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 돌격대장 양고리 열전 국역 8부-태조의 돌격대장 조선에서 전사하다!(광교산 전투)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서 전사한 최고위급 장수인 양고리, 만주어로는 양우리[yangguri]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14세에 원수의 귀와 코를 씹어먹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20

2부-300으로 적 1만을 상대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22

3부-사르후 전투의 1등 공신! http://cafe.naver.com/booheong/158925

4부-누르하치<전장에선 몸 좀 사리도록 하라!> http://cafe.naver.com/booheong/158927

5부-몽고를 거쳐 북경을 공략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57

6부-명은 매년 공격하고 조선은 놔둡시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73

7부-3차 북경 포위전! 58번 싸워 모두 이기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977



청사고

왕올당, 왕고, 대선/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저영/추옝, 서이합제/슈르하치, 아이합제/야르하치 

피옹돈[비영동], 호호리[하화례], 어이두[액역도], 안퍙워[안비양고]훠르한/호이한부찰씨(푸차 군다이) 

영아이대/용골대/잉월다이액이덕니/어르더니 밬시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송서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26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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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月,太宗親伐朝鮮,揚古利從。
二年正月,師濟漢江,屯江岸,朝鮮全羅、忠清二道兵來援,營漢城南。
是月丁未,太宗命豫親王多鐸及揚古利擊之,值雪,陰晦,敵陣於山下,縱兵進擊,自麓至其巔,
多鐸鳴角,招揚古利登山督戰。
揚古利將馳赴,朝鮮敗卒伏崖側,竊發鳥鎗,中揚古利,創重,遂卒,時年六十六。
明日,多鐸率兵逼敵營,朝鮮兵已夜遁,
得揚古利尸以歸。
太宗親臨哭奠,賜御用冠服以殯。
喪還,太宗迎於郊,命陪葬福陵。
葬日,太宗復親奠。
12월에, 태종(太宗)이 친히(親) 조선(朝鮮)을 정벌(伐)하였는데, 양고리(揚古利)가 종군(從)하였다.
[숭덕(崇德/청 2대 황제 홍 타이지의 #2연호)] 2년(1637년) 정월(正月)에,
사(師/군대)가 한강(漢江)을 제(濟/건넘)하였고, 강안(江岸/강기슭)에 주둔(屯)하였는데,
조선(朝鮮)의 전라(全羅)와 충청(忠清) 2도(道)의 병(兵)이 내원(來援/구원하여 옴)하였고,
한성(漢城) 남쪽(南)에 영(營)하였다.
이달 정미일(丁未/1637년 1월 7일)에, 
태종(太宗)이 예친왕(豫親王) 다탁(多鐸)과 더불어 양고리(揚古利)에게 명(命)하여 공격(擊)하게 하였는데,
마침 눈이 와, 음회(陰晦/흐리고 어두움)하였는데, 적(敵)이 산(山) 아래에 진(陣)을 치니,
종병(縱兵/병사를 풂)하여 진격(進擊)하였고, 
녹(麓/산기슭)으로부터 그 전(巔/산꼭대기)에 이르렀고, 다탁(多鐸)이 명각(鳴角/뿔피리를 붊)하여 
양고리(揚古利)를 초(招/부름)하여 등산(登山/산에 오름)하게 하고 독전(督戰/전투를 독려함)하였다.
양고리(揚古利)가 장차(將) 치부(馳赴/내달려 다다름)하였는데, 
조선(朝鮮)의 패졸(敗卒/패잔병)이 애측(崖側/언덕 옆)에 매복(伏)하였다가,
조창(鳥鎗/조총)을 절발(竊發/슬그머니 발사함)하니, 양고리(揚古利)를 명중(中)하였고,
창중(創重/상처가 중함)하였는데, 마침내 졸(卒)하니, 이때 나이가 66이었다.
명일(明日/다음날)에, 다탁(多鐸)이 솔병(率兵/병을 인솔함)하여 적영(敵營)을 핍박(逼)하였는데,
조선병(朝鮮兵)은 이미(已) 야둔(夜遁/밤에 달아남)하였다.
양고리(揚古利)의 시신(尸)을 득(得)하여 이로써 돌아왔다.
태종(太宗)이 친림(親臨/임금이 친히 임함)하여 곡전(哭奠/제물을 올리고 곡함)하였고,
어용(御用/임금이 쓰는 물건)과 관복(冠服)을 하사(賜)하여 이로써 빈(殯/염함)하였다.
상환(喪還/상여가 돌아옴)하자, 태종(太宗)이 교외(郊)에서 영(迎/맞이함)하였고,
명(命)하여 복릉(福陵/태조 누르하치의 능)에 배장(陪葬/시신을 임금의 능 곁에 묻음)하였다.
장일(葬日/장사를 지내는 날)에, 태종(太宗)이 다시 친전(親奠/친히 제사 지냄)하였다.

지도 출처 : 국방부 전사편찬 위원회 <병자호란사> 中


1636년 12월에 태종이 친히 조선을 정벌하였는데 양고리가 종군하였다.
1637년 1월에 군대가 한강을 건너 강기슭에 주둔하였는데 
조선 전라, 충청 2도의 병력이 구원하여 와사 한성 남쪽에 영을 세웠다.
이달 7일에 태종이 예친왕 다탁(도도)과 더불어 양고리에게 명하여 공격하게 하였는데
마침 눈이 와 흐리고 어두웠는데 적이 산 아래에 진을 치니 병사를 풀어 진격하였고 산기슭으로부터 그 산꼭대기에 이르니
다탁이 뿔피리를 불어 양고리를 불러 산에 오르게 하고 전투를 독려하였다.
양고리가 장차 내달려 다다렀는데 조선의 패잔병이 언덕 옆에 매복하였다가
조총을 몰래 발사하니 양고리가 명중하였고 상처가 중하여 마침내 졸하니 이때 나이가 66세였다.
다음날에 다탁이 병력을 인솔하여 적의 영에 육박하였는데 조선군은 이미 밤에 달아났다.
양고리의 시신을 얻어 이로써 돌아왔다.
태종이 친림하여 제사를 지내고 곡하였으며 어용(임금이 쓰는 물건)과 관복을 하사하여 이로써 염하게 하였다.
상여가 돌아오자 태종이 교외에서 맞이하였고 명하여 복릉(태조 누르하치의 능)에 배장(시신을 임금의 능 곁에 묻음)하였다.
장사를 지내는 날에 태종이 다시 친히 제사를 지냈다.


요약.

1636년 12월 2일 마침내 청 태종은 조선 정벌을 단행한다.

양우리는 1637년 1월 2일 험천현에서 충청도 근왕병을 격파하고

1월 7일(조선의 기록에는 1월 6일) 광교산에 포진한 2천 전라도 근왕병을 공격한다.

양우리의 병력은 약 1천 5백 이었다.

이 전투에서 도도는 산 위에 올라 조선 본영을 발견하였고 병력 집결령을 내리고 양고리를 소환한다.

도도의 소환 명령에 양우리는 산으로 오르다가 언덕에 매복하던 조선 조총병의 사격에 명중당하게 된다.

1월 8일 도도는 양우리의 시신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광교산 돌격을 감행하였으나 이미 조선군은 떠난 상태였다.

양우리의 시신을 수습하여 돌아오니 홍 타이지는 친히 제사를 지내고 곡을 한다.

본국으로 돌아와 양우리의 시신은 태조 누르하치의 능 옆에 묻힌다.

명 공격에 집중하고 조선과 차하르는 그냥 놔두자고 주장한 양우리의 건의와는 달리

양우리는 이역만리 조선에서 6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만다.

누르하치는 늘 전장에서 선봉에 서는 돌격대장 양우리를 걱정하여 몸을 사리라고 분부한 적이 있었다.


-9부에서 계속-


*조선에서 전사한 불곰 양고리의 위상! https://cafe.naver.com/booheong/16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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