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만에 1200리 적진을 무인지경 돌파한 300기(조선은 아녀자의 나라인데 무엇을 믿고 저러는가?) 병자호란 이야기

1636년 병자호란 당시 1주일 만에 1186리를 돌파하고 인조의 강화도 행을 가로막고 한양을 포위하여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몰아넣은 청의 1차 선봉대 마푸타[maputa]가 이끄는 병력은 고작 기병 300기였습니다.

마푸타는 보통 용골대(잉월다이)와 세트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인물 마부대(馬夫大)이며

청의 한문 음차로는 마복탑(馬福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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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中

의주목(義州牧) 

동쪽은 삭주부(朔州府) 경계까지 1백 16리, 귀성부(龜城府) 경계까지 82리이고, 남쪽은 용천군(龍川郡) 경계까지 60리, 

같은 군의 경계에 있는 양책관(良策館)까지 66리, 철산군(鐵山郡)경계까지 79리이고, 

서쪽은 압록강(鴨綠江)까지 14리이고, 북쪽은 같은 강까지 2리이며, 서울에서는 1천 1백 86리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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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12월 2일 수도 성경(심양)에서 출병한 홍 타이지는 호부 승정 마푸타를 불러 

기병 300기를 이끌고 장사치로 위장하여 밤낮으로 진격하여 한양을 포위하라 명합니다.

고작 기병 300기로 한양을 포위하라는 이 황당한 명(命).

마푸타는 성실히 수행합니다.


만문노당 1636년 12월 3일 기사中

 (1636년 12월) 3일에 호부의 승정 마푸타와 선봉 군대의 암반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의 

동급 암반들에 300 군대 맡기고 앞에 장사의 사람 만들며 속이며 밤낮 없게 가서

   <고려의 왕이 사는 왕경성(한양)을 포위하라!>

하며 보냈다.

마푸타와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 등의 다음에는 호소이 예친왕(도도)와 기의 버이서 쇼토 및 니칸에

바야라의 군대 1천 맡기고

   <고려의 왕경성(한양)을 포위하라!>

하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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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푸타는 이전에도 무역차 조선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조선을 아녀자의 나라라는 홍 타이지의 말을 전하기도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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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636년 9월 10일 기사中

노장 마부대가, 무역차 오자 의주 부윤 임경업이 격서를 전달했으나 받지 않다

노장(虜將) 마부대(馬夫大)가 장사꾼의 인삼값을 가지고 중강(中江)에 와서 우리 나라 사람을 불러 만나보기를 청하였다. 

의주 부윤 임경업(林慶業)이 군관(軍官) 최극현(崔克峴) 등으로 하여금 술대접을 하게 하고 이어 보관하고 있던 

격서(檄書)를 전하여 주니 마부대가 극현으로 하여금 읽게 하고 듣고서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제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지내고 이미 대호(大號)를 칭하였는데 

어떻게 조선을 위해 옛 칭호를 다시 쓸 수 있겠는가.”

하고, 또 말하기를,

한(汗)이 여러 왕자들과 더불어 매번 이르기를 

‘조선은 아녀자의 나라인데 무엇을 믿고 저러는가.’ 하고, 항상 웃는다.

하고, 인하여 격서를 받지 않고 말하기를,

“우리들은 오로지 물건 값을 맞추어 지급할 뿐이다. 이 서찰은 한의 명령이 없었으니 가지고 갈 수 없다. 

꼭 보내고자 한다면 사람을 따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고, 이어 중강 건너편에서 풀을 베고 있던 한인(漢人) 2 명을 포획하여 도독(都督)이 떠났는지 

여부를 캐어묻고는 참수하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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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만에 무인지경 조선을 진격한 마푸타의 기병 300기 진군로


 


마푸타의 기병이 얼마나 빨랐냐 하면 인조에게 청군의 침입이 처음 보고된 날이 12월 13일인데,

마푸타가 한양에 도달한 날이 12월 14일입니다.

12월 14일 마푸타가 한양 근교인 양철리(현 불광등 인근)에 도착할 무렵 조선 인조는 세자와 함께 강화도로 가고 있었습니다.

마푸타는 즉시 강화도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게 됩니다.

인조는 마푸타의 병력을 두려워하여 다시 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조는 훈련대장 신경진에게 마푸타의 군을 공격하라 지시하였고 

신경진은 이흥업과 기병 80기를 보내 마푸타군을 공격하게 합니다.

이흥업은 백련산 고갯마루에서 마푸타군과 격돌하여 전멸하게 되지요.

이흥업의 기병 부대가 전멸하였다는 것을 들은 인조는 매우 당황하였는데요.

이때 지여해가 정병 500만 준다면 마푸타를 격파하고 그 틈에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청합니다.

그러나 병력 500을 투입하는 것은 모험이라며 주저합니다.

이때 마푸타는 더욱 진군하여 홍제원(현 3호선 홍제역)에 도달합니다.

이때 최명길이 죽음을 각오하고 마푸타를 만나서 시간을 벌어보겠다고 말하고

그틈에 인조는 수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라 청하지요.

인조는 최명길, 이경직을 마푸타에게 보냅니다.

최명길이 마푸타와 회담을 하는 사이 인조는 수구문을 통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이날 저녁에 무사히 남한산성에 들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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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문노당 1636년 12월 14일 기사中

마푸타, 로오사 송코로 바투루, 우바이 등이 14일에 왕경성(한양)에 이른 날

고려(조선)의 2 부장, 4 유격, 6 비어관이 선발한 군대 60 남짓 가지고 대항하며 싸우러 오는 것을

마푸타,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 우바이 등이 격파하고 모두 죽였다.

그로부터 왕경(한양)에 이른 뒤에 최 상서(최명길), 이 시랑(이경직) 성의 바깥에서 대항하고

   <너희 어찌하여 왔느냐?>

하며 물은 뒤에 마푸타 등이 대답하길

   <우리들 성스러운 한(홍 타이지)의 조서로 너의 왕(인조)에 말 말하러 왔다!>

한 뒤에 최 상서(최명길), 이 시랑(이경직) 대답하길

   <너희 말 말하러 왔다면 우리들 가서 우리의 왕(인조)에 알리고 예를 행하며 맞이하겠다!>

하며 가서 속이며 멈추게 하며 연회 준비하고 맞이했다.

그 뒤에 왕(인조) 도망가며 가있었다.

그 정보를 마푸타 등이 듣고서 뒤쫓으며 간채로 

40리의 끝의 남한이라는 언덕의 성에 추격하고 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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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기병 300기가 두려워 강화도로 가는 길을 주저하였다니
아무리 정보가 전혀 없던 극도의 혼란 상황이라도 참으로 한숨이 나오는군요.
300기로 한양을 포위하라 명을 내린 홍 타이지는 대체 조선을 어떻게 보았길래...
대체 기병 300기가 1200리를 내달린 동안.........
청군의 침입 봉화를 막고 뒤늦게 파발을 보낸 김자점.......
잡설입니다 -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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