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고종<반란군은 반란군으로 제압하라!>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남송초 각지에서 어마어마한 반란이 계속 일어났지요.

남송 조정은 금의 재침과 반란군 제압을 동시에 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벅찼고

하여 반란군을 회유 및 사면을 통해 정규군으로 편입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오늘은 금의 10만 대군이 수로를 통해 고종을 쫓고 있던 급박했던 1130년 초

고종이 반란군을 반란군으로 제압한 일화를 소개해 드림과 동시에 배반과 처세의 달인 공언주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공언주(孔彦舟)는 상주 임필인으로 무뢰배였다가 살인을 하고 도적이 되었지요.

흠종이 즉위하고 금나라 군을 막기 위해 모병을 하자 공언주는 도적을 관두고 관군에 투신하여 경동서로 병마검할에 오르지요.

금군이 산동에 침입하자 공언주를 휘하 부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달아났는데 가는 곳마다 약탈을 자행합니다.

그러다가 고종에게 사면 받아 동평부 병마검할이 되었으나 1128년 1월에 다시 반란을 일으켜 황주 일대를 약탈하지요.

1129년경 금이 대대적으로 재침하자 공언주는 또 다른 반란군 이성과 연합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1130년 2월 정주의 백성 종상이 반란을 일으켜 초왕을 자칭하게 됩니다.

종상은 반란군을 이끌고 인근 예주를 함락하고 그곳의 수신 황종을 죽이지요.

이에 고종은 종상의 반란군을 공언주의 반란군으로 막자 생각하여 권호복 제치사 부방을 보내 공언주를 회유합니다.

고종은 공언주를 또 사면하여 연강초착사로 임명하였고

공언주는 휘하 부대를 이끌고 정주로 들어가 종상의 군대를 격파하고 종상을 고종에게 바칩니다.


그러나 공언주는 다시 1132년 금이 세운 괴뢰국 대제황제 유예에게 투항하였고 대제 장군으로써 남송과 격돌합니다.

후에 올출이 유예를 폐하자 공언주는 이번에는 금나라의 장군이 되어 남송 정벌전에 종군하지요.

금이 하북을 직할 통치함에 따라 공언주는 벼슬이 남경(개봉) 유수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금 4대 폐황제 해릉양왕 완안단이 1160년 술에 취해 공언주를 살해함으로써

배신과 처세의 달인이었던 공언주는 그 생을 마감하게 되지요.


송사 1128년 1월 기사中

동평부 병마검할 공언주가 배반하여 회를 건너 황주를 범하니 수신 조령성이 막았다.


송사 1130년 2월 21일 기사中

정주의 백성 종상이 난을 일으켜 초왕(楚王)을 자칭하였다.


송사 1130년 2월 28일 기사中

종상이 예주를 함락하였고 수신 황종을 살해하였다.

권호북제치사 부방이 공언주를 초유하였는데 공언주가 명을 받아들였다.


송사 1130년 3월 1일 기사中

공언주가 정주로 들어갔다.


송사 1130년 3월 26일 기사中

공언주가 종상을 격파하였고 종상과 더불어 그 아들 종자앙을 사로잡아 함거에 넣어 행재로 호송하였다.



공언주 배신+사면 경력

1 배신 : 북송말 도적떼

1 사면 : 흠종에 의해

2 배신 : 금군이 오자 도망가며 반란

2 사면 : 고종에 의해

3 배신 : 다시 반란

3 사면 : 고종에 의해

4 배신 : 제황제 유예에게 투항

4 사면 : 유예에 의해

5 배신 : 유예를 배신하고 금에 투항


5번의 배신과 4번의 사면을 받아 난세를 헤쳐가던 공언주는 최후에는 폭군 금 해릉양왕에게 배신당해 살해됨



고종 : 음 반란군은 반란군으로 처리하자!

반란군 종상 : 나는 초왕이니라! ㅋㅋ

공언주 : 깝도 안되는 게! 반란에도 급이 있다고!

사이코 폐황제 해릉양왕 :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지!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