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간신열전(7) 진회 국역 2부-북송 멸망 최후의 충신 진회!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남송의 간신 진회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할지는 절대 아니되옵니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7242


<간신 열전>

1편 송사 간신열전 채경 http://cafe.naver.com/booheong/98808

2편 송사 간신열전 곽약사 http://cafe.naver.com/booheong/103206

3편 송사 환자열전 동관 [방랍 포함] http://cafe.naver.com/booheong/85702

4편 송사 간신열전 장방창(張邦昌) http://cafe.naver.com/booheong/140479

5편 송사 간신열전 황잠선(黃潛善) http://cafe.naver.com/booheong/141227

6편 송사 반신열전 묘부/유정언 http://cafe.naver.com/booheong/152079


<인물 열전>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청사고

왕올당, 왕고, 대선/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저영/추옝, 서이합제/슈르하치, 아이합제/야르하치 

피옹돈[비영동], 호호리[하화례], 어이두[액역도], 안퍙워[안비양고]훠르한/호이한부찰씨(푸차 군다이) 

영아이대/용골대/잉월다이액이덕니/어르더니 밬시


송서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AE%8B%E5%8F%B2/%E5%8D%B7473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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閏十一月,汴京失守,二帝幸金營。

二年二月,莫儔、吳幵自金營來,傳金帥命推立異姓。

留守王時雍等召百官軍民共議立張邦昌,皆失色不敢答,監察御史馬伸言於眾曰:

「吾曹職為爭臣,豈容坐視不吐一辭?

  當共入議狀,乞存趙氏。」

時檜為台長,聞伸言以為然,即進狀曰:

檜荷國厚恩,甚愧無報。

  今金人擁重兵,臨已拔之城,操生殺之柄,必欲易姓,檜盡死以辨,非特忠於主也,且明兩國之利害爾。

  趙氏自祖宗以至嗣君,百七十餘載。

  頃緣奸臣敗盟,結怨鄰國,謀臣失計,誤主喪師,遂致生靈被禍,京都失守,主上出郊,求和軍前。

  兩元帥既允其議,布聞中外矣,且空竭帑藏,追取服禦所用,割兩河地,恭為臣子,今乃變易前議,人臣安忍畏死不論哉?

  宋於中國,號令一統,綿地萬里,德澤加于百姓,前古未有。

  雖興亡之命在天有數,焉可以一城決廢立哉?

  昔西漢絕於新室,光武以興;

  東漢絕于曹氏,劉備帝蜀;

  唐為朱溫篡奪,李克用猶推其世序而繼之。

  蓋基廣則難傾,根深則難拔。

  張邦昌在上皇時,附會權幸,共為蠹國之政。

  社稷傾危,生民塗炭,固非一人所致,亦邦昌為之也。

  天下方疾之如仇讎,若付以土地,使主人民,四方豪傑必共起而誅之,終不足為大金屏翰。

  必立邦昌,則京師之民可服,天下之民不可服;京師之宗子可滅,天下之宗子不可滅。

  檜不顧斧鉞之誅,言兩朝之利害,願復嗣君位以安四方,非特大宋蒙福,亦大金萬世利也。

金人尋取檜詣軍前。

(1126년) 윤(閏) 11월에, 변경(汴京/개봉)이 실수(失守/지키지 못함)하였고, 

이제(二帝/휘종과 흠종)가 금영(金營)으로 행차(幸)하였다.

[정강(靖康/북송 9대 황제 흠종의 #1연호)] 2년(1127년) 2월에, 막주(莫儔)와 오견(吳幵)이 금영(金營)으로부터 왔는데, 

이성(異姓/다른 성씨)를 추립(推立/제위에 추천함)하라는 금수(金帥/금의 원수 종한과 종망)의 명(命)을 전(傳)하였다.

유수(留守) 왕시옹(王時雍) 등(等)이 백관(百官)과 군민(軍民)을 소집(召)하여 공의(共議/함께 의논함)하여 장방창(張邦昌)을 세웠는데,

모두 실색(失色/안색이 변함)하여 감(敢)히 답(答)하지 못하였는데,

감찰어사(監察御史) 마신(馬伸)이 무리에게 고하여 말하길

「아조(吾曹/우리들)는 쟁신(爭臣/간관)의 관직(職)에 있으면서, 

  어찌 좌시(坐視/앉아서 바라보기만 함)하고는 한 마디로 토(吐/말함)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의장(議狀/논의 장소)에 공입(共入/함께 들어감)하여, 

  애걸(乞)하여 조씨(趙氏)를 보존(存)해야 한다.」

  이때 진회(檜)는 어사대(台)의 장(長)이었는데, 마신(伸)의 말을 듣고는 옳다 여겨, 곧 논의장(狀)에 진입하여 말하길

  진회(檜)는 나라의 후은(厚恩/후한 은혜)을 하(荷/은혜를 입음)하여,

  보답(報)함이 없음을 심괴(甚愧/심히 괴로워함)하였소.

  지금(今) 금인(金人)이 중병(重兵)을 끼고, 이미 성(城)을 발(拔/뿌리 뽑음)함에 임(臨)하였고,

  생살(生殺)의 병(柄/손잡이)를 조(操/손에 쥠)하고는, 필히(必) 역성(易姓/성씨를 바꿈)하고자 하니,

  진회(檜)는 모두 죽어 이로써 변(辨/바로잡음)하여, 주(主/임금)에 충성(忠)할 뿐만 아니라,

  장차 양국(兩國)의 이해(利害/이로움과 해로움)를 분명(明)하게 할 뿐이오!

  조씨(趙氏)가 조종(祖宗/태조)으로부터 이로써 사군(嗣君/임금 자리를 이어받음)에 이르기까지,

170여 년이오.

  잠시 간신(奸臣)이 패맹(敗盟/맹세를 깨트림)한 연(緣/이유, 연유)으로,

  인국(鄰國/인근 국가)과 결원(結怨/서로 원수가 되거나 원한을 품음)하였고,

  모신(謀臣/모략을 꾸미는 신하)이 실계(失計/실책)하여, 오주(誤主/임금을 그르침)하고 상사(喪師/군사를 잃음)하였고,

  마침내 생령(生靈/살아 있는 백성)이 피화(被禍/화를 입음)에 이르렀으며,

  경도(京都/수도 개봉)를 실수(失守/지키지 못 함)하였고, 주상(主上/임금)이 출교(出郊/성밖으로 나감)하였고,

  군전(軍前/금나라 군영)에서 구화(求和/화친을 구함)하였소.

  양(兩) 원수(元帥/종망과 종한)가 이윽고 그 논의(議)를 윤(允/허락함)하여,

  중외(中外)에 포문(布聞/널리 전함)하였으며, 또한 탕장(帑藏/황실 창고의 재물)을 공갈(空竭/다해서 없어짐)하였고,

  사용할 복어(服禦/어복)마저 추취(追取/구하여 취함)하였고, 

  양하(兩河)를 할지(割地)하였고, 공손(恭)히 신자(臣子)가 되었는데, 

  지금(今) 곧 전의(前議/전의 의논)을 변역(變易/고쳐서 바꿈)하니,

  인신(人臣/신하 된 사람)으로 차마 죽음이 두려워 논(論)하지 못하는 것이오?

  중국(中國)에서는 송(宋)이, 참령(號令/지휘하여 명령함)하여 일통(一統/하나로 합침)하며,

  면지(綿地/길게 잇닿은 땅)가 만리(萬里)이고, 덕택(德澤/덕과 은혜)를 백성(百姓)에게 가(加)함이,

  전고(前古/지나간 옛날)에 있지 않았소.

  비록 흥망(興亡/흥하고 망함)의 명(命)은 하늘의 유수(有數/정하여진 운수나 순서가 있음)에 있으나,

  어찌 일성(一城)을 잃었다고 폐립(廢立/임금을 폐하고 다른 임금을 세움)을 결정(決)하시오?

  옛 서한(西漢/전한)은 신실(新室/왕망의 신나라)에 의해 절(絕/끊음)하였으나, 광무제(光武)가 이로써 일으켰소.

  동한(東漢)은 조씨(曹氏)에 절(絕/끊음)하고, 유비(劉備)가 제촉(帝蜀/촉 황제)하였소.

  당(唐)은 주온(朱溫/후량 태조)이 찬탈(篡奪)하였으나, 

  오히려 이극용(李克用/후당 태조)이 그 세서(世序)를 추(推/받듦)하고 계승(繼)하였소.

  대개(蓋) 기광(基廣/넓은 기초)은 곧 난경(難傾/쓰러뜨리기 어려움)하고,

  근심(根深/뿌리가 깊음)하면 곧 난발(難拔/뽑기가 어려움)한 것이오.

  장방창(張邦昌)은 상황(上皇/휘종) 당시(時)에 있으면서, 권행(權幸/권신)에 부회(附會/비위를 맞춤)하였고,

  모두 나라의 정치(政)에 두(蠹/좀)가 되었소.

  사직(社稷)이 경위(傾危/형세가 위태로움)하고, 생민(生民)이 도탄(塗炭/몹시 고통스러운 지경)함은,

  진실로 일인(一人)의 소치(所致/어떤 까닭으로 생긴 바)가 아니오?

  역시 장방창(邦昌) 때문이오.

  천하(天下)가 바야흐로 고통받고 구수(仇讎/원수)와 같이 여기는데,

  만약(若) 토지(土地)로써 부(付/줌)하고, 인민(人民/신하나 백성)을 주인(主)으로 한다면,

  사방(四方) 호걸(豪傑)이 필히(必) 공기(共起/함께 일어남)하여 주살(誅)할 것이고,

  마침내 대금(大金)의 병한(屏翰/병풍과 기둥)함이 부족(不足)할 것이오.

  필(必)히 장방창(邦昌)을 세우면, 곧 경사(京師/수도 개봉)의 백성은 복종(服)할 것이나,

  천하(天下)의 백성은 복종(服)하지 않을 것이오.

  경사(京師/수도 개봉)의 종자(宗子/황족)는 멸(滅)할 수 있으나, 

  천하(天下)의 종자(宗子/황족)은 멸(滅)할 수가 없소.

  진회(檜)는 부월(斧鉞)의 주살(誅)을 불고(不顧/돌아보지 아니 함)하니,

  양조(兩朝/송과 금)의 이해(利害/이로움과 해로움)를 말하자면,

  원(願)컨대 사군(嗣君/임금 자리를 이어받음)의 위(位)를 회복(復)하여 사방(四方)을 이로써 안정(安)시키고,

  대송(大宋)의 몽복(蒙福/복을 꿈꿈)할 뿐만 아니라, 또한 대금(大金)의 만세(萬世)에도 이(利)로운 것이오.

금인(金人)이 진회(檜)를 심취(尋取/찾아 잡아감)하여 군전(軍前)에 예(詣/다다름)하였다.


1126년 윤 11월에 개봉을 지키지 못하였고 두 황제(휘종과 흠종)가 금나라 군영으로 행차하였다.

정강 2년 1127년 2월에 막주와 오견이 금나라 군영으로부터 왔는데 다른 성씨를 제위에 추대하라는 금의 원수 종한과 종망의 명을 전하였다.

유수 왕시옹 등이 백관과 군과 백성을 소집하여 함께 의논하여 장방창을 세웠는데 모두 안색이 변하여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감찰어사 마신이 무리에게 고하여 말하길

   <우리들은 간관의 관직에 있으면서 어찌 좌시하고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땅히 논의 장소로 함께 들어가 애걸하여 조씨를 보존해야 한다.>

이때 진회는 어사대의 장이었는데 마신의 말을 듣고는 옳다 여겨 곧 논의장에 진입하여 말하길

   <이 진회는 나라의 후한 은혜을 입고도 보답함이 없음을 심히 괴로워하였소.

    지금 금나라 사람이 중병을 끼고 이미 성을 뿌리 뽑음에 임하였고 생살의 손잡이를 쥐고는 필히 역성(성씨를 바꿈)하고자 하니

    진회는 죽음으로써 이를 바로잡고 임금에게 충성할 뿐만 아니라 장차 양국의 이해(이로움과 해로움)를 분명하게 할 뿐이오!

    조씨가 태조로부터 제위를 이어받아 현재에 이르기까지 170여 년이오.

    잠시 간신이 맹세를 깨트린 연유로 인근 국가와 서로 원수가 되어 원한을 품었소.

    모략을 꾸미는 신하가 실책 하여 임금을 그르쳐 군사를 잃었고 마침내 온 백성이 화를 입음에 이르렀으며

    수도를 지키지 못하였고 임금이 성밖으로 나갔으며 금나라 군영 앞에서 화친을 구하였소.

    두 원수(종망과 종한)가 이윽고 그 화친의 논의를 허락하여 중외에 널리 전하였소.

    또한 내탕고의 재물을 모두 다 내어주고 임금의 어복마저 구하여 취하였고 양하를 할지하였고 공손히 신하가 되었는데 

    지금 곧 전의 의논을 고쳐서 바꾸니 신하 된 사람으로 차마 죽음이 두려워 논하지 못하는 것이오?

    중국에서는 송나라가 지휘하고 명령하여 통일하여 길게 잇닿은 땅이 만리이고

    덕과 은혜를 백성에게 베풂이 전고에는 있지 않았소.

    비록 나라의 흥망(흥하고 망함)의 명은 하늘의 정하여진 순서가 있으나

    어찌 성 하나를 잃었다고 임금을 폐하고 다른 임금을 세우는 것을 결정하시오?

    옛 서한(전한)은 왕망의 신나라에 의해 끊겼으나 광무제가 다시 일으켰소.

    동한(후한)은 조씨에 끊겼으나 유비가 촉 황제로 일으켰소.

    당은 주온(후량 태조)이 찬탈하였으나 오히려 이극용(후당 태조)이 그 당나라를 계승하여 받들었소.

    대개 기초가 넓으면 곧 쓰러뜨리기 어렵고 뿌리가 깊으면 곧 뽑기가 어려운 것이오.

    장방창은 상황(휘종) 당시에 권신에 아부하여 모두 나라의 정치에 좀이 되었소.

    사직이 위태롭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은 진실로 이 한 사람 장방창 때문에 생긴 것이오!

    천하가 바야흐로 장방창에 의해 고통받고 모두 원수와 같이 여기는데

    만약 장방창에게 땅을 주고 온 인민의 주인으로 삼는다면 사방 호걸이 필히 모두 일어나 장방창을 주살하고자 할 것이니

    마침내 대금국의 병풍과 기둥이 되기엔 부족할 것이오.

    반드시 장방창을 세우겠다면 곧 수도의 백성은 복종할 것이나 천하의 백성은 복종하지 않을 것이오!

    수도의 황족은 멸할 수 있으나 천하의 황족은 멸할 수가 없소!

    이 진회는 부월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고 양국의 이해를 말하는 것이오!

    바라건대 제위를 회복하여 사방을 이로써 안정시킨다면

    대송의 복을 꿈꿀 뿐만 아니라 대금의 만세에도 이로운 것이오!>

금나라 군이 진회를 수색하여 잡고는 군영으로 끌고 갔다.



충신? 진회<죽어도 조씨가 아니면 안 된다!> http://cafe.naver.com/booheong/140404



요약.
정강원년, 1126년 말 도사 곽경의 황당한 육갑병 전법으로 북송 수도 개봉은 마침내 12만 금나라 군에 의해 함락된다.
금나라의 두 원수 종한과 종망은 휘종과 흠종을 성밖으로 유인하여 사로잡고는
황실과 개봉의 모든 재물을 강탈하였고 
북송의 백관들에게 새로운 성씨를 추대하지 않으면 개봉성민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에 백관들은 마지못해 장방창을 새로운 황제로 추대한다.

이때 어사대의 수장 진회가 나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씨가 아니면 불가하다 항변한다.

곧장 금나라 군은 진회를 군영으로 잡아간다.

이렇게 북송은 멸망하고 장방창은 대초황제에 등극하였고

괴뢰국을 세운 금나라 군은 송황족 수백 명과 수천 명의 백관을 끌고 북으로 돌아간다.

이 행렬에 진회도 포함되어 험난한 포로생활이 시작된다.


*송사 흠종 국역 12부 1126년 11월-망국의 기운, 육갑병[2차 개봉 포위전] http://cafe.naver.com/booheong/139454

*1126년 금의 2차 침공 진격로 연구와 북송의 멸망 http://cafe.naver.com/booheong/104329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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