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군벌의 병권 회수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남송초 군벌의 병권 회수는 일명 <삼대장의 병권 회수>로 불립니다.

1140년 유기가 순창에서 금나라 주력군 괴자마 부대의 70%를 섬멸하자 

금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합니다.

괴자마 부대는 100% 여진인으로 이뤄진 금나라의 최정예군으로 100% 기병으로 구성되었으며 

전쟁이 벌어지면 다른 종족군이 전투에 나섰고

괴자마 부대는 오직 승부를 결단 낼 때만 기동하였으며 항상 승리하는 불패의 군대였지요.
순창전투에서 유기는 대기병 맞춤 전략과 전술(중무장 도끼병)을 택하여 괴자마 부대를 격멸시킵니다.
이 전투 이후 남송 조정의 진회는 금나라와의 화친을 성립하고 
또한 비대해진 군벌을 해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고 
즉각 화의를 추진하면서 군벌 해체를 도모하지요.
그러나 그 반대로 군벌들은 순창전투의 승전을 국토수복의 대기회로 보았고 
대대적인 북벌을 단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남송군의 총병력은 16만으로 각 군벌들은 2~3만의 군사를 지니고 있었고 
사병의 성격이 매우 강했습니다.
특히 악비는 북진하여 개봉과 낙양을 수복하겠다며 북벌 승인을 고종에게 요청하였고,
고종은 이를 거부하며 회군하라 명하였지요.
그러나 악비는 고종의 회군 명령을 12번이나 거부하면서 고종의 심기를 건들게 됩니다.

진회는 섬주 장관 임명을 계기로 옛 법대로 변경 지역의 군 통솔권을 
무신에서 문신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고종 또한 동조하였습니다.
진회는 무신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던 추밀사 장준(문관)을 설득하여 
금과의 화친과 군벌의 병권 회수를 밀어 부칩니다.
장준(문관)은 지난 15년간의 금과의 전쟁을 겪으며 온 국토가 초토화되었고
더 이상 무리한 전쟁을 수행하기보다는 현 국토를 유지하고 화친을 맺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맨 먼저 자신의 병권을 내려놓고 휘하 부대를 조정에 반납합니다.
장준(문관)은 [세 대장 한세충, 장준(무관), 악비]를 조정으로 소환하여 추밀원의 관직을 하사해야
그들의 병권을 회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조서를 초안합니다.
이에 고종은 세 대장에게 추밀원으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한세충과 장준(무관)은 곧바로 조정에 들어갔고 각각 추밀사에 임명되지요.
고종은 장준(무관)을 따로 불러 <곽자의>의 예를 들며 
곽자의가 충신으로 기록되고 후손이 부귀영화를 누린 것은 그의 군대가 밖에 있으면서도 
조정에 충성을 다하여 조정의 군대와 마찬가지이었기 때문이었다며 
막강한 병권을 쥐고 조정을 경시하여 어명을 내려도 즉시 시행하지 않는 무장은 
곧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악비는 7일이나 뒤늦게 조정에 들어왔고 추밀부사에 임명되었지요.
이로써 세 대장의 병권은 모두 회수되었고 군대가 출동할 때에는 고종의 재가를 받아 
병력을 내려받아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이후 악비는 병권을 되돌리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죽었고,
한세충은 악비의 숙청 이후 문신들의 탄핵요구를 고종이 막아줬으나 스스로 사직하였고
장준(무관)은 진회에게 붙어 악비 숙청에 가담하였지요.

당시 진회는 병권을 모두 장준(무관)에게 몰아주기로 약조하였으나 
훗날 진회는 강막을 이용하여 장준(무관)을 탄핵하였고 이를 계기로 장준(무관)을 파직합니다.
장준(무관)은 후에 다시 조정에 복귀하였으며 청하군왕에 봉해지기도 하였지요.
한세충은 사직 후 두문불출하며 조정의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종종 예전 부하들이 찾아왔으나 일절 만나지 않으며 조용히 살다가 죽었습니다.
물론 함안군왕에 봉해졌지요.

*또 다른 군벌 유광세는 진즉에 장준(문관)의 탄핵을 받아 병권을 내려놓고 사직하였습니다.
 군벌 중에 유광세의 군대가 가장 질이 떨어졌지요.

주전파들을 죽이고 화친을 애걸하는 남송 고종의 맹세표문 번역 : http://cafe.naver.com/booheong/96428
남송 고종의 맹세표문에 답하는 금 희종의 책봉문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96434
조광윤 <나 황제 못 해 먹겠다> http://cafe.naver.com/booheong/99055

대사기(大事記) 中
소흥(紹興) 10년에 금나라가 맹약을 지키지 않자, 군인과 백성들이 모두 진회(秦檜)를 탓하였으나, 
진회는 도도한 자세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순창(順昌)에서 승첩(勝捷)을 거둔 뒤에 진회가 맨 먼저 조정(趙鼎)을 축출하였으나, 감히 말 한 마디도 한 사람이 없었고, 
자고(柘臯)에서 승첩을 거둔 뒤에 여러 장수들의 직위를 모두 파면하자, 병권(兵權)이 어전(御前)에 예속되어 버렸다. 
지난날에는 전쟁에서 패배한 바람에 화의(和議)를 요구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전쟁에 승리하고도 화의를 요구하였으며,
지난날에는 전쟁에 패배한 바람에 국토를 버렸으나, 오늘날에는 전쟁에 승리하고도 국토를 버렸다.
(중략)
우리나라의 백성들이 북로의 지역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비록 저들이 주살해도 따르지 않았는데, 
조정에서는 기어코 그들을 북로에게 넘겨 주어, 그 유민(遺民)으로 하여금 눈물을 삼키며 한스럽게 해서, 
중원의 인심을 잃어버렸다. 
(중략)
장준(張俊)이 유기(劉錡)와 악비를 매우 시기한 나머지 매양 말하기를, 
“악비는 구원하러 갈 적에 시간을 지체하였고, 유기는 전쟁할 적에 힘을 쓰지 않았다.”
라고 하다가, 마침내 진회와 모의하여 유기를 축출하고, 악비를 살해하고 말았으니, 
이로 인해 천하에 충분(忠憤)의 기개가 모두 꺾이어 상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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