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초 군벌vs문신의 심각한 알력다툼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다들 아시다시피 남송초는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금이 재침하여 괴뢰국 초나라와 제나라를 연달아 세웠고

각지에서는 탈영병과 도적이 반란을 일으켜 무리가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기도 하였으며

양산박 송강의 부하였던 사빈은 관중에서 황제를 자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조정은 무너졌고, 군대는 흩어졌으며, 백성은 유리걸식하고 있던 최악의 상황이었지요.

강왕 조구가 천하병마대원수부를 열고 북송의 신하들을 끌어모아 남송을 개국하였으나

황잠선 같은 간신이 달라붙어 전횡을 일삼았고 황잠선이 퇴출되자 이번엔 강리 같은 환관이 득세하였습니다.

이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고종이 폐위되었다가 복위되는 묘유의 변까지 있었지요.


당시 남송은 금나라의 공격을 피해 남으로 남으로 조정을 옮겼는데

이에 따라 화북의 수많은 백성들이 조정을 따라 남진하였고 조정은 이들을 구휼하면서 군인으로 삼았습니다.

당연히 영토와 세수는 줄어들었고 전비 지출은 끝이 없는 상황이었지요.

세금의 대다수는 강남의 여러 주에서 각출되었는데 대부분이 군에 충당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군도 여력이 있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군벌들은 각자 무기를 마련하고 식량을 조달해야만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군벌들이 관청이나 민가를 습격하거나 지방 장관을 위협하여 식량을 빼앗아가는 일까지 종종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조정은 이 군벌들을 법에 따라 제재하지 못하였지요.

당장 군벌들이 있어야 금나라, 제나라, 반란군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장군들의 위세는 더욱 높아져 갔습니다.

특히나 묘부의 군부 쿠데타을 겪은 고종은 재상보다 군벌들에게 더 의지하게 되었고

이들에게 후한 은총을 내렸습니다.

한세충의 경우 제나라 토벌 대장으로 삼으면서 고종이 친필로 간절한 조서를 내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은 2만냥, 비단 2만필, 돈 100만 전, 쌀 28만석을 내려 반년치 군비로 충당하게 합니다.

조정은 군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남의 각 지역에 세금을 독려하지요.


군부의 위세가 점점 높아지자 이에 비례하여 조정의 문신들의 불만은 팽배해지기 시작하였는데요.

마침내 한림학사 왕조가 무신의 전횡을 막아달라 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왕조가 언급한 대략적인 군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습니다.

1. 황제가 재상들보다 군부에 의지한다.

2. 장군들이 재상을 깔보고 예가 없다.

3. 장군이 조정회의에 참여하면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따짐으로 엄정한 명령을 내릴 수가 없다.

4. 추밀원에서 장군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에 대한 대비책도 내놨는데요.

1. 황제가 장군들을 자주 만나면 안된다.

2. 장군들을 조정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3. 군부가 요청하는 전비를 무작정 내주면 안된다.

4. 장군들을 감시할 부장들을 파견하여 장군들의 병권을 줄이자.


이에 당연히 군부가 극렬히 반대하였고 문하성을 압박하여 문신을 비방하는 상소를 올리게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라를 망친것은 모두 문신이다.

2. 문신이 병권을 쥐고 군을 지휘하여 나라가 망했다.

3.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것은 모두 무신이다.

4. 배신하여 괴뢰국 초나라와 제나라의 황제가 된 자들은 모두 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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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전문(宋史全文) 中

한림학사(翰林學士) 왕조(汪藻)가 장수를 다루는 데 필요한 세 가지 말을 올렸는데, 

첫째는 법으로 보여 주는 것이고, 

둘째는 권력으로 운용하는 것이고, 

셋째는 분수로 분별하는 것이었다. 

대략 이르기를, 

“제장(諸將)들의 과실은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대신들을 대면하는 데에 몇 각(刻)에 불과하고, 제장들은 모두 궁중을 드나드는데, 

  묘당(廟堂 군주가 조회를 받거나 정사를 의논하는 전당(殿堂))은 모두 우러러 보는 곳입니다. 

  지금 제장들이 대부분 갑자기 알현하고, 곧바로 간편한 복장으로 친밀하게 앉았다가 대신을 보면 요우(僚友)처럼 여깁니다. 

  또 장수를 보내어 군대를 동원하면, 

  조서를 내려서 시종(侍從)에게 의논을 모으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광범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은 제장들이 있고, 또 제장들은 명을 따르는 사람들이니, 바로 그들을 국사의 모의에 참여하게 하면, 

  공사에 이롭고 사사로움에 이롭지 않은 것은 반드시 시행할 수 없을 것이라 할 것이고, 

  자기에게 편하고 국가에 편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없앨 수 없을 것이라고 하여, 

  칼날을 무릅쓰고 죽을 곳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장들은 마땅히 조정의 의례를 율(律)대로 하고 자주 편히 알현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정사당(政事堂)에 이르러서는 또한 조종(祖宗)의 고사(故事)가 있고, 또 의논에 참여하게 하는 경우가 아니면, 

  분수가 이미 바르게 정해져서 그 공을 책임지울 수 있으니, 

  도적을 막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며, 적을 방어하는 데에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재물 관리에 있어서는 백성들의 곤궁함이 골수에 사무쳤으니, 

  신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재물을 생산하라는 말을 하지 마시옵소서

  지금 국가의 소유는 불과 수십 주(州)이니, 

  이른바 생산은 반드시 이 수십 주의 백성들에게서 생산되는 것인데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오직 크게 절약하여야 거의 가능할 것입니다. 

  외부에서 절약할 것은 군대의 억지 청구이고, 내부에서 절약할 것은 군대의 광범한 취득입니다.”

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예로부터 병권을 남에게 맡긴 이는 근심을 남기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지금 제장들의 교만함을 추밀원(樞密院)에서 이미 제어하지 못하니, 

  마땅히 편비(偏裨 편장(偏將)과 비장(裨將)으로 장수의 보좌관) 10여 인을 정밀하게 택하여서 각각 병사 수천 명을 주어, 

  점차 제장들의 권한을 줄여 나가면, 이것은 만대의 이익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때 제장들 중에 유광세(劉光世)가 더욱 횡포하였으므로 왕조가 이러한 말을 한 것이었다.

왕조의 상소가 전해지자 제장들이 모두 분노하였고, 

문하성(門下省)으로 하여금 논(論)을 지어 문신(文臣)을 비방한 것이 있었는데, 

그 대략에 말하기를, 

“금일 나라를 그르치게 하는 것은 모두 문신들이다. 

  채경(蔡京)이 기강을 무너뜨리고, 왕보(王黼)가 연운(燕雲)을 수복한 이후로 

  집정(執政)과 시종(侍從) 이하들이 부절(符節)을 지니고 가게 되면 

  부절을 잃고, 성을 지키게 되면 성을 버렸으며, 건의한 것은 강화(講和)하자는 논의를 올리고, 

  사신을 가게 되어서는 땅을 떼어 주자는 말을 고집하였으며, 군대를 지휘하여 임금을 호위하게 되어서는 무너져 흩어지고, 

  하수를 방어하고 험준한 곳을 막는 데에는 도주하여 숨었다. 

  금나라 군인들이 중원(中原)에 깊이 침입하여 서울의 동서와 회남(淮南) 지역을 유린하여도, 

  임금의 신하가 되어서 땅을 버리고 백성을 버리며, 나라를 그르치고 일을 망친 자는 모두 문신들이다. 

  간간이 충절을 다하며 난리에 죽고 궤멸의 충돌을 막아낸 자는 모두 무신들이다. 

  장방창(張邦昌)이 위조(僞朝) 초(楚)나라를 세우고, 유예(劉豫)가 위조 제(齊)나라를 세운 것은 

  문신이 아니고 누가 감당하였는가?”

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문관과 무관의 두 벼슬길은 마치 얼음과 숯과 같이 서로 불합(不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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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 나라가 개판이라고 무식한 무신 놈들마저 날뛰네...


                       고종 : 나도 안다고 알아!

                               그렇다고 입만 나불대는 문신보다는 무신이 지금은 필요할 때라고...



                          무신 : 우린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보급이나 제대로 해주면 말을 안해...

                                  도망만 치는 겁쟁이 글 나부랭이 놈들이...

                                  우리 충심을 시험하지 마라 -_-^


                               훗날 고려 무신 : 우리 따라 해보아요! 요렇게!!! ♪♬

                                                    허리를 접어보아요! 요렇게!!! ♪♬



결국 일부 군벌은 고종의 명을 받은 진회 등에 의해 토사구팽을 당하게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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