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패기<나라가 망하더라도 개돼지 같은 용골대놈의 목을 치시오소서!> 병자호란 이야기

일전에 후금 2대 한 홍 타이지가 몽고 차하르 린단칸을 격파한 이후 원나라 전국옥새를 획득하자

8기의 호쇼이 버이러들과 몽고 49명의 버이러들이 존호를 올리려 하자

홍 타이지가 <조선은 형제국이니 먼저 상의해보자!> 하며 조선에 용골대(잉월다이/영아이대)를 파견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지요.

이때 왕의 자문기관은 홍문관의 관리들은 <용골대의 목을 당장 쳐버리라>는 상소를 올립니다.


병자호란의 가장 큰 이유<형제지맹 맹약 파기> http://cafe.naver.com/booheong/155993


승정원일기 1636년 2월 15일 기사中

국상치전 겸 춘신사로 오는 장호 용골대와 마부대의 규모를 보고하는 의주 부윤의 장계

11일에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성첩(成貼)한 장계 내에,

“가달(假㺚) 정명수(鄭命守)가 종호(從胡) 9명을 거느리고 먼저 와서 말한 내용에, 

‘국상치전 겸 춘신사(國喪致奠兼春信使)로 나온 장호(將胡) 용골대(龍骨大)와 마부대(馬夫大) 등이 

 서달(西㺚) 왕자 49인이 보낸 차호(差胡) 각각 1명을 거느렸는데, 

 원래 숫자까지 합하여 198명 가운데 장호(將胡)가 52명이고 말이 370필, 낙타가 46수(首)이며, 

 장막(帳幕)을 싣고 교대로 말을 타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1636년 2월 16일 기사中

용골대, 마부대 등이 서달의 차인을 거느리고 오다

호차(胡差) 용골대(龍骨大)ㆍ마부대(馬夫大) 등이 서달(西㺚)의 대장 47인, 차장 30인과 종호(從胡) 98인을 거느리고 나왔다. 

용골대가 의주 부윤에게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이미 대원(大元)을 획득했고 또 옥새를 차지했다. 

 이에 서달의 여러 왕자들이 대호(大號)를 올리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귀국과 의논하여 처리하고자 차인을 보냈다. 

 그러나 이들만 보낼 수 없어서 우리들도 함께 온 것이다.”

하였는데, 의주 부윤 이준(李浚)이 조정에 계문하였다.


승정원일기 1636년 2월 16일 기사中

호장 용골대는 한이 대호를 칭하기로 한 일을 전하러 나왔다는 의주 부윤의 장계

의주 부윤의 장계 내에,

“신이 호장(胡將) 용골대(龍骨大) 등과 서로 이야기를 해 보니, 

 우리나라로 나오게 된 일의 대개(大槪)는, 이미 많은 토지를 얻고 또 옥보(玉寶)를 얻게 되자

 금(金)나라의 여러 장수들과 서달(西㺚) 등이 한(汗)에게 대호(大號)를 칭하도록 청하여 

 한이 이미 허락하였으므로, 이런 뜻을 전하지 않을 수 없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용골대 : 몽고애들이 우리 한을 대칸으로 올리자 그러네?

          해서 너희들의 의견은 어떤지 들어볼까 해서 같이 와봤지!

          여진과 몽고가 한집안 되었으니 니네도 들어오지그래?



조선왕조실록 1636년 2월 21일 기사中

홍문관이 금한의 사신들을 가두어서 배척하는 뜻을 보이라는 상소를 올리다

옥당이 차자를 올리기를,

“요즈음 오랑캐 사신 용골대 등이 가지고 온 거만한 글에 존호(尊號)를 확정했다고 칭했는데, 

이 말이 어찌하여 이르게 되었습니까. 신들은 적이 통곡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정묘년의 난리에 참혹하게 유린당하고 기미(覊縻)의 거조가 궁여지책에서 나와 생민(生民)의 고혈을 

다 기울여 사신에게 예물을 바치면서 비굴한 말로 애걸한 것이 10년이나 되었습니다. 

저들이 이미 위호(僞號)를 참람하게 칭하려고 하였으니, 반드시 우리 나라를 이웃 나라로 대우하지 않고 

장차 신첩으로 여길 것이며 속국으로 여길 것으로, 상의하여 정탈한다는 등의 말에서 

그들의 행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차마 당당한 예의의 나라로서 개돼지 같은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이고 

마침내 헤아릴 수 없는 욕을 당하여서 거듭 조종에게 수치를 끼친단 말입니까. 

그리고 전하께서 비록 그 글을 불태우고 사신을 참하여 삼군(三軍)의 사기를 진작시키지는 못할지언정, 

어찌 친히 적의 사신을 접견하시어 부도한 말을 듣는단 말입니까. 

의당 엄준한 말로 배척하여 끊는 뜻을 분명히 보이고 참람하게 반역하는 단서를 통렬하게 끊어, 

저 오랑캐로 하여금 우리 나라가 지키는 바에 대해 기강을 범하고 상도를 어지럽히는 일로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야 합니다. 

그럴 경우 비록 나라가 망하더라도 천하 후세에 명분이 설 것입니다. 

서달에 이르러서는, 천조에 대해 새로 반역한 죄가 있으니, 우리 나라와는 통신(通信)을 왕래할 의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히 오랑캐 사신을 따라 제멋대로 국경에 들어왔습니다. 

신들의 뜻으로는, 빨리 구금하라 명하여 상경하지 못하도록 해서 엄히 끊는 뜻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충성심에 분개하는 뜻을 모두 알았다. 진달한 바의 일에 대해서는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옥당의 차자에 따라 호차(胡差)를 접견하지 마소서

서달의 경우는 비록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고자 하나 형세상 어려울 듯합니다.”

하니, 상이 그렇게 여겼다.


홍문관 관리들 :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개돼지 오랑캐의 속국이 되느니 그냥 망합시다!

                  오랑캐의 목을 치시옵소서!

인조 : 그래 그대들의 충심을 내 안다! 잘 생각해 보겠다!

비변사 재상들 : 홍문관의 의견이 옳으니 용골대는 만나지 마소서!

                 몽고놈들은 그래도 만날 수 밖에 없을듯합니다

인조 : 나도 여진 오랑캐 놈들 만나기 싫다!



그러나 어디 왕 노릇하기가 기분 내키는 대로 되겠어요. 인조는 고민의 고민을 합니다. 

용골대와 같이 온 마부대(마푸타)도 만나고요.

물론 마푸타도 인조에게 3절3숙한 이후에 성을 내며 나가 버렸고 인조는 사람을 보내 마푸타의 화를 풀려고 하였지요.


조선왕조실록 1636년 2월 24일 기사中

용골대가 가지고 온 문서로 고민하다

금의 차인 용골대 등이 서울에 들어왔다. 구관소(句管所)의 제관(諸官)이 들어가 금의 차인을 만나 보았다. 

금의 차인이 한(汗)의 글 3장을 내어 보였는데, 한 장은 춘신사(春信使)의 문안에 관한 글이었고 

한 장은 국상의 조위(吊慰)에 관한 글이었으며, 한 장은 제를 올릴 때 쓸 물품의 목록이었다. 

또 두 개의 봉서(封書)가 있었는데, 한 봉투에는 금국집정팔대신(金國執政八大臣)이라고 썼고, 

한 봉투에는 금국외번몽고(金國外藩蒙古)라고 썼으며, 뒷면에는 모두 봉서조선국왕(奉書朝鮮國王)이라고 쓰여 있었다. 

제관이 이것이 누구의 글이냐고 묻자, 답하기를,

“팔고산(八高山) 및 몽고의 여러 왕자의 글이다.”

하였다. 제관이 말하기를,

“인신의 처지로 다른 나라 임금에게 글을 보내는 규례는 없다. 

이웃 나라 군신간에도 일체 서로 공경하는데 어찌 감히 대등한 예로 글을 보낸단 말인가.”

하고, 물리치고 보지 않으니, 용호 등이 얼굴빛을 바꾸며 말하기를,

“우리 한께서는 정토하면 반드시 이기므로 그 공업이 높고 높다. 

이에 안으로는 팔고산과 밖으로는 제번(諸藩)의 왕자들이 모두 황제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자

우리 한께서 ‘조선과는 형제의 나라가 되었으니 의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으므로 

각각 차인을 보내어 글을 받들고 온 것이다. 그런데 어찌 받지 않을 수 있는가.

하고, 서달이 일시에 한목소리로 말하기를,

명나라가 덕을 잃어 북경만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들은 금나라에 귀순하여 부귀를 누릴 것이다. 

귀국이 금나라와 의를 맺어 형제국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금한이 황제 자리에 오른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기뻐할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처럼 굳게 거절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였다. 이에 제관이 군신간의 대의로써 물리치자, 용호가 성이 나서 고산 등의 봉서를 도로 가져가며 말하기를,

내일 돌아가겠다. 말을 주면 타고 갈 것이고 주지 않으면 걸어서 가겠다.

하였다. 


용골대는 민간의 말을 탈취하여 빠르게 도망쳤고,

조선이 자신들을 해칠까 두려워 경계까지 서며 노숙하였습니다.

인조는 인조대로 용골대가 돌아간 이후 전국에 교지를 내려 전쟁을 준비하라고 명합니다.

물론 이 교지를 용골대가 파발기병에게서 빼앗아 홍 타이지에게 전했다는......

여하튼 용골대가 후금에 들어간지 2달 만에 홍 타이지는 <대청황제>를 칭하였고

이해 11월 25일 제천행사를 하며 조선 정벌의 명분을 조선의 <형제지맹> 파기라고 선언합니다.



덧글

  • 영악한 사냥꾼 2019/03/13 22:31 #

    패기가 아니라 허위의식이죠.

    탄금대에서 신립 패하고 서울 방어 불가능한데도 조정관리들이 피난가면 안된다고 ㅈㄹㅈㄹ 거리면서 자기 가족들은 다 피난시켰고,
    이민환도 샤르후 전투에서 패하고 항복할 때 왜 상의도 없이 항복하냐, 나는 죽겠다 하고 자살쇼 벌이고 그랬죠.

    저거 다 기록에 남고, 또 조금이라도 타협적이거나 현실적인 태도를 보이면 (선명성 경쟁하는) 다른 신하들에게 공격당하기 때문에....
    말이 안된다는 걸 다 알면서도 저러는 겁니다.

    실제로 한성에서 피난 논의할 때 영의정 이산해가 살짝 선조말 동의했다가 후에 몇년간 개까이듯이 까였고,
    이민환은 온갖 쑈까지 다했음에도 조선으로 복귀했을 때 오랑캐에게 숙이고 다녔다는 음해에 시달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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