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금나라와 화친한 가장 큰 이유 금초+요말+북송말+남송초 이야기

고종이 진회를 앞세워 주전파 군벌들을 숙청하고

금나라와 굴욕적인 화친을 맺은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한데요.


실상 고종은 그 명분을 천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효(孝)] 였습니다.

아버지인 휘종은 이미 죽었고, 생모 위씨가 금나라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고종에게는 어머니를 적지에서 구출하는 일이 가장 큰 책무였으며

화의의 첫 번째 조건으로 생모 위씨의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희종은 고종의 생모 위씨 뿐만 아니라 휘종의 유해까지 같이 돌려보냅니다.

사대부를 우대하는 송나라에서 임금이 부모에게 효를 다하겠다는데

전황이 조금 유리할 때 부모를 적지에서 구출하고 나라의 국토를 현상 유지라고 하겠다는

고종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송사기사본말(宋史紀事本末) 진회주화(秦檜主和) 中

처음에 금나라의 사자 소의(蕭毅)가 행재소(行在所)에 도착하였을 적에, 고종이 말하기를,

짐이 천하를 소유하였으나 어버이를 봉양하지 못하였다. 휘종(徽宗)은 승하하여 이제는 소용이 없지만, 

  지금 금나라가 신서(信誓 성신(誠信)을 맹약하는 글)를 작성하여 

  우리 태후(太后)를 돌려보내겠다고 분명히 말하였으므로

  짐이 화의(和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짐이 전쟁도 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 뒤에 하주(何鑄)가 금나라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갈 적에, 고종이 그를 내전(內殿)으로 불러 말하기를, 

“짐이 북쪽을 향해 어버이가 계신 곳을 바라볼 때에 이제는 뿌릴 눈물도 없다

  경이 금(金)나라 임금을 보면 마땅히 

 ‘짐의 자친(慈親)이 상국(上國)에서는 한 사람의 노인에 불과하지만, 

   본국(本國)에 있어서는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하다’

  고 말해서, 지성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가 감동할 가망이 있다.”

라고 하였다.

하주가 금나라에 이르러서 맨 먼저 태후를 본국으로 보내 달라고 청하니, 

금나라 임금 완안단(完顔亶)이 말하기를, 

“선조(先朝)에서 이미 이와 같이 조치하였는데, 어찌 갑자기 변경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동행한 조훈(曹勛)이 재삼 간곡하게 청하자, 이내 허락하고, 

마침내 하주가 돌아올 적에 휘종의 상여(喪輿)와 고종의 어머니 위씨(韋氏)를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주전파들을 숙청하고 화친을 애걸하는 남송 고종의 맹세표문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96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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