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고종 국역 34부-군벌의 편의종사권을 용병에 한정하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송사 휘종, 흠종 본기를 국역하였는데요, 틈틈히 남송 1대 황제 고종의 본기도 국역코자 합니다.


01부-천하병마 대원수부를 열고 근왕병을 이끌다!

02부-북송멸망&괴뢰국 대초&근왕병 백만명

03부-강왕에게 몰려드는 북송의 신하들

04부-남송(南宋) 건국

05부-무너진 나라를 재정비하다.

06부-대초 황제 장방창을 참역죄로 유배보내다!

07부-96만 명의 군인을 편성하다

08부-고종<중원에 남아 금과 결전하겠노라!>

09부-휘종<아들아 나를 구해다오>

10부-충의지사 유생을 죽이다.

11부-계속되는 반란과 금의 재침공

12부-장방창 사사와 악비의 등장

13부-걷잡을 수 없는 반란군과 도주하는 고종

14부-반란군을 선참후계하라!

15부-파죽지세 금군의 재침과 반란군 진압

16부-다시 무너지는 송나라

17부-황제여 개봉으로 돌아오소서!

18부-지방관에게 편의종사권을 부여하다

19부-패착! 문가사에서 대패하다

20부-불가피한 화전양면책

21부-전함을 건조하라!

22부-도하!도하!도하! 종택 죽다!

23부-고려 인종<여진족은 수전에도 능하다!>

24부-양산박 송강의 부하 사빈을 죽이다.

25부-고종 코앞까지 닥친 금나라 군

26부-풍전등화!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다.

27부-전광석화 같은 고종의 도주와 불타는 양주성

28부-묘부의 군사 쿠데타!<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29부-한세충이 온다!

30부-수도 탈환!

31부-한세충의 위용에 놀라 유정언 말에서 떨어지다!

32부-왕안석vs사마광 평가가 뒤집히다

33부-유일한 황태자가 죽다!


송사 흠종 조환 국역 1부~17부

송막기문 1부~5부


송사 고종 원문 출처 :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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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月己酉,移浙西安撫司於鎮江府。
庚戌,李邴罷。
壬子,以吏部尚書劉玨為端明殿學士、權同知三省、樞密院事。
甲寅,王庶罷。
以徽猷閣直學士、知慶陽府王似為陝西節制使。
劉文舜入舒州。
己未,太后發建康。
丁卯,遣杜時亮使金軍前。

8월 기유일(己酉)에, 절서안무사(浙西安撫司)를 진강부(鎮江府)로 이(移/옮김)하였다.

경술일(庚戌)에, 이병(李邴)을 파직(罷)하였다.

임자일(壬子)에, 이부상서(吏部尚書) 유각(劉玨)을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와 권동지삼성(權同知三省) 및 

추밀원사(樞密院事)로 삼았다.

갑인일(甲寅)에, 왕서(王庶)를 파직(罷)하였다.

휘유각직학사(徽猷閣直學士)와 지경양부(知慶陽府) 왕사(王似)를 섬서절제사(陝西節制使)로 삼았다.

유문순(劉文舜)이 서주(舒州)로 들어갔다.

기미일(己未)에, 태후(太后)가 건강(建康)을 출발(發)하였다.

정묘일(丁卯)에, 두시량(杜時亮)을 금(金)의 군전(軍前/군영)에 사신(使)으로 보냈다.



閏八月丁丑朔,以胡舜陟為沿江都制置使,集英殿修撰王羲叔副之。
丁亥,輔逵掠漣水軍,殺軍使郝璘,率眾降于王曁燮。
己丑,以呂頤浩守尚書左僕射,杜充守右僕射,並同中書門下平章事。
庚寅,起居郎胡寅上書言二十事,呂頤浩不悅,罷之。
辛卯,命杜充兼江、淮宣撫使、守建康,前軍統制王曁燮隸之,韓世忠為漸西置使守鎮江,
劉光世為江東宣撫使守太平、池州,並受充節制。
丁酉,太后至洪州。
己亥,減福建、廣南歲上供銀三之一。
詔制置使唯用兵聽便宜,餘事悉禁。
壬寅,帝發建康,復還浙西,張俊、辛企宗以其軍從。
甲辰,次鎮江府。
賜陳東家金。
張浚次襄陽,招官軍、義兵分屯襄、郢、唐、鄧,以程千秋、李允文節制。
是月,知濟南府宮儀及金人數戰於密州,兵潰,儀及劉洪道俱奔淮南,守將李逵以密州降金。
靳賽詣劉光世降。

윤(閏) 8월 초하루 정축일(丁丑)에, 호순척(胡舜陟)을 연강도제치사(沿江都制置使)로 삼았고,

집영전수찬(集英殿修撰) 왕희숙(王羲叔)을 부사(副)로 삼았다.

정해일(丁亥)에, 보규(輔逵)가 연수군(漣水軍)을 약탈(掠)하였고,

군사(軍使) 학린(郝璘)을 살해(殺)하였는데, 솔중(率眾/무리를 인솔함)하여 왕기섭(王曁燮)에게 항복(降)하였다.

기축일(己丑)에, 여이호(呂頤浩)를 수상서좌복사(守尚書左僕射)로 삼고, 두충(杜充)을 수우복사(守右僕射)로 삼고,

나란히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로 삼았다.

경인일(庚寅)에, 기거랑(起居郎) 호인(胡寅)이 상서(上書/상소를 올림) 20사(事)를 말하였는데,

여이호(呂頤浩)가 불열(不悅/기쁘지 아니함)하였고, 파(罷/멈춤)하게 하였다.

신묘일(辛卯)에, 두충(杜充)에게 명(命)하여  강(江)과 회(淮)의 선무사(宣撫使) 및 수건강(守建康)을 겸(兼)하게 하였고,

전군통제(前軍統制) 왕기섭(王曁燮)을 예속(隸)시켰고, 한세충(韓世忠)을 점서치사수진강(漸西置使守鎮江)으로 삼았고,

유광세(劉光世)를 강동선무사(江東宣撫使) 수태평(守太平)과 수지주(池州)로 삼고,

나란히 절제(節制)를 수충(受充/관직을 제수하여 채움)하였다.

정유일(丁酉)에, 태후(太后)가 홍주(洪州)에 이르렀다.

기해일(己亥)에, 복건(福建)과 광남(廣南)의 세상공은(歲上供銀/지방에서 해마다 바치는 궁궐 경비)의 1/3을 감(減)하였다.

조(詔)하여 제치사(制置使)는 오직 용병(用兵/군사를 부림)함에 있어 편의(便宜)를 청(聽/들어줌)하게 하였고,

여사(餘事/나머지 일)는 모두 금(禁)하였다.

임인일(壬寅)에, 황제(帝)가 건강(建康)을 출발(發)하여, 절서(浙西)로 복환(復還/다시 돌아옴)하였고,

장준(張俊)과 신기종(辛企宗)이 그 군(軍)으로써 종(從/따름)하였다.

갑진일(甲辰)에, 진강부(鎮江府)에 차(次/머묾)하였다.

진동(陳東)의 집에 금(金)을 하사(賜)하였다.

장준(張浚)이 양양(襄陽)에 차(次/머묾)하였고, 관군(官軍)과 의병(義兵)을 초(招/부름)하여 

양(襄)과 영(郢) 및 당(唐)과 등(鄧)에 분둔(分屯/나누어 주둔함)하였고,

정천추(程千秋)와 이윤문(李允文)을 절제(節制)로 삼았다.

이달에, 지제남부(知濟南府) 궁의(宮儀)가 금인(金人)과 더불어 밀주(密州)에서 수전(數戰/수차례 싸움)하였는데,

병궤(兵潰/병이 궤멸함)하였고, 궁의(儀)와 더불어 유홍도(劉洪道)는 함께 회남(淮南)으로 분(奔/달아남)하였고,

수장(守將) 이규(李逵)는 밀주(密州)를 들어 금(金)에 항복(降)하였다.

근새(靳賽)가 유광세(劉光世)에게 예(詣/이름)하여 항복(降)하였다.

 
 
 

1129년 8월 03일에 절서안무사를 진강부로 옮겼다.

8월 04일에 이병을 파직하였다.

8월 06일에 이부상서 유각을 단명전학사와 권동지삼성 및 추밀원사로 삼았다.

8월 08일에 왕서를 파직하였다.

휘유각직학사와 지경양부 왕사를 섬서절제사로 삼았다.

유문순이 서주로 들어갔다.

8월 13일에 태후가 건강을 출발하였다.

8월 21일에 두시량을 금의 군영에 사신으로 보냈다.

윤8월 01일에 호순척을 연강도제치사로 삼았고, 집영전수찬 왕희숙을 부사로 삼았다.

윤8월 11일에 보규가 연수군을 약탈하고 군사 학린을 살해하였는데 무리를 인솔하여 왕기섭에게 항복하였다.

윤8월 13일에 여이호를 수상서좌복사로, 두충을 수우복사로 삼고 나란히 동중서문하평장사로 삼았다.

윤8월 14일에 기거랑 호인이 상소를 올려 20가지 일을 말하였는데 여이호가 기쁘지 아니하여 멈추게 하였다.

윤8월 15일에 두충에게 명하여 강, 회의 선무사 및 수건강을 겸하게 하였고 전군통제 왕기섭을 예속시켰고

한세충을 점서치사수진강으로 삼았고 유광세를 강동선무사 수태평과 수지주로 삼고 나란히 절제의 관직을 제수하여 채웠다.

윤8월 21일에 태후가 홍주에 이르렀다.

윤8월 23일에 복건과 광남에서 바치는 궁궐 경비를 1/3로 감하였다.

조서를 내려 제치사는 오직 용병에 관한 편의종사만을 허용하며 나머지 일은 모두 금하게 하였다.

윤8월 26일에 황제가 건강을 출발하여 절서로 다시 돌아왔고 장준(무관)과 신기종이 군을 이끌고 따랐다.

윤8월 28일에 황제가 진강부에 머물렀다.

진동의 집에 금을 하사하였다.

장준(문관)이 양양에 머물면서 관군과 의병을 불러모아 양, 영, 당, 등에 나누어 주둔하게 하였고

정천추와 이윤문을 절제로 삼았다.

이달에 지제남부 궁의가 금나라 군과 밀주에서 수차례 싸웠는데 궤멸당하니,

궁의는 유홍도와 함께 회남으로 달아났고 수장 이규는 밀주를 들어 금에 항복하였다.

근새가 유광세에게 이르러 항복하였다.


요약.

1129년 윤8월 금나라 군을 피해 항주까지 내려왔던 고종은 금군이 북상하자

다시 건강(현 남경)을 거쳐 진강부(현 진강)로 올라간다.

고종은 지방 총독인 제치사에게 내린 편의종사권이 너무 방대하다 판단하여

단지 군사에 관한 편의종사권을 부여하여 군벌들의 권한을 제한하고자 한다.

고종은 일전에 간신 황잠선을 죽이라고 상소를 올렸다 처형당한 진동의 집에 금을 하사하였다.

한편 장준(문관)은 양양에 머물면서 병사를 모집한다.


-3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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