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착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4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80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738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4일

○甲辰大軍北渡漢江營於江岸距王京城東二十里許

○是日恭順王孔有德 懷順王耿仲明 智順王尚可喜 及漢軍甲喇章京金玉和攜火礮至

○갑진일(甲辰)에, 대군(大軍)이 한강(漢江)을 북쪽(北)에서 도(渡/건넘)하여

왕경성(王京城)의 동쪽(東) 거리(距) 20리(里)인 곳인 강안(江岸/강기슭)에 영(營)하였다.

○이날에, 공순왕(恭順王) 공유덕(孔有德)과 회순왕(懷順王) 경중명(耿仲明) 및 지순왕(智順王) 상가희(尚可喜)와 더불어 한군(漢軍) 갑라장경(甲喇章京/잘안 장긴) 김옥화(金玉和)가 화포(火礮)를 휴(攜/이끎)하여 이르렀다.


○ 1월 4일에 대군이 한강 북쪽에서 강을 건너 왕경성(한양)의 동쪽 20리 강기슭에 영을 세웠다.
○ 이날에 공순왕 공유덕, 회순왕 경중명, 지순왕 상가희와 더불어 한군(한족 부대) 갑라장경(잘안 장긴) 김옥화가 화포를 이끌고 이르렀다.


요약.
1637년 1월 4일 마침내 청 6차 부대인 한족 3왕(공유덕, 경중명, 상가희)과 한족부대가 화포를 이끌고
남한산성에 도달하였다.
12월 2일 청의 수도 성경(심양)을 출발한 이래 한달 만에 조선의 수도에 도달한 것이었다.

*공유덕
 : 요동 한족으로 모문룡의 부장 출신으로 등주참장을 역임하다가 모문룡이 원숭환에게 처형당한 후
   1631년 반란을 일으킨 후 1633년 후금에 투항한다.
   1636년 4월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꾼 태종 홍 타이지에 의해 공순왕(恭順王)에 봉작된다.
   입관 후에 명 잔당 토벌에 앞장섰으며 정남왕(定南王)에 봉작된다.
   1652년 대서국 2대 황제이자 남명의 장군이 된 손가망의 기습을 받자 자살했다.

*경중명
 : 본래 산동 출신의 한족으로 공유덕, 상가희(尚可喜)와 함께 모문룡의 부장이 되었다.
   모문룡이 원숭환에 의해 처형당하자 공유덕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후
   명의 4만 대군의 포위를 당하자 1633년 후금에 투항한다.
   1636년 회순왕(懷順王)에 봉작되어 한족 3왕 중 1인이 된다.
   입관 후 한족 반란을 토벌하고 강남으로 진출했다.
   1649년 정남왕(靖南王)에 봉작되어 오삼계(吳三桂), 상가희와 더불어 청초 삼번왕(三藩王)이 된다.
   1649년 11월 27일 남하하여 광주(廣州) 정벌 도중 문책을 두려워하여 목을 매 자살하였다.
   아들 경계무(耿繼茂)가 정남왕을 이어받았다.

*상가희
  : 요동 해주 출신 한족으로 요양성 함락 후 아버지 상학례(尚学礼)와 함께 모문룡에 의탁하여
    광록도(广鹿岛) 부장(副将)에 임명된다.
    아버지 상학례가 1624년 3월 후금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629년 원숭환이 모문룡을 처형하고 상가희에게까지 죄를 물으려 하자 반란을 일으킨 후
    1633년 후금에 투항하여 총병관(總兵官)이 되었고 1636년 지순왕(智順王)에 임명되었고 조선 정벌에 종군했다.
    입관 후 1649년 평남왕(平南王)에 봉작되어 1656년 광주(廣州)에 번부(藩府)를 개설하여 삼번왕 중 1인이 된다.
    삼번의 난이 발발하자 청을 배신하지 않았는데 아들 상지신이 오삼계와 결탁하자 자결한다.

-4부에서 계속-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