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고종 국역 30부-수도 탈환!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송사 휘종, 흠종 본기를 국역하였는데요, 틈틈히 남송 1대 황제 고종의 본기도 국역코자 합니다.


01부-천하병마 대원수부를 열고 근왕병을 이끌다!

02부-북송멸망&괴뢰국 대초&근왕병 백만명

03부-강왕에게 몰려드는 북송의 신하들

04부-남송(南宋) 건국

05부-무너진 나라를 재정비하다.

06부-대초 황제 장방창을 참역죄로 유배보내다!

07부-96만 명의 군인을 편성하다

08부-고종<중원에 남아 금과 결전하겠노라!>

09부-휘종<아들아 나를 구해다오>

10부-충의지사 유생을 죽이다.

11부-계속되는 반란과 금의 재침공

12부-장방창 사사와 악비의 등장

13부-걷잡을 수 없는 반란군과 도주하는 고종

14부-반란군을 선참후계하라!

15부-파죽지세 금군의 재침과 반란군 진압

16부-다시 무너지는 송나라

17부-황제여 개봉으로 돌아오소서!

18부-지방관에게 편의종사권을 부여하다

19부-패착! 문가사에서 대패하다

20부-불가피한 화전양면책

21부-전함을 건조하라!

22부-도하!도하!도하! 종택 죽다!

23부-고려 인종<여진족은 수전에도 능하다!>

24부-양산박 송강의 부하 사빈을 죽이다.

25부-고종 코앞까지 닥친 금나라 군

26부-풍전등화!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다.

27부-전광석화 같은 고종의 도주와 불타는 양주성

28부-묘부의 군사 쿠데타!<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29부-한세충이 온다!


송사 흠종 조환 국역 1부~17부


송사 고종 원문 출처 :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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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戌,復紀年建炎。
命張浚知樞密院事,苗傅、劉正彥並檢校少保。
呂頤浩、張浚軍次臨平,苗翊、馬柔吉拒戰不勝,傅、正彥引兵二千夜遁。
辛亥,皇太后撤簾。
呂頤浩等入見。
傅犯富陽、新城二縣,遣統制王德、喬仲福追擊之。
癸未,朱勝非、顏岐、王孝迪、張澂、路允迪俱罷。
以呂頤浩為尚書右僕射兼中書侍郎,李邴尚書右丞,鄭鐧簽書樞密院事。
甲寅,以劉光世為太尉、禦營副使,韓世忠為武勝軍節度使、御前左軍都統制,張俊為鎮西軍節度使、
御前右軍都統制,勤王所僚屬將佐進官有差。
主管殿前司王元、左言並責官,英、賀州安置。
樞密都承旨馬瑗停官、永州居住。
吏部員外郎范仲熊、浙西安撫司主管機宜文字時希孟並除名,柳州、吉陽軍編管。
斬中軍統制吳湛、工部侍郎王世修於市。
贈王淵開府儀同三司。
乙卯,大赦。
舉行仁宗法度,應嘉祐條制與今不同者,自官制役法外,賞格從重,條約從寬。
罷上供不急之物。
元祐石刻黨人官職、恩數追復未盡者,令其家自陳。
許中外直言。
丁巳,禁內侍交通主兵官及饋遺假貸、借役禁兵、干預朝政。
庚申,詔尚書左右僕射並帶同中書門下平章事,改門下、中書侍郎為參知政事,省尚書左、右丞。
以李邴參知政事。
詔行在職事官各舉所知,並省館學、寺監等官。
苗傅犯衢州。
癸亥,以給事中周望為江、浙制置使。
丁卯,帝發杭州,留鄭鐧衛皇太后,以韓世忠為江、浙制置使,及劉光世追討傅、正彥。
己巳,詔:
傅、正彥、苗瑀、苗翊、張逵不赦,餘黨並原。
壬申,立子魏國公旉為皇太子。
赦傅党王鈞甫、馬柔吉罪,許其自歸。
丙子,範瓊自光、蘄引兵屯洪州。
是月,劉文舜寇濠州。
西北賊薛慶襲據高郵軍。
경술일(庚戌)에, 다시 건염(建炎/남송 1대 황제 고종의 #1연호)을 기년(紀年/연호로 씀)하였다.
명(命)하여 장준(張浚)을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묘부(苗傅)와 유정언(劉正彥)을 모두 검교소보(檢校少保)로 삼았다.
여이호(呂頤浩)와 장준(張浚)의 군(軍)이 임평(臨平)에 차(次/머묾)하였는데,
묘익(苗翊)과 마유길(馬柔吉)이 거전(拒戰/막아 싸움)하였으나 불승(不勝/이기지 못함)하였고,
묘부(傅)와 유정언(正彥)이 병(兵) 2천을 인(引/이끎)하여 야둔(夜遁/야밤에 도주함)하였다.
신해일(辛亥)에, 황태후(皇太后)가 철렴(撤簾/수렴청정을 폐지함)하였다.
여이호(呂頤浩) 등(等)이 입현(入見/들어가 임금을 뵘)하였다.
묘부(傅)가 부양현(富陽)과 신성현(新城)의 2현(縣)을 범(犯)하였는데,
통제(統制) 왕덕(王德)과 교중복(喬仲福)을 보내 추격(追擊)하게 하였다.
계미일(癸未)에, 주승비(朱勝非), 안기(顏岐), 왕효적(王孝迪), 장징(張澂), 노윤적(路允迪)을 구파(俱罷/모두 파직함)하였다.
여이호(呂頤浩)를 상서우복사(尚書右僕射) 겸(兼) 중서시랑(中書侍郎)으로 삼고,
이병(李邴)을 상서우승(尚書右丞)으로, 정간(鄭鐧)을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로 삼았다.
갑인일(甲寅)에, 유광세(劉光世)를 태위(太尉)와 어영부사(禦營副使)로 삼고,
한세충(韓世忠)을 무승군(武勝軍) 절도사(節度使)와 어전좌군도통제(御前左軍都統制)로 삼고,
장준(張俊)을 진서군(鎮西軍) 절도사(節度使)와 어전우군도통제(御前右軍都統制)로 삼고,
근왕(勤王)의 소속(所)된 요속(僚屬/하급 관리)과 장좌(將佐/장교)는 유차(有差/차이를 둠)하게 진관(進官/관직을 올림)하였다.
주관전전사(主管殿前司) 왕원(王元)과 좌언(左言)을 모두 책관(責官/꾸짖고 관직에서 내침)하였고,
영주(英)와 하주(賀州)로 안치(安置/유배)하였다.
추밀도승지(樞密都承旨) 마원(瑗)을 정관(停官/벼슬을 중지함)하였고, 영주(永州)에 거주(居住)하게 하였다.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郎) 범중웅(范仲熊)과 절서안무사(浙西安撫司) 주관기의문자(主管機宜文字) 시희맹(時希孟)을 
모두 제명(除名/명부에서 이름을 빼어 버림)하였고, 
유주(柳州)와 길양군(吉陽軍)으로 편관(編管/지방 관리가 해당 지역의 유배 죄인을 관리함)하였다.
중군통제(中軍統制) 오담(吳湛)과 공부시랑(工部侍郎) 왕세수(王世修)를 시(市)에서 참(斬)하였다.
왕연(王淵)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추증(贈)하였다.
을묘일(乙卯)에, 대사(大赦/죄인을 크게 사면함)하였다.
인종(仁宗/북송 4대 황제 조정趙禎)의 법도(法度)를 거행(舉行/일으켜 햄함)하였고,
응당(應) 가우(嘉祐/북송 4대 황제 인종의 #9연호)의 조제(條制/법규와 제도)로 지금(今)과 더불어 같지 않은 것은,
관제(官制/관직의 제도)와 역법(役法/부역법) 외(外)로부터, 
상격(賞格/공로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상을 주는 규정)을 종중(從重/엄하게 함)하고,
조약(條約/법규)를 종관(從寬/넓게 쫓음)하였다.
불급(不急/긴급하지 않음)의 물건(物)을 상공(上供/중앙정부의 필요 물자를 지방에서 조달하는 제도)함을 파(罷/멈춤)하였다.
석각(石刻/돌에 글씨를 새김)한 원우(元祐/북송 7대 황제 철종의 #1연호) 당인(黨人)으로
관직(官職)과 은수(恩數/임금이 베푸는 특별한 은전)를 추복(追復/사후 원래의 직위로 회복시킴)이 미진(未盡/아직 충분하지 못함)한 자(者)는,
그 가문(家)으로 하여금 자진(自陳/스스로 진술함)하게 하였다.
중외(中外/천하)에 직언(直言)을 허(許)하였다.
정사일(丁巳)에, 내시(內侍)는 주병관(主兵官/병력을 주관하는 관리)과 교통(交通/친교를 맺음)하거나,
더불어 가대(假貸/곡식이나 돈 등을 빌려줌)를 궤유(饋遺/선물함)하거나,
금병(禁兵/궁중을 시위하는 병사)을 차역(借役/빌리고 부림)하거나,
조정(朝政)에 간예(干預/관계하여 참견함)하는 것을 금(禁)하였다.
경신일(庚申)에, 조(詔)하여 상서좌우복사(尚書左右僕射)는 모두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를 대동(帶同/겸직)하고,
문하시랑(門下)와 중서시랑(中書侍郎)을 고쳐 참지정사(參知政事)로 하고,
상서(尚書) 좌승(左)과 우승(右丞)을 성(省/살핌)하게 하였다.
이병(李邴)을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삼았다.
조(詔)하여 행재(行在/임금이 있는 곳)의 직사관(職事官/일을 맡은 관리)은 각각(各) 아는 자를 천거(舉)하고, 
아울러 곽학(館學)과 사감(寺監) 등(等)의 관직(官)을 성(省/살핌)하게 하였다.
묘부(苗傅)가 구주(衢州)를 범(犯)하였다.
계해일(癸亥)에, 급사중(給事中) 주망(周望)을 강(江)과 절(浙) 제치사(制置使)로 삼았다.
정묘일(丁卯)에, 황제(帝)가 항주(杭州)를 출발(發)하였고, 정간(鄭鐧)을 남겨 황태후(皇太后)를 호위(衛)하게 하였으며,
한세충(韓世忠)을 강(江)과 절(浙) 제치사(制置使)로 삼고,
유광세(劉光世)와 더불어 묘부(傅)와 유정언(正彥)을 추토(追討/추격하여 토벌함)하게 하였다.
기사일(己巳)에, 조(詔)하길
묘부(傅), 유정언(正彥), 묘우(苗瑀), 묘익(苗翊), 장규(張逵)는 불사(不赦/사면하지 않음)하고,
여당(餘黨/남은 무리)는 모두 원래(原)대로 하노라!
임신일(壬申)에, 황자 위국공(魏國公) 조부(旉)를 황태자(皇太子)로 세웠다.
묘부(傅)의 당(党) 왕균보(王鈞甫)와 마유길(馬柔吉)의 죄(罪)를 사면(赦)하고,
그 스스로 돌아옴을 허락하였다.
병자일(丙子)에, 범경(範瓊)이 광주(光)와 기주(蘄)로부터 인병(引兵/병을 이끎)하고 홍주(洪州)에 주둔(屯)하였다.
이달에, 유문순(劉文舜)이 호주(濠州)를 구(寇/약탈함)하였다.
서북(西北)의 도적(賊) 설경(薛慶)이 고우군(高郵軍)을 기습(襲)하여 근거(據)로 삼았다. 



1129년 4월 03일에 다시 건염의 연호를 썼다.

명을 내려 장준(문관)을 지추밀원사로, 묘부와 유정언을 모두 검교소보로 삼았다.

여이호와 장준(문관)의 군이 임평에 머물렀는데, 묘익과 마유길이 막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묘부와 유정언이 병 2천을 이끌고 야밤에 도주하였다.

4월 04일에 황태후가 수렴청정을 폐지하였다.

여이호 등이 알현하였다.

묘부가 부양현과 신성현의 2현을 범하였는데 통제 왕덕과 교중복을 보내 추격하게 하였다.

4월 06일에 주승비, 안기, 왕효적, 장징, 노윤적을 모두 파직하였다.

여이호를 상서우복사 겸 중서시랑으로 삼고 이병을 상서우승으로, 정간을 첨서추밀원사로 삼았다.

4월 07일에 유광세를 태위와 어영부사로 삼고, 한세충을 무승군 절도사와 어전좌군도통제로 삼고,

장준(무관)을 진서군 절도사와 어전우군도통제로 삼고, 근왕의 소속된 하급 관리와 장교는 차이를 두어 관직을 올렸다.

주관전전사 왕원과 좌언을 모두 책관(꾸짖고 관직에서 내침)하였고, 영주와 하주로 유배 보냈다.

추밀도승지 마원을 정관(벼슬을 중지함)하였고 영주에 거주하게 하였다.

이부원외랑 범중웅과 절서안무사 주관기의문자 시희맹을 모두 제명(명부에서 이름을 빼어 버림)하였고 

유주와 길양군으로 유배 보냈다.

중군통제 오담과 공부시랑 왕세수를 저자에서 참하였다.

왕연을 개부의동삼사에 추증하였다.

4월 08일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인종의 법도를 거행하였고 응당 가우(인종의 #9연호)의 법규와 제도로 지금과 더불어 같지 않은 것은

관제(관직의 제도)와 역법(부역법)외로부터 상격(포상 규정)을 엄하게 하였고 법규를 넓게 쫓게 하였다.

긴급하지 않은 물건을 지방에서 조달하는 제도를 멈추게 하였다.

돌에 이름을 새긴 원우당 사람으로 관직과 은전을 추복(사후 원래의 직위로 회복시킴)이 미진한 자에게는 그 가문으로 스스로 진술하게 하였다.

천하에 직언을 허용하였다.

4월 10일에 내시는 주병관(군무를 주관하는 관리)과 친교를 맺거나 더불어 재물을 선물하거나 금군을 부리거나

조정에 참여하는 것을 금하게 하였다.

4월 13일에 조서를 내려 상서좌복사와 상서우복사는 모두 중서문하평장사를 겸직하고

문하시랑과 중서시랑을 고쳐 참지정사로 하고, 상서좌승과 상서우승이 살피게 하였다.

이병을 참지정사로 삼았다.

조서를 내려 행재(임금이 있는 곳)의 직사관(일을 맡은 관리)은 각각 아는 자를 천거하고 아울러 곽학과 사감 등의 관직을 살피게 하였다.

묘부가 구주를 범하였다.

4월 16일에 급사중 주망을 강, 절 제치사로 삼았다.

4월 20일에 황제가 항주를 출발하였고 정간을 남겨 황태후로 호위하게 하였으며 한세충을 강, 절 제치사로 삼아

유광세와 더불어 묘부와 유정언을 추격하여 토벌하게 하였다.

4월 22일에 조서를 내리길

  <묘부, 유정언, 묘우, 묘익, 장규는 사면하지 않고 남은 무리는 모두 원래대로 하노라!>

4월 25일에 황자 위국공 조부를 황태자로 세웠다.

묘부의 당여 왕균보와 마유길의 죄를 사면하고 그 스스로 돌아옴을 허락하였다.

4월 29일에 범경이 광주와 기주로부터 병을 이끌고 홍주에 주둔하였다.

이달에 유문순이 호주를 약탈하였다.

서북의 도적 설경이 고우군을 기습하여 근거로 삼았다.


요약.
1129년 4월 근왕병이 항주로 진격하자 묘부는 고종을 복위시킨다.
근왕병은 임평강을 건너 묘익군을 공격한다.
한세충이 선봉으로 묘익군을 격파하자 묘부는 철권을 강제로 얻어 군사 2천을 데리고 항주를 탈출한다.
입성한 근왕군은 배반자 왕세수와 오담을 처형하고 관리들에 대한 상벌을 내린다.
고종은 한세충과 유광세를 보내 묘부를 추격하게 한다.
 

-3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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