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406부-머리를 밀고 투항하는 요양성 한족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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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sifi. giyai de gemu hetu futa gocifi. fulgiyan girdan lakiyafi.

푸시피. 갸이 더 거무 허투 푸타 고치피. 풀갼 기르단 라캬피.

깎고. 거리 에 모두 가로로 밧줄 당기고. 붉은 깃발 매달고.


emu kiyoo de tasha i sukv. emu kiyoo de wadan sektefi.

어무 쿄오 더 타스하 이 수쿼. 어무 쿄오 더 와단 섴터피.

1 가마 에 호랑이 의 가죽. 1 가마 에 보자기 깔고.


han be okdome gajifi. morin erinde hecen de dosika.

한 버 옼도머 가지피. 모린 어린더 허천 더 도시카.

한 을 맞이하며 데려와서. 말 때에 성 에 들어갔다.


dosifi yuwan giyvn men i yamun de han dosifi tehe.

도시피 유완 균 먼 이 야문 더 한 도시피 터허.

들어가고 원 군 문 의 관청 에 한 들어가서 머물렀다.


○ liyoodung ni jang ciowan be bahafi ujiki seme niyakvrame aca seci.

○ 료오둥 니 장 쵸완 버 바하피 우지키! 서머 냐쿼라머 아차! 서치.

○ 요동 의 장 전 을 얻어서 돌보자! 하며 무릎꿇으며 만나자! 하니.


jang ciowan hendume.

장 쵸완 헌두머.

장 전 말하길.


bi meni han i ambula kesi be jeme etume banjifi.

비 머니 한 이 암불아 커시 버 저머 어투머 반지피.

내 우리 황제 의 많은 은혜 를 먹으며 입으며 살아서.


mimbe suwe ujifi banjici. mini ehe gebu amaga jalan de tutambi.

밈버 숴 우지피 반지치. 미니 어허 거부 아마가 잘안 더 투탐비.

나를 너희 돌보고 산다면. 나의 나쁜 이름 뒷 세대 에 남는다.


ujiki sehe seme. bi banjirakv bucembi.

우지키 서허 서머. 비 반지라쿠 부첨비.

돌보자 한다 하여도. 내 살지않고 죽는다.


ujici. suwende gebu. buceci. mini sain gebu amaga jalan de tutambi seme hendume.

우지치. 숸더 거부. 부처치 미니 사인 거부 아마가 잘안 더 투탐비! 서머 헌두머.

돌보면. 너희에 이름. 죽으면. 나의 좋은 이름 뒷 세대 에 남는다! 하며 말하며.


*fusimbi[푸심비] : 머리칼을 깎다, 화살의 깃을 깎다.

*giyai[갸이] : 거리, 가(街).

*gocimbi[고침비] : 나타나다, 뽑다, 없애다, 모이다, 끌다, 당기다. 철병하다, 철수하다.

*girdan[기르단] : 고기 조각, 천 조각, 깃발.

*sektembi[섴텀비] : 담요를 깔다.

*morin erin[모린 어린] : 말때, 오시(午時), 11~13시.

*yuwan giyvn men[유완 균 먼] : 원군문(袁军门), 성문 이름.

*jang ciowan[장 쵸완] : 장전(张铨). 인명.





(요양성 한족들 스스로 머리) 깎고 거리에 모두 가로로 밧줄 당기고 붉은 깃발 매달고

가마 하나에 호랑이 가죽, 가마 하나에 보자기 깔고

(누르가치)을 맞이하며 데려와서 말때(11~13시)에 (요양) 성에 들어갔다.

들어가고 원군문의 관청에 한(누르가치) 들어가서 머물렀다.

○ 요동의 장전을 얻어서 돌보자! 하며 무릎 꿇으며 만나자! 하니 장전 말하길

   <내 우리 황제(희종, 천계제)의 많은 은혜를 먹으며 입으며 살아서

    나를 너희가 돌보고 산다면 나의 나쁜 이름 뒷 세대에 남는다.

    (너희가) 돌보자 한다 하여도 내 살지 않고 죽는다.

    돌보면 너희에게 이름, 죽으면 나의 좋은 이름 뒷 세대에 남는다!>

하며 말하며


요약.

1621년 3월 20일 11시~13시에 팔기군이 요양성에 진입하자  

성안의 한족들은 스스로 머리를 밀고 투항을 뜻하는 붉은 깃발을 매달고 

호피와 보자기를 깐 가마를 들고 누르하치를 맞이한다.

누르하치는 원군문으로 들어가 관청에서 머물렀다.

한편 사로잡힌 명 순안어사(巡按御史) 장전은 투항 권유를 거부하고 죽음으로써 이름을 남기겠다 말한다.


*장전(张铨)

 : 생몰년 1577~1621년. 산서(山西) 심수두장(沁水窦庄) 사람으로 부친은 만력제 당시 병부상서를 지낸 장오전(张五典)이다.

   자는 우대(宇衡)이고, 호는 견평(见平)이다.

   1604년 진사(进士)로 출사하여 보정추관(保定推官), 절강도어사(浙江道御史), 순협서차마(巡陕西茶马)을 역임하고

   1621년 당시 요양성의 순안어사(巡按御史)로 재직하였다.

   성이 함락되자 투항을 거부하자 누르하치는 처형을 명했다.

   이때 장전을 아까워한 홍 타이지가 여러 차례 간곡히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거부하고 결국 죽임을 당했다.

   딸 장봉의(张凤仪)는 명말 여장군 진양옥(秦良玉)의 며느리이다.


-40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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