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의 원인이 된 인조의 빼앗긴 교지/돌 맞은 용골대 병자호란 이야기

청 태종 홍 타이지가 병자호란의 명분으로 지목한

조선에 사신으로 갔던 잉월다이(용골대)가 탈취한 인조의 팔도에 내린 교지

그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1. 돌 맞고 돌아가는 용골대


1636년 2월 26일 기사中

비국에서 명백하게 처치하고 따로 답서(答書)를 작성하기를 청하자, 상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조금 있다가 용호 등이 그들의 글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 성이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자 비국에서는 박난영(朴蘭英)을 보내어 머물도록 타이르게 하기를 청하고, 정원에서는 돌아오게 하지 말고 오로지 자강할 계책을 생각하기를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머물러 기다린다고 하니 부르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이에 난영을 보내어 용호를 따라 모화관에 가서 굳이 만류하였다. 용호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별서(別書)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만일 열어 보기를 허락한다면 마땅히 도로 들어가겠다.”

하였다. 마침내 다시 무신 및 역관을 보내어 부르기 위하여 벽제(碧蹄)까지 따라 갔으나 용호 등이 끝내 오지 않았다. 그들이 성을 나갈 때에 구경하는 관중이 길을 메웠는데, 여러 아이들이 기와 조각과 돌을 던지며 욕을 하기도 하였다.



2. 간관들은 너무 호들갑 떨지 마라!


조선왕조실록 2월 27일 기사中

사간원이, 위기가 닥치니 신하와 잦은 접촉을 갖으라고 아뢰다

간원이 아뢰기를,

오랑캐 사신이 지레 나갔으니 위기가 이미 닥친 것으로 비어할 계책을 전에 비해 더욱 깊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상께서는 깊은 대궐 속에 계시면서 신료들을 드물게 접견하시니, 신들은 민망하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성상께서는 날마다 대신을 접견하여 빨리 싸우고 지킬 계획을 강구하고 또 대의로써 호차의 청을 배척하고 끊은 뜻을 중외에 분명히 유시하소서. 그리고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직질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말고 모책과 계책가 있으면 각자 진달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임금과 정승이 용렬하다 하더라도 혹 먼저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겁을 내지 말라.

하였다. 



3. 조선 재상들 : 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1636년 2월 29일 기사中

대신과 비국 당상, 삼사 장관을 인견하여 금과의 외교 문제를 의논하다

대신과 비국 당상, 삼사 장관을 인견하였다. 윤방이 아뢰기를,

오랑캐 사신이 성을 내고 갔으니, 우리 나라는 끝내 오랑캐의 침략을 당할 것입니다. 마땅히 방어할 방도를 강구해야 합니다. 도성은 결코 지키지 못할 것이니 미리 강도에 들어가서 조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도승지 김경징(金慶徵)이 아뢰기를,

“오늘날 강구할 것은 방어할 방법이지 피란에 대한 계책이 아닙니다. 강도로 들어가는 일은 바로 두번째의 일입니다.”



4. 문제가 된 조선 인조의 교지<후금과 화친이 깨졌다! 전쟁에 대비하라!>


조선왕조실록 1636년 3월 1일 기사中

팔도에 외적으로부터 방비를 철저히 하라는 분부를 내리다

상이 팔도에 하유하였다.

“우리 나라가 갑자기 정묘 호란을 당하여 부득이 임시로 기미될 것을 허락했는데, 오랑캐의 욕구는 한이 없어서 공갈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는 참으로 우리 나라에 전에 없던 치욕이다. 그러니 치욕을 참고 통한을 견디면서 장차 한번 기운차게 일어나 이 치욕을 씻기를 생각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요즈음 이 오랑캐가 더욱 창궐하여 감히 참람된 칭호를 가지고 의논한다고 핑계를 대면서 갑자기 글을 가지고 나왔다. 이것이 어찌 우리 나라 군신이 차마 들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이에 강약과 존망의 형세를 헤아리지 않고 한결같이 정의로 결단을 내려 그 글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차 등이 여러 날 요청을 했으나 끝끝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을 내고 가게 되었다. 도성 사람들은 병혁의 화가 조석에 박두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그들을 배척하고 끊은 것을 통쾌하게 여기고 있다. 더구나 팔도의 백성들이 만일 조정이 이런 정대한 거조를 하여 위험하고 절박한 기틀에 당면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반드시 풍문만 듣고도 격분하여 죽음을 맹세코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다. 어찌 지역의 원근과 지체의 귀천이 다르다 하여 차이가 있겠는가. 충의로운 선비는 각기 있는 책략을 다하고 용감한 사람은 종군을 자원하여 다 함께 어려운 난국을 구제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



이 교지 중 하나가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에게도 보내졌는데,

이 파발기병이 용골대에게 이 서신을 빼앗기게 되고 바로 홍 타이지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홍 타이지는 이 서신을 전쟁의 제1명분으로 삼고 다음과 같이 말하지요.


<그거 외에 다른 죄 무엇을 말하리?>


홍 타이지가 수차례나 언급한 조선 인조가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에게 보내는 교지의 내용


만문노당 1636년 11월 기사中

나의 암반들(잉월다이/용골대) 너희의 나라의 변심함을 알고서 물러나며 올 때에

너희의 왕의 조서의 글을 평안도의 관찰사 홍명구에 보내는 것을 나의 암반들이 얻고서 취했다.

그 글의 말

   <우리로 향하여 (청나라가) 토끼 해(1627년) 화친한 것은 잠시 (전쟁을) 멈추게 하며 화친했다.

     지금 확실히 결단하며 (사이가) 나쁘게 되었다.

     변경과 관을 튼튼히 하라!

     용맹하고 강한자들을 장려하라!

     지략 있는 자와 현자들을 모이게 하라!>

하며 써있었다.

그로부터 다른 죄 무엇을 말하리?


P.S) 당시 정보 전달 체계가 얼마나 허술했길래, 용골대에게 보낼 국서와 

     평안도 관찰사에게 줄 교지를 한 명의 파발기병한테 같이 보내는 황당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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