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반역열전(6)묘부/유정언-3부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송사의 간신(姦臣)과 반신(叛臣) 열전을 번역해 보고자 합니다.


1부 꿈틀대는 쿠데타 모의 http://cafe.naver.com/booheong/151955

2부 백성이 임금보다 중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1970



연재 예정 인물

채경(蔡京), 곽약사(郭藥師), 동관(童貫)채변(蔡卞), 채유(蔡攸), 채소(蔡翛), 채화(蔡崈)

조량사(趙良嗣), 장각(張覺), 황잠선(黃潛善), 왕백언(汪伯彥), 진회(秦檜)

장방창(張邦昌), 유예(劉豫), 묘부(苗傅), 유정언(劉正彥)


1편 송사 간신열전 채경 http://cafe.naver.com/booheong/98808

2편 송사 간신열전 곽약사 http://cafe.naver.com/booheong/103206

3편 송사 환자열전 동관 [방랍 포함] http://cafe.naver.com/booheong/85702

4편 송사 간신열전 장방창(張邦昌) http://cafe.naver.com/booheong/140479

5편 송사 간신열전 황잠선(黃潛善) http://cafe.naver.com/booheong/141227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AE%8B%E5%8F%B2/%E5%8D%B7475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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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반신 묘부(苗傅) 열전/ 유정언(劉正彥) 부기(附) 中

時寒甚,門無簾幃,帝坐一竹椅。

既請太后,即起立楹側。

太后御肩輿出立樓前,二賊拜曰:

「今日百姓無辜,肝腦塗地,望太后主張。」

太后曰:

「道君皇帝任蔡京、王黼,更祖宗法,童貫起邊釁,所以致金人之禍。

今皇帝聖孝,無失德,止爲黃潛善、汪伯彥所誤,已加竄逐,統制獨不知邪?」

傅曰:

「臣等定議,必欲立皇子。」

后曰:

「今強敵在外,使吾一婦人簾前抱三歲兒,何以令天下?」

正彥等號泣固請,因呼其衆曰:

「太后既不允,吾當受戮。」

遂作解衣狀,后諭止之。

傅曰:

「事久不決,恐三軍生變。」

顧謂勝非曰:

「相公何無一言?」

勝非不能答。

適顏岐至自帝前,奏曰:

「皇帝令臣奏知太后,已決意從傅請矣,乞太后宣諭。」

后猶不許,傅等語益不遜。

太后還入門,帝遣人奏禪位,勝非泣曰:

「臣義當死,乞下詰二凶。」

帝屏左右語曰:

「當爲後圖,事不成,死未晚。」

勝非曰:

「王鈞甫,賊腹心也,適語臣曰:

 『二將忠有餘,學不足。』

  此可爲後圖耳。」

是日,帝幸顯忠寺。

甲申,太后垂簾,降赦,號帝爲睿聖仁孝皇帝,以顯忠寺爲睿聖宮,留內侍十五人,餘悉編置。

이때 한(寒/추위)가 심(甚)하였는데, 문(門)에 염위(簾幃/발과 휘장)가 없었고,

황제(帝)가 하나의 죽의(竹椅/대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태후(太后)를 청(請)하였고, 곧 영측(楹側/기둥 옆)에 기립(起立/일어나서 섬)하였다.

태후(太后)의 어견여(御肩輿/임금이 타는 가마)가 나와 누각(樓) 앞에 서자,

이적(二賊/묘부와 유정언)이 배(拜/절함)하고 말하길

「금일(今日) 백성(百姓)은 무고(無辜/잘못이나 허물이 없음)한데, 간뇌(肝腦/간과 뇌)를 도지(塗地/땅에 피칠함)하였으니,

   태후(太后)의 주장(主張)을 망(望/바람)하나이다.

태후(太后)가 말하길

「도군황제(道君皇帝/휘종)가 채경(蔡京)과 왕보(王黼)를 임명(任)하여, 조종(祖宗)의 법(法)을 변경(更)하였고, 

   동관(童貫)이 변흔(邊釁/변경의 전쟁)을 기(起/일으킴)하여, 이 까닭으로 금인(金人)의 화(禍)가 이르렀다.

   지금(今) 황제(皇帝)는 성효(聖孝/슬기롭고 효성이 있음)하고, 실덕(失德/덕을 잃음)하지 않았고,

   황잠선(黃潛善)과 왕백언(汪伯彥)이 잘못한 바에 그치는데, 

   이미 찬축(竄逐/먼 곳에 귀양 보내 쫓음)을 가(加)하였고,

   통제(統制)만 홀로 알지 못하오?」

묘부(傅)가 말하길

「신(臣) 등(等)의 의견(議)은 정(定)해졌으니, 필히(必) 황자(皇子)를 세우고자 합니다.」

태후(后)가 말하길

「지금(今) 강적(強敵)이 밖에 있는데, 나 일개 부녀자로 하여금 염전(簾前/수렴 앞)에서 

   삼세아(三歲兒)를 포(抱/안음)하고, 어찌 이로써 천하(天下)를 영(令)하겠소?」

유정언(正彥) 등(等)이 호읍(號泣/목 놓아 큰 소리로 욺)하고 고청(固請/굳이 청함)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그 무리가 호(呼/큰 소리를 지름)하여 말하길

「태후(太后)가 이윽고 불윤(不允/윤허하지 않음)하니, 우리는 당연히(當) 수륙(受戮/죽임을 받음)하겠다」

마침내 해의(解衣/옷을 벗음)의 형상(狀)을 작(作/만듦)하니, 태후(后)가 유(諭/타이름)하여 그치게 하였다.

묘부(傅)가 말하길

「일이 오랫동안 부결(不決/결정하지 못 함)한다면, 삼군(三軍)이 생변(生變/변이 생김)할까 두렵나이다.」

주승비(勝非)를 돌아보고 이르러 말하길

「상공(相公)은 어찌 한 마디 말도 없으시오?」

주승비(勝非)가 대답(答)이 불능(不能)하였다.

마침 안기(顏岐)가 황제(帝)의 앞으로부터 이르렀는데, 주(奏/아룀)하여 말하길

「황제(皇帝)께서 신(臣)으로 하여금 태후(太后)께 주지(奏知/아뢰어 알림)하게 하였는데,

  이미 묘부(傅)의 청(請)을 따르기로 결의(決意)하셨으니, 태후(太后)의 선유(宣諭/교지를 하교함)를 바라나이다.」

태후(后)가 오히려 불허(不許)하였고, 묘부(傅) 등(等)의 말이 불손(不遜/공손하지 못 함)이 익(益/더함)하였다.

태후(太后)가 돌아가 문(門)으로 들어가자, 황제(帝)가 견인(遣人/사람을 보냄)하여 선위(禪位/양위)를 주(奏/아룀)하였고,

주승비(勝非)가 읍(泣/욺)하며 말하길

「신(臣)이 당사(當死/죽어 마땅함)함이 옳으니, 바라옵건대 이흉(二凶/묘부와 유정언)에게 하힐(下詰/꾸짖음을 내림)하소서.」

황제(帝)가 좌우(左右)를 병(屏/물러남)하게 하고는 알리어 말하길

「당연히(當) 후도(後圖/후일을 도모함)할 것이며, 일이 불성(不成/되지 않음)하고, 죽어도 늦지 않소!」

주승비(勝非)가 말하길

「왕균보(王鈞甫)는, 적(賊)의 복심(腹心/측근)이니, 마침 신(臣)에게 알리어 말하길

 『두 장군(將)은 충(忠)은 유여(有餘/넉넉함)하나, 학식(學)은 부족(不足)합니다.』하였으니,

  이는 가히(可) 후도(後圖/훗날을 도모함)할만 하나이다.」

이날에, 황제(帝)가 현충사(顯忠寺)로 행차(幸)하였다.

갑신일(甲申)에, 태후(太后)가 수렴(垂簾)하였고, 항사(降赦/사면령을 내림)하였으며,

황제(帝)를 예성인효황제(睿聖仁孝皇帝)로 호칭(號)하였고, 현충사(顯忠寺)를 예성궁(睿聖宮)으로 하였고,

내시(內侍) 15인을 유(留/남김)하였으며, 나머지 모두는 편치(編置/죄를 진 관리를 평민으로 만들어 유배 보냄)하였다.



이때 한파가 심하였는데 문에 발과 휘장이 없었고 단지 황제가 대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태후를 청하였고 곧 기둥 옆에 일어나 서있었다.

태후의 가마가 누각 앞에 서자 이적(묘부와 유정언)이 절하고 말하길

  <금일 백성은 무고한데 간과 뇌를 땅에 피칠하였으니 태후의 주장을 바라나이다.>

태후가 말하길

  <도군황제(휘종)가 채경과 왕보를 임명하여 조종의 법을 변경하였고, 

   동관이 변경의 전쟁을 일으켜 이 까닭으로 금나라 군의 화가 이르렀다.

   지금 황제는 슬기롭고 효성이 있으며 덕을 잃지 않았으며

   잘못은 황잠선과 왕백언에 있는데 이미 먼 곳에 귀양을 보낸 것을 통제만 홀로 알지 못하오?>

묘부가 말하길

  <신 등의 의견은 정해졌으니 필히 황자를 세우고자 합니다.>

태후가 말하길

  <지금 강적이 밖에 있는데 일개 부녀자인 나로 하여금 수렴 앞에서 3세 박이 아이를 안고 어찌 천하를 호령하겠소?>

유정언 등이 목 놓아 큰 소리로 울며 굳게 청하였고 이로 인하여 그 무리가 큰소리를 지르며 말하길

  <태후께서 윤허하지 않으시니 우리는 마땅히 죽음을 받겠다!>

마침내 옷을 벗는 형상을 만드니 태후가 타일러 그치게 하였다.

묘부가 말하길

  <일이 오랫동안 결정되지 못한다면 삼군에 변이 생길까 두렵나이다.>

주승비를 돌아보고 이르러 말하길

  <상공은 어찌 한 마디 말도 없으시오?>

주승비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마침 안기가 황제의 앞으로부터 이르렀는데 아뢰어 말하길

   <황제께서 신으로 하여금 태후께 아뢰어 알리게 하셨는데

    이미 묘부의 청을 따르기로 결의하셨으니 태후께서 교지를 하교하시길 바라나이다>

태후가 오히려 불허하였고 묘부 등의 말이 더욱 불손해졌다.

태후가 돌아가 문으로 들어가자 황제가 사람을 보내 양위를 아뢰었고

주승비가 울며 말하길

  <신은 죽어 마땅하니 바라옵건대 제가 이흉(묘부와 유정언)을 꾸짖겠나이다!>

황제가 좌우를 물리고 말하길

  <마땅히 후일을 도모할 것이며 일이 되지 않은 뒤에 죽어도 늦지 않소!>

주승비가 말하길

  <왕균보는 적의 복심(측근)인데 마침 신에게 알리어 말하길

   [두 장군은 충(忠)은 넉넉하나, 학식은 부족합니다]하였으니

   이는 가히 훗날을 도모할만 하나이다.>

이날에 황제가 현충사로 행차하였다.

1129년 3월 6일에 태후가 수렴하였고 사면령을 내렸으며

황제를 예성인효황제로 호칭하였고 현충사를 예성궁으로 하였고

내시는 15명을 남기고 모두 유배 보냈다.


요약.

1129년 3월 5일 묘부의 쿠데타군은 고종의 퇴위와 융후태후의 수렴청정을 강요하였고

고종은 태후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한다.

태후가 반란군 앞에 당도하자 묘부는 백성이 무고하게 죽어나가는 것은 고종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태후는 잘못은 간신들에게 있다고 고종을 변호하나 묘부는 반드시 황자를 제위에 올리겠다고 위협한다.

태후가 거듭 거부하자 묘부는 쿠데타군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협박한다.

한편 주승비는 묘부와 유정언의 지략이 부족하다며 훗날을 도모하자고 고종에게 건의하고

고종은 사람을 태후에게 보내 퇴위를 요청한다.

이에 1129년 3월 6일 고종은 상황으로 퇴위하였고 3살 황태자 조부가 황제에 오른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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