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반역열전(6)묘부/유정언-5부 수도 탈환!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틈틈이 송사의 간신(姦臣)과 반신(叛臣) 열전을 번역해 보고자 합니다.


1부 꿈틀대는 쿠데타 모의 http://cafe.naver.com/booheong/151955

2부 백성이 임금보다 중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1970

3부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1991

4부 근왕병 집결! http://cafe.naver.com/booheong/152004


연재 예정 인물

채경(蔡京), 곽약사(郭藥師), 동관(童貫)채변(蔡卞), 채유(蔡攸), 채소(蔡翛), 채화(蔡崈)

조량사(趙良嗣), 장각(張覺), 황잠선(黃潛善), 왕백언(汪伯彥), 진회(秦檜)

장방창(張邦昌), 유예(劉豫), 묘부(苗傅), 유정언(劉正彥)


1편 송사 간신열전 채경 http://cafe.naver.com/booheong/98808

2편 송사 간신열전 곽약사 http://cafe.naver.com/booheong/103206

3편 송사 환자열전 동관 [방랍 포함] http://cafe.naver.com/booheong/85702

4편 송사 간신열전 장방창(張邦昌) http://cafe.naver.com/booheong/140479

5편 송사 간신열전 황잠선(黃潛善) http://cafe.naver.com/booheong/141227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AE%8B%E5%8F%B2/%E5%8D%B7475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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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반신 묘부(苗傅) 열전/ 유정언(劉正彥) 부기(附) 中

奏請誅浚以令天下。

詔責浚黃州團練副使,郴州安置。

鄭瑴上疏謂浚不當責,密遣所親謝嚮變姓名告浚宜持重緩進,賊當自遁,浚然之。

是日,賊遣苗瑀、馬柔吉將赤心隊及王淵舊部曲駐臨平,以拒勤王之師。

馮轓至臨平,見馬柔吉,同縋入城。

詰朝,與傅等議,傅曰:

「爾尚敢來邪?」

欲拘轓。

浚逆知之,謬爲書遺轓,言客自杭來,知二公于朝廷初無異心,殊悔前書失於輕易。

賊得浚遺轓書,大喜,乃釋轓。

壬寅,浚得謫命,恐將士解體,紿曰:

「趣召之命也。」

是日,呂頤浩至平江,與浚對泣曰:

「事不諧,不過赤族。」

乃命幕客李承造草檄告四方討賊。

賊聞勤王之兵大集,即呼馮轓、勝非議復辟。

癸卯,張俊發平江,劉光世繼之。

賊亦遣兵三千屯湖州小林。

丙午,頤浩、浚以大兵發平江。

詔以浚爲知樞密院事。

丁未,勝非召二凶至都堂議復辟,率百官三上表以請。

夏四月戊申朔,帝還宮,都人大說。

帝御前殿,詔尊太后曰隆祐皇太后,立嗣君爲皇太子。

辛酉,徙傅淮西制置使,正彥副之。

庚戌,詔復建炎號。

是日,頤浩、浚軍次臨平,苗翊、馬柔吉以兵阻河。

韓世忠率先鋒力戰,俊、光世乘之,翊敗走。

勤王兵進北關。

二凶詣都堂,趣得所賜鐵券,引精兵二千,夜開湧金門遁。

辛亥,頤浩、浚引勤王兵入城。

世忠手執王世修以屬吏。

장준(浚)을 주살(誅)하라 주청(奏請/상소를 올려 청함)하고는 이로써 천하(天下)를 이로써 영(令)으로 삼았다.

조(詔)하여 장준(浚)을 황주단련부사(黃州團練副使)로 책관(責)하고, 침주(郴州)에 안치(安置/유배)하게 하였다.

정곡(鄭瑴)이 상소(上疏)하여 장준(浚)을 책관(責)함은 부당(不當)하다 일컬었는데,

은밀히(密) 소친(所親/비슷한 나이로서 가깝게 지내는 사이)한 사향(謝嚮)을 보내

성명(姓名)을 바꾸어 장준(浚)에게 고(告)하여 마땅히 지중(持重/진중함)하게 완진(緩進/서서히 진군함)하면,

적(賊)은 당연히(當) 자둔(自遁/스스로 달아남)할 것이라 하니, 장준(浚)이 그렇다 여겼다.

이날에, 적(賊)이 묘우(苗瑀)와 먀유길(馬柔吉)을 보내 적심대(赤心隊)와 더불어 

왕연(王淵)의 구(舊) 부곡(部曲)을 장(將/인솔함)하여 임평(臨平)에 주둔(駐)하여,

이로써 근왕(勤王)의 군사(師)를 거(拒/막음)하게 하였다.

풍번(馮轓)이 임평(臨平)에 이르러, 마유길(馬柔吉)을 보고는, 함께 줄을 매달아 입성(入城)하였다.

힐조(詰朝/다음날 아침)에, 묘부(傅) 등(等)과 함께 의논(議)하였는데, 묘부(傅)가 말하길

「너는 오히려 감히(敢) 왔느냐?」

풍번(轓)을 구(拘/체포함)하고자 하였다.

장준(浚)이 역지(逆知/미리 앎)하여, 속여 글을 써 풍번(轓)에게 보냈는데,

말하길 객(客/손님)이 항주(杭)로부터 왔는데,

이공(二公/묘부와 유정언)이 처음부터 조정(朝廷)에 이심(異心/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특히 경이(輕易/빠르게 바꿈)한 전서(前書/이전의 서신)의 실(失/오인함)을 후회(悔)한다 하였다.

적(賊)이 장준(浚)이 보낸 풍번(轓)의 서신(書)을 득(得)하고, 대희(大喜/크게 기뻐함)하였고,

곧 풍번(轓)을 석방(釋)하였다.

임인일(壬寅)에, 장준(浚)이 적명(謫命/유배의 명령)을 득(得)하였고, 

장사(將士)가 해체(解體/단체가 흩어짐)할까 두려워, 태(紿/속임)하여 말하길

「촉소(趣召/서둘러 부름)의 명(命)이다.」

이날에, 여이호(呂頤浩)가 평강(平江)에 이르렀는데, 장준(浚)과 더불어 대읍(對泣/마주 보고 욺)하며 말하길

「일이 부해(不諧/맞지 않음)한다면, 적족(赤族/멸족)에 불과(不過)하다.

이에 막객(幕客/막료) 이승조(李承造)에게 명(命)하여 격문(檄)을 초(草/초안을 씀)하게 하여

사방(四方)에 토적(討賊/역적을 토벌함)을 고(告)하게 하였다.

적(賊)이 근왕(勤王)의 병(兵)이 대집(大集/크게 모임)함을 듣고는, 

즉시(即) 풍번(馮轓)과 주승비(勝非)를 호출(呼)하여 복벽(復辟/복위)을 의논(議)하였다.

계묘일(癸卯)에, 장준(張俊)이 평강(平江)을 출발(發)하였고, 유광세(劉光世)가 계(繼/이어나감)하였다.

적(賊) 역시(亦) 병(兵) 3천을 보내 호주(湖州) 소림(小林)에 주둔(屯)하였다.

병오일(丙午)에, 여이호(頤浩)와 장준(浚)이 대병(大兵)으로써 평강(平江)을 출발(發)하였다.

조(詔)하여 장준(浚)을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삼았다.

정미일(丁未)에, 주승비(勝非)가 이흉(二凶/묘부와 유정언)을 소환(召)하여 도당(都堂)에 이르러 복변(復辟/복위)를 의논(議)하였고,

백관(百官)을 인솔(率)하여 세 번 상표(上表/표문을 올림)하여 이로써 청(請)하였다.

여름 4월 초하루 무신일(戊申)에, 황제(帝)가 환궁(還宮)하였고, 도인(都人/도성 백성)이 대열(大說/크게 기뻐함)하였다.

황제(帝)가 전전(前殿/정전)에 어(御/거둥)하여, 조(詔)하여 태후(太后)를 존(尊/높임)하여 융우황태후(隆祐皇太后)라 불렀으며,

사군(嗣君/왕위를 이은 임금)을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았다.

신유일(辛酉)에, 묘부(傅)를 회서제치사(淮西制置使)로 사(徙/옮김)하였고, 유정언(正彥)을 부(副)하게 하였다.

경술일(庚戌)에, 조(詔)하여 건염(建炎)의 연호(號)를 회복(復)하였다.

이날에, 여이호(頤浩)와 장준(浚)의 군(軍)이 임평(臨平)에 차(次/머묾)하였고,

묘익(苗翊)과 마유길(馬柔吉)이 병(兵)으로써 조하(阻河/강을 막음)하였다.

한세충(韓世忠)이 선봉(先鋒)을 인솔(率)하여 역전(力戰/힘껏 싸움)하였고,

장준(俊)과 유광세(光世)가 승(乘/승기를 탐)하니, 묘익(翊)이 패주(敗走/패하여 달아남)하였다.

근왕병(勤王兵)이 북관(北關)으로 진군(進)하였다.

이흉(二凶/묘부와 유정언)이 도당(都堂)에 예(詣/이름)하여, 

재촉(趣)하여 철권(鐵券/면사권이 적힌 서책)의 하사(賜)를 득(得)하였고,

정병(精兵) 2천을 인솔(引)하여, 야밤(夜)에 용금문(湧金門)을 열고 둔(遁/달아남)하였다.

신해일(辛亥)에, 여이호(頤浩)와 장준(浚)이 근왕병(勤王兵)을 인솔(引)하여 입성(入城)하였다.

한세충(世忠)이 왕세수(王世修)를 수집(手執/몸소 잡음)하여 이로써 속리(屬吏/소속 관리)에게 넘겼다.





1129년 3월 23일 묘부는 장준을 주살하라 주청하고는 이로써 천하에 영을 포고했다.

조서를 내려 장준(문관)을 황주단련부사로 책관하고 침주에 유배하게 하였다.

정곡이 상소를 올려 장준(문관)을 책관함은 부당하다 말하고 은밀히 친구 사향을 보내 이름을 바꾸고 장준(문관)에게 고하여 

마땅히 진중하게 서서히 진군한다면 적은 당연히 스스로 달아날 것이다 하니 장준(문관)이 그렇다 여겼다.

이날 묘부가 묘우와 먀유길을 보내 적심군과 함께 왕연의 옛 부대를 인솔하여 임평에 주둔하고 근왕병을 막게 하였다.

풍번이 임평에 이르러 마유길을 보고는 줄을 타고 성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에 묘부 등과 함께 의논하였는데 묘부가 말하길

  <너는 어찌 감히 왔는가?>

하며 풍번을 체포하고자 하였다.

장준(문관)이 미리 알고 속이는 서신을 풍번에게 보냈는데 말하길

  <손님이 항주(조정)로부터 왔는데 이공(묘부와 유정언)이 처음부터 조정에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특히 이전의 보낸 서신이 실수임을 알고 후회하여 빠르게 다시 서신을 보내오>하였다.

적이 장준(문관)이 보낸 풍번의 서신을 얻고는 크게 기뻐하고는 곧 풍번을 석방하였다.

3월 24일에 장준이 유배의 명이 담긴 조서를 받게 되었는데 군대가 흩어질까 두려워 속여 말하길

  <빨리 행재로 오라는 명이다!> 하였다.

이날에 여이호가 평강에 이르렀는데 장준(문관)과 더불어 마주 보고 울며 말하길

  <일이 잘못되어도 멸족하는데 불과합니다!>

이에 막료 이승조에게 명하여 격문의 초안을 쓰게 하고 사방에 역적을 토벌한다 고하게 하였다.

적이 근왕병이 크게 모였다는 것을 듣고는 즉시 풍번과 주승비를 호출하여 고종의 복위를 의논하였다.

3월 25일에 장준(무관)이 평강을 출발하였고 유광세가 뒤따라 갔다.

적 역시 병력 3천을 보내 호주 소림에 주둔하였다.

3월 28일에 여이호와 장준(문관)이 대군으로 평강을 출발하였는데,

조서를 내려 장준(문관)을 지추밀원사로 삼았다.

3월 29일에 주승비가 이흉(묘부와 유정언)을 소환하여 도당에 이르러 복위을 의논하였고, 

백관을 인솔하여 세 번 표문을 올려 이로써 청하였다.

4월 1일에 황제가 환궁하니 도성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황제가 정전에 거둥하여 조서를 내려 태후를 융우황태후로 높였으며 조부를 황태자로 삼았다.

4월 2일에 묘부를 회서 제치사로 옮기고 유정언을 부사로 삼았다.

4월 3일에 조서를 내려 건염의 연호를 복구하였다.

이날에 여이호와 장준(문관)의 군이 임평에 머물렀고 묘익과 마유길이 병력으로 강을 막았다.

한세충이 선봉을 인솔하여 힘껏 싸웠고 장준(무관)과 유광세가 승기를 타서 공격하니 묘익이 패하여 달아났다.

근왕병이 북관으로 진군하였다.

이흉(묘부와 유정언)이 도당에 이르러 철권의 하사를 재촉하여 받아내고는 정병 2천을 인솔하여

야밤에 용금문을 열고 달아났다.

4월 4일에 여이호와 장준(문관)이 근왕병을 인솔하여 입성하였다.

한세충이 왕세수를 직접 잡아 관리에게 넘겼다.



요약.

1129년 3월 23일 장준(문관)은 근왕병을 집결시키고 묘부에게 선전포고문을 보낸다.

이에 묘부는 장준(문관)의 주살령을 천하에 공표하고 

고종을 천하병마대원수 강왕으로, 황태자를 황태질로 폐위하고 고종으로 하여금 근왕병을 막고자 한다.

그러나 간의대부 정각이 극렬하게 반대하자 묘부는 이를 포기하고

장준(문관)에게 암살자를 보내고 근왕병의 내부 분열을 꾀하기 위해 

여이호를 추밀사로 삼아 장준(문관)의 병권을 회수하라 명한다.

한편 장준(무관)과 한세충을 모두 절도사로 임명하고 조정에 투항하라 명한다.

근왕병이 진군하자 묘부는 묘우와 마유길에게 적심군(연지역 향병)을 이끌고 임평에 가서 근왕병을 막으라 한다.

3월 24일 장준(문관)에게 유배령이 담긴 조서가 내려오자 장준(문관)은 이를 비밀에 부친다.

마침내 여이호의 군대가 평강에 도착하자 장준(문관)은 사방에 격문을 보내고 묘부 토벌령을 선포한다.

3월 28일 대규모 근왕병이 몰려오자 묘부는 다급하여 장준(문관)을 추밀원사에 임명하고 고종을 복위시킨다.

4월 3일 근왕병과 쿠데타군이 임평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는데 한세충이 선봉에 서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도강하자 한세충은 몸에 화살을 맞지 않은 병사는 모조리 참할 것이라며 군을 독려하고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며 돌격하고 이어서 장준(무관)과 유광세의 부대가 공격하니 드디어 쿠데타군이 무너졌다.

근왕군이 북관을 돌파하자 묘부와 유정언은 고종에게 달려가 양측 군대의 맹약을 주선해 달라고 청하면서 

철권(면사권) 하사를 독촉하였다.

고종이 묘부를 위로하며 철권을 하사하자 묘부와 유정언은 정병 2천을 이끌고 성을 빠져나갔다.

마침내 4월 4일 근왕병이 항주성에 입성하였고 한세충은 왕세수를 체포했다.

여이호와 장준(무관)이 고종을 만나 엎드려 죄를 청하자 고종은 차고 있던 옥대를 풀어 장준에게 하사하였다.

한세충이 고종을 알현하자 고종은 한세충의 손을 잡고 대성통곡하며 중군통제 오담의 배반을 알렸다.

한세충은 즉시 오담을 만나 손을 잡고 인사하는 척하며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왕세수와 함께 참수하여 저자에 효시하였다.


-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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