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 돌격대장 양고리 열전 국역 7부-3차 북경 포위전! 58번 싸워 모두 이기다!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서 전사한 최고위급 장수인 양고리, 만주어로는 양우리[yangguri]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14세에 원수의 귀와 코를 씹어먹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20

2부-300으로 적 1만을 상대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22

3부-사르후 전투의 1등 공신! http://cafe.naver.com/booheong/158925

4부-누르하치<전장에선 몸 좀 사리도록 하라!> http://cafe.naver.com/booheong/158927

5부-몽고를 거쳐 북경을 공략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57

6부-명은 매년 공격하고 조선은 놔둡시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73



청사고

왕올당, 왕고, 대선/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저영/추옝, 서이합제/슈르하치, 아이합제/야르하치 

피옹돈[비영동], 호호리[하화례], 어이두[액역도], 안퍙워[안비양고]훠르한/호이한부찰씨(푸차 군다이) 

영아이대/용골대/잉월다이액이덕니/어르더니 밬시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송서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26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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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德元年五月,命武英郡王阿濟格,饒餘貝勒阿巴泰及揚古利帥師伐明,入邊,
克畿內諸州縣凡十二城,五十八戰皆捷,獲總兵巢丕昌等,俘十餘萬。
出邊,擊敗三屯營、山海關援兵。
九月,師還,太宗出都十里迎勞。
獻捷,設宴,親酌卮酒賜三帥。
十一月,論伐明諸將違律,阿濟格出邊不親為殿,揚古利坐不諍,罰土黑勒威勒。
숭덕(崇德/청 2대 황제 홍 타이지의 #2연호) 원년(元年/1636년) 5월에,
무영군왕(武英郡王) 아제격(阿濟格)에게 명(命)하여, 
요여패륵(饒餘貝勒) 아파태(阿巴泰)와 더불어 양고리(揚古利)와 수사(帥師/군의 원수)로 명(明)을 정벌(伐)하게 하였는데,
입변(入邊/변경으로 들어감)하여, 기내(畿內/수도 주변) 여러 주현(州縣) 무릇 12성(城)을 극(克/함락함)하였고,
58번 싸워 모두 첩(捷/승리함)하였고, 총병(總兵) 소비창(巢丕昌) 등(等)을 획(獲/얻음)하였고,
10여만(十餘萬)을 부(俘/사로잡음)하였다.
출변(出邊/변경을 나감)하여, 삼둔영(三屯營)과 산해관(山海關)의 원병(援兵)을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다.
9월에, 사환(師還/회군)하니, 태종(太宗)이 도성(都) 10리(里)까지 나와 영노(迎勞/맞이하여 위로함)하였다.
헌첩(獻捷/승첩을 올림)하자, 설연(設宴/연회를 베풂)하였고, 
친히(親) 치주(卮酒/술잔)에 작(酌/술을 부음)하여 세 원수(帥)에 하사(賜)하였다.
11월에, 명(明)을 정벌(伐)한 제장(諸將)들의 위율(違律/법률 위반)을 논(論)하였는데,
아제격(阿濟格)이 친히(親) 출변(出邊/변경을 나감)하지 않고 전(殿/후군)이 되었는데,
양고리(揚古利)는 부쟁(不諍/간하지 않음)을 좌(坐/죄받음)하여,
토흑륵(土黑勒) 위륵(威勒)을 벌(罰)하였다.

*토흑륵(土黑勒) 위륵(威勒)
 : 만주어로는 tuhere weile[투허러 워일어], 뜻은 [떨어질 죄]이다.
  주로 후금과 청나라 초기 관리가 죄를 범하면 벌금을 부과하던 형벌이다.



1636년 5월에 무영군왕 아제격(아지거)에게 명하여 요여패륵(도로이 버이러) 아파태(아바타이), 
양고리(양우리)와 더불어 군의 원수로 명을 정벌하게 하였는데
변경으로 들어가 명나라 도성 주변의 여러 주현 무릇 12성을 함락하였고 58번 싸워 모두 승리하였으며
총병 소비창 등을 사로잡았고 10여만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변경을 나가서 삼둔영과 산해관의 원군을 공격하여 깨트렸다.
1636년 9월에 회군하니 태종이 도성 10리까지 나와 맞이하여 위로하였다.
승첩을 보고하자 연회를 베풀고 친히 술잔에 술을 부어 세 원수에게 하사하였다.
1636년 11월에 명을 정벌한 제장들의 법률 위반을 논하였는데,
아제격이 친히 변경을 나가지 않고 후군이 되었는데 양고리가 간하지 않은 것을 문책 받아
토흑륵 위륵(벌금형)을 벌하였다.


요약.

1636년 5월 청 개국 직후 태종 홍 타이지는 아지거, 아바타이, 양우리에게 명나라 수도 북경 타격을 명하였다.

산해관을 우회하여 몽고를 통해 명나라로 침입한 청나라 군은 북경 인근의 12성을 함락하고 58번 싸워 모두 승전한다.

포로 10여만을 획득하고 9월에 회군한다.

양우리는 아지거의 법률 위반을 묵인하였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는다.


-8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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