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만인적 한세충 15부-<만고의 명장이로다!>남부의 반란군을 싹쓸히 하다!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거의 유일하게 무공으로 송사에 만인적이라 기록된 한세충에 대해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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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安範汝為反,辛企宗等討捕未克,賊勢愈熾。

以世忠為福建、江西、荊湖宣撫副使,世忠曰:

「建居閩嶺上流,賊沿流而下,七郡皆血肉矣。」

亟領步卒三萬,水陸並進。

次劍潭,賊焚橋,世忠策馬先渡,師遂濟。

賊盡塞要路拒王師,世忠命諸軍偃旗僕鼓,徑抵鳳凰山,頫瞰城邑,設雲梯火樓,連日夜並攻,賊震怖叵測。

五日城破,汝為竄身自焚,斬其弟岳、吉以徇,禽其謀主謝向、施逵及裨將陸必強等五百餘人。

世忠初欲盡誅建民,李綱自福州馳見世忠曰:

「建民多無辜。」

世忠令軍士馳城上毋下,聽民自相別,農給牛穀,商賈馳征禁,脅從者汰遣,獨取附賊者誅之。

民感更生,家為立祠。

捷聞,帝曰:

「雖古名將何以加。」

賜黃金器皿。

世忠因奏江西、湖南寇賊尚多,乞乘勝討平。

廣西賊曹成擁餘眾在郴、邵。

世忠既平閩寇,旋師永嘉,若將就休息者。

忽由處、信徑至豫章,連營江濱數十里,群賊不虞其至,大驚。

世忠遣人招之,成以其眾降,得戰士八萬,遣詣行在。

遂移師長沙。

時劉忠有眾數萬,據白麵山,營柵相望。

世忠始至,欲急擊,宣撫使孟庾不可,世忠曰:

「兵家利害,策之審矣,非參政所知,請期半月效捷。」

遂與賊對壘,弈棋張飲,堅壁不動,眾莫測。

一夕,與蘇格聯騎穿賊營,候者呵問,世忠先得賊軍號,隨聲應之,周覽以出,喜曰:

「此天錫也。」

夜伏精兵二千於白麵山,與諸將拔營而進,賊兵方迎戰,所遣兵已馳入中軍,奪望樓,

植旗蓋,傳呼如雷,賊回顧驚潰,麾將士夾擊,大破之,斬忠首,湖南遂平。

授太尉,賜帶、笏,仍敕樞密以功頒示內外諸將。

師還建康,置背嵬軍,皆勇鷙絕倫者。

九月,為江南東、西路宣撫使,置司建康。

건안(建安)의 범여위(範汝為)가 배반(反)하였는데, 
신기종(辛企宗) 등(等)은 토포(討捕/토벌하여 체포함)함이 미극(未克/이기지 못함)하였고,
적세(賊勢/적의 세력)가 유치(愈熾/더욱 성함)하였다.

한세충(世忠)을 복건(福建), 강서(江西), 형호(荊湖) 선무부사(宣撫副使)로 삼았는데, 한세충(世忠)이 말하길

「건주(建)는 민령(閩嶺)의 상류(上流)에 거(居/자리 잡음)하니, 적(賊)이 연류(沿流/물을 따라 흐름)하여 내려온다면, 

  7군(郡)이 모두 혈육(血肉/피와 살)일 뿐입니다.」

빠르게 보졸(步卒) 3만(萬)을 영(領/거느림)하여, 수륙(水陸)으로 병진(並進)하였다.

검담(劍潭)에 차(次/머묾)하였는데, 적(賊)이 분교(焚橋/다리를 불사름)하였고,

한세충(世忠)이 책마(策馬/말을 채찍질함)하여 선도(先渡/먼저 건넘)하였고, 

사(師/군대)가 마침내 제(濟/건넘)하였다.

적(賊)이 모든 새(塞/보루)와 요로(要路/중요 길목)로 왕사(王師/임금의 군대)를 거(拒/막음)하였는데,

한세충(世忠)이 명(命)하여 제군(諸軍/여러 군)은 언기(偃旗/깃발을 내림)하고 복고(僕鼓/북을 숨김)하였고,

곧바로 봉황산(鳳凰山)에 이르러, 성읍(城邑)을 부감(頫瞰/잠복하여 내려봄)하였고,

운제(雲梯/공성용 사다리)와 화루(火樓/공성용 무기)를 설치(設)하였고,

일야(日夜/밤낮)로 연(連)이어 나란히 공격(攻)하니, 

적(賊)이 진포(震怖/두려워서 떪)하고 파측(叵測/헤아리기 어려움)하였다.

5일에 성(城)이 파(破/깨트림)하였고, 범여위(汝為)는 찬신(竄身/몸을 숨김)하여 자분(自焚/스스로 분신함)하였고,

그 동생 범악(岳)과 범길(吉)은 참(斬)하여 이로써 순(徇/군령을 내림)하였고,

그 모주(謀主/주동자) 사향(謝向) 및 시규(施逵)와 더불어 비장(裨將) 육필강(陸必強) 등(等) 500여인을 금(禽/사로잡음)하였다.

한세충(世忠)이 처음에 건주(建)의 백성을 진주(盡誅/모조리 주살함)하고자 하였는데,

이강(李綱)이 복주(福州)로부터 치(馳/말을 달림)하여 한세충(世忠)을 보고는 말하길

「건주(建)의 백성은 무고(無辜/죄가 없음)가 많다.

한세충(世忠)이 군사(軍士)로 하여금 성상(城上/성위)로 치(馳/말을 달림)하여 내려가지 말라 하였고,

백성이 스스로 상별(相別/서로 떨어짐)함을 청(聽/들어줌)하였고,

농민(農)에게는 우곡(牛穀/소와 곡식)을 급(給/줌)하였고, 

상민(商)은 가격(賈)을 치징(馳征/제멋대로 부름)함을 금(禁)하였고,

협종(脅從/위협에 눌려 복종함)한 자(者)는 태견(汰遣/걸러내 보냄)하였고,

오직 부적(附賊/적에게 붙어 따름)한 자(者)만을 취(取)하여 주살(誅)하였다.

백성이 갱생(更生/죽을 지경에서 다시 살아남)을 감격(感)하였고, 집마다 입사(立祠/사당을 세움)하였다.

첩문(捷聞/승전 보고)하자, 제(帝)가 말하길

「아무리 옛 명장(名將)이라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황금(黃金)과 기명(器皿/그릇붙이)를 하사(賜)하였다.

한세충(世忠)이 강서(江西)와 호남(湖南)의 구적(寇賊/도둑과 반란군)이 더욱 많다고 주(奏/아룀)으로 인(因)하여,
승승(乘勝/승기를 탐)하여 토평(討平/토벌하여 평정함)하기를 걸(乞/바람)하였다.

광서(廣西)의 적(賊) 조성(曹成)이 여중(餘眾/남은 무리)를 옹(擁/낌)하여 침(郴)과 소(邵)에 있었다.

한세충(世忠)이 이윽고 민(閩)의 구(寇/도적)를 평정(平)하고, 영가(永嘉)로 선사(旋師/군을 돌림)하였고,

장차(將) 나아가 휴식(休息)하는 것처럼 보였다.

홀연히(忽) 처(處)와 신(信)을 경유(由)하여 지름길로 예장(豫章)에 이르렀고,

강빈(江濱/강의 물가) 수십리(數十里)에 연영(連營/잇닿아 영을 세움)하였고,

군적(群賊/도적 무리)은 그 이름을 불우(不虞/헤아리지 못 함)하였는데, 대경(大驚/크게 놀람)하였다.

한세충(世忠)이 견인(遣人/사람을 보냄)하여 초유(招)하니, 조성(成)이 그 무리를 들어 항복(降)하였고,

전사(戰士) 8만을 득(得)하였고, 행재(行在/임금이 있는 곳)에 보내 이르게 하였다.

마침내 장사(長沙)로 이사(移師/군을 옮김)하였다.

이때 유충(劉忠)에게 무리 수만(數萬)이 있었는데, 백면산(白麵山)에 근거(據)하였고,

영책(營柵/병영의 목책)이 상망(相望/마주 바라봄)하였다.

한세충(世忠)이 비로소 이르자, 급격(急擊/급히 공격함)하고자 하였는데, 선무사(宣撫使) 맹유(孟庾)가 불가(不可)하다 하였고,

한세충(世忠)이 말하길

「병가(兵家)의 이해(利害/이로움과 해로움)는, 꾀를 써서 살필 뿐인데,

  참정(參政)은 알지 못하니, 반월(半月/보름)을 기약(期)하여 효첩(效捷/승전을 드러냄)을 청(請)하오.

마침내 적(賊)과 더불어 대루(對壘/보루를 구축하고 적군을 상대함)하였고,

혁기(弈棋/바둑과 장기를 둠)하고 장음(張飲/휘장을 둘러 치고 술을 마심)하였고,

견벽(堅壁/성벽을 견고히 지킴)하고 부동(不動/움직이지 않음)하니, 무리가 막측(莫測/헤아리지 못함)하였다.

어느날 저녁에, 소격(蘇格)과 함께 연기(聯騎/말을 나란히 타고 감)하여 적(賊)의 영(營)을 천(穿/뚫고 들어감)하였고,

후자(候者/정탐병)이 가문(呵問/꾸짖어 물음)하니, 한세충(世忠)이 먼저 적(賊)의 군호(軍號)를 득(得)하였는데,

곧바로 소리 내어 응답(應)하였고, 주람(周覽/두루 돌아다니며 봄)하고는 이로써 나왔고,

기뻐하여 말하길

「이는 천석(天錫/하늘이 내려 줌)이다.」

야밤(夜)에 정병(精兵) 2천을 백면산(白麵山)에 매복(伏)하였고,

제장(諸將/여러 장수)과 더불어 발영(拔營/영을 뽑음)하고는 진군(進)하였고, 

적병(賊兵)이 바야흐로 영전(迎戰/맞아 싸움)하였는데, 보낸 병력이 이미 중군(中軍)으로 치입(馳入/빠르게 들어감)하였고,

망루(望樓)를 탈취(奪)하였으며, 기개(旗蓋/기와 일산)를 식(植/세움)하고는,

우레와 같이 전호(傳呼/전하여 부름)하니, 적(賊)이 회고(回顧/돌아다봄)하고는 경궤(驚潰/놀라 흩어짐)하였고,

장사(將士)를 지휘(麾)하여 협격(夾擊/협공)하여, 대파(大破)하였고, 유충(忠)의 목을 참(斬)하니,

호남(湖南)이 마침내 평정(平)되었다.

태위(太尉)를 제수(授)하고, 대(帶)와 홀(笏)을 하사(賜)하였으며,

거듭 공(功)으로써 추밀(樞密)의 칙서(敕)를 내려 내외(內外)의 제장(諸將)에게 반시(頒示/세상에 널리 펴서 알림)하였다.

건강(建康)으로 사환(師還/회군)하였고, 배외군(背嵬軍)을 설치(置)하였는데, 

모두 용지(勇鷙/용감하고 굳셈)가 절륜(絕倫)한 자(者)들이었다.

9월에, 강남(江南) 동로(東)와 서로(西路) 선무사(宣撫使)로 삼았고, 건강(建康)에 치사(置司/관청을 설치함)하였다.



건안의 범여위가 배반하였는데 신기종 등이 토벌하려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반란군의 세력이 더욱 성해졌다.

한세충을 복건, 강서, 형호 선무부사로 삼았는데 한세충이 말하길

   <건주(建)는 민령의 상류에 자리 잡아 있으니 적이 물을 따라 내려온다면 7군(郡)이 모두 혈육이 될 것입니다!>

빠르게 보졸 3만을 거느리고 수륙으로 병진하였다.

검담에 주둔하였는데 적이 다리를 불살랐고 한세충이 말을 채찍질하여 강을 먼저 건너자 마침내 군대가 모두 건넜다.

반란군이 모든 보루와 중요 길목을 점거하고 관군을 막았는데

한세충이 명하여 여러 군은 깃발을 내리고 북을 숨기게 하고는 곧바로 봉황산에 이르러 

잠복하여 성읍을 내려 보고는 공성용 사다리와 화루(공성용 무기)를 준비하였고 

밤낮으로 연이어 나란히 공격하니 적이 두려워서 떨었다.

5일 만에 성을 깨트렸는데 범여위는 분신하여 죽었고 그 동생 범악과 범길은 참하여 군령을 내려

그 주동자 사향, 시규와 더불어 비장 육필강 등 500여 인을 사로잡았다.

한세충이 처음에 건주의 백성을 모조리 주살하고자 하였는데 이강이 복주로부터 말을 달려와서 한세충을 보고 말하길

   <건주의 백성 다수는 죄가 없다!>

한세충이 군사들로 하여금 성위에 올라가게 하여 내려오지 말라 하였고

백성이 성을 떠나는 것을 허용하였고 농민에게는 소와 곡식을 공급하였고

상인은 제멋대로 가격을 올리는 것을 금하게 하였으며

반란군의 위협에 눌려 복종한 자들은 걸러서 보내주었고

오직 적에게 붙어 따른 자들만을 취하여 주살하였다.

백성이 죽을 지경에서 다시 살아난 것을 감격하여 집마다 한세충의 사당을 세웠다.

승첩을 보고하자 황제가 말하길

   <아무리 옛 명장이라 하여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황금과 그릇붙이를 하사하였다.

한세충이 강서와 호남의 도둑과 반란군이 더욱 많다고 아뢰며 승기를 타 모두 토벌하여 평정하기를 청했다.

광서의 반란군 조성이 남은 무리를 끼고 침과 소에 있었다.

한세충이 이윽고 민의 도적을 평정하고 영가로 군을 돌리면서 장차 휴식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러다 홀연히 처와 신을 경유하여 지름길로 예장에 이르렀고

물가 수십 리에 잇닿아 영을 세우니 그 반란군은 한세충의 군이 온 것을 알지 못하다가 크게 놀라게 되었다.

한세충이 사람을 보내 반란군을 초유하니 조성이 그 무리를 들어 항복하였고

이에 전사 8만을 얻어 행재(임금이 있는 곳)에 보내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장사로 군대를 옮겼다.

이때 유충에게 무리 수만이 있었는데 백면산에 근거하였고 영책이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한세충이 비로소 이르자 급히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선무사 맹유가 불가하다 하니

한세충이 말하길

   <병가의 이로움과 해로움은 책략을 써서 살필 뿐인데 참정은 알지 못하오!

    청컨대 보름을 기약하여 승전을 보이도록 하겠소!>

마침내 적과 더불어 보루를 구축하고 상대하였고 바둑과 장기를 두며 휘장을 둘러치고 술을 마셨다.

성벽을 견고히 지키고 움직이지 않으니 무리가 헤아리지 못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 소격과 함께 말을 나란히 타고 가서 적의 영을 뚫고 들어갔는데

정탐병이 힐문하여 물으니 한세충이 먼저 적의 군호를 얻은 관계로

곧바로 소리 내어 응답하였고 반란군의 진영을 두루 돌아다니며 보고는 나왔다.

한세충이 기뻐하며 말하길

   <이는 하늘이 내려 준 것이다!>

야밤에 정병 2천을 백면산에 매복하고 여러 장수와 더불어 영을 철거하고는 진군하였고

반란군이 바야흐로 맞아 싸웠는데 한세충이 보낸 병력이 이미 적의 중군으로 빠르게 들어가서

망루를 탈취하고 기와 일산을 세우며 우레와 같이 전하여 부르니 적이 돌아다보고는 크게 놀라 흩어졌다.

한세충이 장졸들을 지휘하여 협공하여 대파하였고 유충의 목을 참하니 호남이 마침내 평정되었다.

태위를 제수하였고 대와 홀을 하사하였으며 거듭 공으로써 추밀의 칙서를 내려 내외의 제장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였다.

건강으로 회군하여 배외군을 설치하였는데 모두 용감하고 굳세며 절륜한 자들이었다.

9월에 강남 동로와 서로 선무사로 삼고 건강에 관부를 설치하게 하였다.







*건주 범여위의 반란
 → 1130년 8월 복건로 건주 구녕현 회원동에서 범여위가 반란을 일으켜 수신 이봉을 사로잡는다.
    당시 남송은 금의 남침으로 인한 패잔병이 도적떼가 되어 약탈을 일삼았고
    과중한 조세 또한 남송 백성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고종은 정매, 이봉, 신기종 등을 보내 토벌하게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에 범여위에게 민병통령(民兵統領)이란 관직을 내리고 초유한다.
    그러나 범여위가 반란군을 해산시키지 않고 건주을 계속 점유하고 있자
    고종은 한세충과 맹유를 보내 재차 토벌하게 한다.
    1132년 1월 한세충은 휘하 부대 3만을 이끌고 건주를 공격하여 5일 만에 성을 함락하고
    반란군 1만을 죽이고 500여 명을 생포한다.
    범여위는 동굴로 도주하여 분신 자살하면서 반란은 평정된다.
 
요약.
1130년 금나라의 재침에 멸망 위기까지 갔던 남송은 회군하는 올출의 10만 금나라 군을
한세충이 8천 병력으로 황천탕에서 48일 동안 막아서면서 기사 회생한다.
시간을 번 남송은 중국 남부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진압하고자 각지로 장군들을 보낸다.
한세충은 1132년 1월 건주의 반란군 범여위를 토벌하였고,
1132년 5월에는 최대 반란군 중 하나인 광서의 조성을 항복시키고 군사 8만을 얻어 고종에게 보낸다.
또한 장사에 근거한 유충의 수만 반란군을 격파하여 호남을 평정하였다.
계속된 승첩이 고종에게 보고되자 고종은 매우 기뻐하여
만고의 명장도 한세충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하며 포상한다.
한편 한세충은 강한 장졸들을 선발하여 최정예군 배외군을 설치한다.
한편 한세충에 비길 만한 무력을 지닌 양재흥은 반란군 조성 휘하에 있었는데
악비군과의 전투에서 악비의 군영으로 난입하여 악비의 동생인 악번과 부장인 한수부를 죽인다.
이후 조성이 관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자 양재흥은 산으로 도주하였다가
결국 악비에게 투항하였고 악비는 친동생을 죽인 양재흥을 중용한다.

송사(宋史) 양재흥(楊再興) 열전 국역 http://cafe.naver.com/booheong/88968

-1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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