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만인적 한세충 13부-남송영웅전설 진만인적 수도를 탈환하다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거의 유일하게 무공으로 송사에 만인적이라 기록된 한세충에 대해서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금의 종필(올출)이 대규모로 재침한 1129년 도주에 도주를 거듭하던 남송 조정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고종을 폐위시킨 묘유지변이 벌어지던 때로 가볼까 합니다.
금군을 막을 것인가? 회군하여 수도를 탈환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선 
리의 히어로 한세충의 선택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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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만인적 한세충 1부 [18세에 군에 들어가다] http://cafe.naver.com/booheong/87793
진만인적 한세충 2부 [서하를 격파하고 장교가 되다] http://cafe.naver.com/booheong/87826
진만인적 한세충 3부 [만인적 칭호를 듣고 방랍을 직접 사로잡다] http://cafe.naver.com/booheong/87912
진만인적 한세충 4부 [북송 패잔병 50명으로 요군 2천을 격파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4062
진만인적 한세충 5부 [여진족의 포위를 창으로 뚫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4213
진만인적 한세충 6부 [1천으로 반란군 수만 명을 격파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4237
진만인적 한세충 7부 [단기로 만 명을 굴복시키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4252
진만인적 한세충 8부 [결사대 300으로 금 대추장을 죽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4673
진만인적 한세충 9부 [또 1천으로 금 수만을 격파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07943
진만인적 한세충 10부 [한세충 개국? 공신이 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10133
진만인적 한세충 11부-반란자를 참하러 적진으로 들어가다! http://cafe.naver.com/booheong/131779
진만인적 한세충 12부-만인적의 최대위기(금군의 재침) http://cafe.naver.com/booheong/150729

외전
송사 반신열전 묘부/유정언 http://cafe.naver.com/booheong/15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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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줄게 있다!
              앞으로는 발퀄 그림 따윈 그리지 않는다.

               야 길공구 너무한 거 아니냐?

              1년에 하나씩 연재하면서 그렇게 귀찮냐?

              니 연재물 중에 조회수 100 넘는 건 이거 뿐이자나?

아무도 님 같은 듣보잡에겐 관심이 없는 걸


듣보잡? 송사 유일한 진만인적 내가 듣보잡?

ㅋㅋ 악비에 비하면 완전 듣보잡입니다욧

악비? 엥? 커리어가 비교가 안되는데?

              내가 악비보다 못하다고???

악비는 북벌을 추진하다 죽었자나!

뭔 개소리? 진회에 맞선 건 나뿐이었다고!!!

              나는 진회 따위가 건들만한 레벨이 아니었다고!

ㅋㅋ 코에이 게임에 의하면 당신은 통93 무98 지76 정42

                                           악비는 통99 무91 지86 정31 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악비보다 지략이 딸리다니!! 인정할 수 없다!!!

ㅋㅋㅋ


 닥치고 글이나 계속 써라!

                                             이달안에 지긋지긋한 4년간의 연재를 종료하길 바란다!


참고 :

남송초 묘부의 반란은 은영전의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같네요. http://cafe.naver.com/booheong/133957

송사 반역열전(6)묘부/유정언 http://cafe.naver.com/booheong/152079

장비의 재림? 진만인적 한세충!!! http://cafe.naver.com/booheong/133690


1129년 남송 황제 고종은 금나라의 침공을 피해 항주로 도주한다.

고종은 황잠선을 파직하고 무장 왕연과 환관 강리에 의지한다.

한세충을 위시한 장군들은 금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북상한다.

임시 수도 항주에는 오직 묘부의 병력 8천이 수비하고 있었다.

묘부는 왕연과 강리를 매우 싫어했다.

또한 무장들의 신임을 얻고 있던 이강을 파직한 것에 대해 고종에게도 불만이 있었다.

이에 묘부는 유정언 및 연지역 실향민 부대 적심군을 중심으로 궁중 쿠데타를 일으킨다.

왕연과 강리 및 환관을 척살한 묘부는 고종을 협박하여 제위를 3살 난 황태자 조부에게 양위하게 한다.

연호를 건염에서 묘수로 변경하고, 북상한 군벌들에 대한 병권회수를 추진한다.

한세충에게도 항주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한세충은 항주로 향한다.

그러던 중 한세충은 장준(문관)의 서신을 받고 묘부의 반란을 알게 되었고 묘부 토벌을 결의한다.


 한세충 : 이제부터 수도를 탈환한다!!! 


한세충군은 파죽지세로 항주로 향하였고 패닉에 빠진 묘부는 묘익을 보내 이를 막게한다.

쿠데타군은 신비궁으로 무장하고 요충지를 장악한다.

근왕병과 쿠데타군이 임평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는데 한세충이 선봉에 서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도강하자 한세충은 몸에 화살을 맞지 않은 병사는 모조리 참할 것이라며 군을 독려하고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며 돌격하고 이어서 장준(무관)과 유광세의 부대가 공격하니 드디어 쿠데타군이 무너졌다.

묘부와 유정언은 철권을 강제로 하사받고 병력 2천을 이끌고 항주성을 나간다.

한세충은 항주성에 입성하여 쿠데타 잔당을 처단한다.

고종은 한세충을 묘부 토벌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파견한다.

묘부를 추적한 한세충은 포성현 어랑역에서 묘부군과 대치한다.

당시 반란군은 유리한 지형에서 복병을 설치하여 기다렸는데 한세충의 부하 이충신과 조갈절이 적진에 포위당하자

마언부가 이들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전사하였다.

반란군이 승세를 타고 한세충의 중군으로 난입하였는데 한세충이 괴성을 지르며 창을 들고 돌격하자

유정언은 장수가 한세충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낙마한다.

진압군의 장수가 한세충이란 것을 안 쿠데타군은 일대 혼란에 빠졌고

반면에 한세충의 분격에 사기가 오른 토벌군이 돌격하자 반란군은 대패하게 된다.

묘부는 도주하였다가 사로잡혀 유정언과 함께 압송되어 처형을 당한다.


 
三年,帝召諸將議移蹕,張俊、辛企宗請往湖南,世忠曰:
「淮、浙富饒,今根本地,詎可舍而之他?
  人心懷疑,一有退避,則不逞者思亂,重湖、閩嶺之遙,安保道路無變乎?
  淮、江當留兵為守,車駕當分兵為衛,約十萬人,分半扈江、淮上下,止余五萬,可保防守無患乎?」
在陽城收合散亡,得數千人,聞帝如錢塘,即繇海道赴行在。
苗傅、劉正彥反,張浚等在平江議討亂,知世忠至,更相慶慰,張俊喜躍不自持。
世忠得俊書,大慟,舉酒酹神曰:
「誓不與此賊共戴天!」
士卒皆奮。
見浚曰:
「今日大事,世忠願與張俊身任之,公無憂。」
欲即進兵。
浚曰:
「投鼠忌器,事不可急,急則恐有不測,已遣馮轓甘言誘賊矣。」
三月戊戌,以所部發平江。
張俊慮世忠兵少,以劉寶兵二千借之。
舟行載甲士,綿互三十里。
至秀州,稱病不行,造雲梯,治器械,傅等始懼。
初,傅、正彥聞世忠來,檄以其兵屯江陰。
世忠以好語報之,且言所部殘零,欲赴行在。
傅等大喜,許之,至矯制除世忠及張俊為節度使,皆不受。
時世忠妻梁氏及子亮為傅所質,防守嚴密。
朱勝非紿傅曰:
「今白太后,遣二人慰撫世忠,則平江諸人益安矣。」
於是召梁氏入,封安國夫人,俾迓世忠,速其勤王。
梁氏疾驅出城,一日夜會世忠於秀州。
未幾,明受詔至,世忠曰:
「吾知有建炎,不知有明受。」
斬其使,取詔焚之,進兵益急。
傅等大懼。
次臨平,賊將苗翊、馬柔吉負山阻河為陣,中流植鹿角,梗行舟。
世忠舍舟力戰,張俊繼之,劉光世又繼之。
軍少卻,世忠複舍馬操戈而前,令將士曰:
「今日當以死報國,面不被數矢者皆斬。」
於是士皆用命。
賊列神臂弩持滿以待,世忠瞋目大呼,挺刃突前,賊辟易,矢不及發,遂敗。
傅、正彥擁精兵二千,開湧金門以遁。
世忠馳入,帝步至宮門,握世忠手慟哭曰:
「中軍吳湛佐逆為最,尚留朕肘腋,能先誅乎?」
世忠即謁湛,握手與語,折其中指,戮於市,又執賊謀主王世修以屬吏。
詔授武勝軍節度使禦營左軍都統制。
請於帝曰:
「賊擁精兵,距甌、閩甚邇,儻成巢窟,卒未可滅,臣請討之。」
於是以為江、浙制置使,自衢、信追擊,至漁梁驛,與賊遇。
世忠步走挺戈而前,賊望見,咋曰:
「此韓將軍也!」
皆驚潰。
擒正彥及傅弟翊送行在,傅亡建陽,追禽之,皆伏誅。
世忠初陛辭,奏曰:
「臣誓生獲賊,為社稷刷恥,乞殿前二虎賁護俘來獻。」
至是,卒如其言。
帝手書「忠勇」二字,揭旗以賜。
授檢校少保、武勝昭慶軍節度使。
[건염(建炎/남송 1대 황제 고종의 #1연호)] 3년(1129년)에,
제(帝/고종)가 제장(諸將)을 소환(召)하여 이필(移蹕/파천)을 의논(議)하니,
장준(張俊)과 신기종(辛企宗)은 호남(湖南)에 주(往/감)하길 청(請)하였는데,
한세충(世忠)이 말하길
「회(淮)와 절(浙)은 부요(富饒/부유함)하니, 지금(今)의 근본(根本)의 땅인데,
  어찌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까?
  인심(人心)이 회의(懷疑/의심을 품음)하니, 한번 퇴피(退避/물러남)가 있으면,
  곧 불령(不逞/원망을 품음)한 자(者)들이 사란(思亂/난을 생각함)할 것이고,
  중호(重湖)와 민령(閩嶺)은 아득히 먼데, 도로(道路)의 안보(安保)가 무변(無變/변함이 없음)하겠습니까?
  회(淮)와 강(江)은 마땅히 유병(留兵/남은 병사)으로 수비(守)하고,
  거가(車駕/임금이 타는 수레)는 마땅히 분병(分兵/병력을 나눔)하여 호위(衛/지킴)하고,
  십만인(十萬人)을 약(約/갖춤)하여, 
  분반(分半/반으로 나눔)하여 강(江)과 회(淮)의 상하(上下)가 호(扈/뒤따름, 호종함)하고,
  남은 5만(萬)으로 저지(止)한다면, 
  가히(可) 보존(保)하여 방수(防守/막아서 지킴)함에 근심이 없지 않겠습니까?
양성(陽城)에 있는 산망(散亡/흩어져 도망감)을 수합(收合/거두어 합함)하여,
수천인(數千人)을 득(得)하였는데, 제(帝)가 전당(錢塘)에 여(如/이름)함을 듣고는,
즉시(即) 해도(海道/해로)를 요(繇/거침, 통과함)하여 행재(行在/임금이 있는 곳)에 부(赴/다다름)하였다.
묘부(苗傅)와 유정언(劉正彥)이 반란(反)하자, 장준(張浚) 등(等)이 평강(平江)에 있으면서 
토란(討亂/난을 토벌함)을 의논(議)하였는데, 
한세충(世忠)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서로 경위(慶慰/기뻐하며 위로함)하였고, 
장준(張俊)은 희약(喜躍/기뻐하며 뜀)하며 자지(自持/자제함, 억제함)하지 못하였다.
한세충(世忠)이 장준(俊)의 서신(書)을 득(得)하고, 대통(大慟/크게 서러워함)하고는,
술을 들어 신령(神)에 뇌(酹/땅에 술을 붓고 제사함)하며 말하길
「맹세컨대 이 도적(賊)과는 더불어 함께 대천(戴天/하늘을 머리에 임)하지 않겠다!
사졸(士卒)이 모두 분(奮/성냄, 힘씀)하였다.
장준(浚)을 만나 말하길
「금일(今日)의 대사(大事)는, 세충(世忠)이 장준(張俊)과 더불어 신임(身任/몸을 맡김)하길 원(願)하니, 
  공(公)은 무우(無憂/근심이 없음)하오.」
즉각(即) 진병(進兵/진군)하고자 하였다.
장준(浚)이 말하길
「투서기기(投鼠忌器/간신을 제거하다 임금이 해를 당할까 두려움)하니, 
  일을 급(急)하게 함은 불가(不可)하며,
  급(急)하면 곧 불측(不測/헤아릴 수 없음)이 있을까 두려우며,
  이미 풍번(馮轓)을 보내 감언(甘言/달콤한 말)으로 유적(誘賊/적을 유인함)하였소.
(1129년) 3월 무술일(戊戌)에, 소부(所部/소속 부대)로써 평강(平江)을 출발(發)하였다.
장준(張俊)이 한세충(世忠)의 병(兵)이 적음을 고려(慮)하여, 
유보(劉寶)의 병(兵) 2천(千)으로써 차(借/빌려줌)하게 하였다.
주행(舟行/배를 타고 감)하여 갑사(甲士)를 실었는데, 서로 30리(里)를 잇닿았다.
수주(秀州)에 이르러, 칭병(稱病/병을 칭함)하고 불행(不行/가지 아니 함)하고는,
운제(雲梯/공성용 사다리)를 조(造/만듦)하고, 기계(器械)를 치(治/고침)하니,
묘부(傅) 등(等)이 비로소 구(懼/두려워함)하였다.
처음에, 묘부(傅)와 유정언(正彥)이 한세충(世忠)이 온다는 것을 듣고는,
격문(檄)을 보내 그 병(兵)으로써 강음(江陰)에 주둔(屯)하게 하였다.
한세충(世忠)이 호언(好語/좋은 말)으로써 보(報/대답함)하고,
또한 소부(所部/소속 부대)가 잔령(殘零/모자라고 떨어짐)하여,
행재(行在/임금이 있는 곳)에 부(赴/다다름)하고자 한다 말하였다.
묘부(傅) 등(等)이 대희(大喜/크게 기뻐함)하여, 허락(許)하였는데,
한세충(世忠)과 더불어 장준(張俊)을 절도사(節度使)에 제수(除)한다는 교제(矯制/가짜 교지)가 이르렀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이때 한세충(世忠)의 처(妻) 양씨(梁氏)와 더불어 아들 한량(亮)이 묘부(傅)의 인질(質)이 되었는데,
엄밀(嚴密/엄하게 비밀로 함)하게 방수(防守/막아서 지킴)하였다.
주승비(朱勝非)가 묘부(傅)를 속여 말하길
「지금(今) 태후(太后)에게 백(白/아룀)하여, 두 사람을 보내 한세충(世忠)을 위무(慰撫/회유)하면,
  곧 평강(平江)의 여러 사람이 익안(益安/더욱 편안해짐)할 것이오.」
이에 양씨(梁氏)를 소환(召)하여 들이고, 안국부인(安國夫人)에 봉(封)하고, 
한세충(世忠)을 비아(俾迓/영접하게 시킴)하게 하고는, 그 근왕(勤王/임금에 충성을 다함)을 속(速/빨리 함)하게 하였다.
양씨(梁氏)가 출성(出城)하여 질구(疾驅/빨리 달림)하였고, 1일 밤에 수주(秀州)에서 한세충(世忠)과 만났다.
오래지 않아, 명수(明受/묘부와 유정언이 황태자 조부를 옹립하고 반포한 연호)의 조서(詔)가 이르자,
한세충(世忠)이 말하길
「나는 건염(建炎/남송 1대 황제 고종의 #1연호)이 있음은 알고 있으나, 명수(明受)가 있음은 알지 못한다.
그 사신(使)을 참(斬)하고, 조서(詔)를 취(取)하여 분(焚/불사름)하였고, 진병(進兵/진군)을 더욱 급(急)히 하였다.
묘부(傅) 등(等)이 대구(大懼/크게 두려워함)하였다.
임평(臨平)에 차(次/머묾, 주둔함)하였는데, 
적장(賊將) 묘익(苗翊)과 마유길(馬柔吉)이 산을 등지고 물에 의지하여 진(陣)을 치고는, 
중류(中流)에 녹각(鹿角/짧은 나무 토막으로 만든 대적 장애물)을 세우고, 
행단(行舟/배를 운항함)을 경(梗/막음, 저지함)하였다.
한세충(世忠)이 배를 버리고 역전(力戰/힘껏 싸움)하였고,
장준(張俊)이 뒤를 이었고, 유광세(劉光世) 또한 뒤를 이었다.
군(軍)이 조금 물러나자, 한세충(世忠)이 거듭 말을 버리고 과(戈/창)을 조(操/손에 쥠)하고 앞장서며, 
영(令)하여 장사(將士/장졸)에게 말하길
「금일(今日) 마땅히 죽음으로써 보국(報國/나라의 은혜를 갚음)하여,
  겉에 여러 발의 화살을 맞지 않은 자는 모두 참(斬)할 것이다.」
이에 병사(士)가 모두 용명(用命/명령에 복종함)하였다.
도적(賊)이 신비노(神臂弩)를 열(列/벌임, 늘어섬)하고 지만(持滿/활시위를 한껏 당김)하여 이로써 대기(待)하였는데,
한세충(世忠)이 진목(瞋目/두 눈을 부릅뜸)하여 대호(大呼/크게 소리침)하고는,
칼을 빼어들고 돌전(突前/앞장서 돌격함)하자, 도적(賊)이 벽역(辟易/기세에 눌려 뒷걸음질을 침)하였고,
화살을 발사에 이르지 못하게 되니, 마침내 패(敗)하였다.
묘부(傅)와 유정언(正彥)이 정병(精兵) 2천을 끼고, 용금문(湧金門)을 열고 이로써 달아났다.
한세충(世忠)이 치입(馳入/질주하여 들어감)하니, 제(帝)가 걸어와 궁문(宮門)에 이르러,
한세충(世忠)의 손을 쥐고 통곡(慟哭)하며 말하길
「중군(中軍) 오담(吳湛)이 최고(最)로 좌역(佐逆/반역을 도움)하였고,
  또한 짐(朕)의 주액(肘腋/팔꿈치와 겨드랑이)을 붙잡았으니, 먼저 주살(誅)할 수 있겠소?」
한세충(世忠)이 즉각(即) 오담(湛)을 알(謁/봄)하여, 악수(握手/손을 잡음)하며 더불어 이야기하다,
그 중지(中指)를 절(折/꺾음)하고, 저자에서 육(戮/죽임)하였고,
또 도적(賊)의 모주(謀主/주동자) 왕세수(王世修)를 붙잡아 속리(屬吏/형옥 관리)에게 넘겼다.
조서(詔)를 내려 무승군(武勝軍) 절도사(節度使)와 어영좌군도통제(禦營左軍都統制)를 제수(授)하였다.
제(帝)에게 청(請)하여 말하길
「도적(賊)이 정병(精兵)을 끼고, 구(甌)와 민(閩)의 거리(距)가 심히(甚) 가까우니,
  만약 소굴(巢窟)을 이룬다면, 모두 멸(滅)할 수가 없으니, 신(臣)이 토벌(討)함을 청(請)하나이다.
이에 강(江)과 절(浙)의 제치사(制置使)로 삼아, 구(衢)와 신(信)으로부터 추격(追擊)하여,
어량역(漁梁驛)에 이르러, 도적(賊)과 더불어 조우(遇)하였다.
한세충(世忠)이 걸어 나가 정과(挺戈/창을 빼듬)하고는 앞장 서자,
도적(賊)이 망견(望見/멀리서 바라봄)하더니, 떠들며 말하길
「이는 한장군(韓將軍)이다!」
모두 경궤(驚潰/놀라 흩어짐)하였다.
유정언(正彥)과 더불어 묘부(傅)의 동생 묘익(翊)을 금(擒/사로잡음)하여 행재(行在/임금이 있는 곳)로 송(送/보냄)하였고, 
묘부(傅)가 건양(建陽)으로 도망(亡)가자, 추격(追)하여 금(禽/사로잡음)하고는, 모두 복주(伏誅/형벌을 받아 죽음)하였다.
한세충(世忠)이 처음에 폐사(陛辭/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돌아감)하고, 주(奏/아룀)하여 말하길
「신(臣)이 맹세컨대 도적(賊)을 생획(生獲/생포)하여, 사직(社稷)을 위해 쇄치(刷恥/치욕을 씻음)하고,
  전각(殿) 앞에 두 호분(虎賁/성난 호랑이)을 호부(護俘/사로잡아 지킴)하여 내헌(來獻/임금께 바침)하겠나이다.」
이에 이르러, 마침내 그 말과 같게 되었다.
제(帝)가 「충용(忠勇)」 두 글자(字)를 수서(手書/친필)하였고, 게기(揭旗/기의 표지)로 하사(賜)하였다.
검교소보(檢校少保)와 무승소경군(武勝昭慶軍) 절도사(節度使)를 제수(授)하였다.


*투서기기(投鼠忌器)
 : 쥐를 잡기 위해 물건을 던지고 싶으나 옆의 그릇이 깨질까 두렵다는 뜻으로,
   간신을 제거하려 하나 임금께 해를 끼칠까 두렵다는 뜻으로 쓰임.

*묘부와 유정언의 반란
 : 1129년 3월 통제(統制) 묘부와 어영우군부도통제(御營右軍副都統制)이 수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고종을 협박해 퇴위시키고, 
   황태자(皇太子) 조부(趙旉)를 옹립한 사건을 말한다.이 반란 사건으로 3세에 불과한 조부는 큰 충격을 받아 얼마 후 죽고 만다.
   이는 태종계 후손의 단절을 뜻하며, 이후 남송은 태종계 후손이 황위에 오르게 된다.
   묘부와 유정언의 성씨를 따 묘유지변(苗劉之變)이라고도 하며,
   당시 반포한 연호 명수(明受)에 따라 명수지변(明受之變)이라고도 한다.


1129년에 황제가 여러 장수를 소환하여 파천을 의논하니 장준(무관)과 신기종은 호남에 가길 청하였는데,
한세충이 말하길
   <회와 절은 부유하고 지금의 근본의 땅인데 어찌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까?
    인심이 의심을 품으니 한번 물러남이 있으면 곧 원망을 품은 자들이 난을 생각할 것이고
    중호와 민령은 아득히 먼데 도로의 안위가 변함이 없겠습니까?
    회와 강은 마땅히 남은 병사로 수비하고 어가는 마땅히 병력을 나눠 호위하고
    10만 명을 갖춰 반으로 나눠 강과 회의 위아래로 호종하고
    남은 5만으로 금나라 군을 저지한다면 가히 보존하여 막아서 지킴에 근심이 없지 않겠습니까?>
양성에 있는 흩어져 도망간 자들을 거두어 합하여 수천 명을 얻었는데 황제가 전당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는
즉시 바닷길을 통하여 행재(임금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묘부와 유정언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준(문관) 등이 평강에 있으면서 난의 토벌을 의논하였는데
한세충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서로 기뻐하며 위로하였고 장준(무관)은 기뻐하고 뛰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한세충이 장준(무관)의 서신을 받자 크게 서러워하고는 술을 들어 신령에 제사하며 말하길
   <맹세컨대 이 도적과는 더불어 함께 하늘을 머리에 이지 않겠다!>
사졸이 모두 분발하였다.
장준(문관)을 만나 말하길
   <금일의 대사는 세충이 장준(무관)과 더불어 몸을 맡기길 원하니 공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즉각 진군하고자 하였다.
장준(문관)이 말하길
「간신을 제거하려다 임금이 해를 당할까 두려우니 일을 급하게 하는 것은 불가하며
  급하면 곧 헤아릴 수 없는 일이 있을까 두렵소.
  이미 풍번을 보내 달콤한 말로 적을 안심시켰소>
1129년 3월 20일에 소속 부대를 이끌고 평강을 출발했다.
장준(무관)이 한세충의 병력이 적음을 고려하여 유보의 병력 2천을 빌려주게 하였다.
배에 갑병을 태우고 가니 30리를 잇닿았다.
수주에 이르러 칭병하고 가지 않고는 사다리를 만들고 기계를 고치니 묘부 등이 비로소 두려워하였다.
처음에 묘부와 유정언이 한세충이 온다는 것을 듣고는 공문을 보내 그 군대를 강음에 주둔하라 하였다.
한세충이 좋은 말로 대답하고는 또한 소속 부대가 모자라 행재(임금이 있는 곳)에 다다르고자 한다 말하였는데
묘부 등이 크게 기뻐하고는 허락하였다.
한세충과 더불어 장준(무관)을 절도사에 제수한다는 가짜 교지가 이르렀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이때 한세충의 처 양씨와 더불어 아들 한량이 묘부의 인질이 되었는데 엄하게 비밀로 하여 막아서 지켰다.
주승비가 묘부를 속여 말하길
   <지금 태후에게 아뢰어 두 사람을 보내 한세충을 회유하면 곧 평강의 여러 사람이 더욱 편안해질 것이오>
이에 양씨를 불러 들여 안국부인에 봉하고 한세충을 영접하게 하여 임금(새 황제 조부)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였다.
양씨가 성을 나가 빨리 달려 하룻 밤에 수주에서 한세충과 만났다.
오래지 않아 명수(묘부와 유정언이 황태자 조부를 옹립하고 반포한 연호)의 조서가 이르자 한세충이 말하길
   <나는 건염(고종의 연호)이 있음은 알고 있으나 명수가 있음은 알지 못한다.>
그 사신을 참하고 조서를 취하여 불살랐고 진군을 더욱 급하게 하였다.
묘부 등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임평에 머물렀는데 적장 묘익과 마유길이 산을 등지고 물에 의지하여 진을 치고는 
중류에 녹각(짧은 나무토막으로 만든 대적 장애물)을 세우고 배의 운항을 막았다.
한세충이 배를 버리고 힘껏 싸웠고 장준(무관)이 뒤를 이었고 유광세 또한 뒤를 이었다.
군이 조금 물러나자 한세충이 거듭 말을 버리고 창을 손에 쥐고 앞장서며 영을 내려 장졸에게 말하길
   <금일 마땅히 죽음으로써 보국(나라의 은혜를 갚음)한다.
    겉에 여러 발의 화살을 맞지 않은 자는 모두 참할 것이다.>
이에 병사가 모두 명령에 복종하였다.
도적이 신비노를 벌려놓고 활시위를 한껏 당기고 대기하였는데 한세충이 두 눈을 부릅뜨고 크게 소리치며
칼을 빼어들고 앞장서 돌격하자 도적이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을 쳤고 화살을 쏘지 못하게 되어 마침내 패하였다.
묘부와 유정언이 정병 2천을 끼고 용금문을 열고 이로써 달아났다.
한세충이 질주하여 들어가니 황제가 걸어와 궁문에 이르러 한세충의 손을 쥐고 통곡하며 말하길
   <중군 오담이 반란군을 도왔고 또한 짐의 팔꿈치와 겨드랑이를 붙잡았으니 먼저 주살할 수 있겠소?>
한세충이 즉각 오담을 만나 보고 손을 잡고 더불어 이야기하다 그 중지를 꺾었고 저자에서 죽였다.
또 도적의 주동자 왕세수를 붙잡아 해당 관리에게 넘겼다.
조서를 내려 무승군 절도사와 어영좌군도통제를 제수하였다.
황제에게 청하여 말하길
   <도적이 정병을 끼고 있고 구와 민의 거리가 심히 가까우니 만약 소굴을 이룬다면 
    모두 멸할 수가 없으니 신이 토벌함을 청하나이다.>
이에 강, 절의 제치사로 삼아 구와 신으로부터 추격하여 어량역에 이르러 도적과 더불어 조우하였다.
한세충이 걸어 나가 창을 빼어들고 앞장서자 도적이 멀리서 바라보더니 떠들며 말하길
   <이는 한장군이다!>
모두 놀라 흩어졌다.
유정언과 더불어 묘부의 동생 묘익을 사로잡아 행재(임금이 있는 곳)로 보냈고,
묘부가 건양으로 도망가자 추격하여 사로잡고는 모두 처형하였다.
한세충이 처음에 묘부 토벌을 하기 전에 고종에게 하직 인사를 하며 말하길
   <신이 맹세컨대 도적을 생포하여 사직을 위해 치욕을 씻고
    전각 앞에 두 성난 호랑이를 사로잡아 내헌(임금께 바침)하겠나이다.>
이에 이르러 마침내 그 말과 같게 되었다.
황제가 [충용(忠勇)]이라는 두 글자를 친필로 써서 기의 표지로 하사하였다.
검교소보와 무승소경군 절도사를 제수하였다.


*은하영웅전설의 저자 다나카 요시키(전중방수)는 양웬리와 프레데리카 그린힐의 모티브가
 한세충과 양홍옥이라는 언급을 했다고 합니다.

-14부에서 계속-

덧글

  • 2017/08/01 01:21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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