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만인적 한세충 20부-병권회수와 은거!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거의 유일하게 무공으로 송사에 만인적이라 기록된 한세충에 대해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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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檜收三大將權,四月,拜樞密使,遂以所積軍儲錢百萬貫,米九十萬石,酒庫十五歸於國。

世忠既不以和議為然,為檜所抑。

及魏良臣使金,世忠又力言:

「自此人情消弱,國勢委靡,誰複振之?北使之來,乞與面議。」

不許,遂抗疏言檜誤國。

檜諷言者論之,帝格其奏不下。

世忠連疏乞解樞密柄,繼上表乞骸。

十月,罷為醴泉觀使、奉朝請,進封福國公,節鉞如故。

自此杜門謝客,絕口不言兵,時跨驢攜酒,從一二奚童,縱遊西湖以自樂,平時將佐罕得見其面。

진회(秦檜)가 삼대장(三大將/한세충, 악비, 장준)의 병권(權)을 회수(收)하였는데,
4월에, 추밀사(樞密使)를 배(拜/벼슬을 줌)하였고, 
마침내 소적(所積/쌓아둔 것)한 군저전(軍儲錢/군자금) 100만 관(貫), 쌀 90만석(石), 
주고(酒庫/술을 넣어 두는 곳간) 15곳을 나라에 되돌렸다.
한세충(世忠)이 이미 화의(和議)를 동의하지 않았는데, 진회(檜)가 소억(所抑/물리침)하였다.
위량신(魏良臣)이 금(金)에 사신(使)으로 감에 이르러, 한세충(世忠)이 또 힘써 말하길
「이로부터 인정(人情/인심)이 소약(消弱/약해짐)하여, 국세(國勢)가 위미(委靡/의기소침함)할 것이니,
  누가 복진(複振/거듭 떨쳐 일어남)하겠나이까?
  북쪽(北)의 사신(使)이 오면, 바라건대 면의(面議/대면하여 서로 의논함)를 베푸소서!」
불허(不許)하였고, 마침내 항소(抗疏/항의하여 상소를 올림)하여 진회(檜)가 오국(誤國/나라를 그르침)한다 말하였다.
진회(檜)가 언자(言者/간관)를 풍(諷/간함)하게 하여 논(論)하게 하니,
황제(帝)가 그 주(奏/상소)를 격(格/가로막음)하고는 내리지 않았다.
한세충(世忠)이 연(連)이어 상소(疏)를 올려 추밀(樞密)의 병(柄/권력)을 해임(解)해달라 걸(乞/바람)하였고,
계속(繼)하여 상표(上表/표문을 올림)하여 걸해(乞骸/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청함)하였다.
10월에, 예천관사(醴泉觀使)와 봉조청(奉朝請)으로 삼아 파직(罷)하였고, 복국공(福國公)으로 진봉(進封/올려 봉함)하였으며,
절월(節鉞/임금이 내려주는 절과 부월)은 여고(如故/전과 같음)하였다.
이로부터 두문(杜門/문을 닫아걸음)하고 사객(謝客/손님을 사절함)하였고,
절구(絕口/입을 닫음)하고 병(兵)에 관한 말을 하지 않았고,
때때로 과려(跨驢/나귀를 탐)하고 휴주(攜酒/술을 지니고 감)하여, 해동(奚童/아이 종) 한 둘이 종(從/따름)하였고,
서호(西湖)를 종유(縱遊/한가롭게 놂)하며 이로써 자락(自樂/스스로 즐김)하였는데,
평시(平時) 장좌(將佐/장수의 보좌관)만이 그 얼굴을 드물게 볼 수 있었다.

*삼대장의 병권 회수
 : 1140년 유기가 순창에서 금나라 주력군 괴자마 부대의 70%를 섬멸하자 금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한다. 
   괴자마 부대는 100% 여진인으로 이뤄진 금나라의 최정예군으로
   100% 기병으로 구성되었으며 전쟁이 벌어지면 다른 종족군(거란족, 발해족, 해족, 한족)이 전투에 나섰고
   괴자마 부대는 오직 승부를 결단낼 때만 기동하였으며 항상 승리하는 불패의 군대였다.
   순창전투에서 유기는 대기병 맞춤 전략과 전술을 택하여 괴자마 부대를 격멸시킨다.
   이 전투 이후 남송 조정의 진회는 금나라와의 화친을 성립하고 또한 비대해진 군벌을 해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고
   즉각 화의를 추진하면서 군벌 해체를 도모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군벌들은 순창전투의 승전을 국토수복의 대기회로 보았고
   대대적인 북벌을 단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남송군의 총병력은 16만으로 각 군벌들은 2~3만의 군사를 지니고 있었고 사병의 성격이 매우 강했다.
   특히 악비는 북진하여 개봉과 낙양을 수복하겠다며 북벌 승인을 고종에게 요청하였고,
   고종은 이를 거부하며 회군하라 명한다.
   그러나 악비는 고종의 회군명령을 12번이나 거부하면서 고종의 심기를 건들게 된다.
   진회는 섬주 장관 임명을 계기로 옛 법대로 변경 지역의 군 통솔권을 무신에서 문신으로 바꿔야 해야 한다고 말하고 
   고종 또한 동조하였다.
   진회는 무신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던 추밀사 장준(문관)을 설득하여 금과의 화친과 군벌의 병권회수를 밀어 부친다.
   장준(문관)은 더이상 무리한 전쟁을 수행하기보다는 현 국토를 유지하고 화친을 맺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맨 먼저 자신의 병권을 내려놓고 휘하 부대를 조정에 반납한다.
   장준(문관)은 세 대장 한세충, 장준(무관), 악비를 조정으로 소환하여 추밀원의 관직을 하사해야 
   그들의 병권을 회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조서를 초안한다.
   고종은 세 대장에게 추밀원으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한세충과 장준(무관)은 곧바로 조정에 들어갔고 각각 추밀사에 임명된다.
   고종은 장준(무관)을 따로 불러 <곽자의>의 예를 들며 곽자의가 충신으로 기록되고 후손이 부귀영화를 누린 것은 
   그의 군대가 밖에 있으면서도 조정에 충성을 다하여 조정의 군대와 마찬가지이었기 때문이었다며 
   막강한 병권을 쥐고 조정을 경시하여 어명을 내려도 즉시 시행하지 않는 무장은 곧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악비는 7일이나 뒤늦게 조정에 들어왔고 추밀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세 대장의 병권은 모두 회수되었고 군대가 출동할 때에는 고종의 재가를 받아
   병력을 내려받아 움직이게 하였다.
   이후 악비는 병권을 되돌리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죽었고,
   한세충은 악비의 숙청이후 문신들의 탄핵요구를 고종이 막아줬으나 스스로 사직하였고
   장준(무관)은 진회에게 붙어 악비 숙청에 가담하였다.
   당시 진회는 병권을 모두 장준(무관)에게 몰아주기로 약조하였으나 훗날 진회는 강막을 이용하여
   장준(무관)을 탄핵하였고 이를 계기로 장준(무관)을 파직한다.
   장준(무관)은 후에 다시 조정에 복귀하였으며 청하군왕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한세충은 사직 후 두문불출하며 조정의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종종 예전 부하들이 찾아왔으나 일절 만나지 않으며 조용히 살다가 죽었다.
   물론 함안군왕에 봉해졌다.
 

진회가 삼대장 한세충, 악비, 장준(무관)의 병권을 회수하였는데
1141년 4월에 한세충을 추밀사를 임명하니 마침내 한세충이 저축해 놓은
군자금 100만 관, 쌀 90만 석, 곳간 15곳을 나라에 되돌렸다.
한세충이 이미 화의를 동의하지 않았는데 진회가 의견을 물리쳤다.
위량신이 금에 사신으로 감에 이르러 한세충이 또 힘써 말하길
   <이로부터 인심이 약해져서 국세가 의기소침할 것이니 누가 거듭 떨쳐 일어나겠나이까?
    북쪽의 사신이 오면 바라건대 저와 대면하여 의논하게 해주시옵소서!>
황제가 불허하니 마침내 항의 상소를 올려 진회가 나라를 그르친다 말하였다.
진회가 간관을 부추겨 간하게 하여 죄를 논하게 하니 황제가 그 상소를 가로막고는 비답을 내리지 않았다.
한세충이 연이어 상소를 올려 추밀의 권력을 해임해달라 청하였고 계속하여 표문을 올려 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청하였다.
1141년 10월에 예천관사와 봉조청으로 삼아 파직하였고 복국공으로 올려 봉하였으며 
절월(임금이 내려주는 절과 부월)은 전과 같게 하였다.
이로부터 두문(문을 닫아걸음)하고 손님을 사절하였으며 입을 닫고 군사에 관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때때로 나귀를 타고 술을 지니고 아이 종 한 둘이 따르면서 서호를 한가롭게 유람하면서 이로써 스스로 즐겼다.
평상시에는 이전의 보좌관만이 그 얼굴을 드물게 볼 수 있었다.

요약.
1141년 4월 진회의 계책으로 남송 3대장인 한세충, 장준(무관), 악비의 병권이 회수되고
한세충은 추밀사에 임명된다.
진회는 군벌의 병권을 회수하자 곧장 화의를 밀어붙였다.
한세충은 진회에 맞써 화의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진회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간언한다.
이에 진회는 간관을 부추겨 한세충을 탄핵하게 하였고 고종이 이를 막아줬으나
한세충은 중앙 조정에 환멸을 느껴 사직상소를 내고 은거한다.
한세충은 문무신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한가롭게 서호를 유람하여 유유자적한 말년을 보낸다.

주전파들을 죽이고 화친을 애걸하는 남송 고종의 맹세표문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96428
남송 고종의 맹세표문에 답하는 금 희종의 책봉문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96434

-2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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