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반역열전(6)묘부/유정언-2부 백성이 임금보다 중하다!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송사의 간신(姦臣)과 반신(叛臣) 열전을 번역해 보고자 합니다.


1부 꿈틀대는 쿠데타 모의 http://cafe.naver.com/booheong/151955



연재 예정 인물

채경(蔡京), 곽약사(郭藥師), 동관(童貫)채변(蔡卞), 채유(蔡攸), 채소(蔡翛), 채화(蔡崈)

조량사(趙良嗣), 장각(張覺), 황잠선(黃潛善), 왕백언(汪伯彥), 진회(秦檜)

장방창(張邦昌), 유예(劉豫), 묘부(苗傅), 유정언(劉正彥)


1편 송사 간신열전 채경 http://cafe.naver.com/booheong/98808

2편 송사 간신열전 곽약사 http://cafe.naver.com/booheong/103206

3편 송사 환자열전 동관 [방랍 포함] http://cafe.naver.com/booheong/85702

4편 송사 간신열전 장방창(張邦昌) http://cafe.naver.com/booheong/140479

5편 송사 간신열전 황잠선(黃潛善) http://cafe.naver.com/booheong/141227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AE%8B%E5%8F%B2/%E5%8D%B7475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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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반신 묘부(苗傅) 열전/ 유정언(劉正彥) 부기(附) 中

康履得黃卷小文書,有兩統制作「田」、「金」字署卷末,田乃苗,金乃劉也。

於是頗泄賊謀,以告淵,淵伏兵天竺。

明日,賊黨亦伏兵城北橋下,俟淵退朝,誣以結宦官謀反,正彥手殺淵,以兵圍履第,分捕內官,凡無須者盡殺之,揭淵首,引兵犯闕。

中軍統制吳湛守宮門,潛與傅通,導其黨入奏曰:

「苗傅不負國,止爲天下除害。」

知杭州康允之聞變,率從官扣閽,請帝御樓,百官皆從。

殿帥王元大呼聖駕來,傅見黃屋,猶山呼而拜。

帝憑闌呼二賊問故,傅厲聲曰:

「陛下信任中官,軍士有功者不賞,私內侍者即得美官。

   黃潛善、汪伯彥誤國,猶未遠竄。

   王淵遇敵不戰,因友康履得除樞密。

   臣立功多,止作遙郡團練。

   已斬淵首,更乞斬康履、藍珪、曾擇以謝三軍。」

   帝諭以當流海島,可與軍士歸營,且曰:

「已除傅承宣使、御營都統制,正彥觀察使、御營副都統制。」

賊不退。

帝問百官計安出,浙西安撫司主管機宜文字時希孟曰:

「禍由中官,不悉除之,禍未已也。」

帝曰:

「朕左右可無給使耶?」

軍器監葉宗諤曰:

「陛下何惜康履。」

遂命吳湛捕履,得於清漏閣承塵中。

傅即樓下腰斬履。

傅猶肆惡言,謂

「帝不當即大位,淵聖來歸,何以處也?」

帝使朱勝非縋樓下曲諭之。

傅請隆祐太后同聽政及遣使與金議和。

帝許諾,即下詔請太后垂簾。

賊聞詔不拜,曰:

「自有皇太子可立。」

張逵曰:

「今日之事,當爲百姓社稷計。」

時希孟曰:

「宜率百官死社稷,否則從三軍之請。」

通判杭州事章誼叱之曰:

「何可從三軍邪!」

帝徐謂勝非曰:

「朕當退避,須太后命。」

勝非謂不可。

顏岐曰:

「得太后親諭之,則無詞矣。」

강리(康履)가 황권(黃卷/책)과 작은 문서(文書)를 득(得)하였는데,

두개 모두「전(田)」과 「금(金)」자(字)로  권말(卷末/책의 말미)에 서(署/수결)로 제작(制作)함이 있었는데,

전(田)은 곧 묘(苗)이고, 금(金)은 곧 유(劉)였다.

이에 자못 적모(賊謀/반란 모의)가 설(泄/샘, 알려짐)하였는데, 왕연(淵)에게 고(告)함으로써,

왕연(淵)이 천축사(天竺)에 복병(伏兵/병을 매복함)하였다.

명일(明日/다음 날)에, 적당(賊黨) 역시(亦) 성(城) 북쪽(北)의 교하(橋下/다리 밑)에 복병(伏兵)하였는데,

왕연(淵)이 퇴조(退朝/퇴청)함을 사(俟/기다림)하였다가,

환관(宦官)과 결탁(結)함으로써 모반(謀反)한다 무고(誣)하고, 유정언(正彥)이 왕연(淵)을 수살(手殺/직접 죽임)하였고,

병(兵)으로써 강리(履)의 제(第/저택)을 포위(圍)하고, 나누어 내관(內官)을 체포(捕)하였는데,

무릇 수염(須)이 없는 자(者)는 모두 살해(殺)되었으며, 

왕연(淵)의 목을 게(揭/높이 듦)하였고, 인병(引兵/병력을 이끎)하여 궐(闕)을 범(犯)하였다.

중군통제(中軍統制) 오담(吳湛)이 궁문(宮門)을 수(守/지킴)하였는데, 은밀히 묘부(傅)와 더불어 통(通)하였고,

그 도당(黨)을 인도(導)하여 들어가 주(奏/아룀)하여 말하길

「묘부(苗傅)는 부국(負國/나라를 저버림)하지 않았고,

   천하(天下)를 위하여 제해(除害/해로운 것을 제거함)함에 그칠 것이나이다.」

지항주(知杭州) 강윤지(康允之)가 변(變)을 듣고는, 종관(從官)을 인솔(率)하여 구혼(扣閽/궁문을 두드림)하여, 

황제(帝)의 어루(御樓/누각으로 거둥함)를 청(請)하였고, 백관(百官)이 모두 따라갔다.

전수(殿帥) 왕원(王元)이 성가(聖駕/임금의 어가)가 옴을 대호(大呼/크게 소리침)하였고,

묘부(傅)가 황옥(黃屋/임금의 수레)을 보고는, 오히려 산호(山呼/만세를 외침)하고는 배(拜/절함)하였다.

황제(帝)가 빙난(憑闌/난간에 기댐)하고는 이적(二賊/묘부와 유정언)을 불러 문고(問故/연고를 물음)하였는데,

묘부(傅)가 여성(厲聲/언성을 높여 큰 소리를 지름)하여 말하길

「폐하(陛下)는 중관(中官/내시)을 신임(信任)하고, 군사(軍士)로 공(功)이 있는 자는 상(賞)을 주지 않으니,

   내시(內侍)와 사적(私)으로 통하는 자(者)는 곧 미관(美官/좋은 관직)을 득(得)하나이다.

   황잠선(黃潛善)과 왕백언(汪伯彥)이 오국(誤國/나라를 그릇되게 함)하였는데, 

   오히려 원찬(遠竄/먼 곳으로 귀양을 보냄)에 그치었나이다.

   왕연(王淵)은 우적(遇敵/적을 만남)하면 부전(不戰/싸우지 않음)하였는데도,

   강리(康履)와 우(友/사귐)함으로 인(因)하여 추밀(樞密)에 제수(除)됨을 득(得)하였나이다.

   신(臣)은 공(功)을 많이 세웠는데도, 요군(遙郡/먼 고을)의 단련(團練)로 만드는데 그치었나이다.

   이미 왕연(淵)을 참수(首)하였고, 다시 강리(康履), 남규(藍珪), 증택(曾擇)을 참(斬)하여 

   이로써 삼군(三軍)에 사례(謝)하길 바라나이다.」

황제(帝)가 마땅히 해도(海島/섬)로 유배(流)한다 유(諭/타이름)하였고,

더불어 군사(軍士)는 귀영(歸營/군영으로 돌아감)함이 옳다 하였는데, 또 말하길

「이미 묘부(傅)는 승선사(承宣使)와 어영도통제(御營都統制)를, 유정언(正彥)은 관찰사(觀察使)와 

   어영부도통제(御營副都統制)를 제수(除)하였노라.

적(賊)이 불퇴(不退/물러나지 않음)하였다.

황제(帝)가 백관(百官)에게 안출(安出/안전하게 나가게 함)의 계책(計)을 물었는데,

절서안무사(浙西安撫司) 주관(主管) 기의문자(機宜文字) 시희맹(時希孟)이 말하길

「화(禍)가 중관(中官/내시)으로 말미암았으니, 모두 내주지 않으면, 화(禍)가 미이(未已/그치지 않음)할 것이옵니다.」

황제(帝)가 말하길

「짐(朕)의 좌우(左右)에 가히(可) 급사(給使/호종관)가 없지 않느냐?」

군기감(軍器監) 섭종악(葉宗諤)이 말하길

「폐하(陛下)는 어찌하여 강리(康履)를 석(惜/아낌) 하나이까?

마침내 명(命)하여 오담(吳湛)이 강리(履)를 체포(捕)하였고, 

청누각(清漏閣) 승진(承塵/누각의 천장) 중(中)에서 득(得/얻음)하였다.

묘부(傅)가 즉시(即) 누각(樓) 아래에서 강리(履)를 요참(腰斬/허리를 자름)하였다.

묘부(傅)가 오히려 방자하게 악언(惡言/나쁘게 말함)하고는 이르길

「황제(帝)는 부당(不當)하게 대위(大位)에 즉위(即)하였는데, 연성(淵聖/흠종)께서 내귀(來歸/돌아옴)한다면,

   어찌 처리(處)하실 겁니까?」

황제(帝)가 주승비(朱勝非)로 하여금 누각(樓) 아래로 줄을 타고 내려가 곡유(曲諭/간곡하게 타이름)하게 하였다.

묘부(傅)가 융우태후(隆祐太后) 동청정(同聽政/수렴청정)과 더불어 

금(金)에 의화(議和/화친을 의논함)의 사신을 보낼 것을 청(請)하였다.

황제(帝)가 허락(許諾)하였고, 즉시(即) 하조(下詔/조서를 내림)하여 태후(太后)의 수렴(垂簾)을 청(請)하였다.

적(賊)이 조서(詔)를 듣고도 불배(不拜/절하지 않음)하고는, 말하길

「본래 세울 만한 황태자(皇太子)가 있소!」

장규(張逵)가 말하길

「금일(今日)의 일은, 당연히(當) 백성(百姓)과 사직(社稷)을 위한 계책(計)입니다.」

시희맹(時希孟)이 말하길

「마땅히 백관(百官)을 인솔(率)하여 사직(社稷)을 죽이던가, 아니라면 곧 삼군(三軍)의 청(請)을 따라야 합니다.」

통판항주사(通判杭州事) 장의(章誼)가 질(叱/꾸짖음)하여 말하길

「어찌 삼군(三軍)을 따를 수 있는냐?」

황제(帝)가 서위(徐謂/천천히 일컬음)하여 주승비(勝非)에게 말하길

「짐(朕)이 당연히(當) 퇴피(退避/물러남)할 것이니, 태후(太后)의 명(命)을 수(須/기다림)하겠노라.

주승비(勝非)가 불가(不可)하다 일컬었다.

안기(顏岐)가 말하길

「태후(太后)의 친유(親諭/친히 교지를 내림)를 득(得/얻음)한다면, 곧 무사(無詞/말이 없음)할 것입니다.」



강리가 책과 문서를 얻었는데 두 권에 모두 <전(田>과 <금(金)> 글자가 책 말미에 수결로 쓰여 있었고

전(田)은 곧 묘(苗)이고 금(金)은 곧 유(劉)였다.

이에 자못 반란 모의가 새게 되었는데 강리가 왕연에게 고하여 왕연이 천축사에 병을 매복하였다.

다음 날에 반란군이 또한 성 북쪽 다리 밑에 매복하여 왕연이 퇴청할 때를 기다렸고

환관과 결탁하여 모반한다 무고하고 유정언이 직접 왕연을 죽였고

군사를 동원하여 강리의 저택을 포위하고 나누어 내관을 체포하게 하였는데 무릇 수염이 없는 자는 모두 살해되었으며

왕연의 목을 높이 들고 병력을 이끌고 궐을 범하였다.

중군통제 오담이 궁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은밀히 묘부와 더불어 통하였고 그 도당을 인도하여 들어가 아뢰어 말하길

  <묘부는 나라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천하를 위하여 해로운 것을 제거한 것이나이다.>

지항주 강윤지가 변을 듣고는 따르는 관리를 인솔하여 궁문을 두드렸고

황제가 누각으로 거둥할 것을 청하였고 백관이 모두 따라갔다.

전수 왕원이 어가가 온다고 크게 소리쳤고 묘부가 어가를 보고는 오히려 만세를 외치고 절하였다.

황제가 난간에 기대 이적(묘부와 유정언)을 불러 연고를 물었는데 묘부가 언성을 높여 큰 소리를 지르며 말하길

  <폐하는 내시를 신임하고 군사로 공이 있는 자는 상을 주지 않으니 

   내시와 사적으로 통하는 자는 곧 좋은 관직을 얻었나이다.

   황잠선과 왕백언이 나라를 그르쳤는데도 오히려 유배에 그치었나이다.

   왕연은 적을 만나면 싸우지 않았는데도 강리와 교우함으로 인하여 추밀에 제수됨을 득하였나이다.

   신은 공을 많이 세웠는데도 먼 고을의 단련사에 그치었나이다.

   이미 왕연을 참수하였고 다시 강리, 남규, 증택을 참하여 이로써 삼군에 사례하길 바라나이다.>

황제가 마땅히 이들을 섬으로 유배 보내겠다 타이르고 더불어 군사는 군영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 하며 또 말하길

  <이미 묘부는 승선사와 어영도통제를, 유정언은 관찰사와 어영부도통제를 제수하였노라.>하였으나

적이 물러나지 않았다.

황제가 백관에게 반란군을 안전하게 나가게 할 계책을 물었는데 절서안무사 주관 기의문자 시희맹이 말하길

  <화가 내시로 말미암았으니 모두 내주지 않으면 화가 그치지 않을 것이옵니다.>

황제가 말하길

  <짐의 좌우에 가히 급사(호종관)가 없지 않으냐?>

군기감 섭종악이 말하길

  <폐하는 어찌하여 강리를 아끼시나이까?>

마침내 명하여 오담에게 강리를 체포하게 하였고 청누각의 천장 안에서 강리를 발견했다.

묘부가 즉시 누각 아래에서 강리의 허리를 잘라 죽였다.

묘부가 오히려 방자하게 악설하기를

  <황제는 부당하게 제위에 즉위하였는데 연성(흠종)께서 돌아오신다면 어찌 처리하실 겁니까?>

황제가 주승비로 하여금 누각 아래로 줄을 타고 내려가 간곡하게 타이르게 하였다.

묘부가 융우태후가 수렴청정하고 금나라에 화친 사자를 보낼 것을 청하였다.

황제가 허락하였고 즉시 조서를 내려 태후의 수렴을 청하였다.

적이 조서를 듣고도 절하지 않고 말하길

  <본래 세울 만한 황태자가 있소!>하였다.

장규가 말하길

  <금일의 일은 당연히 백성과 사직을 위한 계책입니다.>

시희맹이 말하길

  <마땅히 백관을 인솔하여 사직을 없애던가, 아니라면 곧 삼군의 청을 따라야 합니다.>

통판항주사 장의가 꾸짖어 말하길

  <어찌 삼군을 따를 수 있는냐?>

황제가 천천히 일컬어 주승비에게 말하길

  <짐이 마땅히 물러날 것이니 태후의 명을 기다리겠노라!>

주승비가 불가하다 일컬었다.

안기가 말하길

  <태후의 친필 교지를 얻는다면 곧 말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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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전문 고종中

묘부의 속관(屬官) 장규(張逵)가 말하기를,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요, 군주는 가볍습니다. 오늘의 일은 마땅히 백성과 사직을 위한 것입니다.

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대중들이 모두 경악하여 낯빛이 변하였다. 

간의대부(諫議大夫) 정각(鄭殼)이 장규를 꾸짖어 말하기를, 

“이 무슨 패역무도한 말인가? 지금 이때를 맞아서 국난(國難)에 목숨 바칠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주승비가 다시 고종에게 아뢰었다. 

고종이 말하기를, 

“짐은 마땅히 물러나 피할 것이다. 다만 태후께서 친히 쓰신 조서를 기다리고 있다.”

라고 하였다.

이내 안기(顏岐)를 보내어 대궐 안에 들어가서 태후께 누각에 행차하시도록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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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129년 3월 4일 내시 강리는 묘부의 반역 모의가 담긴 서책을 얻게 되어 왕연에게 이를 대비하게 하였다.

이에 왕연은 천축사에 군사를 매복하였으나 다음날 3월 5일에 반란군이 먼저 움직여

퇴청하는 왕연을 성북쪽 다리 밑에서 매복하였다가 급습하였다.

유정언이 직접 왕연의 목을 베고 반란군은 곧장 궁궐로 향했다.

이때 황궁의 수비를 맡고 있던 중군통제 오담이 묘부의 쿠데타에 동조하여 황궁문을 열어주고

고종을 만나 묘부가 구국을 위해 일어난 것이라고 두둔한다.

고종은 누각 위에 올라 묘부를 설득하였는데, 묘부는 고종의 실책을 나무라며 환관을 내놓으라고 위협한다.

이에 강리를 내어주자 묘부가 허리를 잘라 죽였다.

강리를 죽이고도 묘부는 물러나지 않았고 장차 흠종이 금나라에서 돌아오면 고종은 어찌하겠느냐고 소리치고

고종의 퇴위와 태후의 수렴청정을 주장했다.

게다가 장규는 백성이 가장 중하고 임금이 가장 가볍다고 말하며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이에 고종은 태후의 명을 기다리겠다 말한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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