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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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1637년 1월 1일

태종(太宗) 문황제실록(文皇帝實錄) 33권(卷) 숭덕(崇德/청 2대 황제 태종의 #2연호) 2년(1637년) 1월 1일

大清太宗應天興國弘德彰武寬溫仁聖睿孝敬敏昭定隆道顯功文皇帝實錄卷之三十三

監修總裁官光祿大夫太子太傅都統三等公吏部尚書中和殿大學士臣圖海

總裁官光祿大夫禮部尚書武英殿大學士臣覺羅勒德洪 光祿大夫禮部尚書武英殿大學士加一級臣明珠光祿大夫太子太傅戶部尚書保和殿大學士加三級臣李霨光祿大夫太子太傅禮部尚書保和殿大學士加二級臣杜立德光祿大夫刑部尚書文華殿大學士加一級臣馮溥等奉

敕修

總裁官光祿大夫經筵講官太保議政大臣保和殿大學士總理兵部事三等伯加十六級臣鄂爾泰 光祿大夫經筵日講官起居注太保兼太子太保保和殿大學士仍兼管吏部尚書翰林院掌院事三等伯加十二級臣張廷玉 光祿大夫經筵講官太子太保東閣大學士兼禮部尚書加五級臣徐本等奉

敕恭校

崇德二年丁丑春正月辛丑朔辰刻

上出營環視朝鮮國王李倧所居南漢山城形勢申刻還營

대청(大清) 태종(太宗) 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륭도현공(應天興國弘德彰武寬溫仁聖睿孝敬敏昭定隆道顯功) 문황제실록(文皇帝實錄卷) 33

감수총재관(監修總裁官) 광록대부(光祿大夫) 태자태부(太子太傅) 도통(都統) 삼등공(三等公)

예부상서(吏部尚書) 중화전(中和殿) 대학사(大學士) 신(臣) 도해(圖海)

총재관(總裁官) 광록대부(光祿大夫) 예부상서(禮部尚書) 무영전(武英殿) 대학사(大學士) 신(臣) 각라늑덕홍(覺羅勒德洪)

광록대부(光祿大夫) 예부상서(禮部尚書) 무영전(武英殿) 대학사(大學士) 가일급(加一級) 신(臣) 명주(明珠)

광록대부(光祿大夫) 태자태부(太子太傅) 호부상서(戶部尚書) 보화전(保和殿) 대학사(大學士) 가삼급(加三級) 신(臣) 이위(李霨)

광록대부(光祿大夫) 태자태부(太子太傅) 예부상서(禮部尚書) 보화전(保和殿) 대학사(大學士) 가이급(加二級) 신(臣) 두립덕(杜立德)

광록대부(光祿大夫) 형부상서(刑部尚書) 문화전(文華殿) 대학사(大學士) 가일급(加一級) 신(臣) 풍부(馮溥) 등(等)이 

봉칙(奉敕/칙서를 받듦)하여 수(修/꾸밈, 엮어 만듦)하나이다.

총재관(總裁官) 광록대부(光祿大夫) 경연강관(經筵講官) 태보(太保) 의정대신(議政大臣) 보화전(保和殿) 대학사(大學士) 

총리(總理) 병부사(兵部事) 삼등백(三等伯) 가십육급(加十六級) 신(臣) 악이태(鄂爾泰)

광록대부(光祿大夫) 경연일강관(經筵日講官) 기거주(起居注) 태보(太保) 겸(兼) 태자태보(太子太保) 

보화전(保和殿) 대학사(大學士) 잉겸관(仍兼管) 이부상서(吏部尚書) 한림원(翰林院) 

장원사(掌院事) 삼등백(三等伯) 가십이급(加十二級) 신(臣) 장정옥(張廷玉)

광록대부(光祿大夫) 경연강관(經筵講官) 태자태보(太子太保) 동각(東閣) 대학사(大學士) 겸(兼) 

예부상서(禮部尚書) 가오급(加五級) 신(臣) 서본(徐本) 등(等)이 

봉칙(奉敕/칙서를 받듦)하여 공교(恭校/공손하게 헤아림)하나이다.

숭덕(崇德/청 2대 황제 태종의 #2연호) 2년(1637년) 정축년(丁丑) 봄 정월(正月) 초하루 신축일(辛丑) 진각(辰刻/진시, 07~09시)에,

상(上)이 출영(出營/영을 나감)하여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조선 16대 왕 인조)이 소거(所居/거주함)하는 

남한산성(南漢山城)의 형세(形勢)를 환시(環視/사방을 둘러봄)하였고,

신각(申刻/신시, 15~17시)에 환영(還營/영으로 돌아옴)하였다.


대청국 태종 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륭도현공 문황제실록 33권

감수총재관 광록대부 태자태부 도통 삼등공 예부상서 중화전 대학사 신 도해.

총재관 광록대부 예부상서 무영전 대학사 신 각라늑덕홍.

광록대부 예부상서 무영전 대학사 가일급 신 명주.

광록대부 태자태부 호부상서 보화전 대학사 가삼급 신 이위.

광록대부 태자태부 예부상서 보화전 대학사 가이급 신 두립덕.

광록대부 형부상서 문화전 대학사 가일급 신 풍부 등이 칙서를 받들어 엮어 만드나이다.

총재관 광록대부 경연강관 태보 의정대신 보화전 대학사 총리 병부사 삼등백 가십육급 신 악이태.

광록대부 경연일강관 기거주 태보 겸 태자태보 보화전 대학사 잉겸관 이부상서 한림원 장원사 삼등백 가십이급 신 장정옥.

광록대부 경연강관 태자태보 동각 대학사 겸 예부상서 가오급 신 서본 등이 칙서를 받들어 공손하게 헤아렸나이다.


1637년 1월 1일 07~09시에 상(태종)이 영을 나가서 조선 국왕 이종(조선 16대 왕 인조)이 거주하는 남한산성의 형세를 둘러보고

15~17시에 영으로 돌아왔다.


요약.

1637년 1월 1일 청 태종은 아침 07~09시에 영을 나가서 조선 인조가 농성 중인 남한산성의 사방을 둘러보고

15~17시에 영으로 돌아왔다.

이미 청태종은 팔기에서 선발한 바야라와 효기 등 강병들을 두두, 쇼토 등에게 맡겨 

조선의 근왕병을 수차례 격파한 상태였고

청의 정탐병에 의해 남한산성의 군량과 군비가 별거 없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청태종은 도도가 끌고 오고 있는 홍이포, 장군포의 신속한 수송을 명한 상태였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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