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고종 국역 35부-금이 수전을 준비하다!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송사 휘종, 흠종 본기를 국역하였는데요, 틈틈히 남송 1대 황제 고종의 본기도 국역코자 합니다.


01부-천하병마 대원수부를 열고 근왕병을 이끌다!

02부-북송멸망&괴뢰국 대초&근왕병 백만명

03부-강왕에게 몰려드는 북송의 신하들

04부-남송(南宋) 건국

05부-무너진 나라를 재정비하다.

06부-대초 황제 장방창을 참역죄로 유배보내다!

07부-96만 명의 군인을 편성하다

08부-고종<중원에 남아 금과 결전하겠노라!>

09부-휘종<아들아 나를 구해다오>

10부-충의지사 유생을 죽이다.

11부-계속되는 반란과 금의 재침공

12부-장방창 사사와 악비의 등장

13부-걷잡을 수 없는 반란군과 도주하는 고종

14부-반란군을 선참후계하라!

15부-파죽지세 금군의 재침과 반란군 진압

16부-다시 무너지는 송나라

17부-황제여 개봉으로 돌아오소서!

18부-지방관에게 편의종사권을 부여하다

19부-패착! 문가사에서 대패하다

20부-불가피한 화전양면책

21부-전함을 건조하라!

22부-도하!도하!도하! 종택 죽다!

23부-고려 인종<여진족은 수전에도 능하다!>

24부-양산박 송강의 부하 사빈을 죽이다.

25부-고종 코앞까지 닥친 금나라 군

26부-풍전등화!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다.

27부-전광석화 같은 고종의 도주와 불타는 양주성

28부-묘부의 군사 쿠데타!<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29부-한세충이 온다!

30부-수도 탈환!

31부-한세충의 위용에 놀라 유정언 말에서 떨어지다!

32부-왕안석vs사마광 평가가 뒤집히다

33부-유일한 황태자가 죽다!

34부-군벌의 편의종사권을 용병에 한정하다!


송사 흠종 조환 국역 1부~17부

송막기문 1부~5부


송사 고종 원문 출처 :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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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月丙午朔,日有食之。
諜報金人治舟師,將由海道窺江、浙,遣韓世忠控守圌山、福山。
辛亥,次平江府。
壬子,金人陷單州、興仁府,遂陷南京,執守臣淩唐佐,降之。
癸丑,以周望為兩浙、荊湖等路宣撫使,總兵守平江。
翰林學士張守同簽書樞密院事。
命劉光世移屯江州。
丙辰,遣張邵等充金國軍前通問使。
金人陷沂州。
卻高麗入貢使。
張浚承制罷知潭州辛炳,起復直龍圖閣向子諲代之。
丁巳,蠲諸路青苗積欠錢。
辛酉,知鼎州邢倞坐結耶律餘睹,再責汝州團練副使、英州安置。
癸亥,賜宿、泗州都大提舉使李成軍絹二萬匹,成尋復叛。
己巳,以胡舜陟為兩浙宣撫司參謀官,知鎮江府陳邦光為沿江都制置使。
庚午,以工部侍郎湯東野知平江府兼浙西制置使。
辛未,追復鄒浩龍圖閣待制。
壬申夜,潭州禁卒作亂,謀竄不果,向子諲隨招安之。
甲戌,金帥婁宿犯長安,經略使郭琰棄城遁,河北賊酈瓊圍光州。

9월 초하루 병오일(丙午)에, 일식(日食)이 있었다.

금인(金人)이 주사(舟師/군선)를 치(治/다스림)한다는 첩보(諜報)가 왔고,

장차(將) 해도(海道)를 경유(由)하여 강(江)과 절(浙)을 규(窺/엿봄)하려 하자,

한세충(韓世忠)을 보내 천산(圌山)과 복산(福山)을 강수(控守/급하게 지킴)하게 하였다. 

신해일(辛亥)에, 평강부(平江府)에 차(次/머묾)하였다.

임자일(壬子)에, 금인(金人)이 단주(單州)와 흥인부(興仁府)를 함락(陷)하였고,

마침내 남경(南京)을 함락(陷)하고, 수신(守臣) 능당좌(淩唐佐)를 집(執/사로잡음)하여, 항복(降)하게 하였다.

계축일(癸丑)에, 주망(周望)을 양절(兩浙)과 형호(荊湖) 등(等)의 지역 선무사(宣撫使)로 삼고,

총병(總兵/병을 총괄함)하여 평강(平江)을 수(守/지킴)하였다.

한림학사(翰林學士) 장수(張守)를 동첨서추밀원사(同簽書樞密院事)로 삼았다.

명(命)하여 유광세(劉光世)를 강주(江州)로 이둔(移屯/옮겨 주둔함)하게 하였다.

병진일(丙辰)에, 장소(張邵) 등(等)을 금국(金國) 군전(軍前) 통문사(通問使)로 충원(充)하여 보냈다.

금인(金人)이 기주(沂州)를 함락(陷)하였다.

고려(高麗)의 입공사(入貢使/대국에 공물을 바치는 사신)를 각(卻/물리침)하였다.

장준(張浚)이 승제(承制/받아들이고 바로 잡음)하여 지담주(知潭州) 신병(辛炳)을 파직(罷)하고,

직룡도각(直龍圖閣) 향자인(向子諲)을 기복(起復/상중의 관리를 왕명으로 근무하게 함)하여 대신(代)하게 하였다.

정사일(丁巳)에, 제로(諸路/여러 지역)의 청묘(青苗/신법 중 하나로 농민 대출법)의 적흠전(積欠錢/연체한 빚)을 견감(蠲)하였다.

신유일(辛酉)에, 지정주(知鼎州) 형경(邢倞)을 야율여도(耶律餘睹)와 결탁(結)함을 연좌(坐)하여,

다시 여주단련부사(汝州團練副使)로 책관(責)하고 영주(英州)에 안치(安置)하였다.

계해일(癸亥)에, 숙주(宿)와 사주(泗州)의 도대제거사(都大提舉使) 이성(李成)의 군(軍)에 

견(絹/비단) 2만필(匹)을 하사(賜)하였는데, 이성(成)이 이어서 다시 배반(叛)하였다.

기사일(己巳)에, 호순척(胡舜陟)을 양절선무사참모관(兩浙宣撫司參謀官)으로 삼고,

지진강부(知鎮江府) 진방광(陳邦光)을 연강도제치사(沿江都制置使)로 삼았다.

경오일(庚午)에, 공부시랑(工部侍郎) 탕동야(湯東野)를 지평강부(知平江府) 겸(兼) 절서제치사(浙西制置使)로 삼았다.

신미일(辛未)에, 추호(鄒浩)를 용도각대제(龍圖閣待制)로 추복(追復/사후 원래의 직위로 회복시킴)하였다.

임신일(壬申) 밤에, 담주(潭州)의 금졸(禁卒/금군 병졸)이 작난(作亂/난을 일으킴)하였고,

모찬(謀竄/달아남을 도모함)하였으나 불과(不果/실현되지 않음)하였는데,

향자인(向子諲)이 곧바로 초안(招安/불러서 복종시킴)하였다.

갑술일(甲戌)에, 금수(金帥/금나라 원수) 누숙(婁宿/완안누실)이 장안(長安)을 범(犯)하였고,

경략사(經略使) 곽염(郭琰)은 기성(棄城/성을 버림)하고 둔(遁/달아남)하였고,

하북(河北)의 적(賊) 역경(酈瓊)은 광주(光州)를 포위(圍)하였다.


1129년 9월 01일에 일식이 있었다.

금나라 군이 군선을 준비하여 장차 바닷길을 경유하여 강과 절을 엿본다는 첩보가 오자

한세충을 급하게 보내 천산과 복산을 지키게 하였다.

9월 06일에 황제가 평강부에 머물렀다.

9월 07일에 금나라 군이 단주와 흥인부를 함락하였고 마침내 남경을 함락하고 수신 능당좌를 사로잡아 항복시켰다.

9월 08일에 주망을 양절과 형호 등의 지역 선무사로 삼고 병을 총괄하여 평강을 지키게 하였다.

한림학사 장수를 동첨서추밀원사로 삼았다.

명을 내려 유광세를 강주로 옮겨 주둔하게 하였다.

9월 11일에 장소 등을 금국 군전 통문사로 충원하여 보냈다.

금나라 군이 기주를 함락하였다.

고려에서 조공을 바치고자 사신이 왔으나 물리쳤다.

장준(문관)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지담주 신병을 파직하고 직룡도각 향자인을 기복 시켜서 대신하게 하였다.

9월 12일에 여러 지역의 청묘법에 의한 연체 빚을 감하게 하였다.

9월 16일에 지정주 형경을 야율여도와 결탁한 죄에 연좌하여 다시 여주단련부사로 책관하고 영주에 안치하였다.

9월 18일에 숙주와 사주의 도대제거사 이성의 군에 비단 2만필을 하사하였는데 이성이 곧바로 다시 배반하였다.

9월 24일에 호순척을 양절선무사참모관으로 삼고 지진강부 진방광을 연강도제치사로 삼았다.

9월 25일에 공부시랑 탕동야를 지평강부 겸 절서제치사로 삼았다.

9월 26일에 추호를 용도각대제로 추복하였다.

9월 27일 밤에 담주의 중앙군 병졸이 난을 일으켜 달아남을 도모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는데

향자인이 곧바로 불러서 복종시켰다.

9월 29일에 금나라 원수 누숙(완안누실)이 장안을 범하였는데 경략사 곽염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하북의 반란군 역경은 광주를 포위하였다.


요약.

1129년 9월 금나라 군은 수군으로 남침을 계획하였고 이 첩보를 획득한 남송은 한세충을 급하게 보내 방비한다.

조정은 평강의 수비를 강화하고 해전에 대비한다.

한편 금군은 남송의 첫 번째 수도였던 남경 응천부을 함락하고 장안도 함락한다.

반란군 이성은 조정에 투항하여 비단 2만필을 받고는 곧장 배반하였다.

한편 고려에서 조공사가 왔으나 고종은 이를 물리친다.

 

-3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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