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4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80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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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3일

太宗文皇帝實錄 卷之三十三 崇德二年 正月 三日

○癸卯朝鮮閣臣洪某侍郎李某齎書至南漢寨門英俄爾岱馬福塔取之以聞書曰小邦獲戾於大國自速兵禍棲身孤城朝夕。危迫思欲專使奉書道達衷悃兵戈困阻無路自通。昨聞

皇帝降臨鄙僻疑信相半喜懼交集茲大國言念和好明賜誨責俾自知罪此正小邦心跡獲。明之會也不勝欣幸小邦自從丁卯結好以來十餘年間實心尊禮不但大國所知實

皇天所鑒特以賦性昏愚事多不察如邊民採參及孔耿事雖非小邦本心。然亦可疑蒙大國寬假。久矣上年春間之事又將誰諉亦緣小邦臣民識見淺隘膠守名義致使臣發怒徑去隨來之人皆以大軍將至見恐小邦君臣過慮申飭邊臣而詞臣撰文語多乖剌遂觸大國之怒然何敢曰非我所知而諉之群臣乎至如擒執使臣之語則實無之豈意明如大國而猶疑至此明國與我誠如父子大國之常入關征彼也未嘗以一鏃加小邦無非以兄弟和好為重謀害之言奚為乎由此言之夫亦小邦誠信未孚見疑大國所致尚誰諉哉且馬福塔云以美意來故小邦信之不疑豈意至於此乎夫往日之事小邦已知罪矣有罪而伐之知罪而恕之此大國所以體天而容萬國之心也如蒙念丁卯誓天之約恤小邦生民之命容令改圖自新則小邦之洗心自今日起矣若大國不肯恕罪必欲過煩兵力小邦理窮力竭惟有俟死而已敢陳肝膈恭俟指教

태종(太宗) 문황제실록(文皇帝實錄) 33권(卷) 숭덕(崇德) 2년 1월 3일

○계묘일(癸卯)에, 조선(朝鮮) 각신(閣臣) 홍모(洪某)와 시랑(侍郎) 이모(李某)가 재서(齎書/서신을 지님)하여 남한(南漢)의 채문(寨門/목책문)에 이르니,

영아이대(英俄爾岱)와 마복탑(馬福塔)이 취(取)하여 이문(以聞/임금께 아룀)하였다.

서신(書)에 말하길

소방(小邦/작은 나라)이 대국(大國)에 획려(獲戾/허물을 얻음)하여,

스스로 병화(兵禍)를 속(速/부름)하였고, 고성(孤城/고립된 성)에 서신(棲身/거처함)하며,

조석(朝夕/짧은 시간)에 위박(危迫/위험이 눈앞에 닥침)하였나이다.

생각하면 전사(專使/사신)에게 봉서(奉書/서신을 받듦)하여 충곤(衷悃/거짓 없는 속마음)을

도달(道達/길을 통함)하고자 하였으나,

병과(兵戈/전쟁)로 곤조(困阻/포위되어 꼼짝 못함)되어 자통(自通/스스로 통함)함이 무로(無路/길이 없음)하였나이다.

작문(昨聞/어제 들음)하니 황제(皇帝)께서 비벽(鄙僻/천하고 궁벽함)에 강림(降臨/귀인이 내방함)하셨다 하니,

의신(疑信/반신반의함)하고 희구(喜懼/즐거움과 두려움)를 상반(相半/서로 반 씩 됨)하여 교집(交集/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얽히어 버림)하였나이다.

이제 대국(大國)이 화호(和好)를 언념(言念/생각하여 말함)하여 명백히(明) 회책(誨責/가르치고 꾸짖음)을 하사(賜)하여,

스스로 하여금 죄(罪)를 알게 하였나이다.

이에 바르게 소방(小邦/작은 나라)의 심적(心跡/속마음, 본심)을 획(獲/얻음)하여 밝게 할 기회이니,

불승(不勝/대단히) 흔행(欣幸/기쁘고 다행스러움)하나이다.

소방(小邦/작은 나라)이 정묘(丁卯/1627년)의 결호(結好/화친을 맺음)를 자종(自從/스스로 따름)한 이래(以來) 십여년(十餘年) 간(間)

실심(實心/진심)으로 존례(尊禮/예를 높임)한 것은 하고 대국(大國)이 소지(所知/알고 있는 바)할 뿐만 아니라,

실로(實) 황천(皇天)이 감(鑒/살핌)하는 바이나이다.

특히(特) 부성(賦性/천성)이 혼우(昏愚/흐리멍덩하고 어리석음)함으로써 

변민(邊民/변경 백성)이 채삼(採參/삼을 채취함)하는 것과 같은 불찰(不察/살피지 못함)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공경(孔耿/공유덕과 경중명)의 일은 오직 소방(小邦/작은 나라)의 본심(本心)이 아니나이다.

그러나 역시(亦) 의몽(疑蒙/의심을 받음)함이 가(可)하였으나

대국(大國)의 관가(寬假/너그럽게 용서함)가 오래되었습니다.

상년(上年/지난해) 봄 간(間)의 일은 또한 장차(將) 무엇을 위(諉/핑계 댐)하겠으며,

역시(亦) 소방(小邦/작은 나라) 신민(臣民)의 식견(識見)이 천애(淺隘/얕고 좁음)하고

명의(名義/명분과 의리)를 교수(膠守/법규나 분의를 융통성이 없이 굳게 지킴)함에 연유(緣)하여,

사신(使臣)이 발노(發怒/성을 냄)하고 경거(徑去/곧바로 가버림)함에 이른 것입니다.

수래(隨來/수행하여 옴)의 사람 모두 대군(大軍)이 장차(將) 이를 것이라 함으로써 견공(見恐/두려움이 드러남)하여,

소방(小邦/작은 나라) 군신(君臣)이 과려(過慮/지나치게 염려함)하여

변신(邊臣/변경의 신하)을 신칙(申飭/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함)하였고

사신(詞臣/문사를 담당하는 신하)이 문어(文語)를 찬(撰/지음)함에 있어 괴랄(乖剌/거스르고 어그러짐)함이 많았고,

마침내 대국(大國)의 노(怒)를 촉발(觸)하였나이다.

그러나 어찌 감히(敢) 내가 알고 있는 바가 아니라 말할 것이며,

그리고 군신(群臣/뭇 신하들)을 위(諉/핑계 댐)하겠나이까?

사신(使臣)을 금집(擒執/사로잡음)하였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곧 실제(實)로는 없던 것이니,

어찌 대국(大國)과 같은 밝은 나라가 오히려 의심(疑)하여 이에 이르게 되었음을 생각이나 하였겠나이까?

명국(明國)은 우리와 더불어 참으로 부자(父子)와 같지만,

대국(大國)이 늘상 입관(入關)하여 저쪽을 정벌(征)하면,

일찍이 소방(小邦)이 일촉(一鏃/화살촉 하나)으로써 가(加)함이 없었던 것은,

형제(兄弟)의 화호(和好)로써 중(重)히 여김이 아닌 것이 없었나이다.

모해(謀害/꾀를 써서 남을 해침)의 말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이 말의 연유(由)는 대개 소방(小邦)의 성실(誠信/정성스럽고 참됨)이 미부(未孚/믿음성이 없음)하여

대국(大國)을 견의(見疑/의심함을 드러냄)한 소치(所致)이니 또한 누구를 위(諉/핑계 댐)하겠나이까?

또한 마복탑(馬福塔)이 말하길 미의(美意/좋은 뜻)으로써 왔다는 연고(故)로,

소방(小邦)은 부의(不疑/의심하지 않음)하여 신용(信)하였는데,

어찌 이에 이를 것이라 생각하였겠나이까?

대저 왕일(往日/지난날)의 일은 소방(小邦)이 이미(已) 지죄(知罪/자기가 지은 죄를 앎)하나이다.

유죄(有罪/죄가 있음)하면 정벌(伐)하고, 지죄(知罪/자기가 지은 죄를 앎)하면 용서(恕)하소서!

이는 대국(大國)이 소위(所) 체천(體天/하늘의 형상)으로써 만국(萬國)의 심(心/마음)을 포용(容)하는 것이나이다.

정묘(丁卯) 서천(誓天/하늘에 대고 맹세함)의 약조(約)를 염(念/생각함)하여,

몽(蒙/어리석음)과 같은 소방(小邦)의 생민(生民)의 명(命/목숨)을 휼(恤/돌봄, 동정함)하옵고,

자신(自新/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함)으로 하여금 개도(改圖/고쳐 도모함)함을 허용(容)한다면

곧 소방(小邦)의 세심(洗心/마음을 바르게 고침)은 금일(今日)로부터 기(起/시작함)한 것입니다.

만약(若) 대국(大國)이 서죄(恕罪/죄를 용서함)를 불긍(不肯/원하지 않음)하고,

필히(必) 번거롭게 병력(兵力)을 과(過/지나침)하고자 한다면,

소방(小邦)은 이궁(理窮/이치가 막혀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됨)하고 역갈(力竭/힘을 다 함)하여,

오직 죽음 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감히(敢) 간격(肝膈/간과 장격)을 진술(陳)하고 공손히(恭) 지교(指教/가르침)를 사(俟/기다림)하나이다.


*각신(閣臣) 홍모(洪某) : 홍서봉(洪瑞鳳).

*시랑(侍郎) 이모(李某) : 이경직(李景稷).


○1637년 1월 3일에 조선의 각신 홍모(홍서봉)와 시랑 이모(이경직)가 서신을 지니고 남한의 목책문에 이르니
영아이대(잉월다이)와 마복탑(마푸타)이 취하여 상께 아뢰었다.
서신에 말하길
   <소방(작은 나라)이 대국에 허물을 얻어 스스로 병화를 불렀고 고립된 성에 거처하면서 
    짧은 시간에 위험이 눈앞에 닥쳤나이다.
    생각하면 사신에게 서신을 받들게 하여 거짓 없는 속마음을 통하고자 하였으나 
    전쟁으로 포위되어 꼼짝 못하게 되어 스스로 통할 길이 없었나이다.
    어제 들으니 황제께서 천하고 궁벽한 곳에 강림하셨다 하니 반신반의하여 기쁨과 두려움이 서로 반반이 되어 
    여러 생각들이 뒤얽히어 버렸나이다.
    이제 대국이 화호를 생각하여 말하여 명백히 가르치고 꾸짖음을 하사하여 저희 스스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하였나이다.
    이에 바르게 소방의 속마음을 얻게 할 밝은 기회이니 대단히 기쁘고 다행스럽나이다.
    소방이 정묘년의 화친 결의를 스스로 따른 이래 10여 년간 진심으로 예를 높인 것은 대국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로 황천이 살피는 바이나이다.
    특히 천성이 흐리멍덩하고 어리석어 변경 백성이 삼을 채취하는 것과 같은 불찰의 일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공유덕과 경중명의 일은 오직 소방의 본심이 아니나이다.
    그러나 역시 의심을 받을만하였으나 대국이 너그럽게 용서함이 오래되었습니다.
    지난해 봄의 일은 또한 장차 무엇을 핑계 대겠으며 역시 소방 신민의 식견이 얕고 좁아
    명분과 의리를 융통성 없이 굳게 지킴에 연유하였으니 이에 사신이 성을 내고 곧바로 가버림에 이른 것입니다.
    수행하여 온 사람 모두가 대군이 장차 이를 것이라 함으로써 저희를 두렵게 하니
    소방의 임금과 신하가 지나치게 염려하여 변경의 신하를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하였고
    문사를 담당하는 신하는 서신을 지음에 있어 거스르고 어그러짐이 많아 마침내 대국의 분노를 촉발하였나이다.
    그러나 어찌 감히 내가 알고 있는 바가 아니라 말할 것이며 그리고 뭇 신하들을 핑계 대겠나이까?
    사신을 사로잡으려 하였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곧 실제로는 없던 것이니
    어찌 대국과 같은 밝은 나라가 오히려 의심하여 이에 이르게 되었음을 생각이나 하였겠나이까?
    명나라는 우리와 더불어 참으로 부자와 같지만 대국(청)이 늘상 입관하여 저쪽(명나라)을 정벌하면,
    일찍이 소방은 화살촉 하나도 더하는 게 없었던 것은 형제의 화호로써 중히 여김이 아닌 것이 없었나이다.
    해를 도모하는 말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이 말의 연유는 대개 소방의 성실함이 믿음성이 없어 대국이 의심을 드러낸 소치이니 또한 누구를 핑계 대겠나이까?
    또한 마복탑(마푸타)이 말하길 좋은 뜻으로써 왔다는 연고로 소방은 의심하지 않고 믿었는데 
    어찌 (황제께서) 이에 이를 것이라 생각하였겠나이까?
    대저 지난날의 일은 소방이 이미 스스로 지은 죄를 아나이다.
    죄가 있으면 정벌하고 자기가 지은 죄를 알면 용서하소서!
    이는 대국이 소위 하늘의 대리로써 만국의 마음을 포용하는 것이나이다.
    정묘년 하늘에 대고 맹세한 약조를 생각하시어 어리석은 소방의 백성의 목숨을 불쌍히 여기시옵고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하게 함으로써 마음을 고칠 수 있게 허용하신다면
    곧 소방이 마음을 바르게 고치는 것은 바로 오늘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만약 대국이 죄를 용서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필히 번거롭게 군사력을 앞세우고자 한다면
    소방은 이치가 막혀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되니 온 힘을 다해 오직 죽음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감히 오장육부를 들어내 진솔하게 진술하였으니 공손히 가르침을 기다리겠나이다.>

요약.
1637년 1월 2일 홍 타이지의 친서가 남한산성에 도착하자
마침내 조선 인조도 청태종이 직접 성아래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월 3일 조선 조정은 화친의 계책을 강구하여 답서를 보냈는데
이 답서를 논하는 자리에서 홍 타이지를 황제라 칭할 것이냐는 것으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결국은 황제를 칭하였고 청국은 대국, 조선은 소국이라 칭하였다.
답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소국이 대국에 죄를 지어 전쟁을 일으켰다.
2. 황제가 친히 강림하였다는 말을 반신반의하였고 이제 기쁘고 또한 두렵다.
3. 황제가 직접 왔으니 소국의 본심을 알아줄 좋은 기회다 생각하니 다행스럽다.
4. 정묘년 형제지맹이후 10년간 대국을 진심으로 받들었다.
5. 국경에서 인삼을 채취하고 공유덕과 경중명을 공격한 것은 본심이 아니었다.
6. 작년 봄에 용골대가 왔을 때 문전박대한 것은 융통성 없이 명분에만 집착한 신하들 때문이었다.
7. 내가 국경에 전쟁 준비를 하라는 교지를 보낸 것은 사실이나
   이는 용골대를 따라온 사신들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협박하여 두려움에 그리한 것이었다.
   용골대를 사로잡으라는 명은 내린 적이 결단코 없다!
8. 그러나 우리 잘못이다! 변명하지 않겠다!
9. 명나라와 우리는 부자지간이지만, 청이 명나라 산해관을 공격할 때 화살 한발 청에게 쏘지 않았다.
10. 우리의 잘못을 시인하니 대국이 너그럽게 용서하라!
11. 만약 계속 전쟁을 원한다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
12. 솔직히 말했으니 좋은 말씀을 기다리겠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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