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무황제 노아합기 국역 60부-쿤둘언 한/쿤둘언 카간 누르하치! 무황제실록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청 개국 후 태종 숭덕조 1636년에 편찬된 태조무황제실록(太祖武皇帝實錄)을 틈틈이 국역코자 합니다.
무황제실록은 강희제에 의해 다듬어지고 변경된 청실록 고황제실록의 원본으로
태조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있는 그대로 투박하게 기록한 사서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태조무황제 노아합기 국역 01부~59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3096

태조고황제 노이합제 국역 01부~28부 http://cafe.naver.com/booheong/130699
만주실록 누르가치 국역 01부~42부 http://cafe.naver.com/booheong/115684
황청개국방략 태조 국역 01부~13부 http://cafe.naver.com/booheong/115686
청사고 태조본기 노이합제 국역 01부~03부 http://cafe.naver.com/booheong/115015

동화록 태조 누르하치 국역01부~04부 http://cafe.naver.com/booheong/116032

만주어 만문노당 01부~257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3153

만주어 만문원당 1부~2부 http://cafe.naver.com/booheong/123252
만주어 내국사원당 태조 누르가치 국역 01부~47부 http://cafe.naver.com/booheong/122944
만주어 태조고황제 01부~0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40525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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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午年十二月,恩格得力又引蒙古胯兒胯部五衛之使,進駝馬來謁,尊太祖為昆都侖汗
[即華言恭敬之意。]
從此蒙古相往不絕。
丁未年,東海斡兒哈部蜚敖城主策穆德黑謁太祖曰:
「吾地與汗相距路遙,故順兀喇國主布占太貝勒,彼甚苦虐吾輩,望往接吾等眷屬,以便來歸。」
太祖令弟黍兒哈奇與長子烘把土魯貝勒,次子帶善貝勒與大將軍非英凍、虎兒憨等,率兵三千,往蜚敖城搬接。
是夜陰晦,忽見旗有白光一耀,眾王大臣盡皆驚異,以手摩之,競無所有,豎之復然。
黍兒哈奇王曰:
「吾自幼隨征,無處不到,從未見此奇怪之事,想必凶兆也。」
欲班師。
烘把土魯、帶善二王曰:
「或吉或凶,兆已見矣,果何據而遂欲回兵?
  此兵一回,吾父以後勿復用爾我矣。」
言訖率兵強進。
至蜚敖城,收四周屯寨約五百戶,先令非英凍、虎兒憨領兵三百護送。
병오년(丙午年/1606년) 12월에, 
은격득력(恩格得力/엉어더르 타이지)가 또 몽고(蒙古) 과아과부(胯兒胯部/칼카부) 5위(衛)의 사신(使)을 인솔(引)하여,
타마(駝馬/낙타와 말)을 진상(進)하고 내알(來謁/와서 배알함)하였고,
태조(太祖)를 존(尊/높임)하여 곤도륜한(昆都侖汗/쿤둘언 한)으로 하였다.
[곧 화언(華言/중국말)으로 공경(恭敬)의 뜻이다]
이로부터 몽고(蒙古)의 상왕(相往/서로 왕래함)이 불절(不絕/끊이지 않음)하였다.
정미년(丁未年/1607년), 동해(東海) 알아합부(斡兒哈部/와르카부)의 비오(蜚敖/표) 성주(主) 
책목덕흑(策穆德黑/첨터허)이 태조(太祖)를 알현(謁)하고 말하길
「나의 땅은 한(汗)과 더불어 상거(相距/서로 간의 거리)가 노요(路遙/길이 멈)하니,
  이런 연고(故)로 올라(兀喇/울아) 국주(國主) 포점태(布占太/부잔타이) 패륵(貝勒/버이러)을 순(順/좇음)하였는데,
  저쪽이 오배(吾輩/우리 무리)를 심히(甚) 고학(苦虐/괴롭히고 학대함)하니,
  바라건대 우리들의 권속(眷屬/한 집안의 겨레붙이)을 왕접(往接/와서 접촉함)하여,
  내귀(來歸/귀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태조(太祖)가 동생 서아합기(黍兒哈奇/슈르하치)로 하여금 
장자(長子) 홍파토로(烘把土魯/훵 바투루, 추옝) 패륵(貝勒)과 차자(次子) 대선(帶善/다이샨) 패륵(貝勒)과 함께,
대장군(大將軍) 비영동(非英凍/피옹돈)과 호아감(虎兒憨/훠르간) 등(等)과 더불어,
병(兵) 3천을 인솔(率)하여, 비오(蜚敖/표) 성(城)으로 가서 반접(搬接/접촉하여 옮김)하게 하였다.
이 밤에 음회(陰晦/흐리고 어두움)하였는데, 홀연히(忽) 기(旗)에 백광(白光)이 한 번 요(耀/빛남)함이  보였고,
왕(王/버이러)와 대신(大臣/암반) 무리가 모두 다 경이(驚異/놀라서 이상히 여김)하였고,
손으로 마(摩/문지름)하였는데, 갑자기 있는 것이 없었고, 수(豎/세움)하자 다시 그러하였다.
서아합기(黍兒哈奇) 왕(王)이 말하길
「나는 어려서부터 수정(隨征/종군)하여,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종군(從)하여 이런 기괴(奇怪)한 일을 본 적이 없었으니, 필히(必) 흉조(凶兆)라 생각한다.」
반사(班師/회군)하고자 하였다.
홍파토로(烘把土魯)와 대선(帶善) 2 왕(王)이 말하길
「혹(或) 길(吉)하거나 혹(或) 흉(凶)하여도, 징조(兆)가 이미(已) 보였을 뿐인데,
  정말로 어떤 근거(據)로 마침내 회병(回兵/회군)하고자 합니까?
  이 병(兵)이 한번 회군(回)하면, 나의 부친(父)이 이후(以後)로는 다시 당신과 우리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솔병(率兵/병을 인솔함)하여 강진(強進/강제로 진군함)하였다.
비오성(蜚敖城/표성)에 이르러, 사주(四周/사방)의 둔채(屯寨) 약(約) 500호(戶)를 수(收/거둠)하였고,
먼저 비영동(非英凍)과 호아감(虎兒憨)으로 하여금 300을 영병(領兵/병을 거느림)하여 호송(護送)하게 하였다.







1606년 12월에 엉어더르 타이지가 또 몽고 칼카부 5위의 사신을 인솔하여 낙타와 말을 진상하고 배알하였고
태조를 높여 쿤둘언 한이라 하였다.
(쿤둘언은 중국말로 공경 이란 뜻이다]
이로부터 몽고와의 서로 왕래함이 끊이지 않았다.
1607년 동해 와르카부 표 성주 첨터허가 태조를 알현하고 말하길
   <나의 땅은 한(누르하치)와 더불어 서로 간의 거리가 머니
    이런 연고로 울아 국주 부잔타이 버이러를 따랐는데 저쪽이 우리 무리를 심히 괴롭히고 학대하니
    바러건대 우리들은 한 집안으로 대우하여 귀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태조가 동생 슈르하치로 하여금 장자 훵 바투루(추옝) 버이러와 차자 다이샨 버이러와 함께
대장군 피옹돈과 훠르간 등과 더불어 병 3천을 이끌고 표성으로 가서 접촉하고 옮기게 하였다.
이 밤에 흐리고 어두웠는데 홀연히 기에 백광이 한 번 빛났고 버이러와 암반 무리가 모두 놀라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손으로 문지르니 갑자기 백광이 없어졌고 기를 다시 세우자 다시 백광이 빛났다.
슈르하치 버이러가 말하길
   <나는 어려서부터 종군하여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종군하여 이런 기괴한 일을 본 적이 없었으니 필히 흉조라 생각한다.>
하며 회군하고자 하였다.
훵 바투루와 다이샨 2 버이러가 말하길
   <혹 길하거나 혹 흉하여도 징조가 이미 보였을 뿐인데 진정 어떤 근거로 끝내 회군하고자 합니까?
    이 병력을 한번 회군하면 나의 부친은 이후로 당신과 우리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병력을 인솔하여 강제로 진군하였다.
표성에 이르러 사방의 둔채 약 500호를 거뒀고 먼저 피옹돈과 훠르간으로 하여금 병 300을 이끌고 호송하게 하였다.
불의에 울아국의 부잔타이가 1만 병을 출동시켜 길을 끊었다.

요약.
1606년 몽고 칼카5부 바욭부의 엉어더르 타이지가 낙타와 말을 진상하고
누르하치에게 존경하는 임금이란 뜻의 [쿤둘언 한]의 존호를 올린다.
몽고어로는 [쿤둘언 카간]이다.
이전까지 누르하치는 [수러 바투루]→[수러 버이러]의 호칭을 사용하였고 1606년 12월을 기점으로 [한]이라 부른다.
쿤둘언 한은 1616년 1월1일 [겅옌 한]으로 만주(건주)의 제장들이 존호를 올리기 전까지 사용하였다.
만문노당에서는 1616년 1월1일을 후금 건국이라고 기록하지 않았으나
이후 사서에서는 [겅옌 한]의 존호를 후금 건국 원년의 칭제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1607년 동해 와르카부 표 성주 첨터허는 울아 부잔타이에게 복속되어 있었는데
부잔타이의 학대가 심하니 마침내 누르하치에게 귀부요청을 한다.
이에 누르하치는 슈르하치, 추옝, 다이샨을 대장으로 피옹돈, 훠르간, 양우리, 창슈, 나치 등의 장수와 함께
병력 3천을 주어 와르카부 500호를 건주로 데려오게 한다.
이를 울아의 부잔타이가 병력 1만을 보내 저지하였고
이로써 동해 여진의 패권을 두고 만주(건주)와 울아간 사생결단에 돌입하게 된다.

-6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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