뻐하여 이성량에게 조서를 내려 금의지휘사를 세음하게 하였고
   북경에 큰 저택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23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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