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무황제 노아합기 국역 62부-여진 5왕국 중 호이파를 멸하다! 무황제실록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청 개국 후 태종 숭덕조 1636년에 편찬된 태조무황제실록(太祖武皇帝實錄)을 틈틈이 국역코자 합니다.
무황제실록은 강희제에 의해 다듬어지고 변경된 청실록 고황제실록의 원본으로
태조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있는 그대로 투박하게 기록한 사서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태조무황제 노아합기 국역 01부~61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3195

태조고황제 노이합제 국역 01부~28부 http://cafe.naver.com/booheong/130699
만주실록 누르가치 국역 01부~42부 http://cafe.naver.com/booheong/115684
황청개국방략 태조 국역 01부~13부 http://cafe.naver.com/booheong/115686
청사고 태조본기 노이합제 국역 01부~03부 http://cafe.naver.com/booheong/115015

동화록 태조 누르하치 국역01부~04부 http://cafe.naver.com/booheong/116032

만주어 만문노당 01부~263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3360

만주어 만문원당 1부~2부 http://cafe.naver.com/booheong/123252
만주어 내국사원당 태조 누르가치 국역 01부~47부 http://cafe.naver.com/booheong/122944
만주어 태조고황제 01부~0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40525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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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月,太祖令幼弟着里革兔貝勒,大將厄一都、非英凍,虎兒憨蝦等,率兵一千,
往征東海兀吉部,取黑十黑、敖莫和所羅佛內黑三處,獲人畜二千而回。
九月六日夜,有氣從星出,向東直衝輝發國,七八夜方沒。
又有氣自西方從星出,月余方沒。
時輝發國擺銀答里貝勒族眾,多投夜黑,其部屬亦有叛謀。
擺銀答里聞之,以七酋長之子為質,借兵於太祖,太祖以兵一千助之。
有納林卜祿賺擺銀答里曰:
「爾若撤回所質之人,吾即反爾投來族眾。」
擺銀答里信其言乃曰:
「吾將安居於滿洲夜黑之間矣。」
遂撤回七酋長子,復以子與納林卜祿為質,納林卜祿竟不反其族。
擺銀答里復遣大臣告太祖曰:
「曩者誤信納林卜祿賺言,今仍欲倚汗為生,乞將汗女先許常書之子者,賜我為婚。」
太祖遂罷常書之親而許之。
后擺銀答里背盟不娶,太祖遣使謂之曰:
「汝曾助夜黑二次加兵於我,今又聘吾女而不娶,何也?」
擺銀答里飾詞以對曰:
「吾曾質子於夜黑,俟質子歸,吾即往娶,與爾合謀矣。」
隨將城垣修築三層以自固,質於夜黑之子亦撤回。
於是太祖遣使曰:
「今質子已歸,汝意又何如也?」
擺銀答里恃城垣已固,遂絕親。
太祖即於九月九日率兵往伐其國,十四日兵到,即時克之,殺擺銀答里父子,屠其兵,招服其民,遂班師,輝發國從此滅矣。
5월에, 태조(太祖)가 유제(幼弟/막냇동생) 저리극토(着里革兔/조맄투) 패륵(貝勒/버이러)과,
대장(大將) 액일도(厄一都/어이두), 비영동(非英凍/피옹돈), 호아감하(虎兒憨/훠르간 햐) 등(等)으로 하여금,
병(兵) 1천을 인솔(率)하여, 동해(東海) 올길부(兀吉部/워지부)를 왕정(往征/가서 정벌함)하게 하였는데,
흑십흑(黑十黑/허시허)과 오막화(敖莫和/오모호) 소라(所羅/수루) 및 불내흑(佛內黑/푸너허) 3곳을 취(取)하였고,
인축(人畜/사람과 가축) 2천을 획(獲)하고는 회군(回)하였다.
9월 6일 밤에, 별을 따라 나오는 기운(氣)이 있었는데, 동쪽(東)으로 향(向)하여 휘발국(輝發國/호이파 구룬)에 직충(直衝/곧장 부딪침)하였고,
7~8 밤에 바야흐로 몰(沒/끝남)하였다.
또 서방(西方)으로부터 별을 따라 나오는 기운(氣)이 있었는데, 한 달 남짓에 바야흐로 몰(沒/끝남)하였다.
이때 휘발국(輝發國) 파은답리(擺銀答里/바인다리) 패륵(貝勒/버이러)의 족중(族眾/일족 무리)이,
야흑(夜黑/예허)에 투항(投)함이 많았는데, 그 부속(部屬) 역시(亦) 반모(叛謀/반란 모의)가 있었다.
파은답리(擺銀答里)가 듣고는, 7 추장(酋長)의 아들로서 인질(質)로 삼아,
태조(太祖)에게 차병(借兵/병을 빌림)하니, 태조(太祖)가 병(兵) 1천으로써 원조(助)하였다.
납림복록(納林卜祿/나림불우)이 있어 파은답리(擺銀答里)을 잠(賺/속임)하여 말하길
「네가 만약(若) 인질(質)의 사람을 철회(撤回)한다면, 
  나는 곧 너의 투래(投來/투항하여 옴)한 족중(族眾/일족 무리)를 반(反/되돌림)하겠다!
파은답리(擺銀答里)가 그 말을 믿고 이에 말하길
「나는 장차(將) 만주(滿洲)와 야흑(夜黑/예허)의 중간(間)에 안거(安居)할 뿐이다!
마침내 7 추장(酋長)의 아들을 철회(撤回)하였고, 다시 아들로서 납림복록(納林卜祿)에게 주어 인질(質)로 삼았는데,
납림복록(納林卜祿)은 도리어 그 일족(族)을 불반(不反/되돌리지 않음)하였다.
파은답리(擺銀答里)가 다시 대신(大臣)을 보내 태조(太祖)에게 고(告)하여 말하길
「지난번 납림복록(納林卜祿)의 잠언(賺言/속이는 말)을 오신(誤信/잘못 믿음)하였고,
  지금(今) 거듭 한(汗)에게 의지(倚)하여 살고자 하니, 
  바라건대 장차(將) 이전에 상서(常書/창슈)의 아들에게 허락(許)한 한(汗)의 딸을,
  나에게 혼인(婚)을 하사(賜)하시오.」
태조(太祖)가 마침내 상서(常書)의 친(親/혼인)을 파(罷)하고는 허락(許)하였다.
후(后)에 파은답리(擺銀答里)가 배맹(背盟/맹세를 배신함)하고 취(娶/아내를 맞음)하지 않으니,
태조(太祖)가 견사(遣使/사신을 보냄)하여 일컬어 말하길
「너는 일찍이 야흑(夜黑)를 원조(助)하여 2차(次) 나에게 가병(加兵/군사력을 가함)하였고,
  지금(今) 또 나의 딸에게 빙(聘/장가 듦)하겠다고 하고는 취(娶/아내를 맞음)하지 않으니,
  어찌 된 것이냐?」
파은답리(擺銀答里)가 식사(飾詞/거짓으로 꾸미어 고함)하여 이로써 대답(對)하여 말하길
「내가 일찍이 야흑(夜黑)에 질자(質子/아들을 인질로 보냄)하였으니, 
  질자(質子)가 돌아오길 기다려, 내가 즉각(即) 왕취(往娶/가서 장가 듦)하여,
  너와 더불어 합모(合謀/함께 도모함)하겠다!」
곧바로 장차(將) 성원(城垣/성벽)을 3층(層)으로 수축(修築/수리하고 쌓음)하여 이로써 자고(自固/방비를 튼튼히 함)하였고,
야흑(夜黑)에 인질(質)이었던 아들 역시(亦) 철회(撤回)하였다.
이에 태조(太祖)가 사신을 보내 말하길
「지금(今) 질자(質子)가 이미 돌아왔는데, 너의 뜻은 또 어떠한가?」
파은답리(擺銀答里)가 성원(城垣/성벽)이 이미(已) 고(固/단단함)함을 시(恃/믿음)하여, 마침내 절친(絕親/화친을 끊음)하였다.
태조(太祖)가 즉각(即) 9월 9일에 솔병(率兵/병을 인솔함)하여 그 나라를 왕벌(往伐/가서 정벌함)하였고,
14일에 병(兵)이 이르러, 즉시(即時)에 극(克/함락함)하였고,
파은답리(擺銀答里) 부자(父子)를 죽이고, 그 병(兵)을 도륙(屠)하였고,
그 백성을 초복(招服/불러 복종시킴)하였고, 마침내 반사(班師/회군)하였는데,
휘발국(輝發國)은 이로부터 멸(滅)하였다.






1607년 5월에 태조가 막냇동생 조맄투(바야라) 버이러와 대장 어이두, 피옹돈, 훠르간 햐 등으로 하여금
병력 1천을 인솔하여 동해 워지부를 가서 정벌하게 하였는데 
허시허와 오모호 수루 및 푸너허 3곳을 취하였고 사람과 가축 2천을 획득하고는 회군하였다.
9월 6일 밤에 별을 따라 나오는 기운이 있었는데 동쪽으로 향하여 호이파 국에 곧장 부딪쳤고 7~8 밤에 바야흐로 끝이 났다.
또 서방으로부터 별을 따라 나오는 기운이 있었는데 한 달 남짓에 바야흐로 끝이 났다.
이때 호이파 바인다리 버이러의 일족 무리가 예허에 투항함이 많았고 그 부속 역시 반란 모의가 있었다.
바인다리가 듣고서 7 추장의 아들을 인질로 삼아 태조에게 병을 빌리고자 하니 태조가 병 1천을 원조하였다.
예허의 나림불우가 바인다리를 속여 말하길
   <네가 만약 만주에 준 인질을 철회한다면 나는 곧 투항하여 온 너의 일족 무리를 되돌려주겠다!>
바인다리가 그 말을 믿고 이에 말하길
   <나는 장차 만주와 예허의 중간에 편히 살 뿐이다!>
마침내 7 추장의 아들을 돌려받았고 다시 아들을 나림불우에게 주어 인질로 삼았는데
나림불우는 도리어 그 일족을 되돌리지 않았다.
바인다리가 다시 대신을 보내 태조에게 고하여 말하길
   <지난번 나림불우의 속이는 말을 잘못 믿었는데 지금은 거듭 한(누르하치)에게 의지하여 살고자 하니
    바라건대 장차 이전에 창슈의 아들에게 허락한 한(누르하치)의 딸을 나에게 하사하여 혼인하자!>
태조가 마침내 샹슈의 혼인을 파하고는 바인다리의 청을 허락하였다.
후에 바인다리가 맹약을 배신하고 아내를 맞이하지 않으니
태조가 사신을 보내 일컬어 말하길
   <너는 일찍이 예허를 도와 2차례에 걸쳐 나를 쳐들어 왔었다.
    지금 또 내 딸에게 장가들겠다고 하고는 맞이하지 않으니 어찌 된 것이냐?>
바인다리가 거짓으로 꾸며 대답하여 말하길
   <내가 일찍이 예허에 아들을 인질로 보냈으니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린 후에
    내가 즉시 가서 장가들고 너와 더불어 함께 도모하겠다!>
곧바로 장차 성벽을 3층으로 수축하고는 이로써 방비를 튼튼히 하였고,
예허에 인질로 있던 아들 역시 되돌아왔다.
이에 태조가 사신을 보내 말하길
   <지금 인질이 이미 돌아왔는데 너의 뜻은 또 어떠한가?>
바인다리가 성벽이 이미 단단함을 믿고 마침내 화친을 끊었다.
태조가 즉각 9월 9일에 병력을 인솔하여 그 나라를 정벌하였고
14일에 군사가 이르러 즉시에 성을 함락하였고 바인다리 부자를 죽이고 그 병사를 도륙하였으며
그 백성을 불러 복종시키고는 마침내 회군하였다.
이로부터 호이파는 멸망하였다.

요약.
1607년 5월 누르하치는 울아국을 격파한 기세로 동해여진(야인여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한다.
막냇동생 바야라(조맄투)와 어이두, 피옹돈, 훠르간 햐 등에게 군사 1천을 주어 동해여진을 정벌하게 하였다.
만주군(건주군)은 허시허, 오모호 수루, 푸너허를 점령하고 2천을 끌고 돌아온다.
한편 이 당시 호이파의 국주는 바인다리였는데, 바인다리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일족들이 예허에 투항하는 일이 발생한다.
또한 호이파 내부에서 반란 모의가 끊이지 않자 바인다리는 7추장의 아들을 만주에 인질로 삼고 병 1천을 빌린다.
호이파에 만주가 개입하자 예허의 나림불우는 다시 바인다리에게 
만주와의 동맹을 깨면 투항한 일족들을 되돌려 주겠다고 회유한다.
이에 바인다리는 만주와 예허 사이에 중립을 선포하고 7추장의 아들을 돌려받는다.
그러나 나림불우가 약조를 지키자 않자 바인다리는 다시 누르하치에게 혼인 동맹을 요청한다.
누르하치는 창슈와의 혼인을 파기하고 딸을 바인다리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예허의 나림불우가 바인다리에게 인질인 아들을 돌려주겠다고 하자
바인다리는 3층 성을 단단히 쌓고 이를 믿고 다시 만주와의 혼인동맹을 파기한다.
연이은 동맹 파기에 분노한 누르하치는 1607년 9월 9일 즉각 병력을 일으켜 호이파를 쳐들어간다.
9월 14일 호이파성은 함락되었고 만주군은 바인다리 부자와 그 병사를 도륙하였다.
누르하치는 호이파의 백성을 모조리 끌고 만주(건주)로 회군한다.
이로써 여진 5국 중 하다에 이어 호이파 두 가문이 사라졌다.
 
-6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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