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송사 휘종, 흠종 본기를 국역하였는데요, 틈틈히 남송 1대 황제 고종의 본기도 국역코자 합니다.
五月甲辰,以范宗尹為尚書右僕射兼禦營使。
辛亥,統領赤心隊軍馬劉晏及戚方戰于宣州,敗死。
壬子,金人焚建康府,執李棁、陳邦光而去。
淮南宣撫司統制岳飛邀擊于靜安鎮,敗之。
是夜,紫微垣內有赤雲亙天,白氣貫其中。
癸丑,詔台諫等官各舉所知二人。
以張守參知政事、趙鼎簽書樞密院事。
以白金三萬兩賜韓世忠軍,贈戰歿將孫世詢、嚴永吉、張淵等官。
甲寅,金人陷定遠縣,執閭勍去,勍不屈,死之。
巨師古擊戚方于宣州,數敗之,方引去。
乙卯,王綯罷。
丁巳,命劉光世移軍捕戚方。
楊勍犯婺州。
戊午,復置權尚書六部侍郎。
癸亥,詔中原、淮南流寓士人,聽所在州郡附試。
甲子,周望罷,尋分司、衡州居住。
置京畿、淮南、湖北、京東西路鎮撫使。
乙丑,升高郵軍為承州。
以翟興、孟汝、趙立、劉位、趙霖、李成、吳翊、李彥先、薛慶並為鎮撫使:
興河南府,唐州,立楚、泗州、漣水軍,位滁、濠州,霖和州、無為軍,成舒、蘄,翊光、黃州,彥先海州、淮陽軍,慶,承州、天長軍。
丁卯,慶及金人戰於承州城下,累敗之。
戊辰,命江、浙州縣祭戰死兵民。
分江東、西為鄂州、江州、池州三路,置安撫使。
罷諸路帥臣兼制置使、諸州守臣兼管內安撫使。
是月,劉超據荊南,分兵犯峽州,又合叛將彭筠犯復州。
淮西敗將崔增陷焦湖水砦。
河東、北經制使王俊舉兵及金人戰於襄城縣,敗之,復潁昌府。
張浚承制以金、房州隸利路。
5월 갑진일(甲辰)에, 범종윤(范宗尹)을 상서우복사(尚書右僕射) 겸(兼) 어영사(禦營使)로 삼았다.
신해일(辛亥)에, 통령(統領) 적심대(赤心隊) 군마(軍馬) 유안(劉晏)이 척방(戚方)과 더불어 선주(宣州)에서 싸웠는데,
패사(敗死/패하여 죽음)하였다.
임자일(壬子)에, 금인(金人)이 건강부(建康府)를 분(焚/불사름)하였고,
이절(李棁)과 진방광(陳邦光)을 집(執/사로잡음)하고는 가버렸다.
회남선무사(淮南宣撫司) 통제(統制) 악비(岳飛)가 정안진(靜安鎮)에서 요격(邀擊)하여, 깨트렸다.
이 밤에, 자미원(紫微垣) 내(內)에 적운(赤雲/붉은 구름)이 긍천(亙天/하늘에 뻗침)함이 있었는데,
백기(白氣)가 그 가운데를 관(貫/꿰뚫음)하였다.
계축일(癸丑)에, 조(詔)하여 태간(台諫) 등(等)의 관리(官)는 각각(各) 아는 자 2인을 천거(舉)하게 하였다.
장수(張守)를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조정(趙鼎)을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로 삼았다.
백금(白金) 3만(萬) 냥(兩)을 한세충(韓世忠) 군(軍)에 하사(賜)하였고,
전몰(戰歿) 장수(將) 손세순(孫世詢), 엄영길(嚴永吉), 장연(張淵) 등(等)의 관직(官)을 추증(贈)하였다.
갑인일(甲寅)에, 금인(金人)이 정원현(定遠縣)을 함락(陷)하였고, 여경(閭勍)을 집(執/사로잡음)하여 갔는데,
여경(勍)이 불굴(不屈/굽히지 않음)하니, 죽였다.
거사고(巨師古)가 척방(戚方)을 선주(宣州)에서 공격(擊)하여, 수차례(數) 깨트리니, 척방(方)이 인거(引去/이끌고 가버림)하였다.
을묘일(乙卯)에, 왕도(王綯)를 파직(罷)하였다.
정사일(丁巳)에, 명(命)하여 유광세(劉光世)는 이군(移軍/군을 옮김)하여 척방(戚方)을 체포(捕)하게 하였다.
양경(楊勍)이 무주(婺州)를 범(犯)하였다.
무오일(戊午)에, 권상서(權尚書) 육부시랑(六部侍郎)을 복치(復置/다시 설치함)하였다.
계해일(癸亥)에, 조(詔)하여 중원(中原)과 회남(淮南)의 유우(流寓/떠돌다 타향에 거주함)하는 사인(士人/선비)는,
소재(所在)하는 주군(州郡)에서 부시(附試/과거 시험)를 청(聽/들어줌)하였다.
갑자일(甲子)에, 주망(周望)을 파직(罷)하였고, 잇달아 분사(分司/관청을 나눔)하여 형주(衡州)에 거주(居住)하게 하였다.
경기(京畿), 회남(淮南), 호북(湖北), 경동서로(京東西路) 진무사(鎮撫使)를 배치(置)하였다.
을축일(乙丑)에, 고우군(高郵軍)을 승격(升)하여 승주(承州)로 하였다.
적흥(翟興), 맹여(孟汝), 조립(趙立), 유위(劉位), 조림(趙霖), 이성(李成), 오익(吳翊), 이언선(李彥先), 설경(薛慶)을
나란히 진무사(鎮撫使)로 삼았다.
적흥(興)은 하남부(河南府)와 당주(唐州), 조립(立)은 초(楚)와 사주(泗州) 및 연수군(漣水軍),
유위(位)는 저주(滁)와 호주(濠州), 조림(霖)은 화주(和州)와 무위군(無為軍), 이성(成)은 서주(舒)와 기주(蘄),
오익(翊)은 광주(光)와 황주(黃州), 이언선(彥先)은 해주(海州)와 회양군(淮陽軍), 설경(慶)은 승주(承州)와 천장군(天長軍)이다.
정묘일(丁卯)에, 설경(慶)이 금인(金人)과 더불어 승주성(承州城) 아래에서 싸웠는데, 누차(累) 깨트렸다.
무진일(戊辰)에, 명(命)하여 강(江)과 절(浙)의 주현(州縣)의 전사(戰死)한 병민(兵民/병사와 백성)을 제사(祭)하였다.
강동(江東)과 강서(西)를 분리(分)하여 악주(鄂州)와 강주(江州) 및 지주(池州)의 3 지역으로 삼고,
안무사(安撫使)를 배치(置)하였다.
제로(諸路/여러 지역)의 수신(帥臣)이 제치사(制置使)를 겸(兼)하거나
제주(諸州/여러 주)의 수신(守臣)이 관내안무사(管內安撫使)를 겸(兼)하는 것을 파(罷/멈춤)하였다.
이달에, 유초(劉超)가 형남(荊南)을 점거(據)하여, 분병(分兵/병력을 나눔)하여 협주(峽州)를 범(犯)하였고,
또 반장(叛將/반란군 장수) 팽균(彭筠)과 연합(合)하여 복주(復州)를 범(犯)하였다.
회서(淮西)의 패장(敗將) 최증(崔增)이 초호수채(焦湖水砦)를 함락(陷)하였다.
하동(河東)과 하북(北) 경제사(經制使) 왕준(王俊)이 거병(舉兵)하여 금인(金人)과 더불어 양성현(襄城縣)에서 싸워,
깨트리고는, 영창부(潁昌府)를 수복(復)하였다.
장준(張浚)이 승제(承制/황제의 권한을 편의로 행사함)하여 금주(金)와 방주(房州)로써 이로(利路)에 예속(隸)하였다.
1130년 5월 03일에 범종윤을 상서우복사 겸 어영사로 삼았다.
5월 10일에 통령 적심대 군마 유안이 척방과 더불어 선주에서 싸웠는데 패하여 죽었다.
5월 11일에 금나라 군이 건강부를 불살랐고 이절과 진방광을 사로잡고는 가버렸다.
회남선무사 통제 악비가 정안진에서 요격하여 깨트렸다.
이 밤에 자미원 내에 붉은 구름이 하늘에 뻗쳤는데 하얀 구름이 그 가운데를 꿰뚫었다.
5월 12일에 조서를 내려 태간 등의 관리는 각각 아는 자 2인을 천거하게 하였다.
장수를 참지정사로 조정을 첨서추밀원사로 삼았다.
백금 3만 냥을 한세충 군에 하사하였고 전몰 장수 손세순, 엄영길, 장연 등의 관직을 추증하였다.
5월 13일에 금나라 군이 정원현을 함락하였고 여경을 사로잡아 갔는데 여경이 굽히지 않으니 죽였다.
거사고가 척방을 선주에서 공격하여 수차례 깨트리니 척방이 군사를 이끌고 가버렸다.
5월 14일에 왕도를 파직하였다.
5월 16일에 명하여 유광세는 군을 옮겨 척방을 체포하게 하였다.
양경이 무주를 범하였다.
5월 17일에 권상서 육부시랑을 다시 설치하였다.
5월 22일에 조서를 내려 중원과 회남의 떠돌다 타향에 거주하는 선비는 소재하는 주군에서 과거 시험를 볼 수 있게 하였다.
5월 23일에 주망을 파직하였고 잇달아 관청을 나눠 형주에 거주하게 하였다.
경기, 회남, 호북, 경동서로 진무사를 배치하였다.
5월 24일에 고우군을 승격하여 승주로 하였다.
적흥, 맹여, 조립, 유위, 조림, 이성, 오익, 이언선, 설경을 나란히 진무사로 삼았다.
적흥은 하남부와 당주, 조립은 초와 사주 및 연수군, 유위는 저주와 호주, 조림은 화주와 무위군,
이성은 서주와 기주, 오익은 광주와 황주, 이언선은 해주와 회양군, 설경은 승주와 천장군이다.
5월 26일에 설경이 금나라 군과 더불어 승주성 아래에서 싸웠는데 누차 깨트렸다.
5월 27일에 명하여 강과 절의 주현의 전사한 병사와 백성을 제사하였다.
강동과 강서를 분리하여 악주와 강주 및 지주의 3 지역으로 삼고 안무사를 배치하였다.
여러 지역의 수신이 제치사를 겸하거나 여러 주의 수신이 관내안무사를 겸하는 것을 파하였다.
이달에 유초가 형남을 점거하여 병력을 나눠 협주를 범하였고 또 반란군 장수 팽균과 연합하여 복주를 범하였다.
회서의 패장 최증이 초호수채를 함락하였다.
하동과 하북 경제사 왕준이 거병하여 금나라 군과 더불어 양성현에서 싸워 깨트리고는 영창부를 수복하였다.
장준(문관)이 승제(황제의 권한을 편의로 행사함)하여 금주와 방주로써 이로에 예속하였다.
요약.
1130년 5월 건강부를 불사르고 회군하는 금군을 악비가 요격한다.
고종은 황천탕에서 패전한 한세충군에 금 3만 냥을 하사하고 전몰 장수의 관직을 추증한다.
고종은 각지에 진무사와 안무사를 파견하고 새로운 인물을 등용하는 한편
전몰한 장병과 백성들에 대한 장례식을 거행하는 등 전후 복구에 매진한다.
이달에도 척방, 유초, 팽균, 최증 등의 반란군이 날뛰고 있었다.
-44부에서 계속-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